독서동아리 인터뷰 14
평범하지만 특별한 아빠들
대구 보물상자
모이는 곳 _ 동네인문학(성서공동체)
모이는 사람들 _ 성인 남성
읽는 책 _ 인문
대화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이해하는데 가장 좋은 도구중의 하나다. 하지만 대중문화에서 그려지는 대표적인 아버지의 이미지는 특히 가족과의 대화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존재일 것이다. 대화가 아닌 의미 없는 몇몇 대사와 같은 반복적인 말만 하거나 아예 가족의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실제로도 그러할까.
대구에 바쁜 일상에서 잠시의 틈을 내어 자신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대화를 나누고,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아빠들만의 모임이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사실 아버지들로만 이루어진 모임이 있다고 하면 대부분 신기하다는 반응을 보인다. 주변에 엄마들만의 독서동아리 또는 남녀노소가 어우러진 동아리가 거의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찾았을 때 마침 신입회원의 환영회도 같이 진행되는 자리가 마련되었다. 편하게 어우러지는 자리 속에서 그들만의 담담하면서도 솔직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보물상자가 만들어진 계기는 무엇인가요?
“이번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에 대구에서 같이 선정된 수요밑줄토론방이란 동아리가 있어요. 여기 동아리의 회원분들 중 몇몇의 남편들이 모여서 보물상자가 만들어졌어요. 조금 더 자세히 얘기하자면 저는 당시 다른 독서 모임을 하고는 있었는데 제 아내가 수요밑줄토론방의 남편들과 함께 책을 읽어 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어요. 저는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었는데 나머지 분들은 다 강제적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다 아내의 말을 너무나도 잘 듣는 남편들입니다. (웃음) 사실 그 전부터 같은 아파트에 살던 이웃이고 아이들도 거의 같은 또래다 보니 이래저래 친분이 있기는 했어요. 그러다가 모임을 만들어서 작년 6월부터 시작을 한 거죠.”
“우리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분이 39살이에요. 다들 그 나이대입니다. 자녀가 있는 분도 있고, 없는 분들도 있지만 일단 다 결혼한 남자들이에요.”
“저기 저 분은 아내한테 ‘일단 다섯 번만 나갈게’ 했는데 계속 쭉 나오고 계세요. 그런데 이 모임에 간다고 하면 아내들이 참 좋아해요. 쓸데없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있는 것 같아요. 모이는 시간쯤 되면 오늘 보물상자 안 가냐고, 얼른 가라고 재촉도 해요.”
평소에 어떤 방식으로 모임을 하고 계신가요?
“격주로, 한 달에 두 번 모여서 책을 읽고 있습니다. ‘동네인문학’이라고, 저희 동네에 성서공동체라는 단체가 있는데 그곳에서 운영하는 강의실에 모여 책을 읽어요. 성서공동체는 지역에 사는 주민들이 직접 만드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을 운영하고 동시에 여러 프로그램도 여는 곳이에요. 거기에 저희 보물상자를 홍보하는 전단지를 놓았었는데 얼마 전 그것을 보고 연락을 주셔서 가입한 신입 회원분이 계세요. 저희하고 아무런 연이 없는 그야말로 소중한 인연입니다. 오늘 이 자리는 신입 회원을 환영하는 자리이기도 하고요.”
“운영 방식은 《낭독은 입문학이다》라는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어요. 한 번은 책을 낭독하고, 그 다음번 모일 때는 책에 대한 의견을 나눠요. 그래서 한 달에 한 권을 읽는 방식이에요. 하지만 그런 걸 떠나서 지금은 모임 자체가 좋아서 계속 나오게 돼요.”
아빠들만의 모임은 사실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어려워요. 처음에 5명이 시작했는데 1~2명이 빠지면 빈자리가 크게 느껴져서 모임 하는 것이 힘든 때도 있었어요.”
“저희가 여러 책을 읽는데 그중에서 인문학 책을 읽다 보면 내용 자체가 어렵게 다가와요, 물론 계속 인문학 관련 책을 읽으신 분들에게는 다가오는 의미가 있고 어렵지 않을 수 있지만 처음에는 어렵잖아요. 다행히 지역의 활동하시는 분들을 통해 여러 가지 이야기도 듣고, 자세한 설명을 듣는데 그럴 때는 이해가 돼서 참 다행이라 생각해요.”
“지금 모임 인원이 8명 정도 되는데 일단 가장 적당한 인원이라고 생각해요. 회원 늘리기도 정말 쉽지 않아요. 주변에 책을 읽을 만한 사람들에게 항상 같이 하자고 말해 보지만 반응은 별로 없어요.”
“사실 대구에서도 달서구가 인프라는 잘 되어 있어요. 마을 만들기나 인문학 특강도 많이 하고 있어요. 그 효과는 잘 모르겠어요. 달서구라는 지리적인 문제가 있어요. 달서구가 인구가 정말 많아요. 게다가 거주 지역과 공단 지역이 혼합되어 있습니다. 이 두 지역이 같이 공존하기가 힘들어요. 영구임대주택도 밀집되어 있어 여러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어요. 그래서 그런 지원 사업들과 교육들의 효과들이 크지 않다고 생각해요. 연속성이 부족한 거죠. 그리고 대구라는 도시 자체가 사실 많이 보수적이에요. 그런데 우리 모임의 남편들은 정말 희한하게 보통의 대구 사람들과는 달라요. 요리도 잘하고 말도 잘 듣고. (웃음)”
그렇다면 반대로 아빠들만의 모임을 하니 어떤 좋은 점이 있던가요?
“부부싸움을 안 해요. (웃음) 뭐랄까, 부부클리닉 효과가 있어요. 저희가 읽는 책들이 이미 아내들의 독서 모임에서 읽었던 책들이거든요. 하나의 책을 부부가 읽다 보니 대화의 창구가 돼요. 책에 대한 내용을 가지고 얘기할 때 저는 일단 책에 대해 비판을 잘 하지 않는 편이에요. 내가 느낀 것들, 알게 된 것들에 만족하는 편인데 저희 아내는 다 이해해야 넘어가는 편이에요. 그래서 의견이 상충될 수도 있는데, 결국 그것 때문에 대화를 더욱 많이 하게 돼요. 저희 아내는 심리학을 전공했고, 저는 사회복지를 전공해서 그동안 서로 인간의 대한 이야기, 이해를 많이 한 편이거든요. 의견이 부딪히지는 않는데 그래도 결국 아내의 의견에 따라 가요. 남자는 절대 여자를 못 이겨요. 져 주는 게 아니라 정말 못 이겨요. (웃음)”
“책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만 하다 보면 자연스레 아이에 대한 이야기도 많이 나와요. 그러다 보면 육아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나 의견도 얻고, 정보도 공유하게 돼요. 여러 도움도 얻고 사람 사는 어떤 것을 느끼는 것 같아요.”
“대구에서 유명한 다른 독서 모임에 몇 개월 정도 참여한 적이 있어요. 다들 말을 잘하니까 한 마디도 못하고 못 끼어들었던 경험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곳은 그런 부담감이나 어려움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아내들의 모임이 동네 공공도서관에서 잘 이뤄지고 있는데 혹시 나중에 자기들이 그 모임에 안 나가게 되더라도 우리는 계속 이 보물상자에 나가야 한다고 해요. 그런 믿음을 얻은 것이 참 소중한 것 같아요.”
이야기를 듣는 내내 보물상자라는 모임에게서 순수함이 느껴졌다. 아빠들끼리 책을 매개로 이웃이라는 정다운 말을 다시 재생하고 있는 듯했다. 이들의 건전하고 즐거운 모임이 계속되길 바라며 다른 지역에서도 아버지들의 독서동아리가 신기하고 특별한 곳이 아닌 당연한 곳이 되기를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