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 사회는 책을 둘러싸고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 벌어졌다. 얼마 전 특정한 입장을 가진 단체가 공립 도서관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추천한 근현대사 도서를 모니터링하고 그 일부에 대해 좌편향이라는 이유로 추천취소와 폐기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경기도교육청이 도서관에 적절한 조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보냄으로써 문제가 불거졌다. 도서관계와 출판계, 시민단체 등은 이러한 요구가 도서관과 독서의 자율성과 자유를 침해하는, 사실상 검열이라고 주장하면서 강력하게 반발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검열이나 금서 조치 등의 의도가 없으며, 단지 공공도서관에서 추천도서를 선정하는 기준이나 방법을 사전 공개해 투명성을 확보해 달라는 요청이었다고 해명했고, 경기도 교육청은 공문을 철회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일부 도서관 현장에서는 실제 해당 책들이 사라졌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출판과 독서, 도서관 등 책과 관련된 분야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단체 연대체인 ‘바람직한 독서문화를 위한 시민연대(독서문화시민연대)’가 토론회를 열어 이러한 상황이 부적절하고 부당함을 지적하였다. 그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실천을 환기하기 위해 미국에서도 이미 시행되고 있는 ‘금서 읽기 주간’BBW, Banned Books Week 캠페인을 추진하기로 했다. 9월 1일부터 7일간 전국 각지의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 등에서 역사상 ‘금서’가 되었던 책을 읽고 토론하게 될 것이다. 이 지점에서 과연 도서관에 어떤 책은 소장하면 안 되는가 하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이에 도서관과 지적자유의 관계에 대해서 간략하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 도서관 활동은 기본적으로 ‘도서관법’에 근거한다. 모든 법률은 대한민국 헌법을 실현하기 위해 존재한다. 그렇다면 ‘도서관법’은 명시적으로 헌법의 어느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는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고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규정한다. 국민 개개인이 자신이 가진 주권을 이해하고, 권력을 행사하려면 그에 필요한 충분한 정보를 구하고, 알아야 할 것을 언제든 알 수 있어야 한다. ‘도서관법’은 바로 이 지점에서 ‘국민의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도서관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것을 밝히고 있다.(제1조) 따라서 도서관은 대한민국의 주권자인 국민 개개인이 자신의 주권과 권력을 바르게 행사하는 데 필요한 핵심적인 사회기관으로, 국민이 모든 문제를 주체적으로 판단하고 주권과 권력을 행사하도록 누구에게나 제한 없이 충분한 정보와 자료를 제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도서관은 국민들에게 제공한 적절한 책이나 자료 등을 수집해야 한다. 이때 도서관이 수집하는 모든 책이나 자료는 헌법이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제19조)나 출판의 자유(제21조), 학문과 예술의 자유(제22조) 등을 근거로 한 개인의 자유로운 활동의 결과다. 따라서 그 어떤 것이든 도서관 입장에서는 원칙적으로 제한하거나 배제할 수 없다. 다만 도서관은 책이나 자료 등을 수집하는 데 필요한 재원 또는 서비스 방식이나 범위 안에서 선택의 과정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도서관은 공개된 세밀하고 객관적인 기준을 적용한다. 그렇게 도서관은 최선, 최상의 방법과 노력으로 헌법과 법률이 규정한, 국민의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과정에서 이번 사례와 같이 특정한 입장이나 관점을 가진 단체나 개인에 의해 어떤 책이나 자료를 도서관이 배제해야 한다는 요구가 있다. 과연 이러한 요구는 정당한가? 도서관, 특히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립 공공도서관은 국민 모두의 관점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헌법과 법률이 정한 경우가 아니라면 그 어떤 입장이나 관점이라도 수용하고 국민들이 요청할 때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도서관 입장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미 국제적으로 확인된 바다. 전 세계 도서관들의 연합체인 국제도서관협회연맹IFLA은 1999년 ‘도서관과 지적 자유에 관한 선언’을 통해 유엔 세계인권선언이 규정하고 있는 지적 자유를 지지하고 옹호하며 촉진한다고 선언했다. ‘알 권리’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를 위한 기본 조건이며, ‘사상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정보 접근의 자유를 위한 필수조건으로, 이 둘은 동일한 원칙의 양면임을 강조한다. 구체적으로 도서관은 ‘모든 이용자가 동등하게 자료와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인종이나 신념, 성별, 나이 또는 그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하지 않아야 한다고 명시했다. 또한 무엇보다도 이러한 지적 자유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 도서관들은 공공 재원으로 운영되어 누구나 접근하기 용이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전 세계 도서관들은 이러한 원칙을 근거로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도서관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민주공화국인 우리나라 도서관들도 이러한 국제적인 원칙과 기준에 따라 도서관을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보편적이고 국제적인 원칙과 지침도 개별 도서관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도서관과 사서직들의 노력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여러 나라에서 구체적인 원칙과 방침이 제시되었다. 미국도서관협회는 1939년 처음 채택한 ‘도서관 권리선언’에서 모든 도서관은 정보와 사상의 광장이라고 규정하고, 정보와 깨달음을 제공해야 하는 도서관으로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 검열에 저항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2013년 다시 확인한 또 다른 ‘도서관 권리선언’에서는 도서관이 민주사회에 필수불가결한 곳임을 확인한다고 천명하면서, 읽고 정보를 찾고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당연히 여겨서는 안 되며, 도서관과 사서들은 헌법 수정 제1조에서 보장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유를 적극 수호한다고 선언하였다. 또한 미국도서관협회와 미국출판인협의회가 함께 한 ‘독서의 자유선언’은 독서의 자유는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조건인데 이 자유가 지속적으로 침해받고 있다고 말하고, 이러한 시도는 민주주의 기본전제를 부인하는 것이라 지적한다. 그러면서 “출판인이나 사서들이 저자의 개인사나 그 정치적 입장을 이유로 도서에 대한 접근을 막는 것은 공익에 반하는 것”이며 “그 어떤 예술이나 문학도 작가의 정치적 관점이나 개인적 삶에 의해 재단된다면 풍요로울 수 없다. 금서목록을 만들어내는 사회는 번영할 수 없다”고 강조한다. 일본도서관협회는 도서관은 기본 인권의 하나인 알 권리를 갖는 국민에게 자료와 시설을 제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임무로서, “도서관이 국민의 알 자유를 보장한 것이 아니라, 국민에 대한 ‘사상선도’의 기관으로서 국민의 알 자유를 방해하는 역할마저 수행했던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도서관은 이러한 사실을 반성하고, 국민의 알 자유를 지키며 확대해 나갈 책임을 완수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고, 그러기 위해 도서관은 자료수집의 자유를 갖는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현실에서 도서관이 사회적 책무를 수행하는데 제기되는 여러 도전에 도서관과 사서직은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하는 것이다. 미국도서관협회는 도서관은 표현의 자유와 사상의 자유로운 접근을 박탈하려는 것에 저항하는 모든 개인이나 집단과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일본도서관협회는 국민의 모든 자료 요구에 응할 수 있기 위해서 자료수집의 자유를 가져야 하고, 도서관 자유가 침해될 때에는 단결해서 끝까지 자유를 지킬 것을 천명했다. 우리나라도 한국도서관협회가 1997년 발표한 ‘도서관인 윤리선언’에서 도서관 운영을 책임지고 있는 도서관인은 지식자원을 선택하고 조직·보존하여 자유롭게 이용케 하는 최종 책임자로서 이를 저해하는 어떠한 간섭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따라서 기본적으로 도서관은 국민의 정보 접근권과 알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어떤 책이나 자료를 수집할 것인가 하는 선택에 있어 독립성과 자유를 확보해야 한다. 그것을 위해 도서관과 도서관인은 항상 비판적 자기 성찰과 윤리적 각성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선언하고 있다. 늘 다양한 입장과 관점, 요구 속에서 도서관의 사회적 책무를 제대로 수행하는 것은 결코 수월한 일은 아니다. 특히 다양한 입장이 상호 충돌하는 경우 도서관과 도서관인은 앞서 살펴본 헌법과 도서관법 등 관련 법률, 우리나라 또는 다른 나라 도서관 전문단체 등의 관련 선언이나 지침 등을 근거로 명백하게 자기 책임하에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까지도 감당하겠다는 생각으로 행동해야 한다. 국제도서관협회연맹은 나아가 “사서들과 다른 전문적인 도서관 직원들은 그들의 고용주와 이용자 모두에게 그들의 책임들을 다해야 한다. 이러한 책임수행에 있어 둘(고용주와 이용자) 사이에 충돌이 발생할 경우에는 이용자에 대한 의무가 우선권을 가진다”고 했다. 이러한 원칙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공립 공공도서관 소속 사서들은 헌법(제7조)이 명시한 바와 같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국민에 대해 책임진다는 명확한 태도를 유지해야 한다.
지금 당장은 어떤 사상이나 입장이 불편하고 부당한 것 같이 느껴져 그것에 대한 접근을 제한하고자 하는 것이 정당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얼마나 부질없는 일인지, 때로는 역사의 발전을 저해하는 일인지를 역사는 잘 보여주고 있다. 민주주의 사회라면 오히려 더욱더 사상의 자유를 보장하고 다양한 생각과 입장을 사상의 광장에 꺼내놓고 대화와 토론, 설득과 합의의 민주적 과정을 통해서 다름을 인정하면서도 서로 어울려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그런 민주주의 사회는 도서관이 국민 각자가 소장한 책이나 자료를 통해 시민 누구나 자유롭게 정보에 접근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자신이 가진 권리와 책임을 다하도록, 가장 보편적으로 제약 없이 개방된 사상의 광장으로서 제대로 역할 할 때 비로소 가능하다. 이제 우리나라가 국민의 힘으로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적 통일의 사명에 입각하여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세계평화와 인류공영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헌법 전문 중)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이제 필요한 것은 도서관인들이 직업적 윤리와 책임에 근거해서 도서관 자료를 독자적이고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으며, 그 결과에 책임질 수 있음을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이다. 도서관과 도서관인들도 다시 한 번 헌법과 법률이 요구하고 있는 도서관의 사회적 책무를 확인하고 이를 강력히 실천하는 계기로 삼기를 바란다. 그러리라 믿는다.
타인의 자유 정도가 나의 자유 정도이다. 도서관이 누리는 자유 정도가 우리 사회의 자유 정도이다. 도서관에 자유를 허하는 것이 모두의 자유를 보장하고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니, 도서관에 자료 선택의 자유를 허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