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금서 읽기 주간」 추천 금서 21~30
어제의 금서가 오늘의 고전
201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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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 시집 〈사슴〉은 백석이 월북작가로 분류되는 바람에 1988년 해금될 때까지 금서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백석은 월북 작가가 아닙니다. 고향이 북쪽이라 그냥 거기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니까 재북작가인 것이지요. 문제가 될 만한 이념적인 내용을 담은 시는 한 편도 없습니다. 지금은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고 닮고 싶어 하는 시인 1위입니다. 올해 경매시장에서 시집 〈사슴〉 초간본이 7천5백만원에 낙찰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 도종환(시인, 국회의원)
1952년 출판되고 1953년에 뉴베리 아너상을 받기도 한 『샬롯의 거미줄』은 사람과 동물, 동물과 동물간의 우정을 다루며 생명사랑에 대한 깊은 생각을 하게 한다. 미국의 한 교사가 교실에서 날마다 한 단원씩 읽어주면서 읽어주기의 신비한 힘을 알게도 해서 큰 반향을 일으킨 책이다. 하지만 죽음을 다루고, 동물들이 말을 할 수 있냐는 등의 일부 어른들의 문제제기로 아이들에게 읽히기 적당하지 않다고 금지도서가 되기도 했다.
- 김경숙(학교도서관문화운동네트워크 사무처장)
신자유주의 세계화 및 IMF 구조조정의 폐해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분석한 책이다. 한국 IMF사태 직전에 번역되어 IMF내내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김대중 정부의 법무부 장관이 판검사에게 권장한 책임에도 국방부 금서목록에 오르는 등 웃지 못 할 상황이 연출되었다.
- 강수돌(고려대학교 교수)
90년대 초 대학가 앞은 경찰의 몸 뒤짐이 횡행했다. 수업교재로 쓰이던 ‘막스 베버’의 책은 ‘맑스’로 오인 받아 잡혀가고, 정작 맑스의 『자본론』은 제목 덕분에 유유히 통과했다는 우스갯소리가 삼엄한 풍경 속에 떠돌아다녔다. 그 바람에 내가 읽는 책이 정부나 타인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숨죽이는 버릇이 강화됐다. 귄터 아멘트의 『섹스북』은 관점도, 구성도 흥미진진한 독일의 청소년용 성性 사회학 책이었지만, 20대 중반에도 ‘까인 여자’로 보일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읽었다. ‘이런 훌륭한 책이 금서라니!’가 아니라 ‘금서를 선별하는 권력’에 대한 문제제기로 나아가서야 권력이 내 안에 심어놓은 두려움을 조금씩 몰아낼 수 있었다.
- 배경내(인권교육센터 ‘들’ 상임활동가)
소금꽃은 땀 흘린 이들의 등짝에 피어나는 꽃이다. 이른 봄 피어나기 시작해 늦가을이 되어서야 서럽게 지는 꽃. 한진중공업 노조활동으로 해고된 이후 노동운동가로 살고 있는 김진숙이 썼다. 이 세상 온갖 재화를 만들어내는 주체이면서도 단 하루도 세상의 주인이 될 수 없었던 노동자들. 그 소금꽃나무들의 고달픈 삶과 1980년대 이후 우리나라 노동현장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다.
- 신은영(어린이도서연구회 이사)
원 제목은 '내 마음의 애니Annie on my Mind'인데 미국에서도 여러 번 불태워진 책이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자유롭게 대출이 가능하지만 제목에서부터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꽤 있고 중·고등학교도서관에는 들여놓기 난감해하는 사서들도 있다. 이 시대에도 동성애를 소재로 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혹은 도서관에서 거부당하는 책이다. 중산층의 건강한 부모와 함께 살고 좋은 학교에 다니는 리자는 애니를 만나 서로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의 성 정체성을 알게 되고 주변의 편견뿐 아니라 자기와도 갈등을 겪게 된다. 책이' 타자'와 만나는 열린 창이라고 한다면 이 책을 통해 리자의 경험을 독자도 누리게 될 것이다.
- 변춘희(어린이책시민연대 활동가)
문학이 사회적 진실을 발설하는 장치라면, 이 소설집이 감당한 작업은 거의 발굴이라는 이름에 값한다. 30년 동안 매몰되었던 한국판 홀로코스트의 현장, 제주도에서 저질러진 인간 말소의 기억을 복원해낸 첫 시도였기 때문이다. 밭뙈기에 버려진 죄 없는 주검 더미가 거름 역할을 한 덕에 그해 풍작을 거두었다는, 이 소설집 한복판에 놓인 비극적 아이러니는 그대로 우리 현대사 전체의 쓰라린 표상이다. 불과 몇 년 전, 역시 고향 제주의 기억을 다룬 이 작가의 다른 소설은 병영 속 ‘제복 입은 시민들’에게 읽혀서는 안 될 책으로 지정되었다. 우리는 ‘문학 이후’가 아니라 아직도 문학 이전에 있는지 모른다.
- 손경목(문학평론가)
정치적 폭력이, 아픈 역사가 개인의 삶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미치는 지 ‘순이 삼촌’이라는 한 인물을 통해 볼 수 있다. 이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제주 4․3 사건’은 아이들이 잘 모른다. 역사시간에 잘 다뤄지지 않기 때문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불의에 항거하며 빼앗겼던 수많은 제주도 주민들의 아픔과 부끄러운 역사를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아이들에게 가르쳐주어야 한다. 정부가, 국가가 개인에게 향한 이러한 폭력을 기억하며 아픔을 보듬고 끌어안을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 조수진(관악중학교 사서)
〈신동엽전집〉은 단순한 시전집이 아니다. 당시에도 놀랍고 선동적인 시사상이었겠지만, 지금 봐도 그 시적 예지와 혜안이 경외스럽다. 그래서 잘 알려진 서사시 〈금강〉과 〈껍데기는 가라〉, 〈산문시 1〉에만 눈 두어선 곤란하다. 그의 시 편편마다에는 전통과 현대성, 뜨거운 감성과 깊은 사유가 함께 어우러져 있다. 유신의 패악도 깜짝 놀라 금서에 올릴 만큼 정신을 뒤흔드는 시편들이다.
- 정우영(시인, 한국작가회의 사무총장)
조약돌 모으길 좋아하는 어린 당나귀 실베스터는 숲에서 주운 요술 조약돌에 주문을 잘못 거는 바람에 바위가 된다. 부모는 몇날 며칠 온 마을을 뒤진 끝에 실베스터 찾기를 포기한다. 기나긴 슬픔을 이겨내려 숲으로 소풍 나간 부모는 우연히 바위 실베스터 가까이 가게 되고, 바로 그 요술 조약돌을 바위가 된 실베스터 위에 놓음으로써 가족 모두 불행을 벗어난다. 이 그림책은 경찰이 돼지로 묘사되어 논란을 불러일으킴으로써 1969년 출간 당시 미국 일부 지역에서 금서가 되었다. 다음 해 칼데콧상을 수상했다.
- 이상희(시인, 그림책작가)
〈아기공룡 둘리〉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아시는지? 당시 어린아이가 모자를 삐딱하게 쓴다거나 어른에게 말대꾸하면 검열에서 잘렸다. 김수정 작가는 고민 끝에 동물을 그렸다. 그게 둘리다. 그러나 둘리마저도 시민단체로 부터 불량만화의 대명사로 지탄받았다. 아이들 버릇이 나빠진다는 이유다. 시민단체가 이랬으니 우리는 이런 시선으로 만화를 보고 있는 건 아닌지 멈춰서 보자.
- 박재동(만화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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