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터뷰 12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리, 책 읽는 소리
전남 무안 책짝꿍
모이는 곳_ 전남도립도서관
모이는 사람_ 주부
읽는 책_ 인문학, 문학, 과학 등
전라남도 무안, 신도시 한편에 새로 지어진 전라남도 도립도서관. 그곳 지하에 위치한 세미나실에 매주 월요일 아침마다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모이는 모임이 있다. 바로 책짝꿍이란 이름의 독서동아리이다. 새벽부터 달려와 세미나실을 찾았을 때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10명이 넘는 회원들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책을 낭독하고 있었다. 유시민의 《거꾸로 읽는 세계사》였다. 낭독을 듣고 있다 보니 점차 여러 목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활자화된 책이 아닌 소리로 이루어진 책을 만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을 읽는다, 그리고 함께 읽는다. 어쩌면 이 명제에 가장 어울리는 모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를 옮겨 이 모임에 대해 보다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우연한 발견, 필연적인 시작
“어느 날 <다큐멘터리 3일>이란 프로그램 중 국립중앙도서관 편을 보게 되었어요. 다른 화려한 공간보다 시각장애인에게 책을 읽어 주시는 분의 영상이 눈에 들어왔어요. 거기서 대면독서실이란 공간을 알게 되었어요.”
책짝꿍을 처음 만든 이은희 씨는 시각장애인과 낭독봉사자의 모습에서 단순히 책 읽기가 아닌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 주고 있다는 느낌, 요즘 같이 바쁘기만 한 세상에서 나의 이야기를 긴 시간 동안 진지한 자세로 들어 주고 있는 모습에 크게 감동을 받아 곧바로 도립도서관 관장님에게 대면독서실을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관장실로 오라는 연락을 받았어요. 그때 책짝꿍이란 이름을 만들고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짝꿍으로 이어져 책을 통해 같이 나누는 것, 그냥 책을 읽는다는 행위만으로도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모임에 대한 자료를 만들었지요.”
그러나 결국 “책만 읽어서 뭐가 되겠어요”라는 반응과 함께 도립도서관에 대면독서실은 만들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 시작된 은희 씨의 발걸음은 거침없이 이어졌다. 지인을 설득하고 지속적인 홍보를 통해 점차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는 안정적으로 모임이 이어지면서 주부들의 책 읽는 소리가 도서관을 가득 채우게 되었다.
책을 만나는 과정의 즐거움
그동안 모임에서 읽었던 책 목록을 건네받았다. 역사와 문학, 과학, 인문학 등 여러 분야의 책들이 있었고 앞으로 읽을 책 목록에는 예술, 경제 등 보다 다양한 분야로 뻗어 있었다. 문득 책을 고르고 선정하는 방법이 궁금해졌다. 자리에 함께한 여러 회원 분들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 목록을 찾아보고 <TV 책을 말하다> 같은 프로그램, 지식인 등 온라인 정보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에요. 다음 모임에서 읽을 책을 추천하려면 이런 과정이 세 시간정도 걸리더군요. 이런 과정을 통해 다양한 책들이 있다는 걸 알게 돼요.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에 가까운 책을 찾는 작업이 정말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재미있어요.”
다음 모임에서 읽기로 한 책은 《그리스인 조르바》, 《연을 쫓는 아이》, 《파리대왕》이었다. 강요나 강제가 아닌 즐거움 속에서 준비된 자료와 책 소개 속에서 회원들 각자의 생각과 감상이 오고 갔다. 즐거움이 서로 전해지는 모습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책짝꿍에서 읽는 책의 등장인물들은 어쩌면 다양한 생명력을 얻어 재탄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야기는 자연스레 책짝꿍만의 장점으로 가지를 뻗어 나아갔다.
“책을 처음 소리 내 읽으면 어색한 부분도 있는데 눈으로 읽는 것보다 좋은 점도 많은 것 같아요. 읽고 있는 사람마다 소리와 느낌이 달라서 책에 더 집중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내가 나를 발견할 수 있는 지점을 책 읽기를 통해 발견하기도 해요. 그래서 제가 이 모임에 빨려 들어가고 있는지도 몰라요.”
그동안 읽었던 책 중에서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이 가장 특별했다던 회원분이 같이 소리 내어 읽다 보면 저절로 자신에게 질문을 하게 되고 그 질문에 답을 하는 과정 속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경험을 나의 아이들에게도 꼭 하게 해 주고 싶다며 강독의 장점을 전해 주었다. 다른 회원들도 거들었다.
“내 나이가 이제 예순을 향해 가는데 이 나이쯤 되면 대화가 없어요. 단절이 되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 오면 내가 책하고 대화하는 느낌이 들어요. 다른 사람한테 읽어 주면서 내 목소리도 낼 수 있고요.”
“그동안 다른 독서토론모임에도 나가 봤어요. 그런데 그런 모임은 그저 자신의 아이가 잘되게 하는 방법으로만 독서를 활용하려고 하고 토론할 때도 자신의 말과 의견을 주장으로 쉽게 이어요. 진정 책에 대한 관심,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세상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어요. 하지만 여기는 다른 어떤 것보다 책이 우선시되는 곳이에요.”
사적으로 너무 친하지 않은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는 말에 모두가 웃으며 동의했다. 그 모습에서 단순히 친목을 위한 모임이 아니라 책이 소통과 우정의 매개체가 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우리 모임 대표의 노력이 있었어요. 사실 매주 월요일 아침은 조금 부담되고 귀찮잖아요. 그런데 대표가 항상 문자를 보내 줘요. 고민하고 계시죠? 얼른 준비하고 나오세요. (웃음) 막상 가면 삶의 활력소가 되요. 40대 여성인 저는 그동안 엄마와 아내였을 뿐이었는데 이 모임에서 비로소 나를 찾는 느낌을 받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