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동아리 인터뷰 10
지리산 품에 안겨 책을 읽다
전북 남원 둘레길
모이는 곳_ 지리산 둘레길 남원센터
모이는 사람_ 성인, 직장인
읽는 책_ 자연, 생태 관련 책
길을 따라 걷기 시작한다. 한 걸음, 한 걸음 성큼성큼 걷다 보면 처음에는 주변의 풍경도 보이고 발걸음도 가볍다. 계속 걷다 보면 점차 다리가 무거워진다. 잠시 쉬어 보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 다리는 더욱 굳어져 간다. 이 길이 맞나, 계속 걸어야 하나, 나는 왜 여기에 서 있나. 질문을 던지는 순간 그들은 저절로 순례자가 되어 간다. 그런 순례자들을 위해 길을 준비하고 길을 만들어 가며, 오고 가는 사람들에게 치유를 전달하는 이들이 있다. 전라북도 남원의 인월읍, 지리산을 한눈에 담고 있는 작은 마을 어귀에 지리산 둘레길을 시작하는 일종의 안내센터가 있다. 내부로 들어가니 아담하면서도 포근한 느낌이다. 이곳을 찾은 이들이 여기서 가야 할 코스와 이용할 수 있는 숙박 시설 등에 대해 세세하게 정보를 전해 듣고 있었다. 순간 독서동아리에 대한 인터뷰가 아니라 둘레길을 걸으러 온 것이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쳐 갔다. 공간 하나하나 직접 꾸며 애정이 묻어나는 곳이었다. 이곳에서 어떤 책을, 어떤 방식으로 읽는지 더욱 궁금해졌다.
일단 이곳 ‘인월센터’에 대한 질문을 먼저 드려야 할 것 같아요. 그리고 회원분들 소개도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이곳은 ‘인월센터’라고도 부르고 ‘남원센터’라고도 부릅니다. 공식 명칭은 ‘지리산 둘레길 남원센터’입니다. 저는 이곳의 센터장을 맡고 있습니다. 저희 내부에서 힐링스터디, 특히 독서문화스터디를 작년 말부터 시작했는데 그것의 일환으로 독서 모임을 같이하게 됐습니다. 힐링스터디는 원래 지리산 둘레길을 걸으며, 여행하며 혹은 일하며 여기서 힐링을 만들고 나눌 수 있는 독서뿐만 아니라 방법론이나 프로그램까지도 고려한 스터디입니다. 책이 프로그램 개발에도 도움이 되지만 정제된 용어로 개념들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더라고요. 그래서 책을 읽으면서 우리 자신도 영양분을 섭취할 수 있고, 그 영양분으로 오시는 여행객들이나 같이 일하는 분들과 독서 모임을 해 보자 해서 시작하게 됐습니다.”
“저는 같은 센터에서 숲길체험지도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저는 원래 책을 썩 좋아하는 편이 아닌데, 같이 어울려서 하다 보니까 남들 생각도 듣고 거기서 얻는 게 많아서 참 좋은 것 같아요.”
“저는 숲해설가로 일하면서 프로그램 개발도 하고 아이들도 만나고 가족들도 만나고 있어요. 힐링이라는 것 자체가 아이든 어른이든 모두가 가져야 하는 것이잖아요. 그래서 둘레길 안에서 단순히 길을 걷는 게 아니라 마음의 치유가 일어났으면 좋겠다 생각해서 이 독서 모임을 하게 됐고, 어찌하다 보니 리더가 됐어요. 사실 주부가 책을 읽는 게 쉽지는 않더라고요. 집에 가면 아이도 있고요. 그런데 어쨌든 이 모임을 하게 되면서 주어지는 게 있기 때문에 더 하게 되는 것 같고, 또 책임감 때문에 한 권이라도 더 보게 되더라고요. 그런 상황들에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적당히 좋은 것 같아요. 자기를 계발할 수 있고 또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 같아요.”
“여기 계신 분들 전부 다 이곳이 고향이 아니에요. 지리산이 좋고 시골이 좋아서 또는 다른 이유에서 이곳 주민이 된 사람들이에요. 저도 이곳에서 숲길 체험 지도사로 근무하고 있어요. 숲길 체험 지도사라고 하는 것은 둘레길을 걷는 이용객들에게 정보를 주고, 그리고 걸을 때 같이 길동무도 해 주고 이런 일들을 하고 있는데 저는 올해 2년째입니다.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이곳에 오는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요즘 유행하는 언어로 표현하면 힐링을 하러 이 공간을 찾는데 과연 그 힐링이 무엇인가. 우리는 힐링을 어떻게 전달해야 하고, 어떻게 공감해야 하는가,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모임이 시작된 것이 이렇게 독서 모임으로 이어지게 됐어요. 저 같은 경우는 이 안에서 한가로울 것 같아 보이는데 정말 책 읽는 게 쉽지 않았어요. 그래서 이건 좀 억지를 써야 되겠다 생각하고 있던 차에 마침 이런 모임이 있고, 이런 지원이 있고, 그렇다면 이건 내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나 스스로 책임감도 느끼면서 활동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러면서도 지금 책을 많이 못 읽고 있어요. (웃음) 특히 아쉬운 건 처음에 같이 하겠다고 하신 분들, 뜻에 공감했지만 시간이 안 맞거나 여러 가지 이유로 모임에 참여하지 못한 게 안타까워요. 하지만 그런 부담감을 느끼면서 책을 손에서 놓지 않으려는 그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방금 말씀하셨던 내용 중에 같이 길동무가 돼 주신다고 하셨는데, 그럼 구간 따라서 같이 걸으시는 건가요?
“그런 프로그램에 대한 요청이 들어왔을 때 같이 나가서 활동도 하고 있어요.”
그럼 같이 걸을 때 어떤 이야기를 주로 하시나요?
“사람마다 달라요. 저희가 고정된 프로그램이 있는 게 아니고 대상이 또 다르고 걷는 구간이 여러 개예요. 지역에 대한 이야기나 생태적인 지식을 저희가 모두 섭렵하고 있지는 못해요. 관심 갖고 있는 분야가 있는 반면에 약한 부분도 있다 보니까. 인원이 적을 때 그런 안내가 가능하고요. 찾아 온 인원이 많을 때는 길을 잃지 않도록 안내하고 있어요.”
이 공간은 언제 만들어졌나요? 공간 구성이 참 아기자기하고 알차 보입니다.
“5년 정도 된 것 같네요. 여기가 그런 사랑방 역할을 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어요. 가끔씩 주민분들도 지나다 오셔서 비치돼 있는 책도 읽으시고 작은 도서관 같은 역할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북카페 역할을 조금 더 했으면 좋겠다 하는 욕심이 있는데, 안내를 주된 목적으로 하는 공간이다 보니까 사람들이 많이 올 땐 또 많이 와요. 그러다 보니까 저 공간 안에서 쉼과 안내를 전부 다 하기는 어렵더라고요.”
“저는 5년 정도 있다 보니까 단순히 자연이나 식생에 대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 말고도 요즘은 숲 명상이라든가 걸음과 호흡을 통해서 숲을 느낄 수 있는 개인적인 여유와 공백을 느끼게 해 줄 수 있는 게 도우미 역할 같아요. 사실 느끼고 경험하는 것은 본인의 몫이고 우리는 그런 것을 잘할 수 있도록 힌트를 주는 역할인데 그게 쉽지는 않죠. 남한테 감히 힌트를 준다는 게. (웃음)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내가 충만해져야 하고 나로부터 우러나와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우리가 독서의 필요성을 느끼는 거예요. 그걸 그냥 개인적인 내 생각으로만 할 수 없고, 그리고 그 체계를 잡아 보고 싶은 욕심도 생기고 그래서 책을 더 많이 읽으려고 노력을 하죠.”
“저희가 다 조금씩 농사를 짓고 있어요. 시간이 중요한 건 아닌데, 시간을 억지로 내서 책을 읽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책을 읽기가 어려워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육체적으로 굉장히 충만한 활동을 하다 보니까, 생각할 겨를도 없이 공기와 햇빛과 길을 만나다 보니까 반대로 책을 읽으면 흡수가 잘 돼요.”
바로 옆에 있는 자연으로부터 힐링을 얻을 수 있는데, 이렇게 또 자연과 힐링에 관한 책이 필요한가요?
“자연은 내가 느끼는 거지만 우리는 표현을 잘 못 하잖아요. 그런데 작가의 글을 읽으면 ‘그래,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이거야’ 하면서 더 공감하게 되는 게 있어요.”
“그리고 혼자 책을 읽는 것과 같이 읽는 게 참 많이 다르더라고요. 모임에서 같이 책을 읽으면 내가 혼자 읽었을 때 얻을 수 있는 것 이상의, 책 이상의 것이 나오더라고요. 그게 모임의 힘인 것 같아요.”
“시골이라서 더 그런 것 같아요. 독서 모임이 단순히 모임이 아니라 하나의 커뮤니티가 되고, 내가 지킬 수 있는 약속이 돼 가고, 행복의 그릇이 된다고 하면 이해하실 수 있겠어요? (웃음) 하지만 어쨌든 발제를 하는 건 너무 힘들어요. (웃음)”
남원센터에 계시면서 기억에 남는 일이 있으신가요?
“만남 자체가 다 특별한 것 같아요. 일단 행복해지고 싶어서 오신 분들이잖아요. 관광을 하든 여행을 하든 그래서 내가 마음을 좀 편안하게 갖고 있으면 그 사람들의 에너지를 쏙쏙 빼먹을 수가 있어요. (웃음) 내가 뭔가를 줘야겠다,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지치는데, 그냥 방실방실 웃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오히려 에너지를 받아요. 두 번째로는 가족끼리 와서 걸을 때 다른 여행보다는 많은 만남을 갖게 되더라고요. 부자지간이나 모녀간에 1박 2일, 2박 3일 걷다 보면 서먹했던 것도 없어지고 많은 교감이 생겨서 나중에는 손잡고 엉엉 우는 부자도 봤어요. 그런 것들을 보면서 저희도 보람을 느끼죠.”
“전에 어떤 남자분이 혼자 오셨는데 인생 상담을 하고 가셨어요. 그냥 들어오셨어요. 이렇게 한 바퀴 빙 돌다 저를 보시더니 자기가 아픈 사람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피부도 맑고 정말 건강해 보였어요. 그래서 그 사람이 말하기 전까지는 중년 남자의 당당함과 자신감을 느꼈어요. 그런데 그 사람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암 투병을 했었고, 너무나 많은 사기를 당한 거예요. 평생을 하루에 서너 시간만 자고 열심히 살았는데 가까운 사람들한테 돈을 전부 뺏기고 그래서 자살 시도를 몇 번 시도했는데 더 이상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얼마 전에 팽목항에 갔다 왔대요. 그날은 마침 이용객들이 많지 않아서 거의 한나절을 이야기를 나눴어요. 나중에 돌아가실 때는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신 게 기억나네요.”
“저희 업무를 단순히 길을 알려 주고 민박집 전화번호를 안내하는 걸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의외로 그 안에서 많은 만남이 이루어져요. 그래서 저희가 힐링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거죠.”
“이것도 사실 감정노동이에요. 사람들이 행복을 원해서 왔는데 행복을 저해하는 작은 요소라도 있으면 그 비난이 저희한테 돌아와요. 하다못해 이정표가 작아서 길을 잠깐 잃었더라도 그 행복을 우리가 망쳐 놓은 것처럼 공격을 하기도 해요. 또 주민들 농작물 훼손이 많거든요. 그런 불만들도 저희한테 돌아오고요. 그런 걸 신경 쓰면 다들 힘드니까 그런 것들을 잘 소화시켜 내고 좋은 모습, 좋은 만남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냥 관광안내를 하는 곳과는 달라요. 같이 길을 안 걷더라도 길동무인 거예요.”
등산하고 둘레길 걷는 것하고 다른 점이 뭘까 궁금했는데 말씀을 들어보니까 차이점이 확실히 있는 것 같네요
“뭔가를 정복해야겠다는 생각 때문에 산업혁명 이후에 우리의 삶이 피폐해졌다는 반성에서 시작된 거예요. 목표를 향해서 정상을 향해서 걷는 게 아니라, 주변을 둘러보면서 함께 느껴 가면서 걷는 거예요.”
요즘 다른 곳에도 여러 길이 많이 생기고 있는데, 그런 곳들과 지리산 둘레길이 다른 점은 뭘까요?
“다른 길과의 차이점이 점점 없어지고 있긴 하지만 ‘자기를 만나는 길’이라고 아예 표제어로 만들어 놓은 길은 많지 않아요. 다른 길들은 200km를 만들어 놨어도 그 길을 다 걸으라고 하지 않아요. 코스를 여러 개 만들어 놓고 한 코스 걸어도 되고 여러 코스 걸어도 되는데 저희는 장거리 도보여행이라는 측면이 다른 것 같아요.”
“지리산은 특히 자기를 찾으려는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아요. 삶에 지치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 생각하고 싶을 때 오는 거죠.”
“뭔가 찾고 싶고 깊이 생각하고 싶고 뭔가 정리가 필요할 때 휴식을 취하기도 하지만 고된 체험을 통해서 그런 것들을 찾기도 하잖아요. 그런 마음으로 찾는 것 같아요. 다른 길들은 육체적인 건강을 위해서 걷는다면 지리산은 내면적인 건강을 위해 걷는 것 같아요.”
“지리산은 어머니의 산이라고 하잖아요. 푸근해요. 우리가 포동포동한 사람한테 안겼을 때 느낌이 참 좋잖아요. 그것처럼 지리산은 그 품으로 들어가고 싶은 산이에요. 뭔가 위로가 필요할 때 지리산을 많이 찾는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에 궁금하신 점이나 더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신가요?
“꼭 책을 지원하는 게 아니더라도 좋은 책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럼 책 선정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될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