Ⅳ. 지구 자본주의와 한국의 국가: 탈냉전 이후 지구 자본주의와 한국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를 탈냉전과 자본주의 전지구화라는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패에는 정치문화나 사회구조와 같은 내생적 변수뿐만 아니라 탈냉전, 지구화라는 외생적 변수가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한국 민주주의는 내적인 제약요인 뿐 아니라 외적인 제약요인도 있다. 이러한 외적요인 중 대표적인 것이 과거에는 냉전이었다면 현재는 신자유주의라고 할 수 있다. 다음에 제시된 <표 6>은 냉전과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사이의 연속성과 불연속성을 보여준다.
한반도는 아직 냉전 이후라고 볼 수 없다. 냉전冷戰기에 남북한은 한국전쟁이라는 열전熱戰을 겪었고, 휴전체제는 평화체제가 아니다. 따라서 냉전 이후의 신자유주의 도전이라기보다 두 가지 상이한 성격의 지구화가 한반도에 중첩되고 있는 것으로 파악해야 한다.
한국의 국가성격과 민주주의 발전은 세계수준의 냉전체제와 한반도 수준의 분단체제를 반영한다. 그런데 냉전체제의 해체와 남북관계의 개선은 한국 민주화에 이중적인 영향을 끼쳤다. 냉전시대 모든 민주주의에는 두 가지 유형의 권위가 있었다. 시민으로부터 유래하는 권위와 적으로부터 유래하는 권위가 그것이다(Beck, 2000). 냉전과 분단으로 인한 상투적인 적 즉 ‘공산당’과 ‘빨갱이’의 존재는 한미간의 갈등과 한국 내부 사회세력간의 대립을 은폐하고 억지로 봉합할 수 있게 해주었다. 냉전은 공포에 입각한 세계질서였고, 북한의 위협은 한국의 내적 위기를 계속 외적 원인 즉 ‘북괴’ 탓으로 돌릴 수 있게 했다. 이제 탈냉전과 남북화해로 말미암아 그동안 유지되어오던 공포恐怖의 균형은 불평불만不平不滿의 균형으로 대체되었다. 강력한 외부의 적이 소멸됨으로 말미암아 이제 한국의 국가는 사회갈등을 상위에서 규율할 ‘국가안보’라는 전가의 보도를 상실했다. 이제 자본주의와 공산주의간, 남한과 북한간의 투쟁은 자본주의 국가 상호간, 남한내부에서의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으로 바뀌었다. 국가안보의 우선성과 긴급성이라는 국민적 합의가 깨진 빈터를 영구평화가 채우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구성원 상호간의 영구투쟁永久鬪爭이 메우고 있는 셈이다. 사실 냉전기에 정치는 기껏 보수정당간의 권력 다툼이나 사회정책으로 오그라들어 있었기에 어떤 측면에서는 이제야 ‘정치가 되돌아오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비교시각에서 볼 때 한국은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넘어 민주주의의 공고화단계에 돌입했다고 한다. 그러나 권위주의와 민주주의라는 이분구조로는 한국 현실을 파악하기 어렵다. 한국 민주화의 특징은 한마디로 지연遲延된 민주화이행과 제약制約된 민주주의 공고화라고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민주화 방식이 민주주의의 형태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고 볼 때, 한국 민주주의가 선거민주주의 단계를 넘지 못하고 있는 주된 이유는 권위주위로부터 민주주의로의 이행과정에서 찾을 수 있다. 한국에서 민주주의 이행은 민주화를 위한 아래로부터의 도전 국면에서 제도권 야당 및 재야사회운동세력의 온건파와 권위주의체제의 개혁파 사이의 타협에 의해 가능했다. 이러한 ‘거래에 의한 이행’은 정치엘리트 수준에서 정치협약을 낳았지만, 전체사회 수준에서 사회협약을 이끌어내지는 못했다(임현진, 2001, 2005).
군사권위주의 정권에서 민간민주정권으로 이행한 후 김영삼 정권, 김대중 정권 그리고 노무현 정권은 총체적인 개혁을 시도했다. 세 정권은 권위주의 시대의 잔재를 청산한다는 역사적 사명감에서 사회 전반을 개혁하고자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 정권은 거의 똑같이 5년이란 짧은 집권기간 안에 개혁을 마무리한다는 과욕에 비해 자유주의 통치성은 미흡했다. 기존의 정치균열과 사회갈등을 증폭시킨 측면이 크게 보이기도 한다.
한국 민주주의에 서로 표리를 이루고 있는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정책과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 정책 그리고 노무현 정권의 경제정책은 한국의 기존 국가-사회관계의 급격한 변화를 초래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의 진로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오늘의 한국은 지구 자본주의체제에 통합되어 있다. 이러한 개방은 자본주의적 지구화의 결과이지만, 국가차원에서 보자면 김영삼 정권의 세계화 정책과 김대중 정권의 구조조정 정책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대외개방정책의 결과이기도 하다. 김영삼 정권의 잘못된 세계화 정책으로 인해 1997년의 경제위기가 초래되었다. 이를 IMF의 구제금융에 의해 극복하는 과정에서 김대중 정권이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그리고 이를 노무현 정권에서 이어받았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한국 민주주의는 점증하는 사회정치적 긴장 속에서 정체停滯되고 있다. 수평적 정권교체가 되었다고 하지만 참여 민주주의를 통해 민주주의의 심화로 나아가는 데 한계를 보이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가 오늘의 자본주의를 특징짓는 성격이라면 구조조정은 그것을 작동케 하는 주된 기제로서 기존의 생산관계와 지배양식의 변화를 통해 민주주의의 성쇠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지구화는 경제성장과 민주주의에 대해 긍정과 부정의 양면적인 영향을 미친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세계무역의 확대를 통해 부富의 확대를 가져오지만 지역․국가․지방 수준에서 극심한 빈부격차를 초래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의 수혜자는 기존의 중심부 국가들로서 대부분의 발전도상국가들은 일부 중진국들을 제외하고는 피해자로 전락하고 있다(장하준, 2006). 신자유주의적 지구화는 국가간 경계를 넘어 세계적 규모의 자본축적을 가능케 하는 자본, 재화, 서비스의 자유로운 소통을 위한 경쟁競爭의 민주주의이지 평등平等의 민주주의가 아니다. 게다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 과정에서 경제성장의 혜택을 보는 발전도상국의 경우 그러한 민주주의조차도 분배의 불균등으로 인해 정치균열과 사회갈등이 늘어나면서 중대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한편으로 참여와 분배라는 민주화의 논리와, 다른 한편으로 경쟁과 효율이라는 시장의 논리 사이에 내재한 긴장을 촉발한다. 특히 초국적자본을 유치하기 위해 구조조정을 효과적으로 처리하는 과정에서 기술관료들이 위로부터 ‘지시받는 민주주의’를 원한다면, 일반 시민은 정책수립 과정에서 그들의 이해를 신장하기 위하여 아래로부터의 ‘참여 민주주의’를 바란다(Jang, 2006). 발전도상국가들의 정부가 위와 밑으로부터의 구조조정 중 어떤 방식을 취할 것인가는 선택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지구경제 안의 위상, 국가의 정책 능력과 강도, 국회 내에서의 여당의 위치, 자본과 노동의 상대적 집중도의 차이, 시민사회의 성숙도 등에 따라 다르다. 민주주의가 정착되지 않은 발전도상국가들의 경우 구조조정 과정에서 평등의 이데올로기로서 민주주의는 축적의 이데올로기로서 시장과 충돌한다. 축적의 논리로서 시장이 개인의 자원 배분과 소비를 위한 권리를 강조하는 반면, 다수의 지배방식으로서 민주주의는 그러한 배분과 소비 면에서 만인이 평등할 권리를 중시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은 참여와 평등 보다 경쟁과 효율을 선호하기 때문에 사회성원들을 개인의 권리를 강조하는 시장상황으로 내모는 경향이 있다. 결국 발전도상국들은 시장친화적 구조조정 과정에서 점증하는 사회적 격차로 인한 갈등과 균열에 직면하게 되고, 극심한 경기불황의 시기에는 그것들이 빈약한 사회안전망으로 인해 정치안정을 위태롭게 할 정도로 폭발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전도상국가들에 대한 비교연구는 민주주의만이 경제위기아래에서도 체제의 생존을 지켜주는 버팀목임을 보여주고 있다. 구미국가들과는 달리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성되지 못한 상황에서 구조조정 시기에 나타나는 사회갈등과 정치균열은 경제위기經濟危機를 즉각 체제위기體制危機로 바꿔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현재의 수준을 넘어 심화되어야 하는 직접적인 까닭이기도 하다.
한미관계는 한국 사회변동을 조망하는 또 다른 축이다(정일준 외, 2014). 미국이 한국 민주주의를 억제했는가deterring 아니면 증진시켰는가promoting를 놓고 첨예하게 의견이 갈린다. 전자를 지지하는 이들은 미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이승만의 민간독재정권과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로 이어지는 역대 군사독재정권을 지지했다고 주장한다. ‘80년 광주’는 미국이 얼마나 한국 민주주의에 무관심할 뿐 아니라 저해세력인지를 잘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미국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증진시키기는커녕 그것을 억제하는 데 관심을 보였다고 본다. 이는 한국이 민주화되면 될 수록 대미관계에서 보다 자주적인 입장을 취할까 두려워할 것이라는 논리로 이어진다. 후자는 미국이 한국에 민주주의라는 이념과 제도를 이식시켰을 뿐 아니라 한국의 허약한 신생민주주주의가 뿌리내리고 성장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또 정치판의 앞면과 후면에서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다고 본다. 한국 민주주의가 오늘날처럼 발전하는 데는 미국의 역할이 크다는 것이다. 한국이 민주화될수록 과거 독재정권시기와 같은 ‘불편한’ 관계는 청산되고 한미관계는 더욱 돈독해질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이 한국에 이식시키고 정착시키고자 했던 민주주의의 성격은 다두제polyarchy였다. 미국은 다수 대중의 참여와 합의라는 의미에서의 아래로부터의 민주주의보다는 엘리트 수준의 정권교체라는 경쟁의 규칙을 마련하기 위한 다두제를 증진시키고자 했다(Robinson, 1996). 다두제는 어느 한 정치세력으로 하여금 과반수의 지지를 확보할 수 없게 만든다. 따라서 다두제는 국내를 대상으로 한 권력행사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대외관계에서는 취약하다. 한국이 놓여있는 세계체제상의 위치와 한미간의 쌍무적인 관계에서는 한국의 국가가 국내 지배/피지배계급의 이해뿐 아니라 초국적자본과 미국의 국익도 반영해야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가는 국내지배계급에 의해 포획되었다기 보다 미국의 헤게모니에 의해 침투당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역대 군사권위주의 정권의 지도자나 민간 민주주의 정권의 지도자를 막론하고 모두 미국이 부과한 헤게모니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엄밀하게 평가하자면 앞선 세 민간정권이 추진한 ‘개혁’은 국내 불평등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구조조정構造調整이었다기 보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한국을 ‘개방’한 구조적응構造適應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정책은 두 민간정권이 적극적으로 선택選擇했다기보다 세계체제로부터 부과된 가파른 선택지를 수용(受容)한 것이었다. 미국은 한국의 정권교체 자체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민주화된 한국에서 누가 정권을 잡든 상관없다. 미국이 한국을 자신의 영향력 안에 붙들어두기 위해서는 연성권력Soft Power만으로도 충분하다. 한국은 정치군사적으로 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도 미국화되었다. 게다가 탈냉전 이후 미국은 명실상부한 지구제국地球帝國이다. 과거의 제국과 다른 미제국의 특징은 이제 지구상에 미제국의 바깥이 없다는 점이다.
정당교체를 포함하는 민간정부의 연속적 등장이 민주주의의 심화에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의 성쇠는 전 지구적 탈냉전을 어떻게 한반도 수준에서 제도화시키며, 나아가 경제적 전지구화와 구조조정이라는 도전에 잘 대처해 나가느냐에 달려있다.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진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현재의 조건은 과거보다 좋지 않다. 냉전체제 아래서 보장받던 경제적 반대급부는 사라졌다. 우리는 IMF위기를 겪으며 지연된 제도전환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바 있다(구갑우, 1999; 2000). 원래 구조조정이 지니는 권력과 부의 재분배 역학은 그 실익을 둘러싸고 사회내의 주요 계급들과 집단들 사이의 이해갈등을 유발하기 마련이다.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과 달리 한국 민주주의는 그러한 이해갈등을 해소할 수 있는 절차상의 합의기제를 아직 갖추지 못하고 있다. 한국 민주주의가 공고화 단계에서 지체되고 있는 이유는 전 지구화와 구조조정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정치균열과 사회갈등을 극복할 수 있는 문화, 제도, 규범, 절차가 허약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으로서는 앞으로 보다 늘어날 사회정치적 긴장을 해결할 수 있는 민주주의의 심화가 급선무라 할 수 있다(Fung, 2003).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 그리고 노무현 정권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구조조정을 통해 한국을 지구 자본주의체제에 적응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세 민간정권은 개혁이란 명분에만 집착했지 가시적 전망과 구체적 전략에 소홀했다. 그래서 탈냉전의 제도화와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에 따른 구조조정을 강요에 의해, 그리고 사회내부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방향으로 오도했다. 개혁명분을 국가의 헤게모니 프로젝트로 승화시키지 못했다. 잘못 통치했다기 보다 자유주의 통치성이 부족했다. 무리한 세계화 정책과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 정책을 ‘개혁’이라고 강변하였지만 그것은 성공해도 또 실패해도 경제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의를 심화시킬 뿐이었다. 지구 자본주의 안에서 한국이 앞으로 생존하고 또 번영하기 위해서 구조조정은 피할 수 없다. 그렇지만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구조조정에 대해서도 ‘한국특색Korean Character’이 요구된다.6) 자본주의에도 영미식, 독일식, 스칸디니비아식, 일본식, 싱가포르식 등 여러 가지 방식이 있다. 지구 자본주의의 수렴 경향성과는 별도로 각국 자본주의는 필연적으로 다를 수밖에 없다. 이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구조조정에 대해 보다 자아준거적인 시각과 준비가 필요하다. 신자유주의적 지구화와 구조조정이 지니는 득실과 명암을 우리의 실정에 맞게 소화, 흡수할 수 있는 통치성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다.
통치성 개념은 현실주의적 접근이긴 하지만, 현실에 ‘군사’나 ‘경제’ 같은 가장 근본적인 또는 가장 중요한 하나의 차원이 있다는 가정을 배격한다. 사회현실에는 단일차원으로 환원할 수 없는 독자적인 다양한 차원multiple levels이 공존한다는 점을 인정하고, 사회문제는 복합적 측면complex dimensions을 가졌다는 점을 수용한다. 또 현실을 주어진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사회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구성되어간다고 본다. 예컨대, 우리가 ‘조국’을 지키기 위해서는 먼저 국가 정체성national identity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국익national interest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지가 정리되어야 한다. 국방defending nation-state이전에 과연 무엇을, 어떻게, 얼마만한 대가를 치르고 지킬 것인지에 대한 정의defining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경제 살리기’도 마찬가지이다. 과연 무엇을 ‘경제’라고 부르고 정치나 사회와 구분되는 선은 어디인지 정의해야 한다. ‘국가’란 또는 ‘경제’란 무엇인지, 그것은 정치나 사회투쟁과 상관없는 것인지 따져야 한다. ‘시장에 맡기자’고 할 때도 그 시장의 성격에 대해 따져 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시장을 어떻게 만들어나갈지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고 설득해야 한다. 현 이명박 정부는 국가(국가개입/간섭)가 문제라고 한다. 비판진영은 시장이 문제라고 한다. 아니 시장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자본주의가 문제라고 본다. 이글은 ‘국가도 시장도 아닌’ 또는 국가와 시민사회의 협치governance 같은 손쉬운 처방을 추구하지도, 국가와 시장의 나쁜 점은 버리고 좋은 점만 취하자는 ‘제3의 길’을 절충안으로 제시하지도 않는다. 비교역사사회학적인 시각에서 한국에서 국가와 시장의 역사적 형성과 역사적 변형을 추적하면서 자유주의 통치성이 미숙한 가운데 신자유주의 통치성neoliberal governmentality으로 과속질주함으로써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두 보수정권에서 한국의 국가는 권위주의적인 신자유주의 통치성authoritarian neoliberal governmentality이라는 특성을 보인다.7) 국가의 과잉개입/과소개입도, 시장의 전횡/미비도 아니다. 바로 통치성governmentality의 저발전이 문제이다.8)
다음의 <표 7>은 주권, 안보 그리고 사회통치가 선진 자유주의, 권위주의적 자유주의, 그리고 한국의 신자유주의에서 어떻게 다른 지를 정리한 것이다.
<그림 11>은 한국 계급구조를 지구 계급구조에 비추어 조망한 이념형이다. 시기별로는 자본주의 산업화 초기(1948-1960년대 말)의 <피라미드형>에서 중기(1970년대-1997년)의 <종형>을 거쳐 최근(1997년-2015년)의 <로켓형>까지이다. 대한민국 건국 이후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한국의 계급구조는 ‘빈곤의 평등’을 경험한다. 인구의 80%가 지구 계급구조에서 하층이고 20%가 중층인데, 중층의 하층과 중층의 상층이 단절de-linking되어 있다. 이는 역사효과와 구조효과로 설명할 수 있다. 친일파, 친미파 그리고 일부 국가계급(군인, 관료)과 독점자본 분파가 중층의 상층을 이루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자본주의 산업화가 본격화된 196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사회는 유례없는 ‘압축근대화’을 통해 ‘한강의 기적’을 이룩한다. 인구의 절반이 지구 계급구조에서 중층으로 사회이동을 경험한다. 여전히 하층이 40%에 이르지만 10%는 상층으로도 상승이동 한다. 이 그림에서 주목해 볼 것은 사회통합social integration의 가능성이다. <피라미드형>에서 하층의 상층과 하층의 하층은 두 개의 면에서 서로 만난다. 이는 혈연(가족, 친족)이나 지연(동향출신) 또는 학연 등을 통해 서로 사회계급 사이에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중층의 하층과 하층의 상층도 하나의 면에서 서로 만난다. 이는 하층계급 끼리 그리고 하층계급과 중층계급이 서로 생활세계를 공유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종형>에서는 중층과 하층이 두 개의 면에서 만난다. 이는 하층계급이 중층으로의 상승이동을 꿈꿀 수 있음을 의미한다. 또 상층과 중층도 한 면에서 만난다. 이는 중층계급이 상층계급의 생활세계를 엿 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로켓형>에서는 다르다. 상층의 상층은 상층의 하층과 단절되어 있다. 전자는 진정한 지구 지배계급global ruling class이다. 한국 자본주의나 한국 정치를 벗어나 독자적인 이익과 정체성을 추구한다. 이런 의미에서 탈국가화된 계급de-nationalized class이다. 탈규제deregulation를 선호한다. 국가개입은 악이다. 반면에 하층은 중층과 단절된다. 여기서 하층의 하층과 상층의 상층 사이에는 유례없는 계급격차가 벌어진다(양극화 심화). 중층도 중층의 하층에서 중층의 상층으로 상향이동 가능성이 열려있는 중층이 있는가 하면, 하층으로 전락하지 않을 까 전전긍긍하는 중층의 하층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하층이 중층과 단절되면서 ‘밑바닥계급’under-class으로 전락한 것이다. ‘밑바닥 계급’은 나머지 인구 집단과 달리 어떤 계급에도 속하지 않고 따라서 사실상 사회에 속하지 않는 개인들의 집합이다(Bauman, 2011). 사회는 개개인이 계급 소속을 통해서 그 안으로 편입되는 총체, 그리고 ‘사회체계’ 전체 안에서 그것을 위해 수행하도록 소속 계급에 배정된 기능을 개개인이 그 안에서 수행하는 데 동참할 것으로 기대되는 총체라는 의미에서 계급사회다. ‘밑바닥계급’이라는 개념은 수행하는 기능이나 사회 전체에서 차지하는 위치를 가리키지 않는다. ‘밑바닥계급’이라는 용어가 담고 있는 유일한 의미는 어떠한 의미 있는 계급분류에도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밑바닥계급’은 사회 ‘안’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분명히 사회의 ‘일부분’은 아니며, 사회의 존속과 안녕에 필요한 그 무엇에도 기여하지 않는다. ‘밑바닥계급’은 ‘우리안의 타자’인 셈이다. 상층의 상층은 지구 지배계급이라는 ‘그들’에 포함include되는 ‘타자’이지만 ‘밑바닥계급’은 ‘우리’가 배제해서exclude ‘타자’로 내몬다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복지국가 논쟁과 관련해서 복지재원 마련을 위해 가장 기여할 수 있는 계급은 상층의 상층이다. 그런데 그들은 이미 탈국가화 되어서 세금걷기가 쉽지 않다. 반면, 하층계급은 한국사회의 다른 계급과 단절되어 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복지지원은 표시가 나지 않는다. 마치 “밑 빠진 독에 물 붓기”하는 것 같다. 밑바닥계급에 복지재원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이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인식하고 나아가 사회성원으로 인정해야 한다. 복지국가의 인프라를 만들어 가는 이 과정은 관료화와 더불어 프라이버시 침해의 위험을 안고 있다. 자유권은 자동적으로 사회권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그런데 사회권 없는 자유권은 위험할 뿐 아니라 무의미하다. 부익부빈익빈 현상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사회성원들이 이 현상을 어떻게 이해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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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20세기 세계헤게모니 국가로서 미국의 사례를 중심으로 자본주의 국가의 특수한 역사적 형태로서 관리국가의 작동 메커니즘을 분석한 최근 연구는 신자유주의를 국가의 축소와 시장의 지배로 규정하는 일반적인 설명과는 달리 신자유주의가 케인즈주의와 마찬가지로 관리국가의 특수한 관리 패러다임이라는 사실을 밝혔다. 동시에 신자유주의는 케인즈주의와 반대로 금융의 지배를 제도화하고 재생산함으로써 고유한 정치적 ․ 경제적 불안정성을 내포한다는 사실도 밝혔다(박상현, 2012).
7) 자유주의 통치성, 신자유주의 통치성, 권위주의적 통치성 개념에 대해서는 Dean(1999, 2007) 참조.
8) 통치성 개념이 중요한 것은 푸코가 신자유주의를 비판적으로 해부하기 위해 1970년대 중반에서 후반까지 꼴레쥬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를 통해 이 개념을 발전 시켰기 때문이다(Foucault, 2003, 2007, 2008). 국내 소개로는 졸역(1995), 서동진(2005, 2009), 임동근(2008)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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