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 28주년을 맞아 ‘현 단계 한국 민주주의-진단과 과제’라는 주제로 학술토론회가 열렸습니다. 2015년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주최로 개최된 이 토론회는 한국사회의 갈등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수와 진보, 중도의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그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토론회는 경제, 사회, 정치, 생태의 4개 주제의 발표와 토론으로 구성되었으며, 대구가톨릭대 정성훈 교수(경제 부문), 고려대 정일준 교수(사회 부문), 서원대 정상호 교수(정치 부문),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생태 부문)가 주제발표를 맡았습니다. 아래에 발제문 전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Ⅰ.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론’에 대한 비판
언제부터인가 현재의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론이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시대의 유행어가 되었다. 이제는 고전이 된 퍼트남의 Bowling Alone(2000)이 출간된 이래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 테제American democracy is at risk는 이제 통념이 되었다. 늘 그렇듯이 위기는 외부 위협이 아니라 혼란스러운 내부의 흐름들, 구체적으로는 시민성의 활성과 주권자로서 시민능력의 잠식, 다수 미국인들의 정치와 공적 영역으로부터의 회피, 시민 생활의 약화, 공적 문제에 대한 시민참여의 감소 등등이다(Macedo 2005; Wolfe 2006). 퍼트남은 미국에서 사회자본이 감소한 일차적 원인을 시민적 품성을 갖춘 위대한 세대가 무관심한 X 세대로 서서히 그러나 꾸준하게 대치된 결과라고 주장하여 세대 논쟁에 불을 지폈다. 미국에서 수입된 민주주의 위기론은 한국에서도 유사한 논리와 근거를 갖고 전개되었다. 하지만 필자는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 테제Korean democracy is at risk가 대부분 부정확한 진단이거나 과장된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먼저, 민주주의 위기론의 실체에 대해 따져보자.
1. 정치참여의 위기: 투표율 하락
위기론의 첫 번째, 그리고 가장 강력한 근거는 민주주의의 꽃인 선거참여의 급격한 하락이다. <그림 1>만 보면 민주주의 위기론이 맞는 주장이다. 우리나라의 투표율 하락의 정도를 외국과 비교할 때 그 하락 폭이 2~3배가 되며, 특히 지난 10년간 급속히 하락하여 왔다. 현재의 한국투표율의 수준이 아프리카 국가를 제외한다면 가장 낮은 국가군에 속하며, 투표율 하락은 멕시코(42%)에 이어 2위(32%)를 기록하였다(OECD의 평균 감소율은 11%).
그러나 이는 시기 효과를 간과한 과장된 주장이다. <그림 1>은 역대 최저로 기록된 지난 17대 대통령선거(63.0%)와 18대 총선(46.1%)의 투표율로 인한 착시효과이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투표율 하락이 전 세계적으로 지난 2-30년간 일어난 보편적 현상, 특히 민주화로의 이행에서 공고화과정을 거친 사회에서의 일반적 현상이라는 점이다.
<표 1>이 사실에 좀 더 부합한 상황을 말해준다. 최근에 이루어진 세 차례의 선거 모두 오히려 투표율의 상승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투표율의 지속적인 하락이 있었지만 이는 후기산업화에 접어든 선진국들에서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며, 한국의 경우 바닥을 쳤다는 것이 올바른 해석이다.1)
2. 신세대의 보수화
투표율의 하락 얘기가 나올 때마다 언론사의 기획 특집으로 다루어지는 것이 20대를 비롯한 신세대의 보수화와 탈정치화 비판이다. 비판의 핵심 중 하나는 이들 신세대의 정치 무관심과 지나친 개인주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이고, 다른 하나는 앞선 민주화세대와 달리 보수화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먼저, 정치적 무관심과 이기주의에 빠져 민주주의의 활력을 해치고 있다는 주장을 들어 보자. 이러한 비판의 1차적 근거는 20대의 저조한 투표율이다. 다음의 그림은 총선까지 포함하여 8개 주요 선거의 연령대 투표율을 5년 단위로 나타낸 것이다. 여러 연령대 가운데 20대의 투표율이 예외 없이 가장 낮았다. 정리하자면, 20대의 낮은 투표율은 전체 투표율의 급속한 저하를 가져온 일차적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그렇지만 <표 2>를 보면 다소 사정이 달라진다. 물론 예외 없이 소저로고少低老高, 즉 젊은 계층의 투표율이 낮았고 나이가 많을수록 투표에 참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불변이다. 하지만 지난 대선에서 20대와 30대는 총투표율의 현격한 증가를 가져온 1등 공신이었다.
또 하나 검토해야하는 것은 야권진영이 선거에서 패배할 때마다 불거진 '20대의 보수화 테제'이다. 일반적인 견해는 경제위기이후 10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면서 시장원리를 앞세운 신자유주의적 경향이 사회의식의 보수화로 귀결되고 있다는 것이다.2) 보수화 논쟁의 미시적 수준은 특정 세대, 특히 이명박 대통령의 압도적 당선을 가져온 17대 대선 이후 386세대와 20대의 보수화에 초점이 맞추어져 왔다. 그러나 <표 3>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신세대의 보수화 주장은 그다지 확고한 근거를 갖는 것은 아니다.
신세대에 대한 부정적 평가의 또 다른 이유는 이들의 지나친 개인주의와 소비주의 경향에 있다. 특히 이러한 비판은 1990년대에 대학생활을 시작한 신세대에 집중되었다. 1990년대 초반 베를린 장벽의 붕괴와 사회주의와 동구권의 몰락과 더불어,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소비자본주의가 체화되면서 한국사회 역시 급진적인 변화상을 경험하였다. 언론들은 앞 다투어 이들 세대의 과소비와 지나친 개인주의, 그리고 일탈에 대한 비판과 도덕적 훈계를 토해냈다(『한국일보』 1990). 이들은 쾌락에 집착하는 오렌지족이었고 압구정동은 “욕망의 하수도”로 비하되었다(이기형 2010, 145). 이러한 부정적 시선은 단지 1990년대 신세대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다. 김난도는 이들을 "개인으로 자라난 첫 세대이자 자기를 표현하기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스스로에게 도취된 셀프-홀릭"이라고 규정하였다(이서영 2010, 122).
그러나 필자는 최근 20대 대학생의 가치와 참여에 대한 연구를 수행하면서 이들이 보수화되었다는 어떤 증거도 찾질 못했다(부록 참조). 오히려 이번 조사에서 우리가 발견한 것은 한국사회에서도 꾸준하면서도 분명한 탈물질주의 경향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의 특징은 물질주의자가 3배나 많은 전체 표본(KSDC 2010)과 달리 대학생의 경우 탈물질주의자가 물질주의자보다 많다는 점이다(+3.3%). 전체적인 패턴은 어수영의 연구 중 20대 전반 그룹과 유사하다. 둘째, 대전과 호남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김욱ㆍ김영태(2006)의 연구보다는 혼합형이 적었고 물질과 탈물질주의자 모두 약간 높게 나타났다.4) 결국, 이번 조사의 결과는 우리나라 대학생 중 탈물질주의자가 급격히 감소하였거나 증가하기보다는 일정 수준에서의 정체 또는 약간 증가하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3. 신뢰의 위기
퍼트남에 따르면 사회적 자본은 호혜성에 바탕을 둔 신뢰, 규범 또는 네트워크로 정의되는데, 이중 신뢰는 사회적 자본의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Putnam 1993). 사람이든 정부이든 신뢰의 감소는 민주주의의 위기를 진단하는 유력한 증거이다.
하지만 신뢰의 감소는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그다지 유난떨 일이 아니다. 필자는 이러한 변화가 퍼트남의 주장처럼 신뢰자본의 약화에 따른 민주주의의 일탈이 아니라 보다 젊고 보다 많이 교육받은 젊은 세대들의 야심찬 도전이라는 도발적 주장에 동의한다(Dalton 2008, chapter3). 그에 따르면 위기에 빠진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선거경쟁과 시민동원에 안주하였던 정부와 엘리트의 신뢰와 권위인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 국민의 국가에 대한 신뢰지수(30.2%)는 노르웨이(74.2%), 스웨덴(68.0%) 등 북유럽국가들은 물론이고 OECD 평균(38.9)과 비교해도 낮은 수준임에 틀림없다. 지난 1982년 이후 지속적으로 신뢰도가 하락하다 2005년 이후 잠깐 상승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OECD 평균과의 격차는 오히려 더 벌어지고 있는 추세이다(김동열, 2013).
하지만, 정부에 대한 공적 신뢰의 하락은 이제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세계가치관조사World Value Survey에 따르면 주요 공적 기구들의 신뢰가 1990년대 후반이래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으며, 특히 정당과 의회에 대한 불신 비율은 무려 60-70%에 이르고 있다. 유일하게 NGO에 대한 신뢰만이 상승했는데, 최근에는 이러한 경향마저 변화하고 있다. 세계가치관조사에 의하면 45개국의 NGO에 대한 신뢰도는 2002년에는 59%(대한민국은 77%)에 달하였지만 54개국을 대상으로 한 이번 6차 조사에서 NGO의 신뢰도는 53%(대한민국은 61.4%)로 하락하였다(World ValueSurvey, 2014).
잉글하트 역시 미국에서 시민단체에 대한 가입 감소가 사회적 자본의 쇠퇴이자 민주주의 위기의 증후라고 보는 퍼트남의 견해를 반박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감소한 것은 외적으로 강제되고 동원된 결합시키는 사회적 자본이다. 그 대신 스스로 조직되고 엘리트에 도전적인 집단행동과 같은 서로를 연결시키는 느슨한 유대는 오히려 증가했다. 그들은 제도에 대한 대중의 신뢰가 민주주의 성과와 유의미한 관계가 없음을 경험적으로 입증하였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436).
4. 정치 양극화
위기론의 또 다른 근거는 정치적 양극화에 따른 갈등의 심화 현상이다. 최근 한국의 경우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찬반논란, 제주도 해군기지 건설문제, 미디어법 제정 및 종편 사업자 선정 과정 논란, 천안함 사건의 원인 해명, NLL 논란, 국정원 개혁, 연금 개혁 등 많은 정책 이슈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과 대립이 정당 수준에서뿐만 아니라 유권자 수준에서 심심찮게 관찰되었다.
<그림 6>에서 나타난 것처럼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16대 당시 두 정당의 이념 격차는 불과 1.7에 그쳤지만 지난 19대 국회에서 그 값은 거의 두 배인 3.2에 이르고 있다. 민주당은 이 시기를 거치면서 가파른 진보화의 경향을 띠었고 새누리당 역시 보수화의 경로를 걸었다. 특히 외교ㆍ안보영역에서 두 정당의 이념 격차는 19대에 이르러 무려 3.9로 벌어졌다. 이제 대한민국은 정치사회는 물론이고 시민사회 역시 극심한 이념적 대립을 겪고 있다. 모든 의제를 놓고 공론장에서는 조ㆍ중ㆍ동과 한겨레ㆍ경향이, 온라인에서는 오늘의 유머와 일간 베스트가, 시민단체에서는 참여연대와 <바른사회시민회의>가 매번 대립하고 있다. 민주화 이전의 시기가 강력한 권위주의 국가에 대한 시민사회의 도전이었다면 최근에는 진보적 시민사회와 보수적 시민사회의 대립으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정치 양극화의 우려에 대해서는 좀 더 면밀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먼저, 앞의 『중앙일보』조사에 따르면, 유권자 수준에서의 이념적 양극화 경향은 발견하기 어렵다. 의원들과 달리 유권자들은 주요 정책 선호에 있어 중도 보수화의 경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 7>의 또 다른 연구 역시 이를 입증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유권자 수준에서 관찰된 정당 양극화는 2004년이 가장 높았고, 그 이후로는 2012년까지 다소 감소하거나 혹은 유사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는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살펴본 정치 엘리트 수준의 정당 양극화가 비슷한 기간 동안 꾸준히 증가해온 것과는 대조적인 현상이다. 결국 한국사회에서 심화되고 있는 이념 갈등의 원인은 일반 국민들 사이의 이념적 양극화의 증대 때문이라기보다는 정치 엘리트들 사이의 이념적 거리가 커졌기 때문(이내영 2011)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Ⅱ. 후기산업화의 대두와 좋은 시민good citizen의 출현
1. 이 글의 인식: 좋은 시민을 낳은 후기산업화의 사회경제 효과
우리는 민주주의의 위기라고 일컬어져 왔던 앞의 현상들이 기존 질서에 대한 위협이기는 해도 민주주의의 본질에 대한 침해는 아니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이해는 후기산업화의 탈물질주의적 가치의 확산이 민주주의의 해방적 효과를 낳는다는 잉글하트와 웰젤(2007)의 경험적 연구에 근거한 것이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사회경제적 발전이 사람들의 가치와 삶에 광범위한 변화를 초래한다는 사실을 적극 수긍한다는 점에서 근대화주의자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민주화를 가져오는 것은 산업화가 아니라 후기산업화라 믿으며, 종교나 전통과 같은 요소들이 근대화화 함께 소멸될 것이라는 수렴이론이나 역사적 단선이론을 부정한다는 점에서 근대화주의자들과 결정적 차이가 있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95-96). 그들은 산업화와 후기산업화의 상이한 효과를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필자가 채택한 그들의 핵심 주장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후기산업화가 대부분의 선진국들에서 시민들의 자기표현 가치self-expressive values를 증진시킨다는 점이다. 그들은 획일화와 표준화를 강조하였던 산업화와 달리 후기산업화는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를 통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즉각적인 생존을 넘어서는 공동체주의적인 목표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고 본다. 또한 사회서비스의 증대와 고등교육의 증가로 인지 기술이 확대되고 시민들의 자율성이 증진된다. 끝으로는 사회적인 자유화 효과이다. 산업사회의 대중적인 생산체제는 훈육과 표준화된 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 획일주의를 강제하지만 후기산업화는 경제활동과 사회적 삶을 다원화함으로써 개인주의적 경향을 지원하고 새로운 형태의 유연한 사회적 연대를 가져온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66-68). 주목할 것은 자기표현 가치의 성장이 진정한 민주주의를 가져온다는 점이다. 자기표현 가치는 본질적으로 해방적이고 인민-중심적이며, 그리고 다양한 전선에서 인간의 자유와 자율성을 증진시키는 새로운 형태의 인류애적 사회의 등장을 알리는 전조이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89).
둘째는 후기산업화가 가져온 정치적 결과 즉 시민행동주의에 대한 강조이다. 그들은 후기산업화가 산업사회의 제도적인 많은 부분들을 잠식하여 권위주의적 사회에는 민주화를 가져오고 이미 민주화된 사회에는 보다 엘리트에 도전적이고, 이슈 지향적이며, 그리고 직접적인 형태의 민주주의를 가져온다는 사실을 광범위한 경험적 자료를 통해 입증하였다. 그들에 따르면, 후기 산업사회에서의 강조점은 투표보다 일시적이고, 쟁점 이슈와 연관된, 그리고 엘리트에 도전적인 형태의 시민행동으로 이동하고 있다. 요약하자면, 후기산업사회의 정치참여 방식은 엘리트가 이끄는 선거 캠페인과 정당정치에서 대중의 자기표현이라는 자율적인 형태로 확장되고 있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90-93).
셋째는 후기산업화는 금전과 권력, 생존과 같은 물질주의적 가치에서 행복과 삶의 질 등 탈물질주의적post-material 가치로 삶의 목표의 전환을 가져왔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는 정치는 물론 사회 전반에 소리 없이 커다란 혁명적 변화를 초래하는 것으로서, 잉글하트(Inglehart 1977)는 이를 “조용한 혁명”silent revolution 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지난 30년 동안 1인당 소득이 15,000달러(2000년 기준) 이상 23개 고소득 국가 중 19개국은 탈물질주의적 가치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이동했지만(83%) 15,000달러 이하 19개 사회 중 14개는 반대 방향으로 이동했다(74%). 결론적으로 부유한 국가와 가난한 국가들 사이의 세계관 차이는 감소하기보다는 증가했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198).
우리의 책을 이끄는 또 하나의 지침은 달톤Russell J. Dalton의 좋은 시민good citizen에 대한 설명이다. 특히 그의 연구대상의 초점이 미국의 젊은 세대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주는 함의가 크다. 어쨌든 그의 논지는 변화하는 사회경제적 조건이 좋은 시민의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규범을 재구성하며, 그리고 이것은 시민들의 행동과 정치에 대한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이를 요약한 것이 <표 6>이다.
달톤의 핵심 주장은 지난 수십 년간 시민적 의무의 감소와 관여적 시민성이 증가해 왔다는 것이다. 의무duty-based에 기초한 시민성 규범은 선거에서의 투표와 선출된 정부에 대한 애국적 충성심을 자극하지만 관여적 시민성은 자원주의voluntarism에서 공적 저항에 이르는 다른 형태의 정치 행동을 증진시킬 수 있다. 또한 이러한 대조적인 규범은 서로 다른 정치적 가치, 이를테면 타인에 대한 관용, 공공정책 중시 등을 재구성한다. 그는 더욱이 이러한 변화가 퍼트남의 주장처럼 신뢰자본의 약화에 따른 민주주의의 일탈이 아니라 보다 젊고 보다 많이 교육받은 젊은 세대들의 야심찬 도전이라는 도발적 주장을 펼치고 있다(Dalton 2008, chapter3). 그에 따르면 위기에 빠진 것은 민주주의가 아니라 선거경쟁과 시민동원에 안주하였던 정부와 엘리트의 신뢰와 권위인 것이다.
2. 87년 6월 항쟁 이후 한국사회의 구조적 변화
1) 세대 변화: 산업화 세대에서 G세대로
한국전쟁세대와 산업화세대, 그리고 민주화세대의 가치와 태도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이념적 성향이나 소속 학문과는 상관없이 공통된 평가와 합의가 존재하고 있다. 예를 들어 산업화세대는 한국전쟁과 빈곤의 경험 속에서 물질주의와 성장주의를 신봉하며 반공-반북-친미-냉전의식을 내면화한 세대이다. 반면 민주화세대는 반공이나 성장보다 자유-민주주의-인권을 더욱 강조하는 진보적 성향을 갖고 있다(홍덕률 2003, 156-157; 오세재ㆍ이현우 2014, 212).
잉글하트는 ʻ2차대전 이래 급속한 경제발전과 복지국가의 팽창 결과, 대부분의 산업사회에서 젊은 출생 코호트들의 형성기 경험은 나이든 코호트들이 겪은 경험과 근본적으로 크게 다르며 그 결과 각 코호트들은 상이한 가치관을 갖게 되었다ʼ(Inglehart 1997, 4)고 주장하였다. 잉글하트의 연구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서구 선진국 중 물질주의와 탈물질주의를 둘러싼 세대 격차가 가장 큰 국가에 해당된다.
<표 7>을 보면, 유신체제 전야였던 1970년의 한국의 인구구조는 식민지ㆍ전쟁체험 세대가 전체 인구의 33%를, 전후 베이비 붐 세대가 51.9%나 차지하였다. 민주화와 친화력이 있는 20대가 전전 세대와 전후 세대 사이에 낀 모양새이다. 주목할 점은 식민지ㆍ전쟁체험세대의 감소와 G세대(탈냉전ㆍ정보화)의 증가이다. 1987년 민주화 당시 20.1%였던 이들 세대는 2005년에는 9.3%로, 2015년에는 5.2%로 감소하였다. 대신 1970년 이후에 태어난 G세대는 2005년에는 30.9%를, 2015년에는 43.9%를 차지하였다. 이러한 세대 변화가 낳은 정치 효과는 뒤에서 상세히 밝히겠지만 일단 여기서는 물질주의의 감소와 탈물질주의의 증가라는 가치와 문화의 전환이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만 기억하자.
2) 삶의 수준: 풍요와 번영Well-being
생존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성장한 전쟁 이전 세대는 경제적 ㆍ신체적 안전을 강조하는 생존 가치 혹은 물질주의 가치를 중시함에 비하여, 경제적ㆍ신체적 안전을 당연시하는 전후 세대는 자기표현, 삶의 질 등을 강조하는 탈물질주의 가치를 선호하게 된다. <표 8>에서 알 수 있듯이 대한민국은 지난 반세기 동안 가장 성공적인 근대화 국가의 사례임에 틀림없다. 한국사회의 유례없는 역동성은 ‘압축적 근대화’의 비정상적인 ‘압축률’에 비밀이 숨어 있다. 서구사회가 산업혁명을 시작한 1750년대부터 2000년까지 이루어 낸 250년의 근대화과정을 한국사회는 1962년에서 2000년까지 40년이 안 되는 기간 안에 이룩함으로써 8배 이상의 압축 성장을 이루어냈다(심광현 2010, 23-25).
1997년 IMF 이후 청년 실업률이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도 하였다. 2014년 현재 9%에 달하는 청년 실업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평균이 16% 정도라는 점과 비교할 때 겉으로 보기에는 양호하다.5) 다소 통계의 논란은 있지만 어쨌든 유럽이나 남미의 청년실업보다는 다소 사정이 낫다는 것이 중론이다. EU의 경우 청년 실업률은 22.6%, 실업자가 무려 550만 명으로 유럽 청년의 4분의 1이 실업자다. 청년 실업률은 연장자(10.2%)보다 2배나 높은데, 이제 청년 실업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커다란 사회적 질병이다(『Economy insight』. 2012.7).
우리나라의 급속한 사회경제 발전의 한 단면은 <표 9>의 주요 정보화 지표에 잘 나타나 있다. ICT를 시작한 지 20년 만에 스웨덴과 미국에 이어 국가정보화 지수NCA에서 세계 3위를 기록하였다(한국정보사회진흥원 2008). 미래부는 보고서를 통해 지난 20년간 추진해온 국가정보화 프로젝트에 힘입어 국가 전반의 효율과 생산성이 향상되고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 인프라가 구축되는 등 여러 성과가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 근거로 유엔 전자정부 평가 3회 연속 세계 1위, 국제전기통신연합ITU ICT 발전지수 4회 연속 세계 1위,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네트워크 준비도지수 10위권 진입 등을 들었다(『연합뉴스』. 2014.9.1).
3) 성 역할: 여성의 보다 적극적인 사회경제적 역할
지난 수십 년 역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문화적 변동은 성적 평등으로의 전환이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109). 그러한 전환은 한국사회에서도 더디지만 분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1965년에 여성의 3분 1만이, 그것도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하였지만 불과 40년 만에 여성의 절반 이상이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고등교육에서 여성의 역할은 보다 두드러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대학 진학률은 세계 선두권이다. 1965년만 해도 여성의 대학 진학은 엄청난 특혜였다. 하지만 2014년에는 여학생의 대학 진학률이 남학생을 앞서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이미 행정고시 합격자 중 여성 비율은 일반 행정직(전국모집)의 경우 56%로 절반을 훌쩍 넘어섰다(『연합뉴스』.2013.11.19.). 또한 안전행정부가 외무고시를 대체하는 ‘외교관후보자 선발시험’ 최종합격자 43명의 명단을 발표했는데, 이 중 합격자의 58.1%인 25명이 여성이며, 최고 득점자와 최연소 합격자도 여성이었다(『월간조선』.2013.11.29). 그러나 아직 정치, 특히 입법부에는 여성들이 진출하기엔 장벽이 높다. 국제의회연맹IPU이 세계 189개국을 대상으로 조사한 '2014 여성 정치인 지도'에 따르면, 스웨덴, 핀란드,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모두 상위를 차지하였다. <표 12>를 보면 세계 여성 의원 비율은 역대 최고치인 21.8%로 집계됐으나 한국은 이를 밑도는 15.7%로 세계 189개국 가운데 91위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4) 일 경험: 블루칼라에서 지식 노동자로
잉글하트는 획일화와 표준화를 강조하였던 산업화와 달리 후기산업화는 높은 수준의 복지국가를 통하여 시민들로 하여금 즉각적인 생존을 넘어서는 공동체주의적인 목표에 관심을 갖게 만든다고 보았다. 또한 사회서비스의 증대와 고등교육의 증가로 인지 기술이 확대되고 시민들의 자율성이 증진된다. 끝으로는 사회적인 자유화 효과이다. 산업사회의 대중적인 생산체제는 훈육과 표준화된 방식으로 노동자들에게 획일주의를 강제하지만 후기산업화는 경제활동과 사회적 삶을 다원화함으로써 개인주의적 경향을 지원하고 새로운 형태의 유연한 사회적 연대를 가져온다(잉글하트와 웰젤 2007, 66-68).
달톤 역시 블루칼라에서 지식 노동자로 전환이 가져온 사회적 효과에 주목하고 있다. 위계적인 조직의 전통적인 블루칼라 노동자들은 명령과 반복 일상routine, 구조와 위계를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반면 지식노동자들은 창조적, 기민함, 기술적으로 숙련되어 있으며, 상이한 역할을 수행한다. 문명사가인 플로리다Richard Florida는 이들을 창조적 계급Creative Class으로 명명하였고 그들의 경력을 개별성과 다양성, 개방성과 업적주의의 가치와 연결시켰다(Dalton 2008, 77-80).
산업구조의 변화는 우리나라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1965년에 전체의 40%에 달했던 농어업 취업자 수는 반세기(2014)만에 2.3%로 급감하였다. 반면 동 시기에 사회서비스의 고용 비중은 35%에서 무려 59.1%로 급증하였다. 특히 IT 산업의 발전은 한편으로는 노동자 없는 공장으로 인한 ‘고용 없는 성장’의 과제를 던져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회적 이동성의 증가로 접속사회와 네트워크 사회를 창출하였다. 이러한 신유목적 사회 출현과 함께 사회조직은 위계형 피라미드 조직에서 수평적 네트워크 조직으로 변화하고 있다(임혁백 2011, 426).
5) 사회적 다양성: 소수자를 위한 시민 권리와 기회의 증진
잉글하트와 그의 동료들이 가장 강조하는 것 중 하나가 관용의 증진이다. 1995년에 유럽에서 가장 보수적인 아일랜드 사람들조차 국민투표를 통해 이혼을 받아들였고, 마침내 2015년 5월에는 동성결혼을 합법화하였다. 주목할 것은 제도적인 돌파구가 이루어지기 전에 느리지만 지속적인 세대 간의 가치변화가 발생한다는 점이다(86). 탈물질주의 세대의 정치적 관용political tolerance 정도가 높다는 사실은 다음의 <표 14>로 뒷받침될 수 있다. <표 14>를 보면 지난 30년 동안 미국에서 정치적 양극화의 심화로 관용이 약화되었을 것이라는 일반적 기대와는 달리 관용이 꾸준히 증진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관용과 불관용 집단을 구분하는 가장 중요한 변수는 교육이다. 미국의 경우 세 개의 연령 집단 모두에서 더 교육받을수록 관용적이었다. 교육을 빼면, 보다 젊은 세대에서 관용이 뚜렷하게 증가하였다. 결론적으로 교육과 연령의 효과는 실질적이었다. 나이가 많고 덜 교육받은 집단은 관용도가 7.9였지만 젊고 교육받은 집단은 11.9에 달하였다(Dalton 2008, 90).
관용이라는 가치의 중요성이 증가하고 이에 대한 수용성이 높아지는 것은 비단 남의 나라 일이 아니다. 사회적 소수자는 물론 사회와 시대에 따라 규정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 권고안(2006)을 발표하였는데, 여기에 따르면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에는 장애인, 비정규직노동자, 이주노동자·난민, 여성, 아동·청소년, 노인, 성적 소수자, 병력자(에이즈환자·한센인), 군인·전의경·새터민·시설생활인 등 11개의 집단이 해당된다. 여기에 혼혈계, 양심적 병역거부자 등 인종적·종교적·문화적 소수자들을 덧붙일 수 있다.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관용의 증진은 국가인권위원회가 발표한 <제2기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 NAP 권고안>(2012)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인권위는 한국사회에 존재하는 다양한 사회적 소수자 및 약자의 민권·참정권·사회권을 동등하게 보장하는 방향으로 시민권의 확장을 권고하고 있다.
우리사회에서도 관용의 증진을 압박하는 내부 요인과 외부 요인이 존재하고 있다. 먼저, 내부 요인은 한국사회가 이미 다문화사회에 진입했다는 사실이다. 연세대 구성열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3만 5,000여 명인 다문화가정의 인구는 2020년께 167만 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되었다. 그 때가 되면 20세 이하 인구 5명 중 1명(21%)이, 신생아 3명 중 1명(32%)이 다문화가정 출신일 것으로 추정하였다(『중앙일보』 2006.4.4). 외부 요인은 재일한국인의 참정권과 장기적으로는 중국까지를 염두에 둔 전략적 조치의 일환으로 대한민국은 아시아에서는 최초로 지방의원과 자치단체장 뿐만 아니라 광역 교육감선거에서 영주권 취득 후 3년이 경과한 19세 이상의 모든 외국인에게 선거권을 부여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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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필자는 17대 대선(2008)과 18대 총선(2010)에서의 연이은 보수정당의 승리는 (386)세대효과의 소멸(서현진 2008; 황아란 2009; 박명호 2009; 윤상철 2009)이 아니라 이들을 투표소로 견인하지 못한 정책과 후보의 실패라는 오세재ㆍ이현우(2014)의 연구 결과에 동의한다. 물론 시야를 탈물질주의나 자기-표현가치가 아니라 386과 진보에 한정하는 고정관념에는 반대하지만 말이다.
2) 이에 대해 한준(2008)은 보수화는 진행되고 있지만 불균등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를 주도하는 것은 사회나 문화가 아니라 주로 경제 및 외교 분야의 쟁점이라고 설명하였다. 하지만 강명세는 "해방 이후 역사라는 긴 관점에서 보면 10년의 진보는 일시적 시기로서 보수주의 시기 속에 갇힌 진보의 짧은 시기"일 뿐이며 17대 대선 결과에서 드러난 것은 한국사회의 보수화가 아니라 '강고한 보수주의의 옹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한국정치의 현실이었다고 파악하고 있다(강명세 2008, 182).
3) 『한국 대학생의 가치와 참여 연구: G세대를 위한 변론』(가제)로 근간 예정.
4) 민병기의 연구는 다른 연구보다 중간 값이 작고, 물질주의자와 탈물질주의자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큰 데, 이는 잉글하트나 어수영과는 달리 요인 값이 높은 4개 항목만을 선별적으로 사용했기 때문이다(2013, 87).
5) 문제는 이 수치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는 데 있다. 현대경제사회연구원 보고서(2011년 11월)는 ‘광의의 사실상 청년 실업자’를 규정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15~29세 청년 가운데 실업자,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구직 단념자, 취업 준비자, 취업 의사도 없고 가사나 육아도 담당하지 않는 취업 무관심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이 기준으로 할 때 우리나라의 체감 청년 실업률은 22.1%라는 것이 이 보고서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