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0 민주항쟁 28주년을 맞아 ‘현 단계 한국 민주주의-진단과 과제’라는 주제로 학술토론회가 열렸습니다. 2015년 6월 9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의 주최로 개최된 이 토론회는 한국사회의 갈등과 민주주의의 위기를 보수와 진보, 중도의 다양한 시각으로 해석하고 그 대응방안을 모색하고자 마련되었습니다.
토론회는 경제, 사회, 정치, 생태의 4개 주제의 발표와 토론으로 구성되었으며, 대구가톨릭대 정성훈 교수(경제 부문), 고려대 정일준 교수(사회 부문), 서원대 정상호 교수(정치 부문), 서울대 환경대학원 윤순진 교수(생태 부문)가 주제발표를 맡았습니다. 아래에 발제문 전문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Ⅰ. 들어가며: 민주주의와 생태주의, 그 결합에 관하여
최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이야기가 일상적인 대화에서는 물론 언론 지면에 다양하게 나온다. 구글에서 “민주주의 후퇴”라고 치면 다양한 기사나 웹문서들이 쏟아져 나온다. 2015년 5월 1일자 <광주일보>에 따르면 바실 페르난도(71) 아시아인권위원회AHRC 위원장은 “한국에선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밖에서 볼 땐 전혀 그렇지 않다.”며 한국 민주주의의 퇴행을 우려하면서 “아시아에서 먼저 정치적 민주화를 이뤄낸 한국의 민주주의와 인권 점수는 100점 만점에 40점 수준”이라고 낙제점을 주었다. 또한 최근에는 독일의 튀링엔 신학대학에서 4월 7일부터 9일까지 ‘쟁취된, 위태로워진, 살아있는 민주주의- 한국 민주주의 시민사회의 미래’라는 주제로 학회를 열고 참가 초대에 응하지 않은 주독 한국대사와 독일 외무부 장관에게 한국의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1997년에서 2013년까지 민주당 소속으로 미국의 오하이오 주 전 연방 하원의원을 지낸 데니스 쿠시니치Dennis J. Kucinich의원은 2014년 한국전쟁 휴전일인 7월 27일 허핑턴포스트에 ‘Open Letter To Her Excellency Park Geun-hye, President, Republic of Korea-한국 박근혜 대통령님에게 드리는 공개편지’라는 제목의 편지를 공개하고 박근혜 정권에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강한 우려를 전달했다(News in Progress, 2014/07/28). 2014년 9월에 성공회대 민주주의연구소가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한국 정치 영역의 ‘민주주의 지수’가 10점 만점에 5.14로, 평등화 지수는 4.74로 나타났다. 이러한 수치 자체도 낮은 수준이지만 두 지수 모두 전 해인 2013년의 5.91과 5.34에서 더 낮아진 것이었다(경향신문, 2014/09/09).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발표한 2015 세계 언론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180개 조사 대상국 가운데 60위를 차지했다. 언론자유지수가 처음 발표된 2002년에 39위로 출발해서 노무현 전 대통령기인 2006년에 최고 31위까지 올라갔으나, 이명박 정부 때인 2009년 역대 최하위인 69위로 내려갔다. 2012년과 2013년에는 연속 50위를 차지했다가 지난해 2014년에는 57위로, ,올해는 60위가 되었다(한겨레신문, 2015/03/20). 2014년 언론지수는 박근혜정부 언론환경이 정권교체 직후 언론탄압이 극에 달했던 이명박정부 첫 해인 2008년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던 2009년 이래 최악의 점수다. 국제 인권단체 프리덤하우스가 2015년 4월 29일에 발표한 ‘2015 언론자유 보고서’에서도 한국의 언론자유 지수는 세계 67위로 33점을 기록하여 한국은 ‘부분적 자유partly free 언론국’으로 분류됐다(경향신문, 2015/04/40). 참여정부 말기인 2007년만 해도 프리덤하우스는 한국을 '정치 자유 1등급' 국가로 분류하였지만 이명박 정부시기인 2011년에 31점을 기록하기 지작하면서부터 ‘부분적 언론자유국’으로 분류되어 ‘인권 퇴행국’으로서의 오명을 쓰게 되었다. 그 때 이후 이러한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아 2013년 31점, 2014년 32점으로, 2011년 이후 5년째 언론자유국 지위를 되찾지 못하고 있다. 이는 추락하고 있는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 현주소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꾸준한 언론지수의 하락은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했다는 명백한 증거의 하나다.
그렇다면 이러한 민주주의의 퇴행은 환경・생태분야와는 어떻게 연결되어 있을까? 우선 이 글에서는 민주주의, 특히 현재 한국 사회가 정치 이념으로 추구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가 생태문제를 제대로 다루는 데 있어 어떤 한계를 갖는지 살펴보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부상한 생태민주주의의 내용을 검토하도록 한다. 하지만 사실 이러한 논의는 지금의 한국 사회의 맥락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접근이긴 하다. 한국의 문제는 생태문제의 해결에 한계를 가진 자유민주주의조차 제대로 실현하고 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선 자유민주주의와 환경생태문제의 상관성을 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자유민주주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대안적 접근인 생태민주주의 논의를 다루도록 한다. 그리고 나서 3절에서는 구체적으로 한국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왜곡과 후퇴가 어떤 환경・생태문제의 질곡과 파행을 가져왔는지를 살피도록 한다. 이 글에서는 이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두 가지 사안에 대해 다루도록 한다. 그것은 바로 이명박 정권에서 시작한 4대강사업과 이명박 정권에서 보다 공격적으로 추구한 핵발전 확대정책이다. 이러한 두 가지 사안이 박근혜 정부에서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이 시대 민주주의의 후퇴가 우리 삶의 기초가 되는 환경・생태영역을 어떻게 파괴하고 굴절시켜 나가는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Ⅱ. 자유민주주의의 한계와 생태민주주의의 등장1)
1. 자유민주주의의 특성과 생태적 위기의 상호 연관
현대사회에서 대부분의 국가는 자유민주주의를 정치원리로 한 정체를 택하고 있다.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인 내용과 요소에 대해서는 논자에 따라 다소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자유민주주의는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결합된 정치원리로,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존중을 바탕으로 하여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헌법을 통해 국민주권주의와 입헌주의의 틀을 세운 후 민주적 절차에 따라 다수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들이 이러한 틀 안에서 의사결정을 하는 체제를 지향한다. 드라이젝에 따르면 자유민주주의란 선출직elective office을 위한 경쟁, 자유로운 정치적 결사를 통한 대중의 대정부 압력행사, 헌법적 범위 안에서 정부로부터 자유로운 개인적 권리의 보장, 사적 이해의 전략적 추구 등을 주요한 특성으로 내포하는 정치원리이다(Dryzek, 1994: 179; 윤순진 2009 재인용). 자유민주주의사회에서는 모든 시민의 정치・사회적 평등과 시민의 책임성(civil accountability), 정체의 형성과 국가권력 행사에 있어서의 합리성rationality 등이 중요한 특성으로 작동한다(Byrne and Yun, 1999; 윤순진 2009 재인용).
그런데 이러한 자유민주주의가 현대 산업사회에서 점증하는 환경문제의 해결에 무능하다거나 심지어 환경오염과 파괴를 야기하는 원인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문제제기가 이루어지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환경의 오염이나 파괴와 연계되어 있는 것일까? 이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자유민주주의가 무엇을 추구하며 어떤 속성을 가지는지, 어떻게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며 그 결과 이러한 자유민주주의 원리가 생태적 위기와 결부되어 있는지, 있다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1인 1표one man, one vote”의 원리에 기초해 있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 수립되고 이행되는 공공정책은 그 사회를 구성하는 시민 개인의 의지가 모여서 이루어진 총합으로 간주된다. 1인 1표제는 유권자나 투표자간에 인종이나 성, 재산, 학력, 연령 등에 따라 차이를 두지 않고 누구나 평등하다는 인식에 기초해 있기 때문에 공정하고 합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투표자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가 동등하거나 충분하지 않을 때, 게다가 투표자들이 장기적인 공공의 이해보다 단기적인 사적 이해를 중시해서 투표권을 행사할 때 사회적으로는 상당한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특히 당장의 경제적 이익에 기여하지 못하고 보다 장기적인 시계를 가지고 접근해야 하는 생태문제의 경우 어쩌면 1인 1표제는 생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결정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생태계를 파괴하거나 생태계에 부담을 가하는 개발행위에 대한 정보가 충분히 공유되지 않거나 투표자들이 개인의 단기적인 경제적 이익에 매몰될 경우 생태적으로 문제가 되는 결정이 내려질 수 있는 것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자유주의는 본질적으로 개인주의에 기초함으로써 보다 직접적인 개인적 이해를 중시하며 각 개인이 환경에 얼마나 의존하는지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원리로서의 자유민주주의 정치제도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더불어 존재해 왔다. 이 두 제도는 “자유”라는 가치를 중시하면서 개인주의에 기초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친화성affinity을 가진다. 자유민주주의에서 개인의 정치적 의지의 합으로 대표자를 선출하고 정책을 수립하는 것처럼 시장에서 표출된 개인적 의지의 합으로 시장의 총수요를 판단한다. 다만 시장경제에서는 경제력의 크기가 시장수요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차이를 보인다. 시장이확장될수록 집합주의가 쇠퇴하고 개인주의의 상승하며 이는 대개 정치적 개인주의를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동한다(Dryzek, 1996). 또한 자유민주주의가 정치에서 선택의 자유(freedom of choice)를 지향하듯이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시장에서 “선택의 자유”를 구현하는 체제다(O’Connor, 1994). 이렇듯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에 기초함으로써 “분절적인 점증주의disjointed incrementalism”(Ophuls and Boyan, 1992)나 “선호의 집합preference aggregation”(Dryzek, 1998)을 운영원리로 한다. 이러한 원리들이 작동함으로써 구성원들은 개인적 이해와 관심에 보다 민감하게 된다.
이러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내재적 친화성만이 아니라 역사적으로 자유민주주의는 물질적 성장이란 가치에 기초해 있다. 애초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는 정치적으로는 전제정치로부터의 해방emancipation을 의미했을 뿐 아니라 자연적 제약constraint으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했다(Byrne and Yun, 1999). 18세기와 19세기 사회의 지배적인 화두는 평등주의egalitarian였는데 이는 모두의 더 나은 물질적 행복을 위해 자연을 보다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통제할 때 가능한 것이었다(Dryzek, 1998; Byrne and Yun, 1999). 가능한 한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의 조건을 제공하는 평등주의사회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자연을 정복해서 더 많은 물질적 성장을 이루지 않으면 안되었다. 모두에게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주기 위해 과학과 기술을 활용하여 자연의 제약을 극복하고 이를 변형시키며 개발하게 되었다. 삶의 원천으로서 다양한 요소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된 생명의 원천으로 이해되었던 자연은 이제 모두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생산활동의 한 요소로 치환되었다. 자유민주주의국가에서는 능력이나 기여의 정도에 따라 개인들 사이에 분배받는 몫에 차이가 있다 할지라도 사회 모든 구성원들이 각자의 지위나 계층과 무관하게 경제성장을 통해 물질적 이익을 공유할 수 있다고 약속한다(Mumford, 1964; Ophuls and Boyan, 1998). 비록 각자가 가질 수 있는 파이의 크기는 다를 수 있지만 개인들에게 배분되는 파이는 예전보다 더 커질 수 있고 사회적 부가 성장함에 따라 그 부가 사회 저변까지 흘러내림으로써 각자의 몫이 더 커질 것이란 기대를 갖게 된다. 이러한 논리에 서게 되면 시민들이 정책결정과정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배제되는 경우조차 자유민주주의를 효과적인 정치체제로 정당화하게 된다(Nogaard, 1994). 왜냐하면 경제가 영원히 성장해 나갈 수 있고 그 결과 경제적 번영의 일부를 향유할 수 있게 된다면 부와 정치권력의 분배구조는 크게 문제 삼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역으로 부와 정치권력의 분배를 문제 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파이의 몫을 키워주기 위한 경제성장을 구현하지 않으면 안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자유민주주의는 환경적 지속가능성을 위협하는 기제가 될 가능성을 갖게 된다(Byrne and Yun, 1999). 물질적 성장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적 접근은 자연에 대해 도구적 이해로 귀결된다. 자연은 인간의 편익을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의 경제적 편익을 생산하는 자원일 뿐이다. 그대로의 자연세계는 비생산적이어서 과학과 기술이 적용되어 변형될 때 생산성이 높아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자연의 한계는 과학기술의 적용으로 풀 수 있는 문제일 뿐이다.
자유민주주의의 또 다른 특성은 절차를 중시하는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의 주요 운영원리는 대의의 원칙representative principle과 다수결의 원칙majoritarian principle으로, 정치과정을 지배하는 규칙의 적절성adequacy과 공정성fairness을 강조한다(Ophuls and Boyan, 1998). 규칙이 적절하고 과정이 공정하다면 결과도 공정한 것으로 간주한다. 자유민주주의는 의사결정에서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구성원 다수의 의견을 따르는 방식을 취함으로써 “절차”가 무엇보다 중요하게 된다. 자유민주주의가 절차지향적 성향을 가지게 되면서 달성하고자 하는 정치적 목적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절차라는 정치적 수단에 귀속되어 버린다. 오펄스와 보얀(1998)은 자유민주주의는 “내용”보다 민주적인 “절차”에 초점을 맞추는 한계를 지니게 된다고 지적하는데 이는 생태주의가 실질적 결과를 주창하는 것과 명확히 대비한다(Goodin, 1992). 민주적인 의사결정 과정 자체가 항상 생태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수의 시민들이 일자리와 경제적 기회, 경제의 지속적 성장을 원할 때, 시민의 표로 선출되어 구성되는 정치기구들이 그러한 시민적 요구를 따른다면, 자유민주주의의 의사결정 절차에 문제가 없다 하더라도 이러한 결정과정은 환경적 파괴로 귀결될 수 있다. 정책결정과정에 시민 참여를 보장한다 하더라도 민주적인 과정 자체만으로는 환경문제를 제대로 풀 수 없게 된다. 때에 따라서는 환경에 관심과 가치를 두지 않는 권력 있는 소수가 정책결정과정을 왜곡하여 이를 주도할 경우 시민 다수가 환경적 관심이 아주 높다 하더라도 다수의 뜻이 정책내용에 제대로 반영되지 않음으로써 환경파괴로 귀결되거나 야기된 환경문제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게 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의 대의제 원리도 생태문제와 관련하여 누가 누구를 대변하는지, 누구의 어떤 이해를 대변하는지의 측면에서 상당한 결함을 내포하고 있다(Doeleman, 1997; Yun, 2001; 정규호, 2006; 윤순진, 2009). 시간과 공간, 종species의 차원에서 현재의 대의제 원리는 생태문제의 해결이나 예방에 무능력할 수 있다. 첫째, 시간적 차원에서 대의제 하에서는 태어나지 않은 미래세대와 투표권을 갖지 못한 현재의 사회구성원의 이해는 대변되기 어렵다. 현 세대가 야기하는 생태문제가 현 세대에 머무르지 않고 세대에 걸쳐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문제의 형성과 발현이 긴 시간적 지체로 세대를 건너뛰어 나타날 수 있지만 당장의 이해에 매몰되어 의사결정이 내려질 수 있다. 생태문제는 생물종의 상실을 포함해서 예전상태로 회복할 수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는 비가역적irreversible 특성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 경우 이러한 변화된 생태적 조건이 미래세대의 선택지를 근원적으로 차단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재의 대의제 하에서는 미래세대의 이해가 적절하게 대변되기 어렵다. 둘째, 공간적 차원에서 볼 때, 생태문제가 국가의 경계나 행정구역의 경계를 가로지르며 일어나는 일이 많으나 현재의 대의제 하에서는 주권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만 문제가 다루어지는 경향이 있다. 국가 경계 밖에서 발생한 환경문제에 대해 대의가 쉽지 않으며 여러 주권국가의 영토를 넘나들며 일어나는 월경성 환경문제나 전 지구적 환경문제에 대해 대의의 통로를 찾기 어렵다. 셋째, 종의 차원에서 현재의 대의제는 한정적이다. 주된 관심은 인간의 이해로 인간 이외 다른 생물종의 이해를 대변하는 데 무관심하거나 무능력한 경향이 있다. 대의제는 시간과 공간, 종의 차원에서 경계를 뛰어넘기 어렵다.
다만 표를 행사하는 시민이 이러한 경계에 갇히지 않고 생태적 관점에서 폭넓게 사고하고 그러한 자신의 관점을 대변해 줄 수 있는 대표를 선출할 때, 또 생태적 관점에서 다양한 정책결정과정에서 목소리를 낼 때 그 결과는 다소 달라질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민주주의 발전과정에서 나타난 특정 유형이나 단계로 민주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다. 생태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권리의 주체를 현 세대의 특정 공간에 거주하는 인간들로 제한하지 않고 경제의 지속적 성장에 대한 믿음으로 자연을 도구화하는 자유주의적 가치에 갇히지 않고 생태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는 민주주의적 가치를 계승해야 한다. 자유민주주의의 합리성, 특히 “담화적 합리성discursive democracy”(Dryzek, 2005)은 시간과 공간, 종의 경계를 벗어나 보다 넓은 생태적 맥락에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으며 자유민주주의가 주창하는 동등성은 1인 1표라는 형식적인 차원을 넘어 균형잡힌 다양한 정보를 기초로 숙의의 과정을 거치고 사회적 합의를 모아나가는 기초로 작용할 수 있다.
2. 생태민주주의의 의미와 내용
생태민주주의는 자연민주주의의 생태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대안적 민주주의 원리다. 자유민주주의에서 진지하게 고려되지 않은 지구가 가진 “부양능력carrying capacity의 한계”를 인식하고 이 한계 안에서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고 모든 시민의 정치・사회적 평등과 책임성, 의사결정의 합리성을 추구하며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되 균형 잡힌 정보의 제공과 숙의를 중시한다. 생태민주주의는 내용적으로 생태정의의 실현을 추구하면서 절차적으로는 단순한 다수결을 넘어 숙의의 과정을 핵심 기제로 한다(윤순진, 2009). 보다 구체적으로 기술하자면 생태민주주의란 한계를 인식하지 않은 끊임없는 경제성장의 추구가 환경오염과 파괴를 야기한 데 대한 성찰과 함께 환경오염과 파괴에 따른 편익과 비용이 불평등하게 배분되는 상황이 사회・경제・보건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이것이 다시 생태위기를 심화시키는 데 대한 성찰을 기초로 하여 생태적 한계 내에서의 경제발전과 생태정의를 추구하면서 자유민주주의식 1인 1표의 행사나 대표자의 선출에 의한 정책 결정에 머무르지 않고 정보의 공개와 공유를 토대로 보다 숙의적인 담론구성을 통해 사회적 의사를 결정하는 방식을 취한다.
생태민주주의가 실현하고자 하는 생태정의란 환경정의 개념을 사회내 관계들에 국한시키지 않고 사회와 자연과의 관계에로 확장한 것이다. 환경정의 개념이 등장한 미국에서는 정책과정에서 이를 고려하고 실현하도록 명문화되어 있다. 미 연방환경청은 환경정의를 “모든 사람들이 인종, 민족, 소득수준과 관계없이 환경법, 규제, 정책의 개발, 이행 및 집행에서 공정한 대우와 의미 있는 참여를 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보다 구체적으로 “환경정의는 모든 사람이 환경과 건강유해요소로부터 똑같은 수준의 보호를 향유하고 우리가 살고, 배우고, 일하는 곳을 건강한 환경으로 만들기 위한 의사결정과정에서 모두가 동등한 접근권을 가질 때 달성된다.”고 보고 있다. 1995년 전국 입법부 회의와 환경정의 연구모임에서는 환경정의를 “인종, 소득, 문화 또는 사회계급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들이 환경적 위해나 건강위해로부터 평등한 보호를 받도록 하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환경정의자문위원회Massachusetts Environmental Justice Advisory Committee: MEJAC는 환경정의를 “인종이나 소득, 문화, 사회계급과 무관하게 환경적 위험과 건강 위험으로부터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보호받고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을 누릴 권리를 지니며 모든 사회구성원이 환경이익만이 아니라 환경오염과 건강위험을 균형있게 부담하는 것”으로 정의한다(Agyeman, 2005). 환경정의의 내용에 대해 앞서 기술한 기관들이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연방환경청은 공정한 대우와 의미있는 참여를, 전국 입법부 회의와 환경정의 연구모임에서는 평등한 보호를, 매사추세츠주 환경정의자문위원회는 평등한 보호와 환경권의 향유, 편익과 위험의 균형 있는 부담을 강조한다. 이를 종합해서 환경정의를 정의하자면, 환경정의는 모든 사람이 깨끗한 환경에서 살 권리가 있으며 동일한 수준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실질적 정의substantive justice,” 환경편익과 부담이 공평하게 배분되어야 한다는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 정책이나 법, 계획의 결정이나 이행과정에 대한 의미 있는 참여를 볼 수 있다(Agyeman, 2005). 의미 있는 참여란 어떤 개발사업이나 정책으로 영향 받는 주민이 정책 결정이나 이행과정에 참여하고 관련 이해당사자들간에 정보가 공개되고 공유되어야 하며 이해당사자의 동의를 기반으로 의사가 결정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이러한 환경정의 개념은 자유민주주의의 기치 아래서도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앞서 기술한대로 자유민주주의가 갖는 시간적 공간적 종적 차원에서는 여전히 한계를 가진다. 시간적으로도 현세대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미래세대와의 환경정의가 제대로 조명되지 않았고 미국이란 공간적 경계를 넘어서는 국가간 환경정의가 포착되지 않았으며 사회구성원인 인간을 넘어서서 다른 생물종과의 환경정의는 다뤄지지 않았다. 미래세대와 현세대, 국가 사이, 나아가 자연과 사회의 ‘정의로운 관계’에 대한 논의로까지 확장될 때 생태위기로 불리는 다양한 환경오염과 파괴가 해결될 수 있다. 사회 내 구성원간의 환경불평등을 교정하고 치유한다고 해서 인간의 자연 착취가 해결되지 않는다. 인간과 다른 생물종 간의 정의로운 관계, ‘사회의 자연에 대한정의’의 차원으로 이러한 접근이 확대되어야 한다. 권리주체를 미래세대와 다른 생물종으로까지 확장하여 정의로운 관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것을 생태정의라 한다. 생태정의적 관점에 기초할 때 국가의 경계를 넘어, 현세대에서 미래세대로, 인간종으로부터 다른 생물종에게로 환경적 부담과 위기를 전가하지 못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러한 생태정의는 어떻게 실현될 수 있을까? ‘다른 입장 되어 보기’가 가능하려면 숙의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생태민주주의도 자유민주주의의 전통을 계승할 수 있는데 자유민주주의가 추구하는 합리성이 이러한 숙의의 기초가 될 수 있다. 담화적 합리성discursive democracy에 기초해서 담화와 소통의 과정을 거칠 경우 자유민주주의 전통에서 시간과 공간, 종의 경계에 묶여 있던 근시안적인 관점에서 탈피하여 생태적으로 건전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Dryzek, 1990, 1996, 1998). 이러한 숙의적 의사결정과정을 거치게 되면 민주적인 “절차”에만 초점을 맞춤으로써 환경적 건전성이란 “내용”을 담보하기 곤란한 자유민주주의적 의사결정의 한계가 상당히 완화될 수 있다.
요약하자면, 생태민주주의란 생태정의의 실현을 내용으로 하면서 숙의적 의사결정과정을 지행하는 정치원리다. 실질적 정의는 환경문제 자체의 발생함으로써 사회 구성원 모두의 환경권을 동등하게 보호하는 데, 분배적 정의는 환경적 편익은 물론 위험과 비용의 공평한 부담에, 절차적 정의는 주민참여와 정보제공에 관심을 두기에 이러한 세 차원을 모두 실현하고자 한다. 나아가 국가 경계 밖 시민들과 함께 미래세대, 다른 생물종의 이해를 고려하면서 심사숙고하는 숙의의 과정을 거쳐 생태적 건전성을 확보하고자 한다.
3. 생태민주주의와 녹색국가
국가가 녹색의 기치를 내걸고 제도와 구조를 녹색화해 가는 국가를 녹색국가라 부른다. Dryzek 등(2002)에 따르면 근대국가는 사회운동의 성장으로 요구받는 임무가 달라지면서 역사적으로 변모를 거듭해왔다(<표 1> 참조). 모든 국가가 반드시 이러한 단계를 거치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적으로 국가의 성격이 대개 이러한 방향으로 변화해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기 권위주의적 국가는 내부 질서(치안) 유지와 생존을 위한 국제 경쟁에서의 우위 확보(국방), 이 둘을 실현할 수 있는 세입 확보를 주요한 임무로 하였다. 즉, 당시 국가의 임무는 공공의 관심사인 존재의 지속성과 안정성의 확보였다. 초기 근대국가에서 세입은 정태적인 경제에 기초해서 과세를 통해 이루어졌지만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경제가 성장하면서 세율의 증가 없이 세입증가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세입 증가를 가져온 자본주의적 사회 질서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지속되는 것이 중요하며 그 결과 경제성장을 보장하는 경제 질서 유지가 국가의 중요 임무로 추가되었다. 이러한 국가의 임무 변화로 경제의 파이를 키워야 한다는 새로운 사회적 요구를 가진 자본가계급이 제도 밖 비판적인 공론장public sphere으로부터 국가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의 이윤 증가에 대한 이해와 국가의 새로운 이해가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발전은 자본주의 정치경제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조직화된 노동자 계급의 등장을 가져왔다. 처음에 이들의 도전은 억압되었지만 자본주의의 전위dislocation를 막기 위해 노동자계급의 요구를 수용하여 완충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복지국가로 이행하게 되었다. 그 결과 노동자계급이 사회운동을 통해 주장한 재분배 요구, 즉 복지를 실현함으로써 정당성을 확보하는 것이 국가의 다섯 번째 임무로 추가되었다. 그리고 조직된 노동자계급은 제도 밖 비판자에서 국가 내로 진입할 수 있게 되었다.
현대국가는 다양한 활동을 수행하고 있지만 바로 치안, 국방, 세입, 경제 성장, 정당성이라는 이 다섯 가지를 가장 핵심적인 의무로 하고 있다. 국가의 의무가 추가되는 국가 전환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은 전환을 야기한 사회운동의 이해관심이 국가의 핵심 임무로 이전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고 이를 통해 사회운동 당사자가 국가의 제도권 내부로 진입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전환의 과정에서 새로운 계급의 출현과 국가 내부로의 진입과정에서 민주주의 또한 확대되어 왔다.
이제 새롭게 제기된 환경문제의 해결을 둘러싸고 근대국가가 다시 한 번 더 전환될 수 있을지 기로에 놓여 있다. Dryzek 등(2002)은 환경주의적 관심이 국가의 핵심적인 관심영역으로 진입하고 환경주의environmentalism를 체화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가 될 수 있다면 녹색국가green state로의 전환이라는 제3의 전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앞서의 전환과정을 되짚어보면 환경보전의 요구가 국가의 주요 의무로 수용되고 환경운동의 주창자들이 국가 내부로, 즉 정책결정과정에 진입할 수 있을 때 이러한 녹색국가로의 전환이 가능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민주주의의 확대를 수반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단선적으로 이루어지거나 반드시 각 단계들을 밟아서 국가 성격의 전환이 일어나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또한 모든 국가가 이러한 경로를 반드시 거친다고 보기도 어려우며 한 단계에서 반드시 다음 단계로 전환한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개별국가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양상으로 진행될 수 있다. 다만 녹색국가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근대국가의 생태적 파괴성에 대한 자기성찰과 숙의 과정이 요구되는데 이는 생태민주주의의 실현을 통해 가능하다는 것은 분명하다.
Ⅲ. 이 시대 민주주의 위기와 생태위기의 접합
앞서 생태 위기의 시대, 생태민주주의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였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요즘 자유민주주의적 가치와 절차마저도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아 사실 생태민주주의를 논하는 것 자체가 사치스러운 상태다. 즉,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정체에서는 자연의 한계에 대한 충분한 성찰은 없지만 절차적 합리성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이를 준수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한 절차를 거침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가 갖는 한계로 인해 생태위기로 귀결되는 양상을 보이기도 하지만 현재 한국사회는 절차적 합리성마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아 생태위기로의 진행이 한층 심각하게 발생하고 있다. 이 절에서는 생태위기의 대표적 사례로 4대강 사업과 핵발전 확대정책을 다루고자 한다. 자유민주주의적 절차적 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생태위기가 발현되기에 자유민주주의적 가치만을 주창하는 정체에서도 민주주의의 위기는 생태위기로 귀결된다. 지금의 한국적 상황이 바로 그 실례가 된다.
1. 4대강 사업
1) 이명박 정부 4대강사업 추진의 비민주성2)
2008년 2월에 출범한 이명박정부는 그해 8월 15일 광복절 기념축사를 통해 저탄소 녹색성장을 새로운 국가발전 패러다임으로 제시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역대 정권들과 달리 “녹색”을 주요한 정책 지향으로 내세움으로써, 또한 한계가 있지만 시민들이 즐길 수 있는 도심 녹색공간으로 청계천을 만듦으로써 녹색가치에 대한 기대감을 가지게 했다.
하지만 이명박 전대통령과 이명박 정부가 녹색성장이란 기치 아래 녹색뉴딜 사업이란 형태로 추진한 것은 4대강 살리기 사업이다.3) 이명박 정부는 기후변화 대비, 하천 생태계 복원, 자연과 인간의 공생, 지역균형발전과 녹색성장 기반 구축, 국토재창조 등을 4대강 사업의 목표로 내걸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하도정비(준설), 보(댐) 건설, 생태하천 조성, 제방 보강, 강변저류지와 홍수조절지, 낙동강 및 영산강 하구언 구축, 신규 댐과 농업저수지 건설, 자전거 도로 구축, 수질 대책 등을 주요 사업 내용으로 하였다. 공사 기간은 이명박 대통령 임기 동안인 2009~2012년으로 총 22조 2000억 원의 사업비가 투입되었다.
4대강 사업은 “한반도 대운하사업”에 뿌리를 두고 있다. 2006년 9월 한반도대운하연구회라는 곳에서 ‘한반도대운하 계획’을 발표하였고, 한 달 후인 2006년 10월 25일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반도대운하 구상’의 윤곽을 공개하였다. 이 구상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이 거에서 당선된 후, 대통령 인수위원회 내에 한반도대운하 태스크포스팀이 꾸려져 이 사업을 중 있게 다루었다. 이로 인해 반대여론이 점차 표면화되기 시작했다. 최초로 이 사업에 반대하고 나섰던 것은 2008년 1월 31일에 있었던 한반도대운하 반대 서울대 교수모임의 발족이었다. 80명이 발기인으로 참여한 서울대 교수모임에서는 대운하 토론회를 개최하였다. 이후 2008년 2월 12일에는 종교환경회의가 주축이 된 ‘생명의 강을 모시는 사람들’이 운하 길을 따라 도보순례를 시작했고, 2월 19일에는 389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모여 운하백지화국민행동을 결성하였다. 3월 10일에는 한반도대운하 반대 서울대 교수모임이 발족했고 3월 25일에는 전국의 교수 2,544명이 ‘운하 반대 전국교수모임’을 발족했다.
하지만 이러한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정부는 한반도대운하 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해나갔다. 2008년 5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의 안전성 보장과 검역주권 회복, 민주적 절차 회복을 내용으로 쇠고기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민들의 촛불집회에서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한 다수 국민의 반대의사가 표출되어 “국민이 반대한다면 사업 추진의사를 접겠다.”며 이명박 전대통령은 유보적인 태도를 취했다. 하지만 2008년 12월 15일 제3차 국가균형발전위원회에서 14조 원 규모로 “4대강 살리기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의결하였고 2008년 12월 29일 나주와 안동을 4대강 정비사업의 선도지구로 선정하여 착공식을 가진 이래 전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업이 추진되었다. 2009년 2월에는 4대강 살리기 기획단을 발족하였고 4월부터는 공식적으로 공사명을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불렀다. 예산도 14억 원에서 22조 원으로 증액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녹색 뉴딜사업으로 간주했는데 이 사업을 통해 34만 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40조 원 가량의 실물경기 활성화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발표하였다. 4대강 사업의 추진 일정은 <표 2>에 정리하였다.
4대강 사업은 사업 목적과 내용은 물론 추진 절차를 둘러싸고 다양한 논란이 제기되었다. 대표적인 쟁점들로는 4대강 사업이 진정으로 가뭄과 홍수 예방에 적절한 접근인가, 또 가뭄과 홍수예방이 보 설치와 준설을 핵심으로 하는 4대강 사업 방식으로 해결될 수 있는가, 4대강 사업의 논거가 되고 있는 물부족국가란 규정은 타당한가, 살려야 된다고 표현된 4대강의 수질이나 수생태계는 어떤 상태인가, 4대강 사업으로 일자리가 얼마나 창출될 수 있는가, 4대강 사업은 한반도대운하사업과 동일 선상에 있는가 아닌가 등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목적과 내용 못지않게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은 사업결정과 추진과정과 관련한 절차의 비민주성이었다. 4대강사업 추진 절차의 비민주성을 문제 삼아 “4대상 사업 위헌위법심판을 위한 국민소송단”이 꾸려지고 2009년 11월 26일 이 국민소송단은 각 수계별로 서울, 부산, 전주 및 대전 지방법원에 4대강 사업의 취소와 행정처분 효력정지를 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4대강 소송이 제기한 행정소송의 대상이 되는 처분은 하천공사시행계획 고시였는데 이 고시 처분이 국가재정법, 하천법, 환경정책기본법, 환경영향평가법 등을 위반했다고 보았다. 그래서 국민소송은 정부기본계획을 취소하고, 각 하천 공사의 시행계획 및 실시계획에 대한 취소를 구하는 것을 주요 목적으로 하였다. 더불어 공사의 근간이 되는 각 고시의 효력정지가처분 신청 또한 제기하였다.
하지만 행정처분 효력 정지를 요구한 가처분 신청은 모두 기각되었다. 행정소송의 경우에도 1심에서 모두 패소하였고 2심의 경우 2012년 2월에서야 있었던 부산 고등법원에서만 국가재정법 위반에 대한 판시 외에는 모두 패소하였다. 부산 고법의 국가재정법 위반에 대한 판단도 절차상의 하자를 인정하는 데 그쳤을 뿐 사업 자체의 정당성과 필요성은 부인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국민소송단은 4대강 사업의 위법성을 주장했지만 오히려 이와 같은 법원 판결로 4대강 사업은 법적인 정당성을 가지게 되었다. 사실 이러한 법적 판단은 예견된 것이었다. 살아 있는 정권이 추진하는 핵심적인 전략사업에 대해 위법하다는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우리 사회에서 별로 없었던 것이 우리 사회의 역사적 경험이다.
이러한 법적인 논란 이전에 4대강 사업의 추진과정을 보면 사업을 결정하는 과정이 민주적 절차와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적 공론화 과정을 거치지 않고, 당시 국민의 80% 이상이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진행되었다. 의견을 달리하는 전문가들이 모여서 어떤 주장이 옳은지 논의하고 검토하는 자리도 없었다. <표 2>에 제시된 것처럼 4대강 사업 추진을 결정한 절차는 2009년 4월 27일 정부합동보고회에서 4대강 살리기 사업에 대한 중간성과 보고이후, 4대강 인근 12개 시․도 대상 지역설명회 개최(5.7~5.19, 12회), 관계부처・학회 등의 추천을 받은 전문가 그룹의 자문(5.14~5.15)과 물환경학회・수자원학회 등 관련학회 토론(5.21~5.22) 진행, 공청회(5.25) 등을 진행하여 마스터플랜을 최종 확정・발표하였다. 하지만 전 국민의 식수원이자 우리나라 (수)생태계의 중심축인 4대강, 경제적으로도 22조 원이나 투입되는 사업을 결정하는 과정으로는 정책결정 기간이 너무 짧으며 여론 수렴 방법 또한 지극히 간단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앞서의 절차를 거치면서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했다고 하지만 그 과정에 사업에 비판적인 전문가들은 거의 논의과정에 초대받지 못했다.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을 비롯해서 4대강 사업에 비판적인 조직과 단체가 주관하는 토론회나 세미나에는 정부 측 담당자를 포함한 사업 추진 찬성 인사들을 초청하였지만 거의 참여하지 않았다. 또한 운하반대전국교수모임이나 '4대강 죽이기 사업 저지 및 생명의 강 살리기 범국민대책위원회(4대강 범대위)’가 전문가검증단을 구성하여 4대강을 올바로 살리는 방안을 찾아나가자고 제안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민주적 논의과정을 거치지 않았음은 물론이고 앞서 부산 고법의 판결로 확인된 것처럼 4대강사업은 엄연히 법으로 정해진 과정을 거치지 않은 추진 절차의 위법성 문제를 안고 있다. 자유민주주의 질서를 지키기 위한 법치주의가 훼손되고 자유민주주의 의사결정의 기초가 되는 대화와 타협이 실종되었다. 1987년 민주화 투쟁이후 우리 사회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으며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최소한 국가 행위의 위법성이 문제가 되지는 않을 정도로 절차적 민주주의는 상당히 성숙해져 왔다. 특히 노무현 정부에서는 “참여정부”라는 이름을 썼듯이 정책과정에의 시민참여와 거버넌스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으며 절차적 민주성이 내용적 민주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이 오히려 문제로 제기되었다. 앞서 오펄스와 보얀(1998)이 자유민주주의가 민주적 절차를 내용보다 더 중시함으로써 생태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고 지적한 것처럼 참여정부가 개발민주주의로 분류되기도 하였다(구도완, 2012).4) 개발민주주의는 개발국가의 권위주의적 특성을 민주화를 통해 참여적인 특성으로 전환한 체제와 담론으로 현세대 국민의 풍요가 결제성장과 과학기술을 통해 가능하다고 보면서 이를 우선시하는 개발주의의 특성이 유지되기에 생태문제를 등한시한다. 따라서 절차적 민주성이 생태적 건전성을 담보해주지 못한다는 점이 오히려 논의의 대상이었다. 2005년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입지를 위해 주민투표를 도입하였지만 그러한 절차적 민주성이 “돈과 위험의 거래”로 입지과정을 설계한 것을 정당화하는 기제가 되었다는 점이 비판되었다(윤순진, 2006). 절차적 민주성이 생태적으로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다는 성찰을 기초로 생태적 건전성과 시민적 전문성을 높일 수 있는 시민의 참여와 숙의의 과정을 지향하는 생태민주주의의 필요성과 가능성이 폭넓게 논의되었다(윤순진, 2006; 구도완, 2012).
4대강 사업은 하천법과 환경정책기본법, 국가재정법, 문화재보호법 등을 어겼다는 비판을 받았다(이상돈, 2010; 윤순진 2010).5) 부산 고법에서 위법성을 인정한 국가재정법 위반의 경우를 대표적인 경우로 살펴보면, 이명박 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대규모 사업에 대해 실시하도록 되어 있는 예비타당성 조사를 받지 않도록 함으로써 국가재정법의 기본 정신을 훼손하였다. 국가재정법 제38조에 대형국책사업을 졸속으로 추진해서 재정이 남용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 대규모 사업에 대해 경제성을 사전에 검증하는 절차인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도록 하였다. 국가재정법 시행령 제38조 제1항에서는 국가재정법에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대규모 사업”을 총사업비가 500억 원 이상이고 국가의 재정지원 규모가 300억 원 이상인 신규 사업“이라고 규정하였다. 제38조 제2항에서는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 사업을 규정해 놓았는데 2009년 3월 시행령 개정을 통해 면제 대상에 ”지역 균형발전, 긴급한 경제 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하여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으로서 기획재정부 장관이 정하는 사업“이란 항목으로 제10호를 추가하고 면제 대상사업의 ”재해 복구 지원“ 항목을 ”재해 예방 복구 지원“으로 수정하였다. 바로 이 개정 내용을 근거로 4대강 사업을 예비타당성 조사 면제대상으로 만든 후 22조원이라는 엄청난 세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도록 한 것이었다. 이러한 처사는 국가재정법의 취지를 훼손하는 것이었다(이상돈, 2009). 하지만 이런 위법성에도 불구하고 절차적 위법성으로 인해 처벌 받은 자는 아무도 없는 상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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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 절의 소절 1), 2)는 윤순진(2009)의 “생태민주주의의 과제와 전망”을 약간 수정하여 재작성하였다.
2) 이 소절의 많은 부분은 필자가 2010년에 「이명박 정부 2년 백서: 무너진 인권과 민주주의」 에 쓴 “4대강 사업: 자연과 사람, 민주주의의 죽음”에서 상당부분을 가져와 재구성하였다.
3) 이명박 정부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이란 사업명을 사용했지만 환경단체들에서는 “4대강 죽이기 사업”으로 명명하였다. “살리기”란 표현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형성되지 못했고 지속적인 문제제기가 있었으며 사업 후 4대강에서 다양한 환경문제가 발생하였으므로 이 글에서는 중립적으로 “4대강 사업”으로 표기하도록 한다.
4) 구도완(2012)은 민주주의와 생태주의를 기준으로 하여 지배체제/담론을 개발독재(권위주의), 생태독재(권위주의), 개발민주주의, 생태민주주의의 네 가지로 구분하였다.
5) 4대강 사업 위법성의 구체적인 내용은 이상돈(2009)와 윤순진(2010)을 참고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