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여러 가지 계기로 독서동아리를 만들어 책을 함께 읽고자 할 때,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무척 중요합니다. 독서동아리는 하나의 유기체有機體라서, ‘좋은 양식’이 계속 공급된다면 그 유기체가 살아 꿈틀거리며 사람과 사람의 만남, 사람과 책의 만남은 즐겁고 보람된 것이 됩니다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그 만남이 괴로운 것이 됩니다. 그렇기에 ‘어떤 책’을 함께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독서동아리를 이끄는 분들, 참여하는 분들이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문제입니다. 마치 부모가 자라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먹일 것인가를 걱정하듯, 독서동아리의 발전을 위해서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하는 문제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은 문화체육관광부와 함께 전국 각지의 독서동아리를 지원해 왔습니다. 또 매년 ‘독서동아리 한마당’을 열어서 독서동아리들이 서로 힘을 북돋아 줄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왔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전국 각지의 독서동아리가 가장 힘겨워하는 것이 바로 ‘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 소책자는 바로 그 질문에 도움을 주고자 만들어진 것입니다.
2.
우리나라에서 한 해 동안 출간되는 신간은 약 4만 종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신간 도서의 납본 통계 및 발행 종수 통계는 아직 불완전합니다. 우리나라는 <도서관법> 제20조에 따라 ‘발행일 또는 제작일부터 30일 이내에 그 도서관 자료를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하여야’라고 하여 납본이 의무화되어 있습니다. 국립중앙도서관이 2013년 3월 18일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바로는 2012년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된 도서는 모두 72,040종(유가 64,914종, 무가 7,126종)이지만, 2013년 1월 30일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2012년 발행일 기준, 정기간행물 및 교과서 등 제외한, 납본된 신간 도서의 발행 종수는 39,767종입니다*〕. *박익순, 2012 출판시장 현황 분석(2013.6.5.) <기획회의> 345호 참고
전국의 만 18세 이상 남녀 성인 2,000명과 초·중·고등학생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3년 국민 독서 실태 조사>(문화체육관광부, 2013.1.13)에 따르면, 우리나라 성인들은 하루 평균 23.5분, 연간 9.2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또 다른 조사로, 문화 시설, 직장, 독서 관련 단체 내 운영 중인 독서동아리를 대상으로 조사를 펼친, <전국 독서동아리 실태 조사>(문화체육관광부, 2012.12)에 따르면, 독서동아리가 1년간 함께 읽는 도서가 평균 22.7권이라고 합니다. 이를 보면, 독서동아리를 하고 있는 분들이 평균적으로 2.4배 많은 책을 읽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서동아리를 하고 있는 분들이 평균적으로 혼자 읽고 있는 분들보다 많은 책을 읽고 있다고 하지만, 그 양은 한 해에 나오는 수만 종의 책 가운데서도 아주 일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과연 독서동아리에게 좋은 양식이 될 책을 어떻게 선택할 것인가는 너무나도 어려운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전국 독서동아리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서동아리의 도서 선정 방식은 ‘회원 추천’이 59.3%로 가장 일반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 다음으로는 ‘각종 기관의 추천도서 목록’이 14.9%, ‘매체를 통한 언론 보도 및 서평’이 8.0%로 나타났습니다. 함께 모인 분들이 서로 추천하는 경우가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것은, 독서동아리 구성원들이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서로 책을 추천하고, 그 추천된 것을 읽어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독서동아리가 책을 선택할 때 고려해야 할 점은 무엇보다도 모임의 횟수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그 귀중한 시간과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동아리 회원의 성장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즉 독서동아리가 선택해서 읽는 책은 ‘좋은 책良書’여야 하며, 동시에 ‘독서동아리에게 적절한 책適書’이어야 합니다.
독서동아리가 양서이면서 적서를 선택하기 위해서 꼭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독서동아리가 무엇 때문에 책을 읽는가”라는 아주 상식적인 질문입니다.
책을 통하여 우리가 얻는 것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교양과 정신적 양식inspiration입니다. 둘째는 지식과 정보knowledge and information입니다. 셋째는 위안, 휴식, 오락recreation 등입니다. 그런데 독서동아리의 책 읽기에는 얻는 것이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독서동아리 회원 개개인뿐만 아니라 독서동아리 자체의 성장과 발전growth and development입니다. 독서동아리 자체의 성장과 발전은 동아리를 계기로 만난 분들이 지속적으로 만남을 이어 갈 수 있는 동력을 책을 통해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2013년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을 마치고 묶어 낸 책 <2013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 글 모음>(책읽는사회문화재단, 2014.1)에 실린 독서동아리 이야기 가운데, 부산 화양동 작은도서관인 ‘맨발동무’에 드나드는 직장인 독서동아리 ‘통인’은 대학에서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 유럽 여행 가이드, 지하철 기관사, 서점 주인, 학원장, 방과 후 학교 교사 등 다양한 직업군에 종사하는 분들이 모인 독서동아리인데, 술을 마실 시간에 유럽 여행을 꿈꾸면서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를 아주 꼼꼼하게 읽는다고 하셨습니다. 아마도 이런 책이 양서이면서 적서일 것입니다.
이런 사례는 <2014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 글 모음>에도 꽤나 많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제주도 서귀포귀농귀촌협동조합에 모인 분들이 만든 독서동아리 ‘남원북클럽’의 예입니다. 제주도로 온 귀농귀촌인들이 공공도서관인 제남도서관을 드나들면서 그 도서관 옆에 ‘문화공동체 서귀포’라는 사무실을 만들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삶의 터전을 제주도로 선택했지만 막상 제주도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이 없다는 자각을 바탕으로 “한 달에 한 번씩 제주도에 관한 책을 읽자”고 마음을 모았다고 합니다. 이 독서동아리의 안광희 대표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 모든 것들의 출발은 바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 조합원들이 자랑스러운 것이 뭐냐면 책이라는 것을 통해 사람이 만나고 그 사람들이 만나서 공동체를 꿈꾸고, 협동조합을 만들고, 마을기업을 만들어 경제적 이익을 만들고 그 이익을 우리끼리 나누는 것이 아니라 지역문화에 다시 재투자하는 것에 모든 조합원들이 모두 동의했다는 것입니다.”
4.
독서동아리들이 어떤 책을 어떻게 읽을까? 이런 질문을 독서와 문학, 역사, 철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등 여러 분야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눈 밝은 이’들에게 여쭈었습니다. 이 소책자는 바로 그 분들이 추천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의 사회적 의제와 관련한 책들을 추천해 주신 분도 있고, 또 어떤 분은 너무나도 잘 알려져 있는 고전을 추천해 주기도 했습니다. 물론 독서동아리들이 여기에 소개된 책만을 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눈 밝은 이’들이 추천하는 책은 독서동아리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전古典을 종鐘에다 비유한 이가 있었습니다. 종으로 비유되는 고전이란 읽는 사람의 크기에 따라 울림을 달리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눈 밝은 이’들이 추천한 책은 바로 그 책들이 ‘눈 밝은 이’들의 마음과 생각에 어떤 울림을 던져 준 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람마다, 그리고 독서동아리마다 각기 다른 울림을 가진 책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책에 대한 이야기가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는 고전이 아니라 우리 독서동아리가 추천하는 책에 대한 이야기가 풍성해지면 좋겠습니다.
부디, 이 소책자가 전국 각지에서 저마다의 개성과 역사를 지닌 독서동아리에게 좋은 자극과 풍부한 영감을 불어넣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바쁜 시간 가운데 옥고를 주신 필자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독서동아리 지원 사업의 역사를 쌓아 나가면서, 더 좋은 책 이야기로 만나기를 기대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