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독서의 실천, 나눔 2.0
민주시민은 자기 목소리를 갖는 존재이다. [그림 4]에서 보듯이 교육과 토론의 커뮤니티 센터에서 사회적 독서가 이루어진다. 사회적 독서는 주민을 민주시민으로 변모시킨다. 민주시민들은 학습동아리에 참여한다. 학습동아리는 토론하는 동료들이 만나 사회적 독서를 하는 광장이다. 이 광장에서 형성된 사회적 공감은 더 나은 공동체에 대한 상상으로 이어진다. 즉 학습동아리에서 이상이 일상이 되는 상상이 생겨난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 상상은 일상, 즉 현실이 되도록 할 것인가? 이것은 공동체를 변화하게 만드는 실천이다.
전통적으로 나눔을 불쌍한 이웃을 돕는 것으로 배웠다. 이것을 나눔 1.0이라고 한다면, 나눔교육은 전통적인 의미의 친절한 이웃friendly visitor이 자선에 기반해서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 교육을 의미한다. 불쌍한 사람들에게 갖는 개인적인 연민과 시혜의 실천에 대해 프레이리는 이것을 허구적 관용이라고 비판했다:
“피억압자의 약함을 존중해 억압자가 자신의 권력을 ‘완화’하려 하면, 그것은 대개 허구적 관용의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다. … 부당한 사회질서는 죽음, 좌절, 빈곤을 양분으로 삼는 ‘관용’의 마르지 않는 원천이다. 그렇기에 허구적 관용을 베푸는 자는 그 원천에 조금만 위협이 가해져도 필사적으로 대항하는 것이다.”(『페다고지』. pp.52-53)
이처럼 나눔 1.0은 문제의 원인이 사회가 아니라 개인이다. 그래서 이 개인에게 시혜를 베풀면서 근면하고 독립적인 인간이 되길 희망한다.
불쌍한 사람은 생길 수밖에 없는가? 이처럼 우리가 질문을 달리해 볼 수 있다. 불쌍한 사람이 생기지 않는 사회를 상상해 보자. 서유럽과 북유럽의 보편적 복지정책은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했다. 우리는 배부를 권리는 없어도 배고프지 않을 권리가 있고, 아플 때 병원비를 걱정하지 않으면서 치료를 받을 권리가 있고, 배우고 싶을 때 적어도 돈이 없어서 무지의 상태에 빠지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런 사회에 대해 함께 상상하고, 만들어가는 실천을 할 때 이것 또한 나눔의 행위이다. 이 행위를 나눔 1.0과 대비하여 나눔 2.0이라고 하자. 나눔교육 2.0은 사회적 위험에 대해 시민들이 협동과 연대로써 공동으로 이 위험을 막으려는 민주시민을 형성을 목적으로 한다. 즉 자선을 넘어 시민들의 권리 혹은 민주주의와 인류애에 기반한 박애를 체험한 시민의 형성이 나눔교육 2.0의 목적이다.
[그림 5]에서 보듯이 그동안 나눔교육 1.0은 학교 안의 청소년에 국한되었다면, 나눔교육 2.0은 청소년은 물론 청소년이 살고 있는 지역사회의 시민들이 대상이다. 즉 시민들과 함께 나눔의 철학을 나누는 교육이다. 더 나아가 나눔교육 1.0이 교육 그 자체가 목적이었다면 나눔교육 2.0은 배움과 실천을 연계하여 하나의 행위로 간주한다. 즉 나눔교육은 곧 나눔교육의 행위를 전제하고 양자는 상호보완적인 것으로 간주된다. 이런 점에서 나눔교육 1.0을 확장하여 나눔교육 2.0은 시민참여형 나눔교육으로 정의될 수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나눔교육 1.0은 한국전쟁 이후 보릿고개의 한국적 상황에서 불쌍한 사람들과 클라이언트의 긴급한 도움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교육이었다. 이것은 먹고사는 문제에만 몰두해 있는 한국사회의 시민들에게 좋은 인성을 만들고 이웃을 둘러보는 프로그램이고 실천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사회적 위험은 개인을 넘어 사회로, 가족을 넘어 구조적인 문제를 담고 있다. 따라서 나눔교육은 개인적인 인성을 넘어 사회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함께 실천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청소년뿐만 아니라 청소년과 시민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특히 민주시민이라는 관점에서 나눔교육이 실행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교육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런 점에서 나눔교육 2.0, 즉 시민참여형 나눔교육은 나눔교육 1.0을 계승함과 동시에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는 교육적 실천이라고 할 수 있다.
사회적 공감에 기반한 나눔 2.0의 실천은 정책으로 향한다:
“공공정책은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선택이다. 이런 정책은 바뀔 수 있다. 몇 가지 예를 들면, 역사에는 노예제 폐지, 모든 사람에게 부여된 투표권, 사회보장제도 시행,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 동성결혼 합법화와 같은 사례가 있다. 이러한 주요 정책의 변화는 이런 변화로 혜택을 받은 사람들의 삶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반영했다. 이것이 사회적 공감이다.”(시걸. pp. 329-330)
이상에서 보듯이 사회적 독서는 사회적 공감을 만들고, 사회적 공감은 나눔 2.0을 실천하는 시민들에 의해 정책으로 연결된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기본적으로 사회적 독서를 하는 시민은 정책하는 시민들이다. 이것은 공공정책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내 공간에서 나다운 실천, 나의 사회적 독서와 나눔 2.0
사회적 독서는 그 자체가 하나의 실천이고 지역사회를 변화시키는 나눔 2.0의 실천이다. 이 실천의 내용은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누구나 다 자기 공간에서 자기다운 실천을 하면 된다. 사회적 독서, 사회적 공감, 학습동아리, 나눔 2.0의 권리형 실천 등의 일련의 연결고리 속에서 내 공간에서 나다운 실천의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첫째, 사단법인 마중물과 협동조합 마중물문화광장이다. 인천에 소재하고 있는 2019년 사단법인 마중물은 ‘마중물 세미나’라고 불리는 시민들의 학습에서 생겨났다. 학습과 토론을 위한 매학기 격주 토요일에 총 6시간 동안의 만남에서 참여한 시민들은 사단법인 ‘시민교육과 사회정책을 위한 마중물’을 만들었다. 사단법인 마중물은 명칭 그대로 ‘시민교육’을 위해 산하에 교육기관으로 시민교육센터, 선배시민지원센터, 후배시민지원센터를 운영중이고, 사회정책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사단법인 마중물은 현재 마중물 세미나는 물론이고 ‘목요광장’이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매주 목요일마다 시민들이 참여하는 책, 영화, 정치이슈를 놓고 세상읽기를 진행한다. 최근에 코로나19에 맞서기 위해 마디마중물미디어 센터를 만들어 활동중이다.
사단법인 마중물은 세월호의 아픔이 있는 2017년 팽목항을 다녀 오면서 협동조합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협동조합 마중물문화광장은 마샘이라는 문화복합공간에서 서점, 카페, 갤러리, 공연장, 강의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상시적으로 시민들과 만나는 시민교육과 토론의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저자와의 대화, 공연, 인형극, 토론회 등으로 시민들은 사회적 공감을 형성해 가고 있다. 한편, 교육, 정책, 문화 활동을 하는 마중물은 협동조합 마중물 문화광장이 출자하여 출판사 마북을 만들고 시민교육관련 책을 출판하고 있다.
이상에서 보듯이 마중물은 사회적 독서에서 출발하였다. 사단법인과 협동조합 마중물은 ‘학습동아리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전국에 학습동아리를 조직하고 있다. ‘북레터 상상상’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매달 최신의 책을 설명서와 함께 배달하고 있다. 이것은 학습동아리의 매개체가 되고 있다.
둘째, 교사들과 100시간 수업이다. 사단법인 마중물은 2019년 인천시교육청으로부터 초중고 학교 선생님들과 100시간 연수를 했으면 좋겠다는 제안을 받았다. ‘첫 번째, 교사들이? 둘째, 100시간이나?’ 학교 선생님들이 100시간이나 모여 공부한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이렇게 30여 명의 선생님들과 학습모임이 ‘마중물 플랫폼’에서 시작되었다.
100시간 중 50시간은 철학과 이론 교육, 50시간은 참가자들이 자신의 교실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강의안을 발표하고 토론하는 데 사용했다. 2020년 1월 드디어 100시간이 꽉꽉 채워졌다. 그리고 25명의 참여자들에게 11월 이 긴 여행의 선물이 도착했다. 『민주주의자들의 교실-민주시민교육의 철학』과 『민주주의자들의 교실-민주시민교육의 실천』(인천광역시 학교민주시민교육 교사아카데미. 마북. 2020)이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그 자체로 민주시민의 여정이었다. 50시간의 배움과 50시간의 교사 발표에 기초하여 자신의 경험, 개성, 고유성, 목소리를 글에 담아내려고 했다. 기적이었다. 함께 동일한 주제로 공부를 했을지라도 저자 3명만 되어도 일관성을 갖기 힘든데, 25명의 저자가 공통의 주제를 가지고 다르지만 하나의 목소리에 담는 것이 가능할까? 이 책은 민주시민으로 향하는 과정이 확보된다면 이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즉, 이 과정 자체가 자기 목소리로 공동체에 참여하는 민주시민의 배움과 교육과정의 전형이었다.”(『민주주의자들의 교실-철학』. pp. 9~10)10)
지나고 보니, 100시간 동안 형성되었던 광장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사람들의 교실이었다. 이것이 교실인 이유는 학습, 소통, 공감, 변화, 공동성찰을 배우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값진 것은 이 과정이 토론하는 동료들을 만나는 시간이었다는 점이다. 이 교실은 지속되고 있다. 2020년 현재 인권을 주제로 진행되고 있으며, ‘100시간 교육 포럼’의 두 번째 프로젝트인 인권교육에 관한 책을 2021년에 낼 예정이다.
셋째, 선배시민들과 함께 한 시간들이다. 노인은 돌봄의 대상이다. 빈곤독거노인은 도시락과 김치, 연탄재와 같은 물품으로 돌본다. 최근에 청바지를 입은 노인도 여전히 돌봄의 대상이다. 이들도 인문학, 여가관리, 건강관리, 죽음관리 등의 프로그램을 제공하면서 돌봄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빈곤독거노인은 늙은이로 명명되고, 청바지를 입고 자기계발에 힘쓰는 노인을 성공한 노인이라고 하자. 이들은 다르지만, 둘 다 돌봄의 대상이다. 도시락으로 인문학으로 돌보는 내용이 다를 뿐이다.
그렇다면 돌보는 대상이 아닌 돌보는 주체로 노인의 존재를 상상할 수 없을까? 이렇게 시작한 발상에서 선배시민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 이들은 시민이다. 시민은 시민인데, 연령상으로 선배이다. 따라서 선배시민senior citizen이라고 명명할 수 있다. 선배시민은 돌봄의 대상이 아니라 돌봄의 주체이다. 이들은 공동체의 변화, 즉 나눔 2.0에 관심을 갖고 동료 노인과 후배시민들에게 책임을 진다. 2010년부터 이 강의를 해 오던 중 2016~2017년 2년 동안 한국노인복지관협회의와 함께 선배시민대학을 운영했다. 이 기간 동안 사회적 독서와 학습동아리를 운영했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 2년동안 선배시민 자원봉사로 나눔 2.0실천 혹은 권리형 실천을 실시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났을까? 예를 들어 바리스타를 배웠던 노인들이 대학교 앞에 가서 ‘후배시민들이여 우리가 응원할게’ 플래카드를 들고 청년들에게 커피나눔을 시작했다. 건강동아리를 만들어 개인 건강에 힘쓰던 노인들이 사회제육시설을 조사하고, 관리하기 시작했다. 러브호텔을 방지하기 위한 조례개정을 관철시켰다. 복지관에서 강의가 끝나면 노인들이 가지 않고 책상정리를 함께 한다. ‘왜 그러세요?라는 질문에 ‘내가 선배시민이잖아!’라는 대답을 한다.
이상에서 보듯이 사회적 독서는 사회적 공감으로 사회적 공감은 정책활동이라는 사회운동으로 나아가고 있다:
“안타깝게도, 정책결정자가 사회적 공감능력을 갖기를 기다리는 것은 요원해 보인다. 그 대신 사회적 공감을 지닌 시민들이 정책결정자가 다른 사람의 감정과 필요를 이해하도록 자신과 타집단을 대신하여 사회운동을 펼칠 수 있다.”(시걸. p. 330)
올해 선배시민활동은 선배시민총회로 발전했다. 14개 지역의 선배시민단이 정책을 발의하여 12월에 중앙 총회를 개최한다. 선배시민교육과 실천을 하는 노인들은 ‘자신이 공동체를 위해 할 일이 많은 존재인 줄 몰랐다. 왜 이제야 이런 이야기를 해 주었는가’라고 말한다. 이를 보고 사회복지사들도 ‘이제야 존경할 어르신들이 생겼다’고 고백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사회적 독서
나중에 COVID-19코로나19로 명명된 2019년 12월에 출몰한 원인불명의 폐렴으로 현재 전 세계적으로 확진자 6천만 명58,467,203명에 사망자는 백사십만 명1,385,973명에 육박한다.11) 한국은 30,403명에 503명으로 세계적으로 모범적인 방역을 하고 있다.(질병관리청 중앙방역대책본부. 2020. 11. 21.) 2020년 지구촌의 일상이 달라졌다. 코로나19와 함께 하는 뉴노멀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암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코로나19는 지구촌 시민들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다. 첫째, 왜 어떻게 생겨났을까? 둘째, 특정 개인들에게 왜 더 위험할까? 셋째,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코로나19는 이제 전염병의 조짐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제기되고 있다. 월터스12)는 전염병을 에코데믹Ecodemic으로 정의하는데, 이것은 ‘생태 이상으로 인해 발생한 지구적인 전염병’이라는 의미이다. 자본주의는 이윤을 얻기 위해 자연과 더불어 동물을 착취했다. 15년 수명의 돼지는 겨우 서 있을 정도의 우리에 갇혀 6개월이면 도살되고, 거대 농축산업은 닭을 A4용지보다 작은 면적에 세워놓고 달걀을 얻기 위해 밤새 불을 켜놓는다. 소는 양의 창자를 갈아 만든 사료를 먹는다. 이 모든 동물에게 어려서부터 항생제를 먹인다. 월터스는 ‘새로운 전염병 어떤 것이든 내게 가져와라. 인간이 일으킨 환경변화가 그 원인임을 입증하겠다’라면서 ‘바이러스가 인간세상으로 가기 위해 문을 거세게 두드리고 있다’고 주장한다.(월터스. p. 11) 이런 점에서 코로나19의 숙주는 통제되지 않은 자본주의인지 모른다.
두 번째 질문과 관련하여, 시카고에서 흑인 인구는 1/3이지만 사망자의 72%가 이들이다. 이것은 이 지역에서 백인의 평균수명이 흑인보다 8.8년 긴 구조적·인종적 불평등이 반영된 결과이다.(NYT. 2020. 4. 7.)
울리히 백은 『위험사회』13)에서 “부는 상층에 축적되지만, 위험은 하층에 축적된다. 부자는 위험으로부터의 안전과 자유를 사들일 수 있다”고 비판했다.(벡. p.75) 부자는 코로나19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하지만, 자본축적의 더 많은 기회를 부여한다. UBS은행은 코로나19 상황인 2020년 4월~7월 사이에 세계 억만장자들의 재산 총합이 27.5% 증가했는데, 이는 사상 최대치라고 증언했다.14) 이런 맥락에서 울리히 벡은 위험은 계급적이라고 주장했다.
셋째,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 사회적 독서를 해야 한다. 사회적 독서는 코로나19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향해야 한다. 그리고 근대 공장식농축산업, 살림벌채, 화석연료 등 생태와 기후에 영향을 미쳐 온 돌진적 근대화에 대해 근본적인 성찰이 되어야 한다. 월러스15)는 원헬스 개념을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 ‘자연, 동식물과 농업, 인간, 바이러스와 건강, 보건 인프라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것이다. 즉 동물, 자연, 인간 모두가 건강해야 한다.
시민정치는 특히 불평등에 맞서야 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위험은 인류를 향하지만, 실상 특정 계급에게 차별적이다. 바우만16)은 퓨즈에 주목한다. 전기회로가 과부하에 걸리는 순간 가장 먼저 퓨즈가 망가진다. 그런데 퓨즈가 끊어지면 회로 전체가 작동을 멈춘다.(바우만. pp. 7-11 참조) 우리는 자주 ‘끊어지는 퓨즈 대신에 더 튼튼한 구리선을 대체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퓨즈가 구리선으로 대체되는 순간 퓨즈의 민감성을 잃어버린다. 이런 경우 위험은 걷잡을 수 없는 재앙이 된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퓨즈의 정치는 비정규직, 콜센터 노동자, 자영업자, 일용노동자 등에 주목해야 한다. 이들에게 무급휴가나 실직은 살인이나 다름없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설령 증상이 의심된다고 하더라도 자발적으로 자가격리를 결정하기 어렵다.
『사회적 공감』의 저자 시걸은 “빈곤은 사회적 공감의 시험대이다”라고 언급했다.(시걸. p. 316)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사회적 독서의 주제는 더 본질적이고 더 복합적인 것이 되었다. 지금이야말로 사회적 독서와 학습동아리를 매개로 나눔 2.0의 실천을 모색할 때가 아닐까.
10) 인천광역시교육청 학교민주시민교육 교사아카데미. 『민주주의자들의 교실: 민주시민교육의 철학』. 마북. 2020.
11) https://coronaboard.kr/ 2020년 11월 22일 검색
12) 마크 제롬 월터스. 『에코데믹, 끝나지 않은 전염병』. 책세상. 2020.
13) 울리히 벡. 『위험사회』. 새물결. 1997.
14) https://www.bbc.com/korean/international-54460029
15) 월러스. 『펜데믹의 현재적 기원. 너머북스. 2020.
16) 바우만. 『부수적 피해』. 민음사. 2013.
★ 이 글은 2020년 11월 26일에 열린 〈2020 사회적 독서 콘퍼런스〉의 발제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