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먹을 것과 의약품들이 부족한 수많은 사람들에게 문학이 위안을 준다고 생각할 정도로 이상주의자는 아닙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지적하고 싶습니다. 즉 목적 없는 무리를 이루어 육교에서 돌을 던져 사람을 죽이거나 어린 소녀에게 불을 지르는 그 사악한 젊은이들이 누구이든지, 그들이 그렇게 되는 것은 컴퓨터의 ‘새로운 언어’에 의해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라, 바로 책의 우주에서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교육과 토론을 통해 바로 책에서 나오고 또 책으로 되돌아가는 가치들의 세계를 반영하는 장소들입니다.
- 움베르토 에코, <문학 강의>, 열린책들, 2005, p.13-14
1.
어린이 책은 어린이를 독자로 상정하여 창작, 출판, 유통, 소구되는 책들을 지칭한다. 여타의 출판물과 달리 어린이가 중심이 된다는 점에서 어린이 책은 독특한 자신만의 자질을 갖는다. 예컨대 일반적인 책이 창작이나 출판, 유통이나 소구 등등 특정한 어느 한 지절에 터하고도 분류가 가능한 데 반해, 어린이 책은 이들 다양한 지절들이 동시에 작동한다. 작가만이 어린이 책이라고 생각한다거나 출판사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창작에서 소구에 이르는 전 과정이 어린이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물론 어린이 책 형성의 초기에는 <걸리버 여행기>처럼 어른들의 시선으로 창작되고 출판된 작품들이 오히려 어린이 책으로 각광을 받는 경우도 없지 않았다. 작품 속에 존재하는 격정적인 풍자와 전복적인 판타지가 어린이들의 환호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에서 그와 같은 어린이 책의 전유는 불가능하다. 그 어떤 상품 못지 않는 상품성으로 충만한 것이 어린이 책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작에서 소구에 이르는 전 과정에서 상품성이란 척도에서의 조율이 불가피하다.
이와 같은 현상은 최근에 들어 한층 더 강화되고 있다. 우리와 전적으로 같지는 않겠지만, 미국의 경우는 변화를 상징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예컨대 펭귄 출판사, 아니 펭귄 출판그룹은 Putnam을 비롯한 비슷한 규모의 출판사, 37개를 거느리고 있다. Simon & Schuster 출판사는 Paramount 영화사와 케이블티비 MTV, VH1, Blockbuster 음반 비디오 대여업, 라디오와 지역 텔레비전 방송국을 거느린 파라마운트 미디어 그룹에 소속되어 있다. 미디어재벌이라고 지칭되는 루퍼트 머독의 ‘News Corporation’은 Los Angeles Dodgers 구단과 신문, 잡지, Fox사를 비롯한 방송사, 영화사 21세기 Fox사, 그리고 아동문학도서로 가장 유명한 출판사로 빼놓을 수 없는 HarperCollins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 오늘날 출판은 제조업을 넘어 1980년대의 군산복합체와 맞먹는 미디어복합체로 자리매김 되고 있는 셈이다.
어린이 책뿐만 아니라, 어린이문학 출판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최근의 출판사는 책을 판매하기보다 브랜드를 판매하는 경향이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되고 있다. 시리즈물이 지속적으로 발간되며, 작가 Ray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도 'Curious George'는 거듭 시리즈를 이어가고 있다. 이처럼 거추장스러운 문화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공공연한 상품임을 자임하는 한, 출판은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치닫는 산업적 경향을 극대화해 가기 마련이다. 책이 나오고, 그 책을 컨텐츠로 삼아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만들어지고, 그에 부수되는 캐릭터 산업이 뒤쫓아 오면서 책은 단순히 낱낱의 작품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상표를 갖춘 상품으로 진열대에 자리 잡게 되는 셈이다.
다음과 같은 Hade의 우려는 단순히 우려를 넘어 현실이기도 하다.
“(출판사의) 목표는 Madeline을 가능한 한 많이 파는 것이 아니라, Madeline을 가능한 한 어린이들의 삶의 양상으로 확장해 내는 것이다. 어린 시절이 상품화된 Madeline이란 물건을 소비하는 것으로 채워지게 되는 것이다.”
“상상적인 문학 작품의 개별적인 창조성과 문학과 접하는 어린이의 경험이 갖는 개별성은 자본의 탐욕으로 해체되고 만다. 상상력으로 가득 찬 개별적인 작품 대신 어린이문학은 복제된 취향에 함몰되고 만다.”
Harry Potter산업이라고 지칭되는 소비의 양상은 근래에 이를 다시 한 번 입증해 주고 있다. 책이 영화로, DVD로, 장난감으로 확장됨으로써 어린이들은 작품을 통해 경험을 확장하고 사유를 심화하기보다 상품을 소구하는 소비자로서 위치 설정이 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책이 지닌 사용 가치는 소실되고, 물신화된 교환가치가 지배하는 세상 속의 소비자로 고착되는 것이다.
그러나 새가 좌우의 날개로 날 듯, 상업성의 대척에 공공성의 영역들이 어린이 책에 존재하는 것도 분명하다. 예술작품으로서, 문화적 실천으로서, 공공 영역의 일환으로서 어린이 책의 창작, 출판, 유통, 소구의 경로들 역시 위축되고는 있지만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은 자명하다. 애초 계몽적 기획으로 시작된 기원의 관점에서 보나 새로운 이데올로기적 지형 속에서 예술적, 문화적 실천의 영역이 되고자 진력하는 흐름으로 보나, 어린이 책의 공공성은 어린이 책의 존재만큼이나 그 연원이 길고 또 면면한 흐름 또한 분명하다.
이 발표는 최근 어린이 책, 그 가운데에서도 어린이문학을 대상으로 상업성과 공공성이란 이질적이고 모순적인 두 축이 서로 길항하는 과정을 공공성을 중심으로 살피는 한편, 그 과정에서 ‘기적의도서관’이 했던 역할 또한 거칠게 살펴보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를 통해 향후의 실천이 어린이문학의 공공성을 한층 확장, 심화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 또한 없지 않다.
2.
어린이문학은 일반문학에 비할 때, 미적 자질보다 문화적 실천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한층 선명하게 본질을 밝힐 수 있다. 애초 문학의 출발선이 인간의 존재론적 조건에 대한 예술적 탐구에서 발전한 것과 달리, 어린이문학은 만들어진 문학이란 점에서 계몽적 이데올로기와 분리하여 논의하기 힘들다. 공동체와 교회의 역할이 개별적인 가정의 몫으로 남겨진 근대 이후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를 위한 교육적 장치로, 사회화와 다를 바 없는 문명화 과정의 일환으로 출발하였다. 우리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방정환은 소년운동의 일환으로, 식민지시대를 돌파할 새로운 주체의 발견을 위한 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시작되었다. 그러니 역사적 출발선에서의 계몽적 시원은 동서를 막론하고 과거와 현재를 이어져오며 어린이문학의 본질적 표지로 존재하고 있다. 계몽적 계기야말로 어린이문학의 본질적인 계기이며, 따라서 어린이문학은 그 어떤 문학예술보다 이데올로기가 아주 명확하다.
이 선명한 이데올로기적 기획은 먼저 주제의 측면에서 드러난다. 어린이문학의 모든 작품들은 그 세부의 특성을 한 단계 일반화하면 성장으로 명명할 수 있다. 이현의 <짜장면 불어요>처럼 ‘배달민족’의 일원이며 대학을 가지 않아 오히려 더 많은 선택지를 가질 수 있는 주체임을 자각하며 씩씩하게 ‘바라바라바라밤’ 경적을 울리는 인물이 있으며, ‘길러지는 것은 신비하지 않아요’라고 읊조리는 임길택의 <나 혼자 자라겠어요>라는 작품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 인물이나 작품 또한 성장의 방향을 문제 삼을 뿐 성장 자체를 외면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어린이문학의 주제 자체의 보편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여하히 반성장의 담론을 기획할지라도 <수레바퀴 밑에서>의 한스처럼 비극적인 결말을 비켜날 수 없는 것이다.
독자의 측면은 한층 더 어린이문학의 예술적인 발전을 제약한다. 무엇보다 일반 문학의 독자는 독자인 한, 적어도 감식력 있는 교양인 그 이상이다. 독자들이 많지도 않을 뿐 아니라, 이들이 이미 전문적인 비평가와 다를 바 없는 감식안을 지니고 있다. 일반 문학에서 비평의 역할이 협소하며, 문학사와 연결되는 한에서만 의의를 갖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어린이문학은 다르다. 어린이문학의 독자는 소수의 감식력 있는 독자가 결코 아니다. 그저 독서 대중일 따름이다. 작가를 선별하고, 관심사를 공유하며, 작품을 적극적으로 평가하며 읽는 독자가 아닌, 그저 눈앞에 있는 작품을 호기심으로, 권유로, 강제로 대면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만큼 비평가, 교사, 사서, 학부모 등 이러저러한 층위의 중개인들의 역할이 그 어떤 장르보다 크다.
더욱이 소구하는 과정의 선택 또한 전적으로 독자에게 맡겨져 있지 않다. 어린이문학의 특성이 ‘이중의 독자’를 전제한다는 것은 이미 해묵은 이론적 발견이다. 어린이문학은 독자인 어린이에게 신호를 보낼 뿐만 아니라, 구매자이자 중개인인 어른들에게도 역시 수신자로 다양한 장치들을 마련해두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작가들이 쉼 없이 자신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쏟아내는 것도 구매자인 부모들의 향수를 자극한다는 점에서, 자신의 지나온 삶을 어린이들에게 이해받기 원하는 어른들의 욕구를 대변하고 있다는 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출판이나 유통의 과정에서도 이러한 독특한 자질들이 간과되지 않음은 물론이다.
이처럼 어린이문학 작품의 특성, 독자의 특성 등으로 말미암아 작가에 한정되지 않는, 폭넓은 중개인의 역할이 어린이문학에서는 중요하다. 따라서 어린이문학에 대한 탐구는 미적 특성들을 규명하는 것만큼이나 외연적인 자질들의 특성을 살피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른바 아비투스라고 지칭되는 문학장의 역할이 주요한 방법적인 틀을 제공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비투스는 부르디외의 개념이다. 그는 어떻게 사회 구조가 개인의 내면에서 작동하며, 집단의 내면이 어떻게 사회구조로 변형되는지를 살피는 과정에서 구조를 구조화하는 일정한 성향들이 존재함을 발견한다. 그는 그 성향이 개인이나 집단이 의식적으로, 또 무의식적으로 대상을 인식하며, 평가하며, 나아가 행동으로 구체화하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이른바 아비투스는 일상적 삶의 경험들과 행위들을 통해 드러나는 특정한 사회 집단의 생활 방식, 가치, 성향, 기대 등을 지칭한다. 이 아비투스를 어린이문학 작품을 둘러싼 창작과 출판, 유통과 소구의 과정에 관여하는 주체들의 이데올로기로 정리할 수 있으며, 이들 아비투스와 함께 여타의 권력관계가 표출되는 구체적인 맥락을 문학장Literature field이라 부를 수 있다. 어린이문학장에서의 아비투스라고 지칭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방법론의 유효성은 미국의 어린이문학을 살펴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른바 영국에서 어린이문학의 황금시대는 빅토리아 시기인 1865년에서 1914년 혹은 1926년까지로 잡고 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부터 <위니 더 푸>에 이르는 기간이다. 이 기간에 영국은 ‘의무교육’의 시작과 함께 아동노동의 금지를 통해 아동의 독자성을 발견하기에 이른다. 미국의 경우도 이 기간 동안 <피터 팬>의 J.M.Berrie, Nesbit, Burnett, Sewell 등이 활동한다. 두 번째의 황금시대는 195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이다. 판타지를 주조로 Tolkien, Roald Dahl, C.S.Lewis 등을 주요한 작가로 손꼽는다. 그러나 이 두 번째 황금시대의 저변에는 베이비붐 세대의 늘어난 아이들과 함께 1960년대의 민권운동이 자리 잡고 있다. Judy Blume, Shel Silverstein과 함께 Maurice Sendak이 아이들의 현실을 전면적으로 있는 그대로 표현하기 시작한 대표적인 작가들이다. 이와 함께 세 번째 황금시대는 1990년대부터 비롯되어 Harry Potter로 이어지는 기간으로 총체적인 언어교육과 함께 “Literature-Based Instruction"이라고 지칭되는 문학 중심의 국어교육이 견인차 역할을 하던 시기이다. 이 기간 동안 학급문고, 학교도서관, 어린이도서관이 막대한 정부의 재정적 지원에 힘입어 기하급수적으로 증대한다. 그 결과 어린이문학은 서고를 가득 메우며 시장의 우위를 점유하기에 이른다. 이 과정을 일별하더라도 미국의 어린이문학을 융성케 한 배경에는 독특한 아비투스가 작동한다. 소년노동에 대한 비판과 나란히 의무교육의 법제화, 베이비붐 세대 속 1960년대의 민권운동, 1990년대의 언어교육철학의 변화 등이 걸출한 작가들을 어린이문학의 장 속으로 적극적으로 소환하고 있는 것이다.
3.
우리 어린이문학의 발전 또한 문학 자체의 내적 동력과 함께 아비투스의 변화에 기인하는 바 크다. 의도적이고 실천적인 집단의 기획이 어린이문학 자체를 끌어가고 있는 셈이다. 1920년대의 <어린이>지의 역할이 그러했으며, 신경향파의 소년소설이 그러했다. 해방 직후나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다음에는 이와 정반대의 방향으로, 그러나 이데올로기의 형성을 의식적으로 쏟아 붓고자 했던 점에서는 다를 바 없는, 헐벗은 계몽으로 점철되던 70년대, 80년대의 어린이문학이 그러했다. 그 흐름에 균열을 내기 시작한 것은 다른 이데올로기적 기획이다. 그 시작은 출판으로부터 비롯된다.
그 단초는 1970년대 후반의 ‘창비아동문고’로부터 비롯된다. 민족문학으로서의 어린이문학을 재발견하고자 하였으며, 이원수, 이주홍, 마해송 등 식민지시대를 거쳐 왔기에 제각기 흠결들이 없지는 않지만 그나마 지배적인 아동문학에 대립적인 축으로 내세울 수 있는 문학적 전통을 재구하고자 한 의의가 있다. 이는 이오덕을 비롯한 주류에 내몰린 비주류들의 오랫동안 내연하던 항변들이 책이란 이데올로기적 형식을 얻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와 함께 놓칠 수 없는 또 다른 아비투스는 출판과 학부모, 교사가 결합되어 출범한 1978년의 한국양서협동조합이다. 이 조합의 ‘어린이도서연구분과’가 1980년 ‘어린이도서연구회’로 환골탈태하여, 어린이문학의 새로운 이정표를 연다. 무엇보다 어린이도서연구회는 그 동안 전집으로 소구하던 어린이문학을 낱권으로 구매하는 활동을 펼쳐 단행본의 의미를 재발견하였다. 뿐만 아니라 주류의 문학을 변방으로 내몰며, 어린이문학이 일반이 아닌 우리 어린이에게 꼭 필요한 우리의 어린이문학이 무엇인지를 거듭 되물으며 기왕의 표출되어 왔던 민족문학으로서의 어린이문학을 적극적으로 견인하게 된다. 이후 이 단체의 활동은 정말 풀뿌리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를 입증하듯 전국적인 자발적인 시민 단체로 전환되어 어린이 책의 민주적 정향들을 지역 곳곳에 뿌리 내리게 하는 데 크나큰 이바지를 하게 된다. 그 실천이 모여 추천도서 목록을 만든 것 역시 비평적 담론이 미미했던 적어도 활동의 초기 단계에서는 작품 선정의 지침을 마련해주는 주요한 순기능을 수행하였다.
이 시기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어린이문학의 아비투스는 역시 <창비>, <사계절>, <산하> 등등의 출판계에서 비롯된다. 그 가운데 <창비>가 제정한 1997년부터의 공모제는 획을 긋는 일이었다. 기존의 작가들을 재평가하는 것이 한계에 도달한 출판은 새로운 작가의 발굴이라는 기획 아래 공모를 시작하며, 그 첫 번째 당선작으로 채인선의 <전봇대 아저씨>를 시작으로 매년 어김없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였다. 예컨대 이 작품집에 수록된 <학교에 간 할머니>는 새로운 경향의 시작을 알리기에 적합한 작품이다. 학교에 간 할머니는 역할 바꾸기를 통해 자신의 잔소리가 현실에 맞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이 작품이 중요한 것은 이제야 계몽의 대상이 어린이가 아닌 어른으로 설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린이는 이해의 대상이지,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는 이 단순한 선언에 도달하기까지 한국의 어린이문학은 퍽이나 긴 미로를 지나와야 했다.
이즈음 특기할 만한 또 다른 변화는 1997(?)년 한국어린이문학협의회란 조직이 새롭게 탄생했다는 점이다. 이오덕, 김녹촌, 권정생 등 기존의 대안적인 어린이관을 모색하던 어린이문학 작가들이 비록 느슨하지만 일정한 협의체를 만들어 후학들과 함께 모임을 꾸렸으며, 특기할 만한 일은 이 단체를 발행인으로 <어린이문학>이란 잡지를 1998년 11월 창간하게 된다. 그리고 이 잡지는 신인 응모란을 두어 추천제도를 마련함으로써 신진 작가들의 진입을 역동적으로 견인하게 된다. 이후 잡지는 <어린이와 문학>으로 환골탈태하며, 전신인 <어린이문학> 또한 계간으로 출간되는 우여곡절을 겪게 되나 그 역할은 결코 소홀히 다룰 수 없다.
이른바 이들 다채로운 정향들, 출판사, 시민단체, 공모제, 작가조직, 매체 등이 모이고 모여, 바야흐로 정말 바야흐로 2000년대에는 새로운, 최초의 우리 어린이문학의 황금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 저변에는 70년대, 80년대 학생운동에 투신했던 이들이 부모가 되고, 자신들의 자식을 달리 교육해야겠다는 의지 속에 다른 교육이 다른 책으로부터 나온다는 당연한 인식이 뒤따른 결과라고 할 것이다.
4.
1990년대 후반부터 용틀임을 시작하고, 2000년대 들어 급격하게 성장한 어린이문학은 2003년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의당 ‘기적의도서관’ 건립이 출현할 시점이다. 물론 그 이전 2001년 느낌표는 독서진흥을 위한 효과적인 계도 프로그램이었다. 물론 선정한 책으로 말미암아 출판의 다양성을 제한한 측면 또한 없지 않아 폐지되고 말았으나, 25종의 선정도서 가운데 기왕의 소설가인 박완서와 황석영의 작품에 덧붙여 김중미, 김향이, 고정욱 등의 동화와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등이 선정됨으로써 우리 동화의 지형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선명하게 보여주었다. 더욱이 동화가 지닌 효용이 단순히 어린이, 청소년에 그치지 않고 폭 넓은 독서대중과의 접촉면을 얻음으로써 더 이상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장르가 아닌, 대중적인 향유 가능성을 현저히 열어두는 장르임을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느낌표의 의미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프로그램으로 얻은 수익금이 ‘기적의도서관’을 만든 재원으로 활용되었으며, 마침내 2003년 순천 기적의도서관이 건립된다. 그리고 1호관 순천을 시작으로 2011년 김해 기적의도서관에 이르기까지 모두 11개 관이 건립되었다. 이는 단순히 도서관이 11군데 개관된 것에 그치지 않는다. 타어어가 고무가 아닌 그 속의 공간이 중요하듯, 도서관이 역시 건물이 아닌 그 안의 공간이 소중한 법이다. 그러나 이 당연한 인식이 지금까지의 도서관에서는 홀대되어 왔다. 기적의도서관은 가히 우리나라 도서관의 패러다임 전체를 바꿀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하였다. 작고한 정기용 선생의 건축철학이 고스란히 구현된 것도 특기할 만하다. 그러나 기적의도서관이 불러일으킨 혁신은 그 자체만으로 그치지 않는다. 도서관이란, 어린이도서관이란, 어린이도서관의 본질이란, 어린이도서관의 수서란, 운영이란? 등등의 물음들을 거듭 쏟아냄으로써 그밖의 수 많은 도서관들이 스스로의 정체성과 기능을 근본적으로 되묻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전문도서관으로서의 위상을 명확히 하며 이후 어린이청소년도서관을 비롯한 국가, 지방자치단체, 마을, 나아가 학교에 이르기까지 어린이도서관의 건립과 재건축 등이 우후죽순으로 쏟아나는 시발점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이러한 기적에 가까운 일로 어린이문학의 아비투스를 운운한다는 것은 피상적이다. 기획된 공간만이 아니라, 기획된 공간 속에서 도서관의 속살을 채우는 수서는 의당 그림책을 비롯한 어린이문학의 다양한 장르들을 재검토하게 만든다. 새로운 도서관의 건립은 새로운 수서의 내용들을 되묻는 일을 동반한다. 이 또한 기적의도서관은 수서의 원칙으로 응답하였다.
01 전국 모든 ‘기적의도서관’은 도서 기타의 콘텐츠를 구입할 때 자원이 허락하는 한도 안에서 반드시 정상적 유통 경로를 통해 정가 혹은 정가에 가장 근접한 가격을 지불해야 합니다. ‘기적의도서관’은 어떤 경우에도 출판사나 유통업체에 대하여 도서 등 콘텐츠의 무상 기증을 요청하지 말아야 하며, 통상적 공급가격 이하의 낮은 가격으로 도서 기타의 콘텐츠를 제공하도록 유통업체나 출판사에 요청해서도 안 됩니다. 모든 ‘기적의도서관’ 지역운영위원회는 해당 지역 자치단체에 ‘기적의도서관’에 필요한 도서 기타의 콘텐츠 연간 구입비용을 지자체 예산에 정당히 책정하도록 요구하고, 책정된 예산을 틀림없이 집행해야 합니다.
02 ‘기적의도서관’은 개인이나 업체, 기타 사회단체들이 무작위로, 또는 정당한 가격 보상 없이 수집해서 무상으로 제공하는 도서 기타의 콘텐츠는 어떤 경우에도 받지 않습니다. 개인 혹은 단체의 선의에 의한 기증 도서나, 사회단체들이 정당한 가격을 지불하고 구입 기증하는 도서들에 대해서도 반드시 검토와 선별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무상으로 제공된다고 해서 아무 도서나 받아들이고 비치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도서를 정당하게 구입해서 기증하려는 개인이나 단체들에 대해서는 ‘기적의도서관’ 구입 희망 도서목록을 제시하여 목록을 준수하도록 해야 합니다.
03 각 지역 ‘기적의도서관’ 수서 담당 사서, 지킴이, 운영위원회는 반드시 객관적이고 엄정 한 판단과 평가 절차를 거쳐 그때그때의 구입도서 목록을 작성해야 하며 특정 인사의 독단적 판단이나 결정에 의해 수서 행위가 진행되는 일이 없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특히 도서 납품업체들에 의한 임의의 도서 선정과 납품 행위는 ‘기적의도서관’에서는 결코 허용되지 않습니다. ‘기적의도서관 전국 네트위크’는 각 지역 기적의도서관 수서 작업을 지원하기 위해 아동도서 전문가들로 구성된 ‘도서추천위원회’를 가동하고 각 지역도서관에 상시적으로 목록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각 지역 ‘기적의도서관’ 은 이 목록을 최대한 참고해야 하며, 필요할 경우 ‘전국 네트위크’의 수서전문위원에게 도서 선정에 관한 상담, 자문, 지원을 요청토록 해야 합니다.
다소 긴 이 인용들은 어린이책의 질적 제고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 핵심은 수서를 양적으로 접근하는 경쟁입찰제의 문제점을 넘어서기 위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 내용은 적극적인 가격 정책, 명확한 예산의 강제 편성 및 집행, 전문적인 도서 선정위원회의 운영 등으로 요약된다. 이들 수서의 원칙들이 어린이책의 발전을 견인할 수 있음은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분명하다. 그리고 이후 이들 목록은 여타의 도서관들에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듯 차례로 흘러들었음은 명확하다. 이렇게 어린이문학의 아비투스 가운데 주요한 지절이 새롭게 형성되었으며, 새로운 여파를 불러일으키며 어린이문학의 황금시대를 지탱하는 한 축으로 작동한 것이다.
그 한 예를 우리는 지금도 어린이문학 작가들이 작은도서관과 공공도서관, 기적의도서관에서 자신의 작품을 들고 아이들과 함께 책으로 통하는 길을 열어가고 있는 것에서 생생하게 목도할 수 있다. 도서관이란 새롭게 탈바꿈한 공간에서 책을 매개로 작가와 독자가 쉼 없이 만남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5.
올해로 첫 기적의도서관 순천관이 건립된 지 10주년이 지났다. 지금 이 자리는 그것을 기념하고 또 평가하는 자리이다. 기적의도서관이 어린이문학의 아비투스의 한 축으로 자리 잡고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일이다. 그럼에도 그 10년에 대한 평가는 그저 넉넉하고 화기애애하지만은 않을 듯 싶다. 적어도 어린이문학의 경우, 황금시대는 끝났기 때문이다.
미국아동문학의 세 번째 황금시대가 끝난 것은 성취도검사에 기인하는 바가 적지 않다. 문학으로 문해력을 배운 학생들이 성취도검사의 결과 이론이 호언한 것에 비할 때 그리 좋은 성적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평가문항이 객관식이었으며, 평가를 대비한 학습지 중심의 문해교육이 급격히 확산된 것이 그 원인이다. 그러나 학교 평가와 교사 평가가 일상화되었다는 것과 나란히 교실 속 문학작품이 패퇴한 가장 큰 원인은 교사들의 피로감이라는 설명이 앞선다. 결국, 정책적인 변화의 시도가 No Child Behind Left란 법안과 법안의 구체화인 성취도평가를 계기로 주춤해졌기 때문이다.
우리라고 해서 사정은 다르지가 않다. 미국을 본떠 2008년 성취도검사가 시작된 이래, 어린이책 독서 시장은 현저히 축소되고 있다. 어린이책 출판이 위기라는 비명이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전업작가로서의 길을 모색하던 작가들의 창작 열정도 한풀 꺾인 모습이다. 인세 수입이 만만치 않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황이기에 새로운 책의 출판도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예전 입도선매로 작품을 출간하기에 급급했던 출판사들이 비로소 옥석을 가려내기 시작했다는 점은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 옥석을 가리는 일이 좋은 작품을 가려내기 위함보다 상업성에 더 많은 무게 중심을 둘 우려가 없지 않다. 얼마 전 문제되었던,
물론 이들 현상의 이면에는 이명박 정부의 정향이나 정책에 있다. 이 정부는 출범과 함께 인수위원회에서 이미 힘겹게 성사시킨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의 폐지건을 만지작거리면서부터 문화적인 삶과는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이후의 행보는 익히 알고 경험한 그대로이다. 결국, 사회민주화가 어린이문학의 각 지형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자심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준 한 시절이 아닐 수 없다. 향후 이어질 정부 역시 그리 큰 기대를 하기에는 턱 없이 부족하다. 결국, 정부 정책과는 무관하게 각각의 부문들이 때로는 개별적으로 때로는 연대하여 약진할 도리밖에 없다.
그 약진의 방향성 가운데 한 가지만은 명확하다. 이미 10년 전 2002년 어린이문학의 황금시대 입구에서 필자는 다음과 같이 피력한 바 있다. 그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학과 예술이 작가들의 분투 속에서 역사적 발전을 이루는 것과 달리 어린이문학은 예술적인 헌신만으로 완결되지 않는 복합성을 지니고 있다. 어린이문학의 주체는 작가나 연구자, 비평가로 국한되지 않고 관여하는 모든 이들이 그 주체이다. 어린이문학은 문학임과 동시에 미래를 향한 윤리적·정치적 기획이기 때문이다. 어린이문학이야말로 희망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린이문학의 역사는 작가와 작품의 역사만이 아니다. 작품을 둘러싼 그 모든 주체들이 함께 밀고 나아가는 희망의 역사이다. 어린이문학의 발전을 위해 어린이문학의 작품을 둘러싼 새로운 공공영역의 창출이 거듭 강조되어야 함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비평이 제자리를 찾는 것이야말로 출판을 비롯한 다양한 층위의 공공영역이 제 몫을 다하는 것이며, 어린이문학의 진정한 발전을 도모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그 과제를 밀고 나갈 입구에 서 있다. 나무의 생애에 견주어본다면, 어디를 향해 가지를, 또 잎을 내밀 것인가 하는 가장 중요한 시점에 놓여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