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제대로 된 도서정가제의 시행이 필요하다. 현행 도서정가제는 명목상 정가 대비 15%의 직간접 할인은 물론이고 신용카드사 등 제3자의 할인을 무한정 허용한다. 전자책의 경우 판매가 아닌 ‘대여’의 편법을 인정한다. 도서정가제를 시행하는 비영어권 국가들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일본, 스페인 등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겉은 도서정가제, 속은 자유가격제’의 이율배반적인 현행 도서정가제의 전면 개정 없이는 전국적인 서점 확산이나 출판시장의 활성화 기반을 만들기 어렵다. 이미 1970년대부터 부가세 면제를 통해 소비자 이익을 최대한 반영한 상황에서10% 할인 효과 발생 추가 할인은 거품 가격 책정과 판매처의 규모에 따른 판매 가격의 차별을 낳을 뿐이다. 사실상 15%만큼의 거품 가격과 수많은 편법을 조장하는 현행법을 하루 빨리 완전한 도서정가제로 개정해야 한다.
2018년 4월 16일, 오랜 노력 끝에 출판계, 유통업계, 소비자 단체 등 18개 단체가 〈건전한 출판유통 발전을 위한 자율협약〉을 체결하고 5월 1일부터 전면 시행중이다. 하지만 신용카드사 등의 ‘제3자 제공 할인’을 판매가의 15%까지 추가 인정하기로 한 것은 정가제의 법리와 취지를 훼손하는 일이다. 전자책 대여 기간을 90일 이내까지 인정한 것도, ‘대여’ 자체가 편법적인 할인 수단으로 악용되던 상황에서 기간만 줄여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다. 협약 내용은 지역서점 육성이나 정가제를 하겠다는 의지가 철저하지 않은 타협의 산물이다. 독자를 설득하며 도서정가제 조항 개정에 나서야 한다.
독자는 다양한 책을, 거품 가격이 없는 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유통경로에서 구입하기를 바란다. 현행 정가제는 그러한 산업구조를 만들기 위한 정책 방향과는 거리가 멀다. 문화적 공공재인 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려면 거품 기격이 없고 독일, 프랑스, 일본처럼 일물일가一物一價의 원칙에 충실한 정가제를 확립해야 한다. 어떤 의욕적인 정책이나 지원도 완전한 도서정가제 없이는 사상누각에 불과하다백원근, 2017.4.5.. 어떤 조사 결과를 보아도, 서점인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확고한 도서정가제의 정착이다이수진 외, 2017..
둘째, 서점 유통 마진이 지나치게 적은 서점 매입률출판사 공급률을 개선해야 한다.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의 출판사와의 직거래 구조가 발달한 한국 출판유통 특성상 출판사는 대형 유통 채널에 대해 상대적으로 낮은 공급률로 공급하고, 대형 온·오프라인서점은 신생 출판사나 소형 출판사에 대해 50%대의 낮은 공급률로 거래할 것을 강제한다. 도매상 거래를 기준으로 약 22%의 서점 판매 이익률로는 수요 감소와 낮게 억제된 도서 가격 체제에서 서점 임대료, 인건비, 운영비를 감당하며 정상적인 서점 경영을 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한림출판사가 2015년부터 65% 표준 공급률서점 35% 마진율로 거래 형태나 규모에 따라 거래 대상을 차별하지 않고 ‘상생 공급률’을 시행중인 사례는 귀중하다. 출판사마다 그간의 유통 관행과 거래 규모에 따른 공급률 정책이 존중되어야 하겠지만, 전국 각지에 산재한 지역서점독립서점 포함의 운영이 가능한 유통구조를 만들려면 이 문제를 피하기 어렵다.
셋째, 무분별한 기업형 중고서점의 확산을 제어해야 한다. 이른바 3대 기업형 중고서점알라딘, 예스24, 개똥이네의 전국 매장 수만 90개에 이른다. 3대 새 책 대형서점 매장교보문고, 영풍문고, 반디앤루니스 97개와 맞먹는 숫자다. 새 책 판매는 어렵고 중고책만 날개를 달고 비상하고 있다. <2017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도서 구입처로 주로 중고서점을 이용하는 비율’은 성인이 2013년 1.5%에서 2017년 3.1%로 증가했고, 초중고 학생은 2013년 2.0%에서 2017년 4.9%로 4년 전 대비 각각 2배 이상씩 증가세를 보였다. 중고책의 전체 출판시장 대비 점유율은 아직 적은 편이지만 새 책 판매가 아닌 2차 시장중고책 매매 규모가 무시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면서 새 책 시장을 상당 부분 침식 내지 대체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기업형 중고서점 매출이 3천억 원대이고 새 책 출판시장 손실액이 7.6%로 추정된다는 점은 문제의 심각성을 말해준다. 『온·오프라인 중고서점 실태조사』한국서점조합연합회, 2017에 따르면, 중고책 시장은 매장과 인터넷을 통한 전자상거래 업체의 소비자 매매B2C, 판매자와 수요자 간의 직거래C2C, P2P, 오픈마켓 방식으로 각각 약 2,000억 원1,984억 원과 1,300억 원1,350억 원 규모로 성장했다. 최소액약 1,000억 원 기준이라 해도 현재의 단행본 출판시장 규모로 보면 연간 7.6% 정도의 새 책 판매 기회를 잠식한 셈이다.
전통적인 개인 경영 중고서점들은 신간 판매 시장을 보완하는 2차 시장으로서의 기능이 강했다. 절판된 책, 오래 전에 발행된 책을 구할 수 있고, 호주머니가 가벼운 독자들이 저렴하게 헌 책을 구매하는 보조적인 유통 경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의 기업형 중고서점은 바이백 영업새 책을 50% 가격에 매입으로 중고 상품을 대량 양산하거나, 인터넷서점의 새 책 판매 코너에서 중고책을 함께 소개하는 등 수익을 위해서라면 새 책과 헌 책을 구별하지 않고 무차별적인 이익 우선주의로 치달아 왔다. 결국 기업형 중고서점이 확대 재생산하는 중고도서 시장이 커질수록 오히려 손해를 보는 것은 저자, 출판사, 신간 서점들이다. 중고책 매매는 이들의 수익 구조와 차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새 책의 판매 기회까지 빼앗는다. 독자들이 원하는 다양한 신간 도서의 발행을 위해서는 새 책 판매에 따른 수익금의 확보가 전제되어야 하지만, 이러한 출판산업 가치사슬 구조가 기업형 중고서점에 의해 무너지고 있다.
법제 측면에서는 「지역문화진흥법」에서 지역서점을 생활문화시설에 포함시켜문화체육관광부에서 〈생활문화시설의 범위에 관한 고시〉를 2018.3.9. 발표 생활문화 활동을 지원하고 시설 확충 지원과 전문인력 양성을 지원하도록 했다. 기초지자체에서 생활문화시설로 인정받은 서점은 국가와 지자체가 시설의 건립, 운영, 사업 수행에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수 있고 지자체가 소유한 유휴공간의 용도 변경 활용이 가능하다. 실제 운용의 묘가 중요할 것이다.
또한 「소상공인 생계형 적합업종 지정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2018.6.12.되었다. 서점이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향후 5년간 대기업대형 인터넷서점 등이 서점 사업을 인수·개시·확장할 수 없다. 현재 서점업서적 및 잡지류 소매업은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되어 2019년 2월까지만 대기업의 시장 진입이 금지되어 있는 상황이어서, 지역서점 입장에서는 그나마 방파제 역할을 할 이 법에 대한 기대감이 크다.
중앙정부 차원에서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제4차 출판문화산업 진흥 기본계획〉2017~2021에서 제시한 출판유통 선진화 체계 구축한국출판유통정보센터 설립, 전근대적 출판유통 관행 개선, 도서정가제 보완·개정, 출판물불법유통신고센터 역할 제고 등, 지역서점 상생 발전 체계 구축지역서점 통합 전산망 구축, 지역서점 활성화 기반 마련 등을 주요 과제로 추진 중이다. 지난 7월 1일부터 도서구입비에 대한 소득공제가 시행된 것도 도서 수요의 확산과 이를 통한 서점과 출판시장 육성 지원 제도로 주목 받았다.
현재 서점과 관련된 지원 사업은 지역서점 문화활동, 행사 지원서울국제도서전, 서점의 날, 전문인력 양성서점학교 개최, 해외 연수 대상 포함, 청소년 북토큰 사업 지원 등이 있다. 지원 규모가 연차적으로 증가 양상이지만 총액이 수억 원대에 그치고 있으며, 서점에서 가장 필요로 하는 프로그램 운영을 위한 지원은 매우 미미하다. 이를테면 공공도서관 대상으로 시행하는 ‘길 위의 인문학’사업 예산이 단일 사업임에도 54억 원에 이르는 것과 대조적이다. 공공도서관이 공공재인 책을 기반으로 공공 서비스를 하기 때문에 책과 관련된 강연 프로그램 등을 풍부하게 지원하는 것처럼, 시민 대상의 독서동아리 활동이나 저자 초청 프로그램이 매우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서점계에도 그에 준하는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지자체에서의 서점 지원 사업은 도서관 이용 마일리지의 서점 도서 구매 활용경기도 의정부시 등, 독자가 서점에서 선택한 책을 도서관의 장서로 등록하는 희망 도서 바로 대출 서비스경기도 용인시 등, 지역서점 인증제창원시 등가 대표적이다.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를 제정한 곳은 현재 서울, 부산, 경기 등 8개 광역지자체와 9개 기초지자체, 그리고 부산·인천·경기 등 3곳의 교육청이다. 독서문화 진흥 조례에 서점 인증제 조항을 둔 사례경남 창원시, ‘마을서점 인증 조례’를 별도로 제정한 사례서울 성북구까지 포함하면 점차 조례 제정이 확산 추세임을 알 수 있다. 도서정가제 강화 시행2014.11.21. 이후 지자체 내 도서관과 서점이 연계 활동을 하거나 지역도서관 장서를 지역서점에서 구매하는 관행이 빠르게 정착중이다.
경기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2017년부터 지역 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지역서점의 복합문화 공간화 지원, 출판 콘텐츠 제작 지원, ‘경기도 동네서점 상품권’ 발행2018.5. 등 지자체 차원에서는 획기적인 출판·서점 활성화 시책을 펴고 있다.
지자체가 지역 내 서점에서 도서를 구입하도록 권장하는 지원책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전남 순천시는 시내 도서관 대출증 보유 시민이 관내 서점에서 책을 구입할 경우 ‘전 시민 좋은 책 지원 사업’2014년~으로 정가의 30%를 지원하고, ‘청년 꿈 찾기 필독도서 지원 사업’2017년~에서는 도서구입비의 50%를 1인당 10만 원 이내에서 지원한다.
최근 주목을 받은 사례로는, 6월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고양시장이 입후보자 신분이던 지난 5월 23일 ‘책 읽는 행복도시, 살아나는 지역서점’이란 슬로건으로 청소년들을 위한 독서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문화 분야 공약을 발표한 것이다. 시민활동 그룹의 제안을 전격 수용하여 이뤄진 시책이다. 어린이들이 청소년으로 진입하는 첫 관문인 중학교 입학 때부터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신입생들에게 책을 한 권씩 지원하겠다는 공약으로, 지원 대상은 매년 고양시내 중학교에 입학하는 신입생 약 9천여 명이다. 지역 화폐인 ‘고양 페이’를 이용해서 지역의 동네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도록 할 예정이다. 일본의 하치노헤시가 지역 내 모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지역서점에서 책을 구입하도록 배포한 ‘마이 북 쿠폰’사업이 유사한 선례다.
이처럼 지역문화의 플랫폼 역할을 하는 서점 육성을 위해 정부와 지자체가 적극 나서는 것은 서점계의 경영난에 숨통을 틔우는 단비와 같다. 그렇지만 시민이 서점을 찾도록 유도하고 이용 동기를 갖도록 하려면 서점계와 함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요구되는 것도 사실이다.
이런 측면에서 서점의 마케팅 방법도 보다 다양화, 세분화, 고도화될 필요가 있다. 현재는 매장을 찾아온 고객을 대상으로 한 독서 공간 마련, 마일리지 제공, POP 광고 등이 중심이 되고 있으나, 습관적인 서점 이용자가 아닌 고객을 서점으로 이끄는 마케팅은 매우 부족하기 때문이다.
서점의 미래 비전을 위해서는 서점계 안팎의 개선해야 할 과제가 많고 정책 또한 시대 변화에 발맞춰 보다 혁신적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서점 친화적인 실질적인 서점 육성책이 시행되고, 서점의 경영 능력이 제고되어야 한다는 함의다. 여기서는 한국 출판산업의 발전 동력의 역할을 할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법」 제정과 완전한 도서정가제 적용을 위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을 필두로 하여, 서점 활성화 지원 정책에 대해 몇 가지 제안하고자 한다. 지역서점이 지역 커뮤니티의 문화센터, 커뮤니케이션 센터로 거듭날 때 한국 출판문화 발전과 한국 사회의 진화에 견인차가 될 것이다.
○ 서점 육성을 위한 법제 신설 및 개선
- (가칭)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법」 제정 : 제정 목적, 지역서점에 대한 정의, 지역서점 활성화를 위한 5개년 계획의 수립·시행, 서점경영 실태조사, 지역서점 인증제도, 지역 공공기관 납품 우선권 부여, 서점 전문인력 양성, 지역서점 전용 상품권 유통 및 지역서점 바우처도서교환권 배포, ‘서점의 날’11월 11일 및 ‘서점 주간’ 관련 조항 등 규정
- 완전한 도서정가제 적용거품 가격을 구조화시키는 직간접 15% 할인 조항의 삭제을 위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개정
- 책 생태계의 기반을 위축시키는 기업형 중고서점의 확장 제어 방안의 법제화 추진
○ 서점 단체의 역량 강화 지원
- 서점인 교육·연수 프로그램의 확충
- 창업 지원 및 경영 컨설팅 프로그램 운영
- 서점 비즈니스 모델 연구
- 서점온서점-ON 사이트ㅗㅗhttp://www.booktown.or.kr의 ‘서점판매정보시스템’구축
○ 서점 경영 안정화 시책 수립
- 금융 지원 제도서점 신설, 시설 리모델링, 운영자금 등에 정책자금 융자 및 서점 인턴 고용 지원
- 출판사 공급률 개선서점의 적정 마진 확보와 공급률 차별 시정을 위한 독일식 공급률 표준화 방안
- 특성화·전문화 서점 육성 제도 시행
○ 출판유통 혁신 과제
- 공동 물류 및 정보유통 합리화
- 상거래 관행 개선위탁판매제의 단계적 개선, 어음 및 잔금 거래 철폐
○ 시민을 위한 ‘서점 문화 거점’ 프로그램 지원의 확대
- 시민 참여형 각종 프로그램의 서점 개최를 지원
- 서점 봉사활동행사, 프로그램 운영의 학생 봉사점수 인정을 위한 행정 협력 추진
❚ 참고문헌 ❚
백원근(2007), 「문화공간으로서의 서점」, 『서점 창업과 경영(서점학교 강의교재 5)』, 한국서점조합연합회
백원근(2017.4.5.), 「출판문화산업진흥정책 이대로 좋은가」,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도종환·김민기·유은혜·소병훈 주최, 『차기 정부 출판산업 진흥을 위한 국회 토론회 : 책 읽는 대통령을 보고 싶다』
이수진 외(2017), 『경기도 지역서점 실태조사 및 발전방안 연구』, 경기연구원
장은수 외(2018.2.20.), 독립서점, 먹고는 사십니까? 「기획회의」,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국서점조합연합회(2017), 『온·오프라인 중고서점 실태조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한국서점조합연합회·한국출판학회(2017), 『2017 서울시 서점 전수조사 및 지역서점 지원 기준 수립』, 서울도서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2017), 『2017 출판산업 실태조사』
한국출판연구소(2017), 『2017 국민 독서실태 조사』, 문화체육관광부
★ 이 글은 2018년 7월 26일에 열린 〈2018 책의 해 - 책 생태계 비전 포럼〉에서 발표된 발제문으로, 필자의 동의 하에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