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이나 서점에서 새로 나온 책들을 만나면 반갑다. 한편으로는 이 책들은 또 누가 읽게 될까 궁금하다. 금속활자와 구텐베르크 인쇄 혁명 이후 책은 인류 지식 혁명을 이끌어 낸 핵심이었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와 앞으로의 미래도 결국은 인류가 어떤 지식을 만들어 내고 확산하느냐에 그 내용과 결과가 달려있다고 할 것이다. 그런데 사실 책은 그 자체로도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책은 저자와 출판, 서점, 도서관 등의 매개자, 그리고 독자가 잘 어울려야만 의미 있게 존재하는 하나의 생태계다. 특히 이 생태계는 책을 읽고 스스로 현재 상황을 극복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행동하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요즘 우리 책 생태계가 어려움에 처해 있다. 물론 각 부문에서 다들 이런저런 대안을 이야기하고 실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정말 중요한 건 독자다. 책 읽는 독자가 늘어나고, 독자가 스스로 자기 삶과 세상 흐름의 주인이 되어야만 한다.
읽지 않을 권리
책 생태계에서 회자되는 독자의 권리라는 것이 있다. 몇 가지 권리 가운데 하나가 책을 읽지 않을 권리다. 책은 읽어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인데, 읽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이에 대해 몇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우선 부실한 책이다. 책이라고 다 읽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안 읽히는 책은 독자가 선택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여길 수 있지 않을까? 문제는 읽고 싶지도 않은데 자꾸 읽으라고 하는 경우다. 강제적으로 어떤 책을 꼭 읽으라고 하거나 그것을 확인하는 것은 독자의 읽지 않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너무 쉽게 읽어야 할 책 목록들이 만들어지고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는 그러한 강제가 가해진다. 권고 수준에서 그쳐야 하고 강제적인 방법이 아닌, 독자가 매력을 느껴 스스로 읽겠다고 나서도록 하는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
읽을 권리
읽지 않을 권리와 대척점에 서 있는 것이 읽을 권리다. 그 누구로부터도 제한받지 않고 읽고 싶은 책을 읽을 권리는 독자의 권리의 핵심이다. 누군가에 의해 책들이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사라지는 것은 독자의 읽을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다. 학교 현장에서 이러한 일이 꾸준히 벌어지고 있다. 물론 여러 요인으로 논의가 필요한 책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책은 독자들이 읽어 보고 생각하고 함께 토론하면서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다. 그런 점에서 미국에서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금서 주간’ 행사나 우리나라에서 작년 9월 처음 시도된 ‘금서 읽기 주간’은 독자의 권리를 확인하고 보장한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라 하겠다. 학교 현장에서 이러한 문제를 학생들과 함께 이야기해 보는 것도 책 읽기에 있어 중요한 일이다.
읽을 권리와 연계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책 읽을 시간이 주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미 많은 독서 실태 조사에서도 시간이 없어 책을 읽지 못한다는 결과를 확인했다. 우리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책 읽을 시간이다. 책 읽을 시간을 충분히 또는 적절히 가지는 것은 독자 권리의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여전히 이 부분에서 제대로 개선을 할 생각이나 노력 또는 여력이 없다. 대부분 개인의 의지에만 의존하고 있다 보니 독서율을 높이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독서 운동의 방향과 노력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책 읽을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독서의 권리를 채워 주는 도서관
독자는 읽고 싶은 책을 제때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한 책을 바로 구입해서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어린이나 청소년 시절에는 그러기가 어렵다. 따라서 읽고 싶은 책을 언제든 구할 수 있는 도서관이 꼭 필요하다. 우선적으로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일상 시간 내내 보다 편리하게 책을 만나고 읽을 수 있도록 촘촘하게 독서 공간과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예전에 비해 언제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도서관이 늘어 더 쉽게 도서관과 책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아직도 공공도서관이 충분히 필요한 만큼의 책을 소장하지 못한다. 지식정보시대인 지금은 공공도서관에 책을 풍부하게 채우는 것이 모두를 위한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 투자이자 복지다. 마찬가지로 학교에서도 도서관을 제대로 만들고 운영해야 한다. 도서관을 보다 많이 이용할 수 있도록 수업과 쉼의 시간을 조정해야 한다. 독자의 권리 가운데 하나가 아무 데서나 읽을 권리, 소리 내서 읽을 권리도 있다. 이러한 권리를 확장하는 방안은 혼자서보다는 함께 읽기, 즉 독서 동아리 활동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미 공공도서관이나 학교 등에서 책 관련 동아리 활동이 늘어나고 있다. 바람직한 일이다. 토론은 물론 낭독이나 낭송의 방식으로 책 읽기의 다양성이 확장되면 좋겠다. 동아리 활동과 함께 도서관이나 학교 교실 등에서 소리 내서 책을 읽는 시간을 정기적으로 가지는 것도 좋겠다. 그동안 책을 읽을 때 조용함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런 엄숙함에서 벗어나야 한다. 최근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이 노력하고 있는 ‘책 읽어주세요’와 같은 프로젝트는 앞으로 독서 분위기를 바꾸고, 독자들의 권리를 단단하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것들은 서점이나 북카페, 출판사에서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능동적인 독자
앞서 언급한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 확장과 내실화, 책 읽을 시간의 충분한 확보 등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의 책 읽을 권리를 확실하게 보장하는 데 꼭 필요한 사회적인 과제다. 그러나 사회는 아직도 이러한 권리 보장에 필요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어린이와 청소년들은 대부분 입시에 과도하게 매여 있고, 자극적인 미디어 환경에 노출되어 있어 책 읽기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과연 이러한 현실을 넘어설 특별한 대책이 있을까 싶다.
기본적으로 사회가 독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하는 일차적 책임이 있지만 그 책임을 적절히 수행하지 않는 현실을 바꾸려면 결국 독자들이 나서야 한다. ‘금서 읽기 주간’을 시행하는 것이 독자의 읽을 권리를 스스로 찾는 노력이라고 할 것인데, 이것이 힘을 받으려면 기본적으로 독자들이 적극 참여해야 한다. 읽지 않을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서는 가해지는 압력이나 강제를 거부해야 한다. 수동적이어서는 결코 독자의 권리를 확보할 수 없다. 적극적으로 책을 읽을 책임을 인지하고 수행하면 좋겠다. 아침 10분 독서 시간이 있다면 스스로 즐겁게 참여하자. 의도적으로 하루 동안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는 것도 필요하다. 혼자 하기 어려우면 친구들과 동아리 활동을 하는 것도 좋다. 여유 시간이 있다면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 보길 바란다. 그곳에는 책들이 있고 책을 읽는 또 다른 친구들이 있다. 서로가 서로에게 요
기와 힘이 될 것이다.
어른들은 어린이나 청소년들에게 독자의 권리에 대해 제대로 알려 주고 그들의 권리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학교나 집, 도서관, 서점 등등 책과 관련한 곳에서는 독자의 권리를 크게 게시하면 좋겠다. 물론 책임도 함께 묶어서 게시하면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어른들이 먼저 책을 제대로 읽는 독자여야 하고 독자의 권리와 책임을 균형 있게 수행하면서 어린이와 청소년들과도 함께 책을 읽는 노력을 보여주기 바란다. 같이 도서관도 가고 서점에도 가서 아이들이 독자의 권리와 책임을 수행하는 것을 도와주면 좋겠다. 또한 도서관이나 서점 관계자들도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책을 즐거워해서 좋은 독자가 되도록 책과 책 읽기의 매력을 제대로 드러내는 다양하고도 재미있는 프로그램을 시행해야 한다. 그 과정에 어린이나 청소년들이 참여자가 아니라 기획자이자 주도자가 되어도 좋을 것이다.
새로운 세대는 책과 함께 자라난다. 그들이 독자로서의 권리와 책임 모두에서 당당한 주체자로서 설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와야 한다. 그것이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보장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현실은 결코 녹록하지 않고 앞으로의 가능성도 잘 보이지 않는 것 같은 이 때, 책 읽는 사람들에게 현실 극복과 새로운 시대에 대한 기대를 가질 수밖에 없다. 새로운 미래의 주역이 될 어린이와 청소년 들이 책 생태계 전반을 두루 이해하고 그 안에서 권리와 책임 모두에서 당당한 독자로 성장하기를 기대한다.
★ 이 글은 『학교도서관저널』 2016년 4월호에 실린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