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사회문화재단은 <한겨레>와 함께 '이 시대에 한국인이 꼭 읽어야 할 새 고전 26권'을 선정하였습니다. 고전은 지식인들이 당대의 문제를 인식하고 고통스럽게 사유한 결과로서 탄생한 책입니다. 그들의 고민은 여전히 우리의 고민이며, 어제의 문제가 오늘의 문제와 다르지 않습니다. 변함없이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들을 통해 오늘을 다시 한번 성찰하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미국 남북전쟁 때 흑인 남성들이 참전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흑인 여성들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하면 의아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러나 다음을 보라. “흑인 여성들도 전쟁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전쟁의 종식에 이바지했다. 해리어트 터브먼은 흑인과 백인 부대를 이끌고 농장을 습격했으며 한 차례의 원정에서 750명의 노예를 해방시켰다. 여성들은 유색인 연대와 함께 이동하면서 기나긴 행군의 고난을 견뎌냈다.”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에는 이런 예화들이 수도 없이 등장한다. ‘정통’ 역사에서 배제되었던, 그러나 미국사의 등허리를 이루었던 무명의 민초들 이야기가 강물처럼 펼쳐진다.
기존의 미국사는 굴곡이 적지 않았지만 궁극적으로 성공한 나라에 관한 송가나 다름없었다. 승자와 지배자의 관점에서 본 위로부터의 역사였다.
그러나 진의 미국사는 아래로부터의 투쟁을 보여준다. 미국은 그리 정의롭지도, 타국에 대해 선량하지도 않았던 나라였고 지금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그러나 미국이 이 정도라도 민주국가가 된 것은 전적으로 민중들의 헌신 덕분이라는 점을 저자는 상기시킨다.
이런 미덕이 <미국 민중사>를 단순히 ‘삐딱한’ 시비걸기가 아닌 책으로 읽을 수 있게 해 준다. 1492년 이래 아메리카 대륙에서 일어났던 일만큼 부정의하고 난폭한 사건도 역사상 찾아보기 힘들다. 미국의 형성과 건국은 약자에 대한 정복과 지배의 연장선에 맞닿아 있다.
하지만 진의 미국사는 두텁고 다양한 서사들을 시루떡처럼 쌓아 수직으로 자른 뒤 그 단층면을 비교하는 식으로 전개된다. 이렇게 보면 엄청나게 문제 많았던 북미의 역사가 폭로되면서 그와 동시에 민중들의 피와 눈물로 그 정당성이 조금씩 확보되었던 역사도 복원된다.
미국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미국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그리고 미국을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해 <미국 민중사>만한 책이 없다. 미국 민주주의의 비교우위를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라도 <미국 민중사> 만한 책을 찾기 어렵다.
미국은 한국인에게 지금이나 앞으로나 극히 중요한 나라다. 백악관과 의회와 와스프를 넘어 미국의 밑절미를 캐고 싶은가. 천 페이지가 넘는 <미국 민중사>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