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사회문화재단은 <한겨레>와 함께 '이 시대에 한국인이 꼭 읽어야 할 새 고전 26권'을 선정하였습니다. 고전은 지식인들이 당대의 문제를 인식하고 고통스럽게 사유한 결과로서 탄생한 책입니다. 그들의 고민은 여전히 우리의 고민이며, 어제의 문제가 오늘의 문제와 다르지 않습니다. 변함없이 유효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책들을 통해 오늘을 다시 한번 성찰하시길 바랍니다. (편집자 주)
신채호 사학은 박은식 사학과 함께 한국 사학을 근대적인 학문으로 성립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조선 상고사>는 <조선 상고문화사> <조선사 연구초>와 더불어 신채호의 대표적인 저술이다. 본래 신채호는 조선사 전반을 집필하려 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상고사 부분까지만 서술되었기에 후일 <조선 상고사>라는 이름으로 출간된 것이다.
<조선 상고사>는 총론을 비롯하여 12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총론은 그의 역사관이 잘 드러나 있는데, ‘사(史)의 정의와 조선역사의 범위’ ‘사의 삼대요소와 조선 구사(舊史)의 결점’ ‘사료의 수집과 선택에 대한 생각’ 등 근대적인 역사이론과 역사연구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라는 명제도 총론의 첫머리에 나온다. 신채호의 역사 이해는 우리 민족을 ‘아’의 위치에 두고 ‘비아’인 다른 민족과의 투쟁을 서술하는 이른바 투쟁사적인 성격이 강했다. 이런 점은 그가 한국사 연구를 독립투쟁의 한 방편으로 삼았던 것과 일맥상통한다.
<조선 상고사>에서 신채호는 한국 고대사의 인식체계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주장을 전개했다. 곧 우리 고대사의 영역을 한반도에서 광활한 만주대륙으로 확장시켰다. 그는 단군-기자-위만조선 또는 단군-기자-마한-신라로 연결되는 인식체계를 정면으로 거부하고, 단군-부여-고구려로 이어지는 한국 고대사의 체계를 제시했다. 이는 당시 일제의 식민사학자들의 주장과는 전혀 달랐다.
조선총독부는 박은식의 <한국통사> 같은 역사책이 조선인의 항일의식을 키울 것이란 점을 우려해 조선사 편찬을 서둘렀다. 1925년에는 조선사편수회를 만들어 식민사학의 심화·확대에 박차를 가했다. 일제가 남겨 놓은 그 식민사관은 아직도 우리 학계의 일부를 지배하고 있다. 첫 국가인 고조선의 역사를 훼손하고, 한사군이 한반도 북부에 존재했다고 주장하는 것 등이 그러하다. 신채호는 <조선 상고사>에서 이를 일축하고, ‘한사군의 위치는 한반도가 될 수 없다’고 역설했다. 한사군이 요동(랴오둥)에 있었다는 단재의 주장은 최근 거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교과서에서 한사군의 한반도 설치설이 사라진 것도 그 때문이다. 투옥 등 극악한 환경 속에서 집필된 단재의 상고사는 지금 되짚어볼 부분들이 없지 않으나, 그 탁월성은 누구도 부인하지 않는다.
<조선 상고사>를 읽는 이들은 역사를 향한 신채호의 매섭고도 날카로운 질책에 숙연해지고, 그의 강렬한 민족정신에 또다른 감동을 받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