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이야기꾼 모옌에게 ‘듣는’ 이야기”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런 세상이라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게 해주는 것을 소설이라고 부르거나, 세계와 자아의 불화 속에서 문제적 주인공이 진리를 찾아 여행을 떠나는 것이 소설이라고 한다면, 모옌의 소설은 소설이 아니다. 모옌의 소설은 소설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이야기이다. 모옌은 타고난 입심을 지닌 탁월한 이야기꾼이다. 그 탁월한 이야기꾼 앞에서 그의 소설을 읽는 독자는 독자가 아니라 이야기를 듣는 청자가 된다. 그것은 흡사 어느 시골 여름날 저녁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 같은 하늘의 별들을 보며 평상에 누워서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기이한 도깨비 이야기, 귀신 이야기, 동네 온갖 기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은 경험이다. 무릇 이야기는 기이하고 재미있고, 엽기적이고, 그런가 하면 때론 한없이 비속하고, 때론 한없이 숭고해야 청중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법인데, 모옌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바로 그렇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붉은 수수밭 가족』에 나오는 ‘우리 할아버지’의 파란만장한 삶이 그렇고, 『단향형(檀香刑)』에 등장하는 기이하고 끔찍한 고문 이야기가 그렇다.
모옌의 근작들이라고 할 수 있는 세 개의 단편들로 이루어진 모옌의 소설집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임홍빈 옮김, 문학동네, 2009, 이하 『사부님』)에서도 모옌 소설의 그러한 특징은 여전하다. 이들 세 작품들 역시 기이하고 별난 사람과 사건에 관한 이야기들이다. 표제작인 「사부님은 갈수록 유머러스해진다」(이하 「사부님」)는 사회주의 국영기업의 노동 영웅이었던 인물이 구조조정을 당한 뒤 폐차된 버스를 불륜 남녀를 위한 ‘러브 휴게실’로 개조하여 돈을 버는 엽기적인 해프닝을 다루고 있는가 하면, 「소」는 소의 거세와 그 이후 소가 죽게 되는 과정, 죽은 이후 일어나는 중국 농촌의 소동을 이야기하고 있다. 「삼십 년 전의 어느 장거리 경주」는 더욱 엽기적이다. 문화대혁명 시절 부농(富農) 출신으로 우파로 몰린 곱사등이는 그야말로 기인(奇人)이다. 탁구대 높이밖에 되지 않는 키로 신기에 가까운 서브 기술을 구사해 성(省) 대표 탁구 선수를 이기는가 하면, 높이뛰기, 달리기는 물론이고 섹스까지 출중한 능력을 보이는 인물, 화자의 표현에 따르면 ‘천재’이다. 모옌 소설을 읽는 재미는 이처럼 기이한 인물들의 엽기적이고 황당한 이야기들, 때로는 환상적이기도 하고 다소 과장되어 현실성이 없어 보이기까지 한 이야기들에 있다. 모든 이야기꾼들이 자기 앞에서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청중들을 사로잡기 위해 쓰던 고전적인 방법이 모옌 소설에 그대로 들어있는 셈이고, 이번 소설집 『사부님』 역시 예외가 아니다. 모옌 소설을 읽다 보면 중국 고전 소설의 이야기를 다시 만난 듯한 느낌을 받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처럼 기이하고 엽기적인 이야기만으로는 제아무리 입심 좋은 모옌이라도 한낱 시골 재담꾼 수준을 넘어설 수 없다. 모옌의 입심의 진정한 가치는 그런 엽기적이고 기이한 이야기들이 역사 또는 당대 현실과 결합하면서 역사와 현실을 풍자하고 야유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사부님」의 경우, 평생 사회주의 노동 영웅으로 살아왔던 ‘사부’가 실직한 뒤 생계를 위해 벌이는 노년의 엽기적 행각은 90년대 이후 시장 메커니즘이 도입되어가는 과정에서 대대적으로 일어났던 국유 기업 구조조정과 결합하면서 시장화로 치닫는 중국 사회의 어둠과 접목한다. 평생 사회주의 체제에서 살아왔지만 시장화라는 현실 속에서 생계를 위해 기형적인 삶, 엽기적인 행각을 해야 하는 주인공의 비극을 통해 오늘 중국 현실의 어둠을 해부하고 있는 것이다.
“문화대혁명 시대에 대한 풍자와 야유”
그런가 하면, 소의 거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기이한 이야기인 「소」는 문화대혁명이라는 정치적, 역사적 배경과 결합하면서 정치적 효과를 발휘하게 된다. 「소」는 정력이 왕성한 ‘쌍지’라는 소를 억지로 거세하여 소의 불알을 요리해 먹는가 하면, 그 소는 결국 그 후유증으로 죽게 되고, 원래 폐기처분해야 할 죽은 소의 고기를 몰래 나누어 먹은 간부들이 집단 식중독에 걸리는 해프닝을 다루고 있다. 이 일이 벌어진 것은 문화대혁명 때이다. 중국 현대사에서 문화대혁명은 금욕의 시대였다. 개인적, 육체적인 욕망을 일절 용납하지 않은 채, 오직 계급적, 혁명적 행동과 삶만을 강요하던 시대였다. 이 소설에서 정력이 왕성한 소를 거세시키는 것은 문화대혁명이라는 금욕의 시대에 중국인들의 억압당한 삶의 은유인 것이고, 그럴 때 소설에서 소의 거세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기이한 이야기는 그대로 문화대혁명 시대에 대한 풍자이자 야유가 된다.
이 작품집에 실린 세 소설에서 중국 역사와 현실의 비극과 어둠을 해부하는 모옌의 어조는 의뭉스럽기도 하고 되바라지기도 하고, 무엇보다 웃긴다. 비극적 현실을 유머를 통해 표현하는 것인데, 작품 속 유머가 종국에는 웃음이 아니라 억압의 현실과 위선의 위정자들을 향한 비수가 된다. 예를 들어, 대다수 사람들이 쇠고기는커녕 입에 풀칠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에서, 원래 폐기처분해야 할 죽은 소고기를 몰래 훔쳐서 자기들끼리 나누어 먹은 간부들이 죄다 식중독에 걸렸지만 무사히 살아난 대목을 이야기하는 다음 대목만 봐도 그렇다. “싸울 때마다 기필코 승리하는 마오쩌둥 사상의 눈부시도록 찬란한 빛의 돌보심 아래,(…) 식중독 환자 가운데 죽은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으니, 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계급 ‘문화대혁명’의 위대한 승리였다.”(239쪽) 여기서 문화대혁명과 위대한 마오쩌둥 사상의 숭고함은 남김없이 조롱당한다. 모옌은 문화대혁명의 비극을 그 당시 고초를 겪은 지식인들의 눈물과 한숨으로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민중들의 유머로서 고발하고 해체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중국 작가와 구별된다.
한편, 『사부님』는 우매하기도 하고 엽기적이기도 한 중국 민중들의 즉자적인 세계를 보여주는데, 그 민중들의 세계는 고유한 능동적인 힘을 지니고 있다. 「삼십 년 전의 어느 장거리경주」에는 숱한 반동 우파들이 등장한다. 그런데 이들은 국가 차원에서는 정치적 반동으로서 반계급적이고 반국가 사범일지 모르지만, 소설에서 마을 사람들 눈에는 존경스럽고 비범한 능력을 지니고 있고, 매력적인 인물들이다. 강압적인 국가의 논리, 국가의 시선이 민중들에게 들씌워지지만 민중들이 거기에 전적으로 수렴되지는 않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국가 이데올로기에 수렴 당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민중들 고유의 논리와 시각에 따라 되비추는 것이다. 국가의 규정한 공적인 우파는 그들 삶의 논리에 따르면 존경스러운 운동 영웅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정치적 환난과 억압을 수없이 겪어온 중국 민중들이 터득한 생존의 지혜이고, 억압의 현실에 저항하는 중국 민중들의 생명력이며, 고난을 이겨내는 중국 민중들의 유머라고, 소설에서 모옌은 말하고 있다.
『사부님』은 모옌 문학의 개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야기꾼으로서 모옌의 입심은 물론이거니와 중국 현대사의 비극을 해체하고 이겨내는 중국 민중 특유의 지혜와 유머에 천착하는 모옌 소설의 세계를 충분히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보자면, 모옌의 소설 속 중국 민중들의 세계와 서사 방식이 동어반복에 빠져 있다는 우려를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한때 중국문학계에서는 물론이고 세계문학계에 비추어서도 신선하게 다가왔던 모옌 문학의 특징이 그의 다작과 더불어 한계에 직면하고 있다는 생각, 모옌 문학이 세계 수준이 되기 위해서 한 차례 갱신이 필요한 지점에 놓여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작품집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작품을 발표하자마자 세계에 번역되어 소개되는 세계적인 작가가 된 모옌의 다음 행보가 주목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싸울 때마다 기필코 승리하는 마오쩌둥 사상의 눈부시도록 찬란한 빛의 돌보심 아래, 인민해방군의 공평무사한 협조 아래, 그리고 성 단위, 지역 단위, 현 단위 인민공사 각급 혁명위원회의 정확한 지도 아래, 전체 의료요원의 공동 노력 아래, 삼백팔 명이나 되는 식중독 환자 가운데 죽은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으니, 이야말로 프롤레타리아계급 ‘문화대혁명’의 위대한 승리였다. 만약 이 사건이 온갖 악이 횡행하던 낡아빠진 봉건사회에서 발생했다면, 아마도 삼백팔 명의 환자 가운데 한 사람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이다. 비록 한 사람이 죽긴 했어도, 사실상 한 명도 죽지 않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왜냐하면 그는 식중독 탓이 아니라 심장병이 발작해서 죽었으니까.
심장병 발작으로 죽은 그 사람은 인민공사 식당에서 주방장 노릇을 하던 두씨 영감의 큰사위 장우쿠이(張五奎)였다.
우리 동네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그가 쇠고기 한턱 잘 먹은 죗값으로 솽지의 뿔에 떠받혀 죽었다고들 수군거렸다. (「소」 239-40쪽)
십여 년 전 어느 해인가, 그는 우리 학교 수업을 맡은 임시 교사였는데, 때마침 학교 당국에서 우파론자 색출 공작을 벌였으나 끝내 찾아내지 못하자, 교장선생은 걱정근심에 죽을 지경이 되었다. 이때 상급기관에서 반우파투쟁의 대왕 노릇을 하던 사람 하나가 파견되어, 측근 장수로 여성 간부 넷을 데리고 찾아와 우리 학교의 우파분자 색출 공작을 검사했다. 교장이 그들에게 말했다. “우리 학교가 있는 이곳은 가난뱅이 농촌이고 낙후된 지역이라 사실상 색출할 우파분자 따위가 없으니, 그것으로 다 된 셈 아니오?” 그러자 반우파 대왕이 말했다. “무릇 인간군상이 몰려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좌파, 중도파, 우파가 나뉘어 있는 법이다. 이 말씀을 누가 한 줄 아시오?” 교장이 모른다고 했더니, 대왕은 마오쩌둥 주석님께서 하신 말씀이라고 했다. 교장은 “마오 주석께서 하셨다면 물론 진리의 말씀이시겠지요. 그럼 어디 색출해보시구려.” 대왕은 교장더러 전교 학생과 교사를 운동장에 집합시키라고 한 뒤 한 사람씩 앞으로 걸어 나오게 했다. 우리는 대왕이 무슨 꿍꿍이속인지 까맣게 몰랐다. 전교 학생과 교사의 행진이 다 끝날 때까지 기다린 대왕은 앞으로 걸어 나와 담화를 발표했다. 좌우 양 곁에는 네 명의 측근 여간부가 마치 그의 암탉 날개처럼 둘씩 나눠 섰다. 그가 말했다. “우파 두 명이 있어.” 그는 손가락으로 주 선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 오른편에 서 있던 여간부 두 명이 앞으로 나가더니 교사 대열에서 주 선생을 끌어냈다. 주 선생은 큰 소리로 고함을 질러댔다. “나는 우파가 아니오. 난 아니야!” 주 선생은 두 명의 강철 여인 사이에 끼어 마치 사로잡힌 야생원숭이처럼 펄펄 뛰었다. 대왕이 말했다. “당신, 떠들 것 없어. 날뛰지도 말고. 여우꼬리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소용없어. 이제 곧 당신이 본색을 드러내게 해줄 테니까.” 그는 또 학생 대열에서 하필이면 우리 큰누나를 지목했다. “저 여학생!” 그의 오른편에 서 있던 두 여간부가 용맹스럽게 걸어가더니 큰누나를 잡아끌어냈다. 큰누나로 말하자면 타고난 천성이 불같이 거칠고 난폭한 기질이라, 성질이 났다 하면 유리 조각을 씹어먹고 돌멩이조차 삼키는 여장부로 눈앞의 부모형제도 몰라볼 정도다. 오죽하면 아버지조차 큰딸의 털끝 하나 건드리지 못했을까. 그런데 이 대왕은 죽을지 살지 분별도 못하고 그만 측근 여간부들더러 그녀를 강제로 끌어내게 한 것이다. 이래서 필연적으로 흥미진진한 놀음판이 벌어지게 되었는데, 장거리선수들이 또다시 우리 눈앞 트랙 위에 나타날 때까지 기다리며 지켜보기로 하자! (「삼십 년 전의 어느 장거리경주」 320-2쪽)
-------------------------
필자 소개
이욱연
서강대 중국문화전공 교수. 중국 현대문학을 연구하면서 중국 문화와 중국 문학의 최근 동향을 한국에 소개하고 있다. 루쉰과 모옌을 비롯한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번역 소개하기도 했다. 『중국이 내게 말을 걸다:이욱연의 중국문화기행』, 『포스트 사회주의 시대의 중국 문화』, 『곽말약과 중국의 근대』 등을 펴냈고, 『아침꽃을 저녁에 줍다』, 『인생은 고달파』, 『나비』 등을 번역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