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로 떠난들 피할 수 없을 것 같은 폭염이다. 체력을 유지하기위해 간신히 숨만 쉬면서 버티는 중이다. 이번 주가 고비라는 예보를 믿어보면서 뜨듯한 방바닥에 누워 책장을 넘겼다. 시간 날 때 읽으리라 꼽아두었던 책 『놀이의 달인, 호모루덴스』.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쓸모없는 ‘놀이’에 열중하는 ‘놀이꾼’들을 만나며 잠시 더위를 잊을 수 있었다.
호모 루덴스들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우리는 논다’를 좌우명으로 삼는 사람들이다. 인간은 놀기 위해 세상에 왔으며 잘 놀다가 떠나는 존재라는 것이다. 놀면 즐겁고, 즐거우면 노래가 나온다. 놀아본 사람들이 만드는 축제와 그들의 춤과 노래들로 인해 이 책의 책장을 넘기면 후끈한 바람이 느껴질 정도다. 이열치열.
정부는 광복70주년을 기념하면서 8월 14일을 임시 공휴일로 정했다. 덤으로 생긴 연휴에 경기 회복효과를 기대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예정에 없던 휴일에 딱히 무엇을 하며 보낼지 모르겠다는 사람들도 많다. ‘길 떠나면 돈’이고 일과 더위에 무력해진 사람들은 ‘아무것도 안하고 싶다’는 광고카피에 위로받으며 조용히 시간을 보낼 것이다.
『놀이의 달인, 호모루덴스』는 ‘열심히 일한 당신 떠나라’라거나 ‘여가 시간에 충분히 즐기라’는 말을 경계할 것을 주문하고 있다. 노동의 보상으로서의 여가는 다시 노동을 하기위한 재충전의 의미이며, 잠시의 여가를 충분히 즐기기 위한 여가상품들을 소비하기 위해 더 많은 노동으로 내몰리게 된다는 것이다. 일하라, 소비하라, 소비하기 위해 다시 일하라.
삶을 유지하기 위한 노동의 시간 혹은 미래의 삶을 준비하기 위한 교육의 시간은 그 자체로 즐거움을 유보한다. 이 책에서 인용한 미하엘 엔데 『모모』의 “무엇보다 노래를 하고, 책을 읽고, 소위 친구들을 만나느라고 귀중한 시간을 낭비하지 마세요” 라든지, 플라톤의 『법』에서 “무엇이 사는 방법인가? 삶을 놀이하면서 살아야만 한다. 즉 어떤 경기를 하거나, 제사를 지내거나, 노래하고 춤추거나 하며 살아야 한다.” 는 말들은 우리의 삶이 무엇을 박탈당하고 있는지 분명하게 드러내주고 있다.
누군가에게는 불온한 ‘놀이판’
과감히 삶의 규칙을 바꿔 규칙의 주인이 되라는 주장이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 향하면 어떻게 될까. 거리와 학교, 공부와 놀이, 모범과 불량이라는 이분법을 뛰어넘어 낡은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나를 창조하라고 외치는 이 책은 뉴욕 할렘가에서 태어난 그래피티와 랩, 브레이크 댄스를 통칭하는 힙합을 주목했다.
뉴욕이라는 거대도시를 원색의 스프레이 낙서놀이터로 만든 아이들의 그림은 우리나라에서도 간간이 볼 수 있는 그래피티 벽화라는 현대미술의 장르가 됐다. 신세대 아이들의 말놀이는 교양 없고 무식하다는 강력한 저지에도 불구하고 힙합의 리듬을 타고 랩이라는 새로운 언어로 퍼져나갔다. 강렬한 비트가 장악한 거리에서 날아오르고 구르는 역동적인 아이들의 춤은 어느덧 감탄을 자아내게 하고 그렇게 그들은 새로운 문화의 주인이 됐다. 이런 매력적인 해설은 ‘청소년이여, 놀이로서 저항하라’는 메시지로 읽힌다.
놀이는 즐거움을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이 또한 그냥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잘 놀기 위해 연마하고, 새로움을 창조하기위해 고단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잘 놀기 위한 공부는 그 자체가 즐거움이기에 기꺼이 노력하고 집중하게 된다는 것을 다시 강조하는 저자는 베이스기타를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더 이상 노는 것을 미루지 않기 위해서다.
『놀이의 달인, 호모루덴스』는 주어진 놀이가 아니라 저항하는 놀이를, 자본을 소비하는 축제가 아니라 규칙을 깨는 축제를, 중독된 즐거움이 아니라 언제라도 멈추었다가 더욱 새로운 상상력으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자유로움이 우리를 건강하게 하고 반짝이게 한다고 말한다. 이 책은 놀이의 고수들을 대거 등장시켜 이래도 안 놀고 배기겠냐며 장판에 붙어있는 등떼기를 떠민다.
나이가 들면서 애를 써도 체력이 달려 노동의 시간에서 밀려나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시간이 돈인 세상에서 점점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어쩔 수 없이 주어지는 물리적인 시간을 귀하게 써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가 무라카미 류의 소설 『69』의 고등학생 주인공의 말을 인용한 부분을 옮겨본다. “즐겁게 사는 것이야말로 이기는 것이다!”
★ 본 기고글은 충북인뉴스에 연재되고 있는 칼럼으로서, 필자의 동의 아래 게재함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