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표지에 이어진 앞날개에는 대체로 저자 소개가 있다. 저자를 소개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낯간지러운 것도 있고, 지나치게 담백한 것도 있다. 저자에 관한 소개가 표지에 큼지막하게 붙은 경우에는 지칭이 불분명한 “세계적 석학” 같은 표현들이 사용되기도 한다. 저자에 대한 신뢰는 독서의 주요 경로 중의 하나이다. 특히 이런저런 책에서 등장하는 저자에 대해서는 과연 그가 어떠한지 반드시 알아두어야 책을 읽을 때 번잡함을 피할 수 있다.
학술서의 저자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본적으로 알아두어야 한다: 1) 저자가 태어나고 죽은 해 —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저자가 살아간 시대가 어떠했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이런 내용을 알아보려면 《곁에 두는 세계사》 같은 연표가 필요하다. 학술서의 저자 중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으나 어떤 이는 자신이 살아간 시대와 아무런 관계없어 보이는 삶을 살아간다. 거의 전적으로 사적인 내밀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물론 책을 써서 공공의 영역에 내놓았으니 완전히 사적이라 할 수는 없지만 상당한 정도로 시대와 차단된 삶을 살아가는 이들이 더러 있다는 말이다. 2) 저자의 주요 저작과 그에 대한 학계의 평가 — “세계적 석학”이나 “역사학의 거장” 등은 이른바 ‘마케팅용 술어’이다. 학술서의 저자에 관해서는 그가 몸담았던 학계의 평가를 참조해야 한다. 3) 핵심이론 — 이것은 다시 이론의 형성과정, 학설의 내용, 후대에 끼친 영향 등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형성과정은 저자가 어떤 경로를 따라서 공부했는지를 알려주며, 학설의 내용은 그런 과정을 통하여 만들어낸 이론의 내용을 알려주며, 후대에 끼친 영향은 그의 학설의 힘을 알 수 있게 한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은 프랑스의 역사학자이다. ‘아날학파Annales school’ 라 불리는 역사학파의 주요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가 쓴 책 중에 현재 한국어 번역이 나와 있는 것은, 한 권으로 된 《지중해의 기억Les Mémoires de la Méditerranée》과 여섯 권으로 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Civilisation matérielle, économie et capitalisme》가 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읽기La Dynamique du Capitalism》라는 강의묶음도 번역되어 있으며, 그의 역사적 통찰과 사유를 평가한 책도 출간되어 있다. 유명한 것에 비하면 번역본은 많지 않다. 근대 이후의 역사를 다룬 책에서 그는 거의 빠지지 않고 참조되는 저자이다. 그러면 페르낭 브로델은 반드시 읽어야만 하는 학자일까? 아니,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물을 필요없이 그가 쓴 《지중해의 기억》은 한 권이니 그렇다 치고, 여섯 권짜리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는 과연 읽어야만 하는 책일까, 사서 가지고 있어서 틈나는 대로 참조해야만 할까, 아니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 치워도 괜찮을까? 사학사史學史를 전공한 김응종의 《페르낭 브로델》은 우리의 이러한 고민을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책으로 보인다. 일단 이 책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보자.
이 책은 페르낭 브로델이라는 학자와 그가 쓴 두 권의 저작에 관한 비판적 평가를 담고 있다. 이 책의 앞날개에는 페르낭 브로델에 관한 소개가 있다. 사학사를 전공한 이가 쓴 페르낭 브로델에 관한 책이니 그에 관한 소개는 여기에 있는 것이 가장 믿을만한 것일 게다. 일부를 떼어 보면 다음과 같다: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 1902~1985은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함께 현대 역사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프랑스 아날학파의 대표적인 역사가… 인간과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다루는 프랑스 지리학파의 영향을 받았으며, 환경이 인간의 삶에 반복적이며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친다고 보아 구조주의 역사학으로 나아갔다. ‘구조’의 힘을 파악하기 위해 시간적·공간적으로 거대한 역사 세계를 관찰했으니, 《지중해La Méditerranée et le Monde Méditerranéen a l'époque de Philippe II》, 《물질문명과 자본주의》가 그 결실이다. 아카데미 프랑세즈Académie française 회원으로 선임되었으며, ‘역사학의 교황’이라는 최고의 권위를 인정받았다.”
이 소개에는 앞서 말한 저자에 관하여 알아두어야 할 기본적인 것이 잘 들어 있다. 생몰연대로 보면 그는 20세기 거의 전부를 살았다. 그의 생애에서 일어난 세계사의 사건이나 프랑스의 사건들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이 책을 읽어봐도 그 점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가 속해있는 아날학파는 마르크스주의 역사학과 함께 현대 역사학의 큰 흐름임은 알 수 있다. 그의 역사이론은 프랑스 지리학파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다. 이 점은 책을 통해 살펴보아야 한다. 그의 역사이론은 ‘환경’이라는 요인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그것에 바탕으로 두고 그는 구조주의 역사학으로 나아갔다. 여기서 ‘구조’라는 말에 주의해야 한다. 이 말은 학자들마다 사용하는 용례가 다른 술어이다. 따라서 책을 통해 브로델에서는 어느 정도 범위에서 어떤 의미로 쓰이는지 확인해야만 한다. 다시 말해서 환경을 비롯한 구조가 전적으로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뿐 인간은 그 구조에 아무런 관여도 할 수 없는지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환경을 중시하는 것은 탁월한 통찰일 수 있지만 그것만 강조하는 것은 인간이 어찌해볼 수 없는 것에 대한 체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유의해야 한다. 이는 ‘인간 활동의 기록’이라고 하는 아주 오래된 역사 개념을 폐기(또는 적어도 수정)하는 것이니 각별히 유념해서 살펴보아야 할 지점이다. 마지막으로 그의 주요 저작은 《지중해》,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임을 알 수 있다. 한국어 번역본이 있는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와는 달리 《지중해》는 아직 번역본이 없다(김응종은 이것이 지금 번역 중이라 밝히고 있다.). 번역본이 나와 있는 《지중해의 기억》은 《지중해》와 다른 책이다. 마지막으로 페르낭 브로델에 대한 평가는 “역사학의 교황”이라는 칭호와 “최고의 권위”이다. 그가 아카데미 프랑세즈 회원으로 선임되었다고 하는데 이 기관에 얼마나 탁월한 자들이 모여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 부분은 반드시 김응종의 평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외국의 학자는 당연히 그 나라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여야겠지만 그건 그 나라 사정이고, 한국의 독자들이 이 저자를 읽을 필요가 있는지, 읽는다면 얼마나 열심히 읽어야 하는지는 결국 한국의 학자에 의한 평가에 기댈 수밖에 없다. 학자들의 문제의식과 그것을 해결하는 방식, 이론적 정리는 나라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중요한 문제가 한국에서는 중요하지 않은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그에 따라 한국인이 맹목적으로 따라잡을 필요가 없는 문제들은 널렸다.
브로델에 영향을 끼친 역사학의 흐름으로는 먼저 “비달 드 라 블라쉬Vidal de la Blache의 인문지리학의 전통”이 있다. 전문적인 역사연구자가 아니라면 알기 어려운 사람이다. 둘째로는 브로델에 앞선 아날학파의 학자들이 있다. “뤼시앵 페브르Lucien Febvre와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가 주도한 아날학파의 사회사 운동”은 “개인이 아니라 집단, 정치가 아니라 사회, 연대年代가 아니라 구조로 역사가들의 관점”을 옮겼다. 이렇게 해서 그들은 집단, 사회, 구조를 중심으로 한 역사학 연구방법론은 만들어냈다. 브로델이 구조주의 역사로 나아간 것은 그의 독창적인 창안이 아니라 아날학파의 큰 틀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거기에 더해서 환경과 같은 지리적 요인을 강조하고 이렇게 선대의 이론을 발전시킴으로써 “아날학파가 추구해온 ‘새로운 역사’의 결정結晶으로 인정받았다. 이러한 평가는 과장이 아니었다.”
저자는 선행하는 역사이론과 브로델의 독창적인 업적이 집약된 《지중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16세기 지중해 세계의 번영과 쇠퇴를 ‘구조-국면(콩종튀르conjoncture)-사건’이라는 특유의 삼층 구조로 나누어 설명”. 여기서 우리는 브로델에게 특유한 설명 모형이 ‘장기적인 구조’, 그 구조에 이어지는 보다 짧은 ‘국면’, 그리고 그 위에서 펼쳐지는 ‘사건’이라는 삼층 구조임을 알 수 있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 관해서는 좀 더 상세한 설명이 있다. “전前산업화 시대의 세계경제사를 ‘물질문명-시장경제-자본주의’라는 삼층 구조로 나누어 설명…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를 분리·대립시키고 자본주의의 본질을 ‘독점’으로 파악하는 독특한 관점 때문에 역사학자는 물론 경제학자들의 관심을 모았다.” 여기서 브로델이 사용하는 삼층 구조는 시간의 길이에 따른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저자는 “이 두 권의 책에는 브로델 사학의 주요 개념인 ‘장기지속’, 즉 오랜 시간 동안의 ‘거의 변함없음’, 오랜 시간 동안의 ‘반복’이 잘 나타나 있다”고 한다. 적어도 ‘정기지속’이 브로델 역사이론의 핵심개념임은 분명해 보인다.
이러한 개념을 가지고 해결하고자 하는, 또는 이러한 개념을 도출하게 된 브로델의 핵심적인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다: “그가 《지중해》에서 제기한 문제는 16세기 지중해 세계가 쇠퇴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고 그 시점은 언제인가 하는 것이며,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에서 제기한 문제는 자본주의의 본질은 무엇이며, 자본주의는 계속될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16세기 지중해 세계에 관해서는 몰라도 적어도 자본주의에 관해서는 우리도 무관할 수는 없다. 코스모폴리탄적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지중해에서 벌어진 일도 남의 일 같지 않은 마음에 《지중해》를 읽을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본주의 체제에 관한 것은 무심할 수 없으니 그것은 한번 읽어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그러면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나는 한국어로 번역된 《물질문명과 자본주의》를 읽어 보았는데 지나치게 방대한 자료를 들이대는 바람에 이 사람이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 없는 때가 많았다. 간명한 개념을 몇 개 거론한 다음 그것에 따라 거의 연역논리적으로 서술을 해나가는 철학 저작들에 익숙해진 내 독서습관 탓도 있었겠지만 ‘이 증거가 무슨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것인가. 내가 이 방대한 사실을 안 다음, 거 봐라, 결국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없어. 모든 게 환경에서 정해지는 거야. 내가 앞서 말했지, 땅덩어리 모양과 기후에는 옴짝달짝 할 수 없다고… 라는 귀결에 이를 뿐인가’라는 한심함을 견디기 어려웠다. 김응종은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지 다음과 같은 독법을 제시한다: “여러 번 읽으면, 혼란스러운 사실들과 감각적인 표현들 밑에 숨어 있는 반복적으로 되풀이되는 어떤 일관된 논리를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여러 번 읽기’이다. 《물질문명과 자본주의》처럼 여섯 권으로 된 책을 여러 번 읽어야 하는 필연적인 까닭을 가진 사람들은 시도해볼 만하다. 그러나 그렇게 읽으면서도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브로델이 마치 ‘법칙’인 것처럼 강조한 것들은, 시공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이 아니라 장기 16세기의 지중해 세계나 전산업화 시대에만 적용되는 역사적 법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브로델은 역사학자이다. 그가 말하는 법칙은 ‘역사적 법칙’이다. 역사적 법칙은 특정한 시기에만 해당한다.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역사적 법칙’이라는 말에서 “시공을 초월하여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을 생각한다. ‘일치일란一治一亂’ 같은 것이 그런 것이다. 그런 것은 ‘역사적 법칙’이 아니라 ‘역사철학적 원리’이다. 이것은 모든 역사학자들, 특히 브로델처럼 “객관적인 증거와 보편적인 법칙을 추구”하는 “과학적인 역사학”에서는 결코 거론하지 않는 것들이다. 21세기는 물론이고 20세기에도 ‘역사철학적 원리’는 더이상 과학적 학문의 탐구대상이 되지 않는다. 그것은 판타지일 뿐이다.
이제 브로델에 관한 전반적인 평가를 살펴볼 차례이다. 저자는 브로델의 역사가 “구조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인간의 역사”라고 집약한다. “인간은 수인囚人의 모습을 하고 있다. 브로델을 사로잡고 있던 문제는 자유와 구조, 즉 인간의 자유와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조 사이의 갈등의 문제였다. 전통적인 역사에 비해 브로델 사학에서 인간의 비중과 역할은 현저히 축소되었다.” 브로델에서는 자유와 구조가 핵심문제인데 여기서 구조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구조는 인간이 만들어 낸 것이지만 제도화되어서 인간의 행위에 제약을 가하는 제도적인 틀을 가리키는데, 브로델이 말하는 구조는 인간이 만들어낸 것도 아니요, 그런 까닭에 인간의 힘으로는 도저히 어찌해볼 수 없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몇몇 학자들은 이것에 눈을 돌려 역사서술을 새롭게 시도한다. 저자가 추천하는 그런 책으로는 월러스틴Immanuel Wallerstein의 《근대 세계 체제The Modern World-system》 I, II, III 권과 안드레 군더 프랑크Andre Gunder Frank의 《리오리엔트ReORIENT : Clobal Economy in the Asian Age》가 있다.
이 모든 검토 끝에 우리는 판단을 내려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먼저 브로델은 최고의 권위인가? 그런 면이 있기는 하지만 21세기 한국에 사는 우리가 꼭 읽어야 하는 저자는 아닌 듯하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브로델의 ‘역사’는 그의 ‘신화’에 미치지 못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의 역사학은 웅장하지만 짜임새가 없고, 논리적인 설명이 아니라 사례와 수사학적 비유가 과다하며, 수다가 범람하기 때문에, 군데군데 대역사가다운 식견이 빛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으로는 작품으로서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구조와 인간, 구조와 변동 등 역사학의 중요 문제에 대해 그가 변죽만 울린 것들에 대해 ‘있는 그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대역사가의 권위에 눌려 그가 하지도 않은 말을 대신 하면서 논리를 만들어 내는 일은 신화를 만드는 데 일조할 뿐 역사를 만드는 일은 아니다.” 그 방대한 저서를 썼으면서도 “변죽만 울”렸다면 좀 심하지 않을까? 한국의 관련 학계 종사자가 이렇게 말했다면 책 앞날개에 붙은 “최고의 권위”라는 말은 거두어들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