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셀 그라네Marcel Granet, 1884-1940의 《중국사유La pensée chinoise》는 르네상스 뒤 리브르Renaissance du Livre 출판사가 기획한 총서 <인류의 발전L’Evolution de L’humanité>의 제 4권으로 1934년에 발간되었다. 이 총서의 제1, 2, 3권은 “이성적 사유를 정신의 공동토대로 삼고 있는 지중해 문명의 사회적 기원과 특징을 논구”한 것들이고, 이어지는 이 책은 “서구의 외부인, 극동문명 특히 중국문명에 대한 연구를 꾀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책은 “《중국사유》라는 제명에도 불구하고 연구대상으로서 중국사유를 그 외연을 넓혀 중국문명의 여러 요소들과의 관련성 속에서 방대하게 다루게 된다.”
이상은 번역자의 ‘역자 서문’ 첫 머리 내용이다. 번역본을 펼쳐들면 독자들은 대개 역자의 후기나 서문을 먼저 읽게 된다. 거기에 저자에 관한 간략한 소개, 책의 출간 경위, 책의 내용에 대한 정리 등이 담겨 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저자의 책을 본격적으로 읽는 데에는 이것이 도움 되나 책 전체 얼개를 파악하려면 저자가 쓴 서문이나 서론을 여러 차례 읽고 정리해야만 한다. 책의 서문이나 서론에는 저자가 책을 쓴 목적, 책의 핵심 개념과 방법론 그리고 저술의 순서가 반드시 들어가게 되어 있다. 책을 쓰는 데 도움을 준 이들에 대한 ‘감사의 말’은 따로 항목을 달아 쓰기도 하고 서문(이나 서론)에 포함되었다 해도 한 두 문단을 넘기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다. 저자가 학문적 관계 속에 있는 것으로 거론하는 이들은 따로 적어두면 관련 분야 독서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제목을 보자. 《중국사유La pensée chinoise》이다. Pensée는 ‘생각, 사유’다. 파스칼Pascal의 《팡세》처럼 원어 발음 그대로 쓰이기도 한다. ‘사상思想’이라 해도 되고, ‘관념’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Chinoise는 ‘중국인의’도 되고 ‘중국의’도 된다. 묶어서 중국인의 사상, 중국의 사상으로 이해해도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은 4부로 이루어져 있다. 제1부 사유의 표현에서는 언어와 문자, 문체를 다루고 있고 제2부 주개념主槪念에서는 시간과 공간, 음양陰陽, 수數, 도道를, 제3부 세계체계에서는 대우주, 소우주, 예법禮法을, 마지막 제4부에서는 통치술統治術, 공익책公益策, 신선술神仙術, 정통유가正統儒家 항목들을 포괄하는 교파와 학파를 다루고 있다. 저자가 이러한 내용들을 이 순서로 다룬 목적과 방법에 관한 설명은 서론에 담겨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이 책을 쓴 “목적은 ‘중국풍습의 정신’을 살펴보는 데” 있다. 여기서 ‘풍습’은 뭘까? 일상의 태도나 생각이 인간집단에서 일정한 형태를 갖춘 제도로 구현되고, 그것이 다시금 중국인의 삶의 구체적인 실행을 조율하는 원리나 지침을 의미할 것이다. ‘정신’은 말 그대로 사상적인 것이나 물질적 삶의 구조와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이것이 특정한 시기에 반짝 나타났다가 사라지지 않고 오랜 세월 유지되면 중국문명의 원리가 될 것이다. 따라서 저자가 이 책에서 살펴보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중국문명의 정신이라 할 수도 있겠다. 이를 상세히 규정한 부분은 다음과 같다: “인간 사유는 단순한 지식습득이 아닌 문명화를 위한 활동에 그 기능이 있었다. 사유의 역할은 효율적이면서 총체적인 질서를 점진적으로 자리 잡아 주는 데 있었다… 중국인의 사유체계를 근본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곧 중국인의 태도 전반을 특징짓는 것과도 같다.” 여기에 인간의 사유, 특히 중국인의 사유에 대한 저자의 관점이 잘 나타나 있다. 그것은 바로 “사유체계”가 “태도 전반”과 깊은 상관관계를 갖는다는 것이다.
책의 제1부는 “사유의 표현”을 다룬다. 여기서 저자는 중국사유가 가진 변별적 특징을 “언어와 문자”, “문체”의 측면에서 살펴본다. 그런데 이러한 사유를 주도하는 것들은 제2부에서 다루는 “주개념”들이다. 그리고 중국인의 “세계체계”(제3부)는 그러한 주개념을 기초로 하여 성립한다. 즉 기초에 놓인 주개념, 그것이 사유에서 드러난 표현과 세계체계 — 이렇게 제1, 2, 3부는 연쇄 고리 속에 들어있다. 출발점은 주개념이다. 그러면 이 주개념은 어떻게 파악된 것일까? 저자는 “중국사유의 기본 경향들을 가늠하기 위해서… 그 중요성에서 ‘철학서들’ 못지않은 신화와 민속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하여 공통개념들을 추출하였는데, “중국인의 사고방식을 아주 집요하게 지배해온 제도의 토대가 이 개념들을 통해 파악된다.” 그런 까닭에 “중국인이 채택한 사유의 기본규칙들을 학파들의 개념보다 훨씬 직접적이고도 분명히 밝혀주는 정신적 태도”를 알아내려면 이 공통개념들이 유용하다. 이 공통개념들이 주개념임을 알 수 있다.
중국사유의 주개념들은 수, 시간, 공간, 음양, 도이다. 특히 “도와 음양은 세계의 삶과 정신활동을 관장하는 율동적 질서를 종합적으로 상기시키며 전체적으로 유발시킨다.” 이 개념들은 얼핏 보기에는 가장 추상적인 범주들이다. 그러나 저자는 이것들이 추상적인 사유의 산물이라 파악하지 않고 “개념들이 특정한 사회맥락 속에서 나왔다는 점에 입각하여 그 형성시기와 순서를 규명”한다. 다시 말해서 음양, 그리고 음양의 운행을 가리키는 원리로서의 도는 사회에서 특정 집단의 역할이나 질서의 작용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처럼 추상적인 개념들도 사회맥락 속에서 나왔다는 것은 개념분석이 “사회형태학 연구와 관련”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어떤 개념을 분석하고 탐구하는 것은 “중국사회사에서 이미 그 위상과 그 역할이 알려진 제반 집단과의 문맥 속에서” 중국인들의 삶의 “체험을 조직화하기 위한 장기간에 걸친 시도의 산물”로서 그 “개념들을 분류”하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독자는 제2부 “주개념”부터 읽어나가는 것이 책을 이해하는 데 적절한 순서임을 알게 된다.
주개념에 근거하여 성립하는 첫째는 앞서도 말했듯이 “언어”이다. 중국인의 언어에는 중국인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인은 정신활동에 절제를 기하고자 사유 표현에서 언어 면의 모든 기교를 피한다.” 다시 말해서 중국인은 언어 자체에서 기교를 꾀하지 않으며, 언어가 “단순한 환기기능”만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 형상화를 통해 촉발시키고 실현시키는 어떤 것이기를 원했”다. 중국인에게 언어는 독자적인 영역을 가지는 기호가 아니다. 그것은 “광범위한 태도 체계 — 즉 우주, 나아가 인간의 모든 것에서 작용하는 문명의 활동양상을 다양하게 보여주는 태도 체계 — 에서 분립”되어 있지 않았다.
사유의 표현인 언어가 태도 체계와 분립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인간과 자연의 관계, 즉 우주관을 탐구하면서도 참조할 수 있다. 중국인들은 “지극히 뿌리 깊은 믿음, 즉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 두 세계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단일한 사회를 형성한다는 믿음”을 견지하고 있었으며, 이는 “인간의 태도를 조율하는 여러 기술들의 원리”로서 작용하였다. 또한 중국인은 대우주-소우주의 관계로부터 “세계의 지식탐구를 목적하는 과학 대신 총체적인 질서 수립에 충분한, 삶의 효율적인 예법을 구상하였다.” 예법은 우주와 분립되지 않는 인간사회의 질서를 우주의 원리로써 규율하는 무형의 정신태이다. 이러한 세계체계의 핵심사상을 끌어내는 일은, 앞서 살펴보았듯이 제2부에서 “중국사유의 주개념을 분석하여 체계의 기층을 천착함으로써” 가능하였다.
이제 4부는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살펴보자. 중국의 교파와 학파의 대가들은 “박학성博學性과 전지성專知性을 겸병”하고 “일체를 논하는 데 능했으나 아무도 자신들의 가르침을 체계화하지 않았다. 오직 자신들의 ‘학파’가 표방하는 비법의 효능을 선양하는 데 전념”하였다. 그런 까닭에 “한 학파나 교파 특유의 개념과 태도를 터득하려면… 어떤 비결이나 중심단어를 찾아야 한다.” 이것을 연구하는 이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전반적인 실습관행들을 파악하지 않은 채 이론의 숙지만으로는 학설의 진수를 얻었다고 장담할 수 없다.” 여기서도 어김없이 이론이 이론으로서 실천과 분립된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학파나 교파의 비법은 이론과 실행의 혼융체인 것이다. 이러한 기본 원칙에 근거하여 우리는 교파와 학파를 탐구하는 방식을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학파나 교파가 제시하는 비법의 효능성을 파악하고 그것의 정치적 목적을 파악(“중국의 지혜는 정치적 목적을 지닌다”)하고, 이러한 비법이 “사회 차원뿐만 아니라 우주 차원으로 연장되는 총체성 속에서 인간의 삶과 활동을 조율”함을 파악하고, 이것이 종국에는 “문명을 배양하는 일종의 비법”임을 이해한다.
중국사유의 공통개념과 그것 위에 성립된 사유의 표현과 세계체계 그리고 교파·학파를 탐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문명론을 시도하면서 저자는 여기서 다루는 것들을 서구인의 관점에서 보아 “기이하고 특이한 것으로” 다루지 말아야 함을 강조한다. 그것은 “모든 실증적 탐구의 원천과 인문정신을 버리는 것”이다. 오히려 연구자가 유념해야 하는 점은 이러한 사유가 “장기간 체험된 사회실행체계에의 효능성에서 나왔다”는 것, 그리고 “이러한 인식이야말로 중국사유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더욱 공정하게 해줄 것”이라 강조한다. 이는 저자가 중국사유, 나아가 중국문명에 접근하는 기본 태도를 보여준다.
서론을 읽음으로써 우리는 이 책의 목적과 핵심내용, 탐구방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이제 본문을 읽어나갈 때이다.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이 책은 서두에 적시하였듯이 1934년에 출간된 것이다. 오래된 책이다. 이 책에 담긴 내용은 후대의 연구에 의해 상당 부분 논박되기도 하였을 것이다. 더이상 유효하지 않은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왜 이 책을 읽는 것일까? 또는 이어지는 시기의 서구의 다른 중국학 연구성과들을 읽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를테면 자크 제르네Jacques Gernet의 《전통중국인의 일상생활La Vie quotidienne en Chine à la veille de l’invasion mongole, 몽골 침략 이전 중국인의 생활, 1959》, 벤자민 슈워츠Benjamin Schwartz의 《중국 고대 사상의 세계The World of Thought in Ancient China, 1985》, 앤거스 그레이엄Angus Graham의 《도의 논쟁자들Disputers of the Tao: philosophical argument in ancient China, 1989》 등은 그라네의 책과 함께 필독서로 꼽히고 있다. 그 까닭을 생각해보는 것이 본문에 들어가기 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