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벌의 모습을 한 일벌, 램지 부인”
“시간을 거슬러 램지 부인을 호명하고 재현해낸 릴리”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는, 소설 속의 한 남성인물이 비아냥대는 태도로 ‘여자가 그림을 그릴 줄 알겠어, 글을 쓸 줄 알겠어’ 라고 말해도 항변조차 못하던 1920년대 작품이다. 우리로 치자면 나혜석, 김명순, 김원주 등 앞서 가는 여자들을 추문거리로 만들어 땅바닥에 굴려도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이 없던 시기였다. 여자가 감히 창작활동을 하다니 하며 코웃음 치는 것이 보편정서였던 시기에 생산된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등대로』는 탁월하고 섬세하며, 노련하고 깊다.
외견상 『등대로』는 철학자 램지 씨와 그 가족, 그의 지인들이 해마다 휴가를 보내는 곳, 등대가 보이는 섬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인간관계와 자잘한 일상을 그리는 듯하다. 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이야기는 램지 씨 가족의 등대 행에 관한 것이다. 구성은 3부로 되어 있는데, 1부와 3부 간의 대칭, 다시 1, 3부와 2부 간의 대칭의 방식을 통해 소설은 깊은 내면과 넓은 외연, 그리고 기나긴 시간을 조화롭게 조성해낸다. 즉 1부에서는 전경에 램지 부인을 내세우고 손님 릴리를 후경에 배치하였다. 반대로 3부에서는 릴리를 전경에 내세우고 후경에 램지 부인을 배치하는 한편, 이 1, 3부는 2부의 매우 놀라운 서술방식, 즉 인물 대신 시간을 전면에 배치하고 시간의 그물에 걸린 인물들의 소식을 응축적인 한 줄의 문장으로 묘파함으로써 독자의 상상공간을 무한 확대하는 동시에 10년 전(1부)과 10년 후(3부)의 각 인물들을 무리 없이 연결시킨다.
서사의 중심에는 우아하기 그지없으며 탁월한 미모를 자랑하는 램지 부인이 있다. 1부에서 램지 부인은, 날개를 펼쳐 그 그림자 아래로 병아리들을 불러 모으는 어미 닭의 모습과도 같이, 오지랖 넓게도 집과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세심하게 챙긴다. 램지 부인의 일상을 따라가 보자. 우선 8명이나 되는 자기 아이들을 건사하면서 등대에 가져갈 선물로 양말 뜨기를 한다. 젖 달라고 보채는 아이처럼 징징대면서 시시때때로 부인으로부터 동정과 존경을 확인받고자 하는 남편에게 친절한 응대를 한다. 시장을 보러 가면서 소외된 인물을 대동하고, 혼자 노는 카마이클 씨에게도 관심을 보인다. 가난하고 병든 이웃 사람을 챙기고 집에 돌아와서는 다시 아이에게 동화책을 읽어준다. 그리고는 만찬준비를 하며, 초대된 젊은 남녀가 결혼할 수 있도록 종용한다. 그녀는 언제 어디서도 자태와 품위를 잃지 않는, 여왕벌의 모습을 한 일벌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것은 단지 일상일 뿐이다. 서술자는 이 일상과 더불어 전혀 다른 것, 즉 램지 ‘부인’이 아니라 그녀만의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한다. 이 목소리는 자존심이 강하다. 내적 자아를 더없이 소중히 여긴다. 그녀는 끊임없는 감정노동과 가사노동, 내면화된 우아함을 유지하기 위해 누적되는 피로감 따위에 싫은 내색조차 하지 않는다. 그런 일 따위는 진정한 자아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외부적 환경일 뿐이다. 그녀는, 혹시라도 자신이 남편보다 더 잘나 보일까 봐, 남편을 덜 존경하게 될까 봐, 남편의 저서가 예전만 못하다는 것을 자신이 알고 있다는 사실 때문에 남편이 의기소침해 할까 봐, 온실수리비 50프랑도 없는 무능으로 괴로워할까 봐 외면적인 자아를 움츠리고 또 움츠린다.
그러나 그것뿐이다. 그녀의 내적 자아에는 받아들여야 할 것과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 사이에 분명한 금이 있다. 모든 남자들의 찬사를 받으며, 남편에게 순응과 존경과 동조를 보냄으로써 이상적인 아내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며, 이웃을 동정하는 자비심까지 지닌 손색없는 현모양처의 모습 뒤에 숨겨져 있는 본질.
모든 나의 존재와 행동, 밖으로 퍼지고 반짝반짝 빛나고 소리 내는 것은 완전히 증발해 버리고, 엄숙한 느낌으로 몸이 수축하여 자기 자신, 쐐기 모양의 어둠의 핵심, 남에게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로 오그라드는 것입니다. … 이 어두운 쐐기모양의 핵심은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보이지 않으니까요. (252쪽)
관찰자이자 서술자는 외면적 자아와 내적 자아 간의 미묘한 간극을 충실히 묘사한다. 서술자는 램지 ‘부인’이자 그녀인 이 인물로 하여금 누구에게도 친절할 수 있으며 동시에 결코 그 어떤 인물과도 동화할 수 없는 지점까지 몰아간다.
딱 한 번만이라도 좋으니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지 않겠소? … 하지만 부인은 그럴 수 없었다. 말할 수 없었다. 자신을 가만히 보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부인은 말을 하는 대신 양말을 든 채 돌아서서 남편과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 그를 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군요. 내일은 비가 올 것 같아요.” 아내가 그 말은 입에 올리지 않았지만 남편은 알고 있었다. 미소 지으며 남편을 보았다. 이번에도 승리는 부인의 것이었다. (308쪽, 굵은 글씨는 필자가)
페미니즘 소설의 그 어떤 구호보다도 더 복합적이고 교묘한 이러한 진술은 『등대로』가 취하고자 하는 입장 가운데 하나,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본질이 있으며, 이를 놓치지 않으려 함으로써 오롯한 자아를, 이를 통해 영원한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전언과, 이러한 이유 때문에 타인은 결코 타인을 이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
1부에서 등대에 가기로 결정한 날의 인간들 관계의 파장들을 보여준 후 2부에서는 10년 동안 방치되었던 집을 묘사한다. 그동안 전쟁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지상에서 사라졌다. 램지 부인도 그중 한 명이다. 인간의 숨결이 사라진 빈집은 바람만이 벽을, 그림을, 기둥을 쓸고 지나간다. 속절없는 노쇠와 완전한 결별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한없이 무능하다. 시간 앞에서 누구도 자유롭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그 시간을 움켜쥐어 망각의 늪에서 건져 올리고 고정시켜 놓으려 하는 욕망들이 있다. 카마이클, 릴리와 같은 예술가들이 그들이다. 특히, 릴리는, ‘나는 혼자 있는 것이 좋고, 나 자신으로 있고 싶고, 결혼생활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비쩍 마른 노처녀이다. 버지니아 울프의 페르소나로 보이는 이 여성은 램지 부인을 흠모하면서도 비판적인 눈길로 관찰하는 자이다. 3부에서 가족들이 다시 등대로 떠나는 날, 릴리는 10년 전 그리다 만 그림을 다시 그리기 시작한다. 그 그림은 여기 이 공간과 이 시간 속에 과거의 시간이 바람으로, 혹은 공기로 섞이어 들어 램지 부인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느낀 순간 어떤 현현을 향하여 달려간다. 아름다웠던 한순간을 부여잡고 기억을 환기시키며, 그녀의 존재를 다시 호명해 냄으로써, 즉 램지 부인과 아들의 옛 모습을 재현해냄으로써 죽음에 이르렀던 램지 부인, 아직도 후광으로 집 안 그득 만연한 램지 부인의 향기를 삶으로 되돌려놓는다. 완전한 죽음이란 곧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잊혀지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설사 생물적으로 사망했다 하더라도 누군가가 기억의 끈을 놓치지 않고, 그 시간을 부정하는 의지로 다 함께 호명해 낸다면 그녀는 죽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예술가의 위대한 힘 가운데 하나는, 그 누구도 어찌할 수 없이 흘러가며 붙들어 맬 수 없는 시간의 법칙 그것을 거부하며 고정시켜 다시 살게 하는 것 아니겠느냐고 월독팀의 한 멤버는 강조하였으며, 우리는 그 말에 충분히 동의하였다.
당신도, 나도, 그리고 그녀도 언젠가 사라진다. 멈춰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모든 것은 변화한다. 그러나 문학은 사라지지 않는다. 예술도 사라지지 않는다. (356쪽)
이런 의미에서, ‘다락방에 걸릴지도 모르고 어쩌면 버려질지도 모르는’, 릴리가 완성한 그림이야말로 죽은 램지 부인을 실재로 현현시킨 진정한 예술작품이며, 이러한 전언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두 번째 주제에 닿아 있는 것이 아닐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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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문영희
한국문학을 전공하고 오랜 기간 문학수업을 진행해 왔다. 주로 국내의 소설만 열심히 읽다 월요일 독서클럽 회원이 되면서 번역소설을 탐독하기 시작했다. 책읽기와 만들기를 좋아한다. 월간 북파크, 도서출판 여이연, 도서출판 밈에서 기획자로 활동했다. 요즘의 관심사는 사회적 소외계층 여성들이 자기 목소리를 갖는 일이다. 현재 대학생과 여성노숙자를 상대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저서(공저)로는 『소설구경 영화읽기』, 『불멸의 춘향전』, 『한국의 식민지근대와 여성공간』, 『다락방에서 타자를 만나다』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