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베트남전쟁 개입을 비판하는 기사로 퓰리처상을 받았던 미국인 저널리스트 핼버스탬의 유작인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는 6.25 한국전쟁도 여러 오판이 겹친 탓에 숱한 생목숨들이 죽어간 참극이라 지적한다. 핼버스탬은 이 책에서 1950년을 전후한 동북아시아, 그리고 당시의 국제질서를 이끌던 미국과 소련의 정치군사 지도자들이 내린 오판이 어떤 것이었나를 고발한다. 특히 한국전쟁에서 미군을 지휘했던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의 오판과 아집, 독선이 전쟁에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지를 상세하게 비쳐준다.
■ 전우를 잃고 슬픔에 잠긴 미군 보병이 또 다른 전우에게 위로를 받고 있다. 뒤편에서 위생병이 전사 기록을 작성하는 모습이 보인다. 1950년. ⓒ Sfc. Al Chang / U.S. Department of Defense.
지도자의 오판은 희생을 키운다
우리 인류사에서 전쟁의 대참화는 지도부의 잘못된 판단(오판)에서 비롯된 측면이 강하다. 2003년 3월 이라크전쟁을 벌이기 앞서 미국도 결정적인 오판을 했고 그 때문에 ‘이라크 수렁’에 빠져 허우적댔다. 미국은 이라크 민중들이 점령군인 미군에게 장미꽃을 던질 것이란 기대감에서 전후 이라크 안정계획을 치밀하게 세우지 못했다. 바그다드 점령 뒤 미 점령당국이 이라크군 해산 명령을 내린 것도 중대한 시행착오로 지적된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반미 저항세력의 주력군으로 바뀌었다. 이라크 현지취재 때 만났던 전직 이라크 육군 대령은 “이라크군 해산 명령이 없었다면 지금 치안유지에 나름대로 힘쓰고 있을 내 부하들 가운데 여러 명이 총을 들고 미군과 싸우고 있다”고 개탄했다. 미국의 오판과 시행착오는 더 많은 사상자와 전쟁비용 부담으로 이어졌다.
국제정치학에서의 현실주의 학파는 국가를 ‘합리적 결정주체’로 여긴다. 한 국가의 지도자들이 내린 결정은 ‘그 결정이 내려진 시점에서 국가 이익을 최대로 실현하는 가장 합리적 결정’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전쟁을 연구하는 국제정치학자들은 지도자들의 잘못된 판단(오판)이 전쟁원인 가운데 하나이며, 나아가 패전의 주요원인이라 지적한다. 오판은 여러 가지로 나뉜다. 적국의 의도를 잘못 짚었을 경우, 적의 능력을 과소평가하거나 자국의 능력을 과대평가했을 경우다. 특히 군사적 낙관론이 전쟁결정의 큰 요인으로 꼽힌다. 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도 지도자들은 ‘최선의 합리적 결정’보다는 자만심이나 잘못된 정보를 비롯한 여러 요인으로 오판을 내리는 경우가 많다.
‘오인’(misperception)이란 용어를 정치학의 주요개념으로 정립시킨 미국의 이름난 학자 로버트 저비스(미 UCLA대 교수)는 그의 『국제정치학에서의 인식과 오인』(1976년판)에서 “군사적 낙관론이 정치외교적 비관론과 합쳐지면 바람직스럽지 못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두 나라 사이의 갈등을 정치나 외교로 풀려고 노력하기 보다는 “군사적으로 쉽게 풀 수 있다”는 오판이 그 국가로 하여금 패전에의 길로 몰아간다는 분석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나치독일 지도자 히틀러 총통의 오판이 대표적인 보기다.
명저 『전쟁론』을 쓴 프러시아의 군사이론가 칼 폰 클라우제비츠(1780-1831)의 전쟁이론에서 핵심용어는 무게중심(center of gravity)이다. 클라우제비츠는 적의 ‘결정적인 요소’인 무게중심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판단한 다음, 아군의 군사력을 집중해 적의 ‘무게중심’을 공격해야 승리할 수 있다고 설파했다. 아울러 아군의 ‘무게중심’을 잘 방어해야만 패전을 면할 수 있다고 했다. 앞의 저비스 교수도 지적했듯이, 적국의 의도를 잘못 짚거나 적 전투력에 대한 평가를 잘못 하는 것은 적의 ‘무게중심’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것이나 다름없다.
잇단 오판이 겹친 한국전쟁의 비극
핼버스탬의 『콜디스트 윈터』는 6.25 한국전쟁도 잇단 오판들이 겹쳐져 더 많은 희생자를 낳은 비극이라 지적한다.
먼저, 미국 딘 애치슨 국무장관의 오판. 1950년1월 애치슨은 “미국의 극동방위선은 일본을 포함한 알류산 열도로부터 필리핀으로 이어지고, 극동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다”고 발표했다. 애치슨의 이런 발언은 모스크바와 평양의 공산진영 지도자들로 하여금 한반도에서 전쟁이 터져도 미국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란 뜻으로 풀이됐다. 핼버스탬은 “미국의 중요한 외교정책 결정자로서 자신의 연설내용이 공산진영의 판단에 지대한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감안하지 않은 크나큰 실수였다”고 비판한다.
북한 김일성과 소련 스탈린도 오판을 저질렀다. 미국이 6.25 한국전쟁 5개월 앞서 ‘애치슨 라인’을 그은 것으로 미뤄 미국이 한반도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오판했다. 미국의 군사적 개입이 없다면, 북한군의 막강한 전력에다 (남로당계가 주장했던 것처럼) 남한 좌익의 봉기가 어우러져 ‘조국통일전쟁’이 큰 어려움 없이 끝날 것으로 믿었다. 1950년4월 김일성과 함께 모스크바로 간 박헌영은 스탈린에게 “북조선에서 첫신호를 보내면 남조선 인민들이 집단적으로 봉기할 것”이라 장담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질 못했다. 미군이 개입했고, 좌익의 남한내 대규모 봉기는 일어나지 않았다.
핼버스탬은 1,000쪽이 넘는 그의 책에서 특히 미국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 미 극동군사령관의 오판과 인간적인 흠결들이 어떻게 한국전쟁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쳤는가를 세밀하게 지적한다. 일본 도쿄에 사령부를 둔 미 극동 사령부(FEC, Far East Command)의 수장인 맥아더 장군은 1950년 6.25가 터질 당시 미 8군사령부, 극동해군사령부, 극동공군사령부를 아우르면서 한반도와 일본 열도를 포함한 동북아시아 일대의 미군을 총지휘하는 자리에 있었다. 6.25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이 미국에 전해지자, 미국인들은 맥아더를 믿었다. 북한군의 남침 나흘째 <뉴욕 타임스>는 그 자리에 맥아더가 있다는 것은 미국의 행운”이란 요지의 사설을 실을 정도였다.
그러나 핼버스탬에 따르면, 맥아더의 오만과 잇단 오판이 문제였다. 그는 이미 전쟁 초반에 북한 인민군의 전투력을 과소평가했다. 여기에는 황인종에 대한 인종적인 편견마저 배어 있었다고 지적한다. 초반 전투에서 미군이 잇달아 무참하게 패하자, 인민군을 가리켜 지금까지 그가 상대해 본 군대 가운데 “가장 전투력이 뛰어나며 다루기 쉽지 않은 상대”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 상황에서 맥아더는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쟁의 흐름을 뒤집고 자신에 대한 평가를 ‘전쟁의 신’ 반열에 올려 놓았다.
핼버스탬은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은 맥아더의 오만과 독선을 굳히는데 한몫했다고 지적한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뒤 맥아더는 중공군의 개입과 관련해 결정적인 오판을 저질렀다.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압록강으로 진격해가더라도 (유엔군의 진격은 압록강-두만강까지라서, 미국이 중국을 위협할 의도가 없음을 중국 지도부가 잘 알고 있을 것이기에) 중공군이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 믿었다.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 B플랜을 마련하지 않았고, 결과적으로 미군은 중공군의 매복 공격과 겨울 동장군의 이중고로 참담한 패배를 겪어야 했다. 핼버스탬이 책 제목을 ‘가장 추운 겨울’로 잡은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한국전쟁에서 중공군의 개입은 전쟁양상을 가른 큰 변수였다. 핼버스탬은 맥아더가 중공군의 개입 가능성에 대비를 하지 않고 미군을 압록강까지 진격시킨 것을 가리켜 ‘미군이 20세기에 범한 최대의 실수’라 지적한다. “중공군의 붉은 깃발이 사방에서 펄럭이고 있었지만 맥아더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맥아더는 거듭 중공군이 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고, 만약에 중공군이 개입하더라도 미 공군력으로 분쇄할 수 있을 것이라 오판했다. 그는 “정말로 중공군이 개입한다면 공군이 나서서 압록강을 역사상 길이 남을 피바다로 만들어놓겠다”고 큰소리쳤다. 그러나 미 공군이 압록강을 피로 물들이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미 상원청문회에서 무너진 카리스마
핼버스탬은 책의 후반부에 맥아더 장군과 미 트루먼 대통령 사이의 갈등을 자세히 서술한다. 핵폭탄을 써서라도 한국전쟁을 승리로 끝내고 대만 장제스 군대를 활용해 전선을 중국으로 넓히려는 군인 맥아더, 제3차 세계대전을 걱정하면서 휴전협상을 통해 전쟁을 하루 빨리 끝내고 싶어했던 정치인 트루먼, 이 두 사람 가운데 저자는 트루먼의 손을 들어준다.
민주당 출신의 트루먼이 고심 끝에 맥아더를 해임하자, 공화당과 보수파들의 정치공세가 거칠게 일어났다. 그렇지만 상황은 싱겁게 끝났다. 핼버스탬은 상원청문회에 나타난 맥아더가 한국전쟁에서 잇단 오판을 따지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하지 못함으로써, 그의 카리스마가 결정적으로 무너지는 과정을 잘 그려냈다.
맥아더에 관한 한 아직도 많은 우리 한국 사람들이 경외심을 품고 있다. ‘인천상륙작전으로 자유대한을 구해준 인물’로 기억된다. 인천의 시민공원에 세워진 그의 동상철거 움직임에 반대하는 목소리들도 바로 그런 기억에서 나온 것이다. 그런데 핼버스탬의 책을 읽다보면, 맥아더가 한국전쟁에서 여러 오판을 저질렀다는 사실과 더불어, 뜻밖에도 인간적인 결점들을 지니고 있음에 놀라게 된다. 그의 오만한 데다 독선적인 성격, 부하들의 공을 가로채려들고 언론 플레이에 집착하는 정치군인의 모습이 너무나 적나라하게 서술돼있다.
핼버스탬의 눈에 비친 맥아더는 정치적 야심이 많은 노회한 이기주의자다. 이 책은 한마디로 “한국인 사이에 아직도 힘을 지닌 ‘맥아더 신화’를 깨뜨리는 데 결정타를 날렸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맥아더 장군을 비롯해 한국전쟁에 깊숙이 관련된 쌍방 지도자들의 오판을 다룬 이 책을 읽다보면, 독자들은 “언젠가 한반도에서 다시 전쟁이 터진다면, 그것도 100% 오판 때문일 것”이란 생각을 품게 된다. 북한은 “미국이 정밀타격으로 선제공격해올 것”이라는 오판을 내리고, 미국은 “북한이 한반도의 미군기지와 미 본토를 겨냥해 기습 핵공격을 벌일 것”이라고 오판하는 경우다. 젊은이들을 다시금 전쟁터로 내모는 오판의 결과는 피로 물든 한반도와 숱한 전쟁희생자를 낳을 뿐이다.
결론은 단순명쾌하다. 무엇보다 전쟁정책을 결정 집행하는 정치군사 지도자들의 오판을 막아야 한다. 그러려면 지도자는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잦은 외교적 접촉과 소통, 정확한 정보분석으로 상대를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한반도에 전쟁이 다시 일어나선 안 된다. 일부 지휘관의 오판과 과대망상으로 말미암아 미국-소련 사이에 우발적인 핵전쟁이 벌어진다는 줄거리의 흑백영화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스탠리 큐브릭 감독, 1964년) 시나리오가 한반도에 적용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끔찍한 일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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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보기 본문
맥아더가 도쿄로 돌아가자 워싱턴 일각에서는 미군을 계속 북진시킬 거라고 확신했다. 당시 맥아더는 중국이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장담했고 격전을 벌이던 인민군의 전력도 점차 약해져 저항이 미미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북진을 명령했던 것이다. 맥아더가 중국 국경인 압록강까지 진격할 태세였기에 워싱턴에서는 중국 개입을 우려하며 단계적인 제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별다른 조치 없이 머뭇거렸다. 합동참모들이 미군을 중국 접경 지역으로 보내지 말라고 뒤늦게 지시했지만 맥아더의 북진을 막진 못했다. 맥아더가 상부의 지시를 거스른 것이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그는 항상 자기 생각대로만 움직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제1장 중공군과의 첫 교전, 28쪽)
미군이 20세기에 범한 최대의 실수는 맥아더가 군대를 압록강까지 몰아붙인 거였다. (베트남전은 민간 정부가 나서서 계획한 일이므로 ‘정치적인’ 실수에 가까웠다.) 중공군의 붉은 깃발이 사방에서 펄럭이고 있었지만 맥아더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 둘로 나뉜 그의 부대는 종종 위험할 정도로 연락망이 허술해지는데도 갈수록 열악해지는 날씨를 견디며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고 있었다. 그동안 중공군은 높은 언덕 지대를 점령하여 미군이 후퇴하거나 달아날 수 있는 좁은 길을 모두 봉쇄할 준비를 마치고 미군이 올라오는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인민군의 물자 보급로가 약해져 있다는 이유로 인천상륙작전을 개시하자고 주장했던 그가 이번에는 자기 부대를 몰아붙였고, 통제권을 벗어난 지역에서 갈수록 높아만 가는 위험에 직면하게 만들었다. (제25장 웨이크 섬 회담과 맥아더의 오만, 564쪽)
맥마흔은 미국 정부가 중국을 상대로 더 큰 규모의 전쟁을 벌인대도 소련이 이 전쟁에 개입하지 않을 거라고 맥아더가 아주 분명하게 얘기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 말에 대해서만큼은 분명히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게 드러났지만 예측이 빗나간다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에 맥아더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맥마흔은 계속해서 한국전쟁에 중국이 개입하지 않을 거라던 예상도 완전히 빗나갔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맥아더에게 이 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이에 맥아더는 “(과연 중국이 개입할지) 의심스러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말과 함께 미국이 중공군을 상대로 본격적인 전쟁을 벌일 때 소련이 보일 반응을 예측하며 전문가를 자처했던 맥아더의 평판은 단번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제50장 청문회로 옮겨간 전투, 9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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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소개
김재명
국제분쟁지역전문기자. 지구촌 여러 분쟁 지역을 찾아다니며, 각지의 유혈 분쟁을 취재 보도해왔다. 저서로 『한국현대사의 비극 : 중간파의 이상과 좌절』 ,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 『석유, 욕망의 샘』 , 『눈물의 땅, 팔레스타인』(8월말 출간 예정) 등이 있다. 현재 인터넷 매체 <프레시안> 기획위원이며, 성공회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