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찬호 │ 사회학자사회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10년간 대학에서 강의를 하는 중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는 한국인들의 민낯을 비판하는 글을 쓰면서 산다. 지은 책으로는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진격의 대학교』 『그 남자는 왜 이상해졌을까』 『대통령을 꿈꾸던 아이들은 어디로 갔을까』가 있다.
“모두 하나 되는 100% 대한민국 만들자!” 지난 대선에서 이런 말을 지겹도록 했던 후보는 결국 대통령이 되었고 상상초월로 국가의 격을 실추시키더니 정말로 모두가 하나 되어 분노를 표출하게끔 만들었다. 대통령 지지율이 4%라는 건, 96%가 같은 의견을 가진다는 것인데 국민 여론이 이렇게 일치하는 경우는 없었다. 서슬 퍼런 시절에 실시된 유신헌법 국민투표도 91.5%의 찬성에 불과(?)했으니 말 다했다. 그만큼 작금의 ‘국정농단’은 세대‘간’ 차이조차 희석시킬 정도로 엄청난 사건이었던 셈이다. 역으로 세대‘들’은 이런 초유의 사태가 아니고서는 통합되지 않는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통합되면 세대가 아니다.
세대는 시대의 부산물이다. 단순히 연령대로 세대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시기를 거치는 동년배들의 내재화된 정체성이 뚜렷한 특징으로 발현될 때 비로소 세대라는 호명이 붙는다. 그래서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세상에 대한 고민을 했다고 해서 모두가 ‘386세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취업 걱정을 누구나 했다고 해서 모두가 ‘88만원세대’가 되지 않는다. 386세대가 고민을 하게 된 원인이었던 ‘군부독재의 야만성’은 지금의 대학생들이 경험할 수 없는 것이고, 88만원세대의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업하는’ 심정은 결코 ‘젊을 때 누구나 겪었던’ 고충일 수 없다. 굉장히 의미심장한 세대도, 지나칠 정도로 암울할 세대도 이런 ‘시대’의 결과이지 ‘개인’의 선택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이는 세대‘간’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 문제를 세대구성원들의 노력으로 풀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서로가 다를 수밖에 없는 수십 년의 환경을 거쳐 왔는데, 어찌 이를 거스르는 선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니 세대‘간’ 차이는 다른 시대를 살아왔던 여러 사람들이 공존하고 있다는 증거일 뿐이지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세대갈등의 강도가 심해질 때조차 그저 어쩔 수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특히 노인들과 젊은이들의 상호비방은 도를 넘은 지경이다. 어떤 실마리를 찾아야 할까? 시작은 노인들의 삶이 완전 시궁창이 되어버렸다는 것에서 출발해야 할 듯하다. 죽도로 일했는데, ‘죽을’ 지경이다. 자식들에게 다 퍼주고 스스로는 빈곤층이 되었다. 혹은 빈곤층이 된 동년배들을 바라보고 불안에 떤다. 그러니 어떻게든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이는 삶을 ‘열심히’ 살아가는 기질이 있어서가 아니라, ‘늙어서도’ 마냥 쉴 수 없는 상황 때문이다.
여기서부터 세대갈등의 새로운 국면이 촉발된다. 현대사회에서 ‘노인의 연륜’을 필요로 하는 조직은 사실상 없다. 끙끙거리며 문자 메시지를 보내고 기초적인 이메일 업무도 어려워하는 이들은 정보화시대에 어울리는 인재상이 아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일을 할수록’ 이들의 자질 부족만이 증명될 뿐이다. 특히나 ‘취업9종 세트’로 무장한 젊은 세대들과의 격차는 실로 엄청나다.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익숙하고 영어는 기본인 이들의 눈에 비치는 ‘노인’은 무엇을 물어보아도 대답할 것 같은 연륜과 지혜로 무장한 그런 과거의 이미지가 아니다. 물어보아도 알지를 못하니 물어볼 일 자체가 없다. 이 분위기는 노인들을 중심에서 자꾸만 밀어낸다. 그런데 한때 전성기를 누렸지만 지금은 시궁창의 삶을 살아가는 ‘같은 편’들이 모여서 생각해보니 자신의 처지들이 기가 찬다. 어떻게 감히 ‘노인인 자신에게’ 사회가 이렇게 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이 만나는 아지트가 있다. 바로 ‘지하철’이다. 지상에서는 온갖 멸시를 당하는 노인들이지만 지하에는 자신들만의 공간이 있다. 그런 최적의 조건에서 이들은 숨겨놓았던 ‘응어리’를 분출한다. 노약자석을 ‘경로석’으로 이해하는 이들은 노인을 ‘공경하지 않는 것’을 과감히 문제 삼는다. 지상에서는 입 밖에 뻥긋도 못 할 소리다.
그런데 이들을 바라보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바로 노인들이 지상에서 만나는 그 젊은 세대다. 지상에서 민폐인 이들이 지하에서 저렇게 폼을 잡으니 젊은 세대의 눈에는 얼마나 기가 차겠는가? 특히나 이 젊은이들의 삶은 또 얼마나 비루한가. 그렇게 가난했다던 시대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연애, 결혼, 출산, 집 장만’을 지금은 꿈꾸기도 어렵다. 잘하는 것은 많은데, 일 할 곳이 없는 모순된 현실에서 이들은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그런 이들에게 ‘요즘 애들 어쩌고’ 그러는 말이 어떻게 느껴질까? 결국 젊은 세대들은 ‘이전 세대’를 증오한다. 그래서 윗세대로부터 ‘받아들여 할’ 의미 있는 가치조차도 부정한다. 그 결과 지상에서 노인들은 ‘더’ 배제되고 ‘더’ 시궁창의 삶을 경험해야 하는 노인들은 다시 지하로 몰려들어 세상타령을 격하게 한다. 악순환의 선순환은 그렇게 완성된다.
쉽사리 풀어질 실마리는 아니지만 해결책은 있다. 작금의 세대갈등의 본질은 ‘모두가 힘들다’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노인 세대는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는데’ 너무나도 예상외의 ‘말년대우’를 받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다. 젊은 세대는 과거와는 확연히 달라진 생존전쟁을 진행 중인 자신들을 보고 ‘버릇없고 나약하다’라고 하는 상황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자본주의를 어떻게든 ‘세련되게’ 가꾸지 않는 이상 이 문제는 해결될 리 없다. 그것만이 지하에서 호통칠 노인들을 줄일 수 있고, 젊은이들이 의미 있는 조언을 무조건 거부하지 않게 할 수 있다. 그래야지만 ‘다른’ 세대들이 ‘다름’을 바탕으로 싸우지 않는다.
아래는 관심 있는 독자들이 읽어야 할 추천도서 목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