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펴내며
“어여, 니 몇 살이고? 일곱 살? 여덟 살?”
“열 살임다.”
까맣게 반짝이는 눈을 가진 사내아이는 가방을 야무지게 고쳐 메며 답했다. 나는 놀라서 되물었다.
“열 살이라꼬?”
열 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작은 체구. 순간 내 머릿속의 ‘고난의 행군’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1990년대 중후반부터 수년간 북한을 휩쓸었던 대기근을 북한에서는 그렇게 부른다고 했다. 내가 이 아이를 만난 것은 2010년. 그때의 대기근이 아이의 몸에 새겨져 있었다.
“네, 선생님. 근데 선생님은 어디 지역임까?”
“내 대구에서 왔다. 니는 어데로 가노? 와 니 혼자고?”
“경주로 감다. 2년 전에 경주로 간 아버지한테 감다.”
아이를 만나면 좋은 어른인 척하려고 일부러 대구 사투리를 더 심하게 쓰곤 했다. 꽤 잘 통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지만 이 아이는 내게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아이는 어깨에 멘 가방을 계속 바투 잡으며 주위를 살피다가 잠시 놓쳤던 자신의 인솔자를 찾아갔다.
2010년 4월이었다.
북한이탈주민들이 한국에 정착하기 위해 적응 교육을 받는 ‘하나원’에서 만난 이 아이는 내가 처음으로 대화를 나눈 탈북아동이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남한 입국 후 국정원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는다. 이후 하나원에서 적응 교육을 받는다. 적응 교육을 마무리하면 각자의 정착지역으로 간다. 각 지역의 정착지원센터 직원들은 이들 북한이탈주민들을 데려오기 위해 정기적으로 하나원에 간다.
나는 그날 대구의 정착지원센터인 북한이주민지원센터의 자원봉사자 자격으로 하나원에 갔다. 단순한 걸음은 아니었다. 북한이주민지원센터에서 2009년부터 자원화동을 해온 나에게 지원센터의 허영철 소장이 사단법인 ‘더나은세상을위한공감’의 이사로 활동해달라는 요청을 하였다. 그래서 그 요청에 대한 답을 내리기 위해 한국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북한이탈주민들을 직접 만나보기로 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만나게 된 것이다. 그 아이뿐만이 아니었다. 대구를 택한 다른 북한이탈주민들도 있었다. 어떤 중년 여성은 작은 화분 두 개를 소중히 안고 버스에 탑승했다. 어떤 버스 밖에서 그녀와 닮은 할머니가 창문을 두드렸다. 그 중년 여성보다 늦게 북한에서 나왔기 때문에 하나원에 좀 더 오래 머물러야 한다는 그녀의 어머니가 버스 밖에서 창문에 손을 댄 것이다. 중년 여성은 유리창 밖 어머니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치며 펑펑 울었다. 그 아이와 이 모녀의 모습을 보며 내 안에서 무엇인가가 끓어올랐다.
“그래, 해야겠다.”
탈북자, 새터민, 북한이탈주민……
북한에서 남한으로 온 사람들을 두고 우리는 흔히 ‘탈북자’나 ‘새터민’이라고 부른다. 1962년 ‘국가유공자 및 월남귀순자 특별원호법’에 따라 이들을 일컫는 최초의 공식명칭이 생긴다. 바로 ‘월남귀순자’였다. 이후 제·개정되는 법안에 따라 ‘월남귀순용사’, ‘귀순북한동포’, ‘북한이탈주민으로 변해 왔다.
1997년부터 사용된 ‘북한이탈주민’은 북한을 떠난 후 외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사람들을 지칭하는 공식 법정용어이다. 2014년 말 현재 북한이탈주민은 28,000여 명으로, 대부분이 서울·경기 지역에 정착해있다. 하지만 다른 지역으로 배정을 받기도 하는데, 대구의 경우 현재 850여 명이 거주한다(2014년 기준).
사단법인 더나은세상을위한공감(이하 ‘공감’)의 산하기관인 ‘북한이주민지원센터’는 2003년 대구에서 시작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을 지원하는 비영리기관이다. 이 기관의 이름에서 주의 깊게 볼 것은 ‘북한이주민’이라는 단어다. 기관명을 지으며 ‘탈북자’, ‘새터민’, ‘북한이탈주민’이라는 명칭 대신 ‘북한이주민’이라는 말을 택한 것은 차별과 배제 없이 이들을 대하겠다는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한다. 즉, ‘북한이탈’이나 ‘탈북’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이곳에 온 당신을 환대한다는 의미를 담은 이 명칭은 ‘공감’이 독립법인으로 창립하면서 담은 인도주의와 사회통합의 정신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아직까지는 이 새로운 명칭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으므로, 이 책에서는 공식명칭인 ‘북한이탈주민’을 사용하였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한 ‘공감’
대구의 북한이주민지원센터는 빈민·주거·쪽방 등에 관한 사회사업을 진행하던 자원봉사능력개발원의 산하기관으로 2003년에 시작했다. 북한이주민지원센터는 설립 때부터 북한이탈주민들의 정착을 위한 주거·취업·의료·교육 지원을 중점적으로 행했다. 2009년 전국에서 처음으로 통일부의 북한이탈주민지원사업인 ‘하나센터’ 3개 시범사업처 중 하나로 선정된 후 ‘대구하나센터’의 업무를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부터는 북한이탈주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사업에 집중하고자 “인도주의와 사회통합의 정신으로 지역사회에 정착하는 북한이탈주민과 이주민들을 지원”하는 것을 창립정신으로 하는 독립 모법인인 ‘공감’을 설립했다.
2013년에는 한 후원자의 기부와, 중앙정부 및 지방자치단체와 ‘공감’의 상호협력을 통해 기존에 있던 북한이주민지원센터의 사무실 및 공부방과 별도로 대구 중심가인 중구 종로에 새로운 공간을 만들게 되었다. ‘공감게스트하우스’라고 이름 붙인 5층짜리 벽돌건물에는 북카페, 강의실, 게스트하우스가 자리를 잡았다
1층과 2층의 북카페와 강의실에서는 영어회화 교육을 지원하는 영미권 원어민과 북한이탈청소년의 1:1 영어 멘토링 프로그램이 열리고, 다양한 사람들의 독서모임과 외국어 공부모임이 자유롭게 펼쳐진다. 소규모 강연이 열리기도 하고, 공감게스트하우스를 찾은 손님들의 즉흥 공연이 열리기도 한다.
또한 게스트하우스에는 북한이탈주민 직원이 채용되어 전국 각지와 세계 각국에서 오는 숙박객들을 맞이한다. 그들이 직접 공감게스트하우스가 운영되는 목적이 바로 북한이탈주민의 정착 지원을 위한 것임을 간략히 설명하고, 때로는 본인도 북한에서 왔다는 것을 밝힌다. 그러면 대부분은 깜짝 놀란다. 이렇게 북한이탈주민이 가까이 있을 줄은 몰랐노라고, 평생 처음으로 북한이탈주민을 만나는 거라고.
토닥토닥 프로젝트
이렇게 북한이탈주민들이 가까 있을 줄은 몰랐던, 평생 처음으로 그들을 만나는 사람들이 여기 또 있었다.
2014년 3월 인권 관련 기관의 공모사업에 응모하고자 ‘공감’과 인연을 맺고 있던 몇 사람이 ‘책 출판 프로젝트’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북한이탈주민 학생들과 기존에 해왔던 독서모임을 발전시켜 함께 글을 쓰고, 공모에 당선되면 그 기금으로 책을 만들어보자는, 어떻게 보면 매우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 인권 관련 기관의 공모사업에 지원을 했기 때문에 테마는 자연스럽게 ‘인권’으로 정해졌다. 서로 어깨를 맞대고 토론하고 토닥이며 공감한다는 의미로 프로젝트 이름을 ‘토닥토닥’으로 지었다.
우선 진행진이 필요했다. 나를 포함해 처음 아이디어를 떠올린 사람들이 함께하기로 했다. 북한이탈주민 대상 인문학 공부모임에 참가한 경험이 있던 나와, 책을 출간한 경험이 있는 작가, 프로젝트 총무를 담당할 ‘공감’의 국제팀장 등 세 사람이 프로젝트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 프로젝트에 관심이 있는 북한이탈주민 대학생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다섯 명의 학생들이 모임에 들어왔고 프로젝트의 방향에 대해 진행진들과 의견을 모았다. 일단, 프로젝트가 공모사업에 탈락한다 하더라도 ‘공감’의 지원하에 토론 및 작문, 책 출판 등의 일정을 차질 없이 진행할 것을 약속했다. ‘인권’이라는 주제도 공모전 당선 여부와 상관없이 변경하지 않기로 했다. 또한 북한이탈주민 대학생들의 요청대로 ‘북한인권’에 한정하지 않고 보편적인 ‘인권’을 주제로 다루기로 했다.
이후 남한 출신 대학생들을 공개 모집했다. 지원을 한 일반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북한이탈주민 대학생들이 직접 면접을 진행했다. 그들은 일반 대학생들에게 이 프로젝트에 왜 참여하려고 하는지, 북한이탈주민을 접해 본 적은 있는지, 북한이탈주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모임을 통해 무엇을 기대하는지 등을 물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모인 북한이탈주민 대학생 다섯 명, 남한 출신 대학생 다섯 명, 그리고 진행진 세 명이 함께 ‘토닥토닥 출판 프로젝트’ (이하 ‘토닥토닥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이후 공모 사업에 떨어지고 중도하차하는 학생들이 생기는 등 어려움이 있었지만, 다행스럽게도 끝까지 남은 북한이탈주민 대학생 세 명, 남한 출신 대학생 세 명과 함께 2014년 3월부터 11월까지 시험 기간을 제외하고는 매주 일요일 모임을 가지며 프로젝트를 완주할 수 있었다.
책과 영화, 강의와 토론 속으로
3월 중순부터 매주 일요일 저녁, 각자 책과 영화에 대한 발제를 준비해 와서 두 시간씩 토론을 했다. 책이 한 권 끝나면 그에 대한 글을 써오기로 했다. 첫 모임은 「세계인권선언문」 등 인권에 관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선언문들이 수록된 책인 『인권을 외치다』로 시작했다. 쉽지만은 않은 책이었지만, 격렬한 토론을 진행하는 청년들의 뜨거운 열정이 호기로웠다. 하지만 뭔가 숭고한 가치를 위해 피와 땀을 흘려야만 한다는 부담감도 엿보였다.
3월부터 첫 몇 주는 경계심과 긴장이 풀리지 않은 탓도 있었고, 인권이라는 주제가 거대한 담론이라고 생각한 탓에 무겁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모임이 계속되고 뒤풀이 자리에서 자연스럽게 서로가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게 되자 이런 경계심과 긴장이 점점 풀렸다.
‘토다토닥 프로젝트’의 진행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독서, 영화 감상, 전문가 강의였고, 각 방식에 토론이 항상 뒤따랐다. 즉 책, 영화, 강의를 밑절미 삼아 자신의 삶을 낯설게 보는 접근 방식을 취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물론 진행진들도 부당하지만 원가 익숙하기에 일상에서 당연시 여겼던 일들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또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인권위기 상황이, 우리가 처한 차별과 배제의 일상이 개인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 사회구조나 문화에 맞물려 있음을 깨닫기도 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지식 전달이나 계몽을 위한 인문학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사회의 관계를 성찰하는 인문학적 접근이 절실함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한국인권행동의 오완호 사무총장이 강의했던 날의 장면이 또렷이 기억난다. “당신은 존엄합니까?”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인권의 역사를 이야기하고, 마지막에는 성소수자 인권을 사례로 들어 소수자의 문제가 결국 모두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상기시키는 강의였다. 그는 이 모든 것이 결국 본인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질문을 던졌다. 예컨대 본인이 어느 순간 성소수자임을 깨닫는 상황을 가정한다든지, 친한 친구나 가족이 커밍아웃하는 상황에 대해 직설적으로 물었다. 공격적인 질문에 모두들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강의가 끝나고 진행된 토론은 그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했다.
분단국가의 청년들과 함께
사실 ‘토닥토닥 프로젝트’의 출발은 어처구니없을 만큼 단순했고 그래서 무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소박하게 시작한 이 무모한 여정이 출발 당시에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의미를 남겨주었다.
분단국가의 양쪽에서 나고 자란 남과 북의 청년들이 이 프로젝트를 통해 지속적으로 만날 수 있었으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경험을 해다. ‘인권’이라는 주제는 남한과 북한 출신 청년들에게 자신이 살아온 삶과 자신의 이웃, 그리고 우리 사회를 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모두들 인권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거나 고민해본 적이 없다는 점에서 우리 모두는 어쩌면 동등한 입장이었던 셈이다.
어느 날, 북한이탈주민 대학생 한 명이 부끄러운 듯 고백을 했다. 이제야 남쪽에서 진정한 친구들을 사귄 것 같다고. 5년 전 처음 본 이후로, 피붙이 하나 없는 이곳에서 고군분투하며 살아온 그녀를 지켜보았던 나는 그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토닥토닥’에 함께한 청년들은 간간히 막걸리잔을 기울였다고 한다. 북한 출신 청년들이자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했을 때 남쪽에서 나고 자란여대생이 울면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언니, 오빠. 그렇게 힘들게 여기 온 줄은 몰랐어. 미안해.”
지금부터 한반도의 남쪽과 북쪽에서 나고 자란 여섯 명의 청년들이 여섯 가지 주제에 나눠 담은 인권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들이 살아온 시간을 담은 또 다른 이야기가 이어진다. 이들이 웃고 울면서 나누고자 했던 가치, 인간을 다른 무엇이 아닌 ‘인간’으로 보기 위한 우리의 노력이 이 책을 통해 조금이라도 전해지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어설픈 출발에도 서로를 토닥이며 열정과 서로에 대한 신뢰로 여기까지 온 여섯 명의 젊은이들과 몸과 마음으로 형 노릇, 누나 노릇을 해준 두 분의 진행진에게 감사드린다. 또한 짧지 않은 기간 동안 애정을 가지고 지켜보며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공감’ 가족들게, 그리고 ‘공감’과 ‘토닥토닥’을 믿고 이 책이 세상에 나오게끔 도와주신 많은 후원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2015년 3월
다연, 종현, 일화, 승영, 민우, 은영, 현석과 함께
김성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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