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아이들은 화면에 ‘중독’된 걸까
“스마트폰을 부수는 건 나를 부수는 것”
요즘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부수는 건 나를 부수는 것”이라며 분노한다고 한다. 스마트폰을 뺏는다면 자신을 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까지 받아들인다. 극단적인 사례일까. 정신건강의학과 김현수 전문의의 생각은 다르다. 젊은 세대에게 스마트폰은 더는 통신 도구가 아니라는 게 그의 답이다. 이들에게 스마트폰은 ‘나의 저장소’다. 내 모든 기록과 관계가 그 안에 있다. 그러니 그걸 가로막을 때 실존적 위기감을 느낀다고 김 전문의는 설명한다. 온라인과의 단절은 곧 나로부터 ‘나’와의 연결을 단절시키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확실히 인류는 과거에 비해 더 오래, 일찍부터 온라인으로 살아간다. 예컨대 한국인은 일평생 약 34년을 인터넷에서 지낸다. 일주일 중 사흘에 해당하는 시간이다. 이는 세계적인 추세다. 홍콩에선 약 44년, 브라질에선 41년, 대만에선 33년을 인터넷에 쏟는다. 일본인의 경우 약 11년으로 가장 시간이 적지만, 18세부터 29세 사이의 인스타그램 유저가 앱에서 매달 총 1억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도대체 인터넷에서 어떻게 이처럼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평소 우리의 일상을 돌이켜보면 불가능해 보이진 않는다. 영상 시청, 쇼핑, 소셜미디어와 게임, 그리고 자산 관리와 투자 같은 일들까지 참으로 다양한 활동이 온라인으로 가능하다. 한 설문조사에선 한국인의 44퍼센트가 인터넷 없는 하루를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온라인이 우리에게 한층 자연스러워졌다고, 아니 거의 필수적인 삶의 인프라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2010년대 전후로 태어난 세대는 그야말로 일평생을 온라인으로 살아간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9년 육아정책연구소가 6세 이하 영유아 자녀를 둔 부모 60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이가 처음 스마트 미디어스마트폰, 태블릿 등를 사용하는 시기는 만 1세45.1퍼센트, 만 2세20.2퍼센트, 만 3세15.1퍼센트 순이었다. 2014년 선행 연구 당시에도 스마트 미디어를 경험하는 최초 연령대는 3세가 주를 이뤘다. 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의 인터넷이용실태조사에서 3~9세 아동의 인터넷 이용률은 2018년 87.8퍼센트에서 2022년 91.7퍼센트로 증가한 바 있다. 온라인 화면은 이미 아이들 일상에서 빠트릴 수 없는 일부분이 됐다.
청소년이 인터넷에서 보내는 시간도 확연히 늘어났다. 2022년 10대의 하루 평균 인터넷 이용 시간은 모바일과 PC를 합해 479.6분약 8시간이었다. 팬데믹 이전이었던 2019년267.2분에 비해 약 1.8배 늘어난 수치다. 초등, 중등, 고등학생 순으로 하루 평균 6시간, 8시간, 10시간 내외를 인터넷에 쓴다. 사실상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온라인에 접속해 있는 것이다. 조사를 진행한 연구팀 또한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대체적 관계라든가 온라인이 오프라인에 대한 보완적 관계라든가 하는 시각도 이젠 타당하지 않다”라고 짚었다. 화면의 경계 없이 인터넷에 연결돼 있는 상태가 젊은 층에게 기본값디폴트, default으로 자리잡고 있다.
스마트폰의 출현은 온라인 디폴트online default를 앞당겼다. 2012년 조사에서는 50·60대 장년층의 인터넷 이용률까지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 흐름엔 특히 스마트기기 보유율 증가가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영국 방송통신 기관 오프컴Ofcom에 따르면 9~11세 사이에 스마트폰을 갖게 될 확률은 91퍼센트에 달한다. 비교적 저렴한 가격, 자녀와의 연락 문제, 정보 검색 등 저마다의 이유로 ‘내 화면’이 생긴다. 개발도상국의 사람들은 아예 퍼스널 컴퓨터PC보다 스마트폰을 먼저 사용하는 경향을 보인다. 컴퓨터를 ‘손에 쥐고’ 실시간으로 인터넷을 드나든다. 이런 흐름에 힘입어 스마트폰은 역사상 그 어느 IT 도구보다 가장 빠르게 전 세계적으로 정착한adoption 기기로 떠올랐다.
특히 Z세대와 알파세대는 어느 세대보다도 인터넷을 일찍부터, 오랜 기간 접한다. Z세대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초반 사이에 태어난 이들을 가리키고, 알파세대는 2010년대 초반부터 2020년대 중반 사이에 출생한 사람들을 일컫는다. 흔히 이들은 ‘인터넷이 없던 세상을 겪어본 적 없는 세대’라 불린다. 그럴 만하다. 국내에서 인터넷 접속 서비스가 실시된 타이밍은 1993년 전후였다. 아이폰 첫 출시 시점이 2007년이었다. PC와 태블릿, 스마트폰까지 다양한 접점과 맞닿은 채 살아가는 지금은 1990년대, 2000년대의 환경을 쉬이 상상하기 힘들다. 온라인을 빼고 젊은 세대를 이해할 수 있을까. 매분 매초 손쉽게 인터넷에 드나들면서 아이들은 더 빨리, 더 많이 온라인을 장착한다.
N세대가 낳은 N세대
“통신망에서 자라는 아이들.” 이 표현 자체는 신선하거나 충격적이지 않다.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초반, 본격적으로 인터넷 서비스가 보급되고 IT 벤처 창업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을 때 ‘N세대’라는 호칭이 등장했다. 미래학자 돈 탭스콧은 1998년에 출간한 『N세대의 무서운 아이들』에서 인터넷과 함께 자라는 당시 10·20세대77년 이후 출생자를 ‘넷 세대’Net Generation라고 명명했다. 이들의 소통 수단은 채팅이요, 아바타는 분신이었다. 인터넷 접속을 끊으려 하면, 이 신세대는 “혹시 누군가 급한 메일을 보내면 어쩌나 불안해했다.” 또한 이들은 TV보다 컴퓨터를 더 좋아하며, 네트워크를 삶의 터전으로 삼는 것으로 그려졌다.
그때 그 시절 N세대의 모습에서 지금의 젊은 세대가 보인다. 흡사 부모를 닮은 자식 세대가 탄생한 것과 같다. 허나 세대 간에 분명한 차이점이 존재한다. 후대가 더 일찍 온라인을 접했다거나 자기 스마트폰을 소유했다는 정도의 다름이 아니다. 그 시절 N세대로부터 약 20년이 지난 지금의 N세대가 온라인에서 할 수 있는 일상의 범주는 차원을 달리한다. 경우의 수는 채팅, 아바타, 이메일에 국한하지 않늗나. 온라인은 오랜 세월에 걸쳐 그 밀도와 빈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2011년쯤 IT업계에서 화제를 모은 선언이 있었다. “소프트웨어가 세상을 집어삼키고 있다Software is eating the world.” 앤드리슨 호로위츠a16z라는 벤처투자사를 설립한 연쇄 창업가 마크 앤드리슨Marc Andreessen은 《월 스트리트 저널The Wall Street Journal》의 칼럼을 통해 온라인 화면이 세상을 완전히 바꿔놓는다고 강조했다. 그의 눈에 증거는 차고 넘쳤다. 아마존은 소매점 없이 온라인으로 물건을 사고파는 플랫폼이 됐고, DVD 대여 사업을 하던 넷플릭스는 어디서든 영화나 TV프로그램을 볼 수 있는 온라인 스트리밍 서비스로 각광받는다. 스포티파이 같은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를 빼놓고 음반 산업을 논할 수 없어졌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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