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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외로움을 만나다
2018년 1월, 영국에서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요. 테레사 메이 총리가 체육 및 시민사회 장관 트레이시 크라우치에게 외로움부 장관Minister for Loneliness을 겸직하도록 한 거예요. 세계 최초로 정부가 외로움을 전담하는 관료를 임명했기 때문에 전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죠. 그런데 실제 영국에서 ‘미니스터minister’는 차관직에 해당해요. 그러니까 정확하게 말하자면 외로움을 전담하는 차관이 세계 최초로 임명된 거죠.
영국 정부가 이렇게 외로움을 전담하는 관료를 임명한 건 영국의 노동당 하원 의원 조 콕스가 초당적으로 설립한 ‘조 콕스 외로움 문제 대책 위원회Jo Cox Commission on Loneliness’에서 2017년 연말에 발간한 보고서 때문이었어요. 조 콕스는 20대부터 세계적인 국제 구호단체 옥스팸에서 활발하게 활동한 인물이에요. 이런 그에게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아주 불행한 일이 일어났어요. 2016년 브렉시트2020년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했던 사건 반대 운동을 펼치다 극우 인사에게 총을 맞고 칼에도 몇 차례 찔려 목숨을 잃고 말았던 거예요. 영국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정치적 암살이었죠.
콕스 의원이 숨지기 전까지 가장 열심히 했던 활동 중 하나가 바로 영국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던 외로움에 맞서 싸우는 일이었어요. 평소 그는 “저는 수천 명의 사람들이 다른 우리들에게 잊힌 채 외롭게 살아가는 나라에서 살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었죠. 그리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회에 초당적 기구를 만들자고 제안했어요. 다른 정당들도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곧바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고, 그렇게 만들어진 게 바로 ‘조 콕스 외로움 문제 대책 위원회’예요. 이 위원회는 콕스 의원이 불행하게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의 유지를 물려받아 2017년 연말 외로움에 대한 최종 보고서를 발간했어요.
이 〈외로움과 맞서 싸우기Combatting Loneliness〉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보면, 영국인 6,600만 명 중 900만 명이 외로움에 자주 혹은 항상 시달리고 있는 걸로 나와요. 또한, 영국의 시민단체인 ‘어린이를 위한 행동Action for Children’의 서비스를 이용하는 17~25세 사이의 젊은이 중 43%가 외로움과 관련된 문제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어요. 장애인 중에 50%가 매일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고, 부모 중엔 52%가 외로움과 관련된 문제를 경험하고 있었죠. 65세 이상 노인 중 306만 명은 텔레비전이 가장 중요한 친구라고 답했고, 사랑하는 사람을 보살피고 있는 보호자 10명 중 8명은 돌봄 노동에 치중한 결과 외롭거나 사회적으로 고립된 느낌이 든다고 호소했죠. 더 심각한 사실은 10명 중 1명 이상이 외로움을 느끼지만 그 누구에게도 외롭다는 사실을 인정해본 적이 없다고 답한 거예요. 또한 영국 의료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는 지역 의사 4명 중 3명은 매일 1~5명 정도의 환자들이 외로움을 이유로 병원을 찾고 있다고 밝혔고, 10명 중 1명은 외로움을 호소하는 환자를 매일 6~10명 정도 면담하고 있다고 보고했어요.
이 보고서에 따르면, 외로움은 여러 측면에서 사람들과 공동체에 해로워요. 일단 외로움은 사람들의 건강을 해치죠. 예를 들어 외로움이 만드는 약한 사회적 고리는 하루에 담배 15개비를 피는 것만큼 건강에 해로워요. 여러분들이 지난 한 달 동안 외로움을 심하게 느꼈다면 거의 담배 세 보루를 핀 것과 같다고 보면 되는 거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제에도 해로울 수밖에 없어요. 영국의 고용주들은 외로움 때문에 매년 2.5억 파운드, 그러니까 우리 돈으로 약 4,000억 원을 쓰고 있어요. 영역을 좀 더 넓혀 보면 단절된 공동체가 영국 경제에 미치는 비용은 32억 파운드, 대략 5조 2,000억 원에 이른다고 해요. 나중에 여러분에게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외로움이 정치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의 다양한 연구들도 있어요. 사실 조 콕스 의원의 죽음도 ‘외로워진 사람들’과 관련이 있다고 봐야 해요.
문제는 이런 현상이 영국에만 국한된 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미국에선 코로나19 이전에도 성인 5명 중 3명이 외롭다고 느꼈고, 밀레니얼 세대는 5명 중 1명 이상이 친구가 한 명도 없다고 응답했어요. 독일의 경우 국민의 3분의 2가 외로움이 심각한 문제라고 답했어요. 네덜란드에서는 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국민이 외롭다고 인정했고, 10명 중 1명은 외로움을 심각하게 느낀다고 답했어요. 스웨덴에서도 인구의 4분의 1이 자주 외롭다고 답했고, 스위스에선 5명 중 2명이 자주 외롭다고 답했죠.
좀 극단적인 사례일 수도 있지만, 일본에선 외로움을 피해 스스로 감옥행을 선택하는 노인들에 대한 보고도 있어요. 연금만으로는 생계가 어렵고 딱히 도움을 구할 데도 없는 노인들이 스스로 감옥에 가는 걸 택하는 거예요. 좀 슬픈 현실인데, 이런 노인들에게는 감옥이 공동체를 경험하는 장소가 되고 있어요. 주변에 항상 사람들이 있으니 외롭지 않고, 이야기를 나눌 친구들도 많으니 일종의 오아시스 같은 공간이 되어 주는 거죠. 친구만 제공해 주는 것도 아니에요. 감옥은 이들에게 현실에서는 스스로 감당할 수 없었던 돌봄 문제까지 해결해 주는 안식처의 역할도 하고 있죠. 그래서인지 일본에서도 외로움을 매우 심각한 사회문제로 생각하고 있어요. 2021년 2월, 영국을 따라 고독부 장관을 임명한 것만 봐도 알 수 있죠.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에요.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가장 외로운 국가 중 하나죠. 그런데 이 외로움에 대해 가장 무심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해요. 외로움을 측정할 수 있는 지표조차 제대로 마련되어 있지 않은 데다, 외로움과 관련한 공식 통계 또한 거의 없으니까요. 코로나19 이전에 외로움과 관련해서 제대로 된 여론조사는 딱 한 차례밖에 없었어요.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2018년 1월 영국에서 외로움부 장관을 임명했을 때, 그해 4월 한국리서치에서 ‘한국에도 외로움부 장관이 필요할까’라는 주제로 여론조사를 했어요. 〈사회적 고립과 외로움 인식 보고서〉라는 제목의 조사 내용을 살펴보면, 응답자 중 19%가량이 ‘자주’ 외롭다고, 7%가량이 ‘거의 항상’ 외롭다고 답했어요. ‘자주 외롭다’와 ‘항상 외롭다’를 합쳐서 ‘상시적 외로움’이라 부르는데, 이 두 집단을 묶어 외로움을 호소한 거예요. 외로움을 못 느낀다고 응답한 사람은 23%였는데, 오차 범위 내이긴 하지만 상시적으로 외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다는 거죠. 나중에 자세히 이야기하겠지만 20대의 경우엔 10명 중 4명이 ‘상시적’ 외로움을 겪고 있다고 호소했어요.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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