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말
몇 해 전, 나는 찡그린 얼굴로 노트북 앞에 앉아 쉬워 보이는 문제와 씨름하고 있었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입자물리학 교수 4명이 내준 문제였다. 교수들의 이름은 잊어버렸는데, 긴장이 되기도 했고, 또 오스트레일리아 오지의 모텔 방에서 툭 하면 인터넷이 끊기는 상황에서 박사 과정 면접시험을 치러야 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교수들이 물었다. “입자물리학이 어떤 점에서 매혹적이던가요?”
나를 떠보려는 것이 틀림없었다. 옥스퍼드의 입학 면접시험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으니까. 그 순간 나는 정직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가장 작은 아원자 입자에서부터 우리 몸을 이루는 원자까지, 우주의 가장 큰 척도까지 모든 것을 기술하고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설명하는 물리학의 능력에 경탄했다고 답했다.
입자물리학이야말로 만물의 토대라고 말이다.
그로부터 5년 전 나는 멜버른 대학교에서 토목공학을 공부했다. 물리학자가 되겠다는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다. 학교 물리학 수업이 재미있기는 했지만 공학으로 나아가기 위한 징검다리로만 생각했다. 그런데 학부 1년 만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 물리학 연구 동아리 연례 행사의 하이라이트인 천문학 캠프에 초대를 받은 후로 말이다.
어느 금요일 오후 멜버른을 떠나 두 시간 뒤 리언 모 밤하늘 관측소에 도착했다. 울퉁불퉁한 흙길을 걸어 양철 지붕 건물에 들어가 맥주와 망원경을 꺼낸 뒤 넓은 공터에 텐트를 쳤다. 해가 저물자 기온이 뚝 떨어지고 매미 소리가 공기를 꿰뚫기 시작했다. 나는 약간 시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손전등에 머리끈으로 빨간색 셀로판지를 동여맸다. 온기를 주고 벌레를 막아주는 고마운 침낭에 기어들어가 유칼립투스의 친숙한 내음을 들이마셨다. 그러고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저기 있어!” 옆에서 남자애가 소리쳤다. 활활 타는 별똥별이 하늘을 가로질렀다. 눈이 어둠에 익숙해질 무렵 “밤하늘 관측소”의 진정한 장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잡담이 속삭임으로, 다시 쉿 소리로 잦아들었다. 금성이 지평선 아래로 천천히 지고 다른 행성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나는 그날 밤새도록 느리지만 끊임없이 달라지는 밤하늘을 관측했다. 친구의 망원경으로 토성의 근사한 고리를 관찰했다. 이미 사진으로 보았기에 친숙했지만 렌즈를 통해서 보니 색달랐다. 빛나는 먼지로 가득한 성운에서 형성되는 항성들을 보았고, 10만 광년 떨어진 채 우리은하를 공전하는 수백만 개의 항성과 더불어 반짝이는 구상성단도 보았다.
가장 극적인 장면은 항성과 먼지의 밝은 띠, 우리은하의 빛나는 원호, 바로 은하수였다. 남반구에서는 원반 모양인 우리은하의 가운뎃부분이 보인다. 우리는 중앙으로부터 약 3분의 2 지점에서 태양을 공전하는데, 태양 자체도 은하수 안에서 공전하고 있다. 우리은하는 국부은하군과 함께 초속 약 600킬로미터로 우주를 유영한다. 그 너머에는 항성과 성운, 블랙홀과 준항성체에 이르기까지 이런 천체들이 수십억 개나 있다. 시공간의 드넓은 영역을 아우르며 변형된 에너지로부터 형성된 물질들이다.
그 순간 내가 얼마나 작은지, 인생이 얼마나 짧은지, 눈에 보이는 장엄한 광경을 말로 표현하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절감했다. 항성과 행성은 저기 위에 있고 나는 여기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우주라는 거대한 물리계의 일부였다. 나도 그 일부였다. 물론 이미 알고 있었던 사실이었지만, 이전까지는 우주에서 내가 차지하는 위치를 한 번도 실감한 적이 없었다.
문득 이것 말고는 모든 것이 무의미해졌다. 더 알고 싶어졌다. 중력과 입자와 암흑물질과 상대성에 대해서. 항성과 원자와 빛과 에너지에 대해서. 무엇보다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연결되었고 내가 이것들과 어떻게 연결되었는지 알고 싶어졌다. 만물의 이론이라는 것이 정말로 있는지 궁금해졌다. 이 모든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한 인간으로서 나에게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이것을 이해하는 일은 원대한 목표이므로,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만 있다면 의식을 가진 존재로서 나의 찰나적 삶을 허비하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게 나는 물리학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물리학의 목표는 우주와 그 안의 모든 것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것이다. 한 가지 방법은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 물리학을 공부해보니 모든 것의 핵심에 놓인 질문을 던지는 것인데, 물리학을 공부해보니 모든 것의 핵심에 놓인 질문은 이것이었다. “물질은 무엇이며 우리를 비롯한 주변 만물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가?” 당시에 나는 내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철학을 공부하기보다 더 간접적인 방법으로 접근했다. 우주 전체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기로 말이다.
사람들은 수천 년간 물질의 본성에 대해서 질문을 던졌지만, 이 궁금증의 답을 얻기 시작한 것은 불과 120년 전부터이다. 오늘날 자연의 가장 작은 성분들과 그것들을 다스리는 힘들에 관해서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입자물리학粒子物理學, particle physics이라는 분야가 밝혀낸 것들이다. 입자물리학은 인류가 이제껏 감행한 모험 중에서 가장 경이롭고 정교하고 창조적인 것으로 손꼽힌다. 오늘날 우리는 우주의 물리적 물질과 이 모든 것이 어떻게 어우러지는지 속속들이 안다. 또한 인류가 몇 세대 전에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풍부함과 복잡성이 실재實在, reality에 담겨 있음을 발견했다. 원자가 이 세상의 가장 작은 조각이라는 통념을 무너뜨렸으며, 평범한 물질에서는 어떤 역할도 하지 않지만 우리의 실재를 (다소 기적적으로) 기술하는 수학에 근거할 때는 반드시 있어야 하는 기본 입자도 발견했다. 우리는 단 몇십 년 만에 우주가 시작될 때 일어난 에너지 분출에서부터 자연의 가장 정밀한 측정에 이르기까지 이 모든 조각들이 어떻게 들어맞는지 알게 되었다.
지난 120년에 걸쳐 자연의 가장 작은 성분에 대한 우리의 이해는 방사능과 전자에서 원자핵과 핵물리학 분야까지 급격히 달라졌으며, 여기에는 (가장 작은 규모에서 자연을 기술하는) 양자역학의 발전이 한몫했다. 20세기 들어 새로운 입자가 발견되고 초점이 원자핵에서 다른 쪽으로 이동함에 따라 이 분야는 “고에너지 물리학high energy physics”으로 불리게 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입자들과 이것들이 어떻게 형성되고 행동하고 변형되는가에 대한 연구는 간단히 입자물리학이라고 불린다.
입자물리학의 표준모형Standard Model은 자연에서 알려진 모든 입자들과 이것들을 상호작용시키는 힘을 분류한다. 수십 년간 많은 물리학자들에 의해서 발전을 거듭해왔으며, 현재의 모형은 1970년경 탄생했다. 이 이론은 완전한 승리이다. 수학적으로 우아하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정확하면서도 머그잔에 새길 수 있을 만큼 간략하다. 학생 시절 나는 표준모형이 자연현상을 기본적인 수준에서 어찌나 완벽하게 기술하는지에 매료되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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