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우연히 찾아온 4·3
안녕!
나는 제주에 사는 한상희야. 4·3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 위해 강의와 답사 안내를 하고 있어. 그러다 보니 오늘은 너희를 만나게 되었네.
난 4·3을 소개할 때마다 고등학교 1학년이던 16살의 장난꾸러기 한상희를 먼저 말하곤 해. 우연히 찾아온 4·3에 대해 오랫동안 답을 구하러 다녔던 긴 여정의 시작이 그때였거든. 너희 덕분에 청소년기의 내 모습을 추억하는 시간을 갖게 됐어. 그래서 고마워.
나는 어릴 때 친구들과 어울려 놀기를 무척 좋아했어. 밤이 되면, 내일은 친구들과 뭘 하며 놀까 생각하면서 잠을 자곤 했어. 그런데 어느 날 이상한 꿈을 꿨어. 꿈속에서도 나는 친구들과 놀았어. 놀다 보니 손이 지저분해져서 손을 씻으려고 우리집 앞 바닷가로 가서 물에 손을 담갔지. 그런데 물속에서 뼈들이 만져지는 거야. 내 손을 이리저리 옮겨도 만져지는 것은 똑같았어. 뼈들이 만져질 때마다 나는 그 뼈들을 건져 어느 공동묘지 무덤 옆 비석 위에 올려놓고 왔어. 무서운 꿈이었어.
꿈을 꾸고 일어난 아침, 어머니에게 꿈 이야기를 했어. 어머니는 내 말을 듣자마자 “아이고! 네가 외할아버지 꿈을 꿨구나!”라고 말씀하셨어. 그날 처음 4·3을 겪은 어머니와 외삼촌, 그리고 외할아버지의 사연을 듣게 됐어.
1948년 늦가을인 11월 7일, 제주도 남원읍 한남리라는 마을이 불탈 때, 어머니당시 8살는 동생외삼촌, 당시 5살과 함께 ‘올레’에서 놀고 있었어. 당시 제주도 사람들은 집을 큰길가에 바짝 붙여 짓지 않고 길에서 집으로 이어지는 작은 골목을 만들어 놓고 그 골목이 끝나는 곳에 집을 지었는데, 그 골목을 ‘올레’라고 해. 아무튼 토벌대군인, 경찰가 마을에 들이닥쳐 마을의 초가집을 하나둘씩 불태워 가자 어린 남매는 이제 곧 자기들 집도 불에 탈 거라고 걱정하면서 근처 대나무밭에 숨었어. 그 속에서 두려움에 떨며 부모님을 밤새 기다렸는데 어머니만 오셨어. 그날 오후 어린 남매는 자신들의 아버지를 볼 수가 없게 되었어.
이야기를 듣던 나는 어머니에게 물었어. “외할아버지는요?”
마을이 불탄 후, 어린 남매의 가족은 아버지가 사라져 버렸기 때문에 ‘도피자 가족’이 되었고 피난생활에 들어갔어. 집안에 젊은 남자가 사라지면 남은 가족을 도피자의 가족이라며 마구 총살하던 때였거든. 마을이 불탄 후론 다시 볼 수 없었던 어린 남매의 아버지는 어처구니없게 서울 마포형무소에서 ‘무기징역’이라는 어마어마한 형량으로 감금됐다가 6·25 전쟁 때 희생되었어.
나는 이날 아침 쏟아지는 궁금증을 참을 수가 없었어. 왜 외할아버지는 전과자가 되었을까? 무슨 사연으로 마포형무소에 감금됐을까? 당시 어머니는 8살이고, 외삼촌은 겨우 5살인데, 이 어린 남매는 아버지 없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온 것일까? 우리 집 말고 다른 집에도 이런 사연들이 있을까? 당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우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학교에 가서 친구들에게도 그런 사연이 있는지 물어보는 거였어. 얘기를 들어 보니, 이유는 모르지만 친구들에게도 4·3 때 돌아가신 가족이나 친척들이 많았어.
이렇게 우연히 찾아온 4·3은 나에게 ‘질문’을 구하는 긴 여정을 떠나게 했어. 고등학교 1학년인 그때는 마침 1987년 ‘6월 항쟁’ 직후인 1988년이었어.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군부세력이 독재를 했어. 국민들이 직접 대통령 선거에 참여하지도 못하던 시절이었지.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 직선제’ 등을 요구하며 민주화운동을 전개했는데, 그게 1987년 전국을 들끓게 했던 6월 항쟁이야. 6월 항쟁으로 국민들이 비로소 대통령 선거에서 직접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고, 그 밖에도 우리 사회 여러 분야에서 민주주의가 조금씩 뿌리내리기 시작했어. 4·3은 수십 년 동안 함부로 말해선 안 되는 것이었는데, 1987년 6월 항쟁에 힘입어 언론과 시민사회를 중심으로 진상규명 작업이 시작되었어. 1988년부터 ‘4·3 유적지 기행’이 있기에 나는 어른들을 따라 유적지에 가곤 했어.
“4·3이 뭐우까?4·3이 뭐예요?라는 질문에 사람들의 대답은 제각각 달랐어. 누군가는 미군정 이야기를 하고, 어떤 이는 대한민국 정부를, 또 누군가는 6·25전쟁 이야기를 했어. 어떤 사람은 군인과 경찰군·경 토벌대에 의한 희생을 이야기하고, 또 다른 사람은 무장대에 의해 희생된 이야기를 했어.
오랜 세월 벌어졌던 참혹한 이야기, 뭔가 어떤 체계 아래 계획적으로 자행된 사건, 대부분 불타 버린 중산간 마을한라산과 바닷가 사이에 있는 마을 등 아직 밝혀지지 않은 이야기가 있을 거라는 의문이 계속 생겼어. 이때부터 나는 친구들과 마냥 즐겁게 놀던 시간을 잠시 멈추고 4·3을 알기 위해 길을 나서게 됐어.
질문! 궁금해하는 바를 얻기 위한 물음! 너희들도 조선시대 때 명필로 유명한 ‘추사 김정희 선생’을 알지? ‘추사체’라는 독특한 필법을 완성한 분이지. 그런데 추사 선생은 제주도 대정현이라는 곳에서 9년 가까이 유배생활을 했어. 당대 최고의 학자인 추사 선생이 유배 오니까 대정학교에서 공부하던 학생들이 추사 선생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곤 했는데, 선생은 학생들을 위해 ‘의문당’이라는 글을 써 주었어. 이 글은 나무 널판에 새겨져 지금도 대정항교에 걸려 있어. 늘 의문을 갖고 있어야 제대로 공부할 수 있다는 거지. 요즘 말로 하면, 뜻도 모른 채 무조건 외우려고만 하지 말고 비판적 사고를 하라는 의미겠지.
아무튼 그 후 2000년에 ‘4·3특별법’정싱 명칭은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 제정되고 2003년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이하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나오자 그동안 품어 왔던 궁금증이 조금씩 풀리면서 비로소 4·3의 맥락을 알게 되었어. 왜 4·3이 일어났고 7년 7개월이란 긴 세월 동안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이해할 수 있게 된 거야. 물론 우리 외할아버지의 사연도 알게 되었어.
그런데 이번에는 다시 새로운 질문이 찾아왔어.
어느 날 〈진상조사보고서〉를 통해 알게 된 4·3의 참상을 떠올리면서 내 좁은 방의 창문을 열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 어린이, 학생, 청년들이 거리를 걷는 풍경이 펼쳐진 거야. 물론 제주의 아름다운 바다와 오름도 보였고…. 어제와 전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지만, 문득 4·3 때 군·경 토벌대의 무차별 학살극이 전개되던 장면과 겹치는 거야. 당시 마을이 불타고 홀로 남은 10살 미만의 어린이들이 지금은 80대, 90대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되었을 텐데, 이분들은 4·3의 상처로 엄청난 트라우마에 시달릴 텐데, 어떻게 거리에서 보이지? 그리고 거리를 걷는 청년, 학생, 어린이는 누구의 자손이지? 4·3 때 부모를 잃고 홀로 남은 아이들이 어떻게 다시 가족을 이루고 제주섬을 일굴 수 있었을까? 4·3 당시 군·경 토벌대에 의해 깡그리 불에 타 잿더미로 변했던 마을들이 지금은 너무나 아름답게 보이는데, 이 아름다움 너머에는 무엇이 있는 거지?
이때부터 4·3을 찾아가는 새로운 여정이 시작되었어.
4·3은 하나의 사건이면서 또한 3만 개의 사건이라고 하는 이유, 4·3 당시 희생된 사람들이 만일 죽지 않고 살았더라면 만들어 냈을 상상의 역사, 4·3 때 다양한 위치에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 누군가의 어떤 판단과 결정에 따라 많은 사람이 목숨을 구하기도 또는 학살당하기도 했던 정황,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했던 사람들과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고 학살을 일삼았던 사람들…. 이것들이 내 여정의 이정표가 되었어.
또한 나의 관심사는 4·3 당시의 사람들, 4·3 이후 홀로 남은 사람들, 4·3 진상규명에 앞장섰던 사람들, 4·3을 기억하게 만들려고 노력하는 사람들로 이어졌어. 즉 ‘4·3과 사람들’로 관심이 옮겨진 거야. 4·3 당시 가족과 친척을 모두 잃은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다시 일어섰으며 그 회복의 힘은 무엇인지, 만일 회복되지 못했다면 후손인 우리에게 어떤 과제가 남겨져 있는지, 무고하게 희생된 사람들의 멍에를 어떻게 벗겨 낼 수 있을지, 4·3이 멈춰 버린 과거의 시계추인지 미래로 향하는 현재의 시곗바늘인지…. 이와 같은 두 번째 질문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만들었어.
이 책은 크게 4·3에 대해 품은 첫 번째 질문과 두 번째 질문에 대해 답을 찾아가는 내용으로 나눌 수 있어.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75년 전의 4·3으로 들어가 봄으로써 찾을 수 있어.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지금도 찾아가는 중이야. 4·3이 남긴 과제가 꽤 많거든. 그래서 너희들이 필요해. 너희가 든든한 친구가 되어 그 길에 함께해 줄래.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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