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치유라는 이데올로기
탄생
나는 의료 기술 덕에 살아 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내 옆에서 자라고 있었던 난소낭종 때문에 오래전에, 첫 숨을 쉬기도 전에 죽었을 것이다. 의사들이 어머니에게 제거수술을 해야 한다고 했을 때 낭종은 의미 자몽만큼 커져 있었다. 나의 탄생이라는 재난으로 그녀의 슬픔과 죄책감, 괴로움이 서로 뒤엉켰다. 의사들이 낭종을 들어내느라 헤집어 놓은 아수라장에서 어머니는 그 누구보다도 치유를 바랐던 사람이었다. 내게 낭종은 쌍둥이였을까? 혹은 경쟁자나 침입자였을까? 모자란 공간을 서로 차지하려고 우리는 맞붙었을까, 아니면 끌어안았을까?
의사들이 어머니의 난소를 들어내고 일주일 뒤, 내가 태어났다. 아버지에게 안길 수 있었다면 나는 그의 한 손에 꼭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딱 손바닥만 한 크기에 자몽보다도 작았고, 나의 뇌세포는 이미 망가지고 죽어 있었다.
의사는 어머니의 배에서 오른쪽 난소를 조심스럽게 들어내 내가 태어날 수 있을 만큼의 충분한 공간을 냈다. 마취, 정맥주사, 메스, 봉합이 어머니와 나를 구했다. 이어 항생제, 적외선등, 인큐베이터가 차례차례 나를 살렸다. 이 이야기는 비극이 아니라 그저 사실, 별것 아닌 일, 물 흐르듯 흘러가는 이야기다. 그 위기를 넘긴 것이 다행스럽지도 않고, 내가 수정되기 전부터 어머니 몸속에 종양이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알리지 않은 의사에게 억울한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나의 탄생에 있어서 내가 고마워해야 할 이들이 있다면 운이 좋았던 하나의 정자와 난자일 것이다. 나의 부모는 연어가 아니었으므로 몸부림치며 강을 거슬러 올라가 자갈에 둥지를 틀지도, 알을 낳지도, 물속 가득 산란하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난자와 하나의 정자가 만났다. 수정이란 그토록 연약하고도 무작위적이다.
어머니의 최초의 관심사는 자기 자신과 나의 목숨을 구하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어머니는 치유를 바라기 시작했다. 나를 미처 안아 들기도 전에. 심지어 우리가 살을 맞대보기도 전에.
기도, 영성, 가르침
낯선 이들은 나에게 늘 같은 의도로 기독교적인 기도와 영성, 가르침을 주었다. 그들은 나를 만지고 치료하고 싶어 했고, 내 뇌성마비를 고치려 들었다. 내가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듯이. 그들은 내 면전에서 울음을 터뜨렸고 팔로 어깨를 감싸 안으며 뺨에 입을 맞췄다. 이러한 종류의 상호 작용을 50년간 겪었지만 그들의 연민에 어떻게 퇴짜를 놓아야 할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내가 망가진 존재가 아니라는 단순한 진실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상된 나의 뇌세포를 치료할 수 있다고 해도 마다할 것이다. 굳고 경련하는 근육이 없는 나를, 어눌한 발음이 없는 나를 상상할 수가 없다. 그들은 나를 부자연스럽다고 여기고, 정상적으로 만들고 싶어 하며, 내가 치유에 대한 열망과 욕구를 가졌으리라고 굳게 믿는다.
사람들은 묻는다. “어디가 잘못됐죠What’s your defect?” 그들이 보기에 내 몸-마음은 제대로 된 것이 아니다. 중립적으로 말하자면 일종의 망가진, 결함이 있는 존재defect being다. 하지만 결함이 있다고 여겨지는 것들, 가령 켜지지 않는 MP3 플레이어나 믿고 탈 수 없는 차를 생각해 보자. 그것들은 결국 맨 아래 서랍에 처박히거나 쓰레기통 혹은 고철 처리장으로 보내진다. 결함은 버려질 만한 것이고 비정상적인 것이며, 박멸eradicate해야 하는 몸-마음 또는 대상이다.
낯선 사람들은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용기와 영감을 주는, 흔해빠지고 상투적인 말들을 귓가에 속삭인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놀라운 존재인지 열변을 토하고, 내가 특별하다고 설파한다. 얼마 전에는 치유의 바퀴medicine wheel가 그려진 가두리 장식의 가죽 튜닉을 걸치고 드림캐처 귀걸이를 한 백인 여성이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녀는 경련을 일으키는 모든 사람이 그렇듯 나 역시 타고난 샤먼이라고 말했다. 샤먼이라니! 그 짧은 사이에 인종차별주의와 비장애중심주의가 서로를 향해 덤비듯 굴러 들어온다. 토착적 영성을 끌어들일 수 있는 백인들의 권리와 장애인에게 영적 능력을 부여하는 장애차별적 고정관념이 뒤엉킨다. 그녀는 수련만 받으면 치유자healer가 될 거라고, 나의 특별함을 결코 잊지 말라고 귓가에 속삭이며 당부한다. 아,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특별한지. 우리는 특별한 교육을 받고, 특별한 요구를 하며, 특별한 영적 능력을 가졌다. 오만이 뚝뚝 흘러내리는 말이다. 특별하다는 것은 결함이 있는 것만 못하다.
낯선 사람들과 이웃들, 가해자 무리들은 오랫동안 나를 지진아retard라고 불렀다. 이제는 거의 그렇게 불리지 않는다. 개와 산책하는 내게 멀찍이서 욕지거리를 뱉는 취객이 아직도 있긴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지진아라고 불리는 것이 일상이었다. 언젠가 가족끼리 야영하러 갔던 날, 쉼터에서 술래잡기를 하는 아이들 사이에 낀 적이 있다. 느리고 어설펐던 아홉 살의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것”으로 전락했다. 나는 쫓고 또 쫓았지만 아무도 붙들지 못했다. 상황이 바뀌었다. 아이들은 내게 다가와 몸을 밀치며 지진아라고 소리쳤다. 나는 겁에 질려 소리를 지르며 물러섰다. 지진아는 금세 원숭이가 되었다. 아이들이 나를 둘러쌌고, 여러 말들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원숭이래요. 원숭이래요. 원숭이래요.” 나는 침을 삼켰다. 숨이 막혔다. 흐느꼈다. 공포와 부끄러움, 수치심이 나를 휘감았다. 몸-마음이 무너졌다. 2분이 지났을까, 2시간이 지났을까. 아버지가 나타나자 아이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원숭이라는 말이 나를 비인간의 세계와 자연의 세계로 연결 짓는 바로 그 순간, 나는 몹시 부자연스러운 존재가 되었다.
이 모든 아이들, 어른들, 낯선 이들은 장애인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호명하는 유산legacy에 기여했다. 그들은 기도와 가르침과 조롱, 끝없는 질문을 던지며 다가왔다. 그들은 내가 망가진, 특별한, 영감을 주는 존재라고 굳게 믿었다. 치유를 필요로 하는 비극적인 존재, 언제든 버려질 만한 존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수 세기에 걸쳐 점점 더 가속도가 붙은 믿음이었다. 그들은 우울과 수치, 자기혐오self-loathing 속에 나를 남겨두고 떠나갔다.
장애에 관한 믿음
대부분의 비장애인은 나를 고쳐져야 할 존재로 여긴다. 하지만 어떤 시간과 공간에서는 사뭇 다르게 믿었을 수도 있다. 장애인이라고 불리는 이들은 백인 서구 문화에서 수 세기 동안 괴물이었고, 신이나 여신이었으며, 신탁을 내리는 사제였다. 우리는 어머니가 임신 중에 저지른 사건의 증거이자 죄의 현현, 사악함의 표시였다. 우리는 진화론적으로 유실된 연결 고리missing links였고, 자선단체가 가장 선호하는 대상이었으며, 기독교적 기적의 실험장이었다. 우리는 프릭쇼freak show의 야만적이고 이국적인 돈벌잇감이었으며, 나치가 가스실을 짓고 개량할 때 동원한 실험 재료였다. 우리는 사회의 짐이고 쓸모없는 식충이다. 우리는 비극이면서 영웅이다. 우리는 통제 불능이고, 과하고, 무능력한 존재다. 우리는 용기이고 은유이며, 교훈적인 이야기이자 몰락이다. 우리는 죽는 게 낫다. 이러한 믿음 중 어떤 것들은 오래전에 사라졌고, 어떤 것들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믿음들은 수 세기에 설쳐 모순을 일으키거나 서로를 강화하면서 이동한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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