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통
아름답다는 말이 탄생하는 순간을 목격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정황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한 사람의 눈송이와 한 사람의 구덩이와 한 사람의 세면대 그것들을 중복해서 나열하며 발음해보았다 곧 눈송이와 구덩이와 세면대는 눈송이와구덩이와세면대 눈송이 구덩이 세면대 눈 송 이 구 덩 이 세 면 대와 같이 그 의미를 알 수 없게 되어갔다 그것은 아이가 치고 있는 실로폰에 붙은 글자 스티커일 뿐이었다 아이는 눈 송 이 구 덩이 세 면 대를 뚱땅거린다 곧 그것은 구면 세송이 눈덩이 대면으로 변한다 이것을 알아차린 사람은 더 이상 이 말을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아이는 자신이 실로폰을 칠 때마다 무언가가 변한다는 사실만을 익힌다
이제와 미래
분갈이를 할 때는
사랑할 때와 마찬가지로 힘을 빼야 한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장마였다 올리브나무가 죽어가고 있었다 나는 무엇을 잡아두는 것에는 재능이 없고 외우던 단어를 자꾸만 잊어버렸다
잎이 붉게 타들어간 올리브나무는 방을 정화하는 중이라고 했다 흙에 손가락을 넣어보면 여전히 축축한, 죽어가면서도 사람을 살리고 있는 나무를 나는 이제라고 불러본다 흙을 털어낸다 뿌리가 썩지 않았다면 다시 자랄 수 있을 거라고
이제야, 햇볕이 든다
생생해지며 미래가 되어가는
우리는 타고나길 농담과 습기를 싫어하고 그 사실을 잊어보려 하지만
이미 건넜다 온 적 있지 뿌리를 넘어 줄기를 휘감아 아주 날아본 적
양지를 찾아다녔다
산에서 자라는 나무의 모종 하나를 화분에 옮겨 심으면 야산의 어둠이 방 안에 넝쿨째 자라기도 한다는 걸
진녹새 잎의 뒷면이 바스러졌다
시든 가지에도 물을 주면 잎새가 돋았다
후숙
흑백영화 속
주인공은 왜 자꾸 도시를 헤매는 걸까 이제는 사라지고 없는
볏짚이 탄다 잉걸불이 인다 불씨는 자기를 새라고 불러주는 사람을 만나면 새라고 믿고 날아가 연기를 꿰어 노래를 만들었다
찻집이 모여 있는 골목을 지나면 공방이 나왔다 손으로 뜬 수세미와 골무를 보았다 옷걸이 모양대로 빨래가 말라 있었다 부들부들했다 멀미가 났다 흙으로 빚어서 만든 찻잔과 식기 들
주인이 웃으며 바라보았다 다음 주에 전시회가 있으니 꼭 오라고
풀려버리고 난 후에도 스웨터의 모양을 기억하는 털실처럼
나는 다시 오지 않을 이 도시에서 약속을 하고
오후라고 말했다 비라고 말했다
수요일이었다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사람들은 창 너머를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어둠과 더 짙은 어둠이 빠르게 지나갔다 붓 끝을 털거나 손끝으로 밀어서 그런 듯 흘러내렸다
숲은
우는 사람의 옆모습을 닮아 있었다
눈이 쌓이고 난 후의 흰빛이 음악이 된다고 믿었다 눈은 내리고 오래지 않아 더러워 보였다 나는 거기까지를 눈이라고 불렀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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