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옥탑방에서 보내는 세번째 겨울이었다. 벽이 얇고 유리창이 한겹이라 겨울이면 벽 가까이에 앉아만 있어도 찬 기운이 몸에 끈끈하게 들러붙었다. 전기장판을 틀고 발밑에 온풍기를 켰지만 그것만으로는 몸에 스민 한기를 몰아내기 충분치 않았다. 온풍기의 붉은빛이 방을 희미하게 밝혔다. 입으로 숨 쉬는 버릇 때문에 아침에 눈을 뜨면 늘 입술이 바짝 말라 있었고 목소리가 반쯤 쉬어버리곤 했다. 코로 숨 쉬는 버릇을 들이려 테이프로 입을 막고 자보기도 했지만 잠결에 떼어내는 모양인지 아침이면 갈라진 입술에서 피 맛이 났다. 이불을 여미다가 벽 한쪽에 개어놓은 두툼한 솜이불에 눈길이 갔다. 이불 한겹 더 덮어봤자 뼛속까지 서린 추위가 가시지 않을 걸 알기에 그냥 몸을 웅크리고 눈을 감았다.
이번 겨울은 너무 따뜻해서 문제야.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을 닦으며 공장 소장이 말했다. 정말 그렇다며 주임이 거들었다. 포근해도 너무 포근하지요. 사실 이런 날씨에는 공장에 히터를 안 틀어도 되는데 말이죠. 일할 때 땀이나 나고, 안 좋아요, 안 좋아.
실제로 작업장에서는 5미터 간격으로 컨베이어 벨트 앞에 선 사람들과 공장기계가 뿜어내는 열기로 일을 하는 동안 등줄기에 땀이 흐르고 발바닥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땀이 마른 후에는 온몸에서 오한이 느껴졌고 젖었던 발바닥이 얼면서 동상의 위험이 높아졌다. 나는 땀에 젖은 옷과 양말을 휴식시간마다 벗어버리기 위해 항상 여분을 챙겨 다녔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추위를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소장과 주임의 대화를 흘려듣지 못했던 것이다.
춥지 않은 게 왜 문제예요. 그리고 충분히 추운데요. 발가락이 얼 것 같은데요. 퉁명스러운 내 말에 소장이 혀끝을 차며 말했다. 젊은 놈이 춥기는 뭐가 추워. 너는 좀더 굴러야겠다, 인마. 직원들이 왁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소장은 공장에 근무하는 직원들 모두에게 나이를 불문하고 반말을 했다. 겨울이 다 끝나가도록 한번도 영하로 안 떨어졌는데, 겨울 날씨가 이 지경이면 봄 돼봐라. 공장 주위에 벌레가 들끓는 거다. 겨울은 추워야 되는 거야.
집으로 돌아온 뒤에도 나는 계속 그 말을 곱씹었다. 이번 겨울은 춥지 않다는 말을.
정말 이번 겨울은 포근한가. 하기야 이번 겨울에는 수돗물이 얼까봐 싱크대와 세면대 물을 조금씩 틀어놓고 출근한 적이 없었다. 지난주에 눈이 오긴 했지만 옥탑에 쌓이지도 않았고, 모두가 따뜻하다고 하니 그런 거겠지. 그렇다면 내 살갗을 에는 듯한 이 한파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고 언제 끝나는 걸까.
잠이 오지 않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집 안 곳곳에서 귀신들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문득 귀신들이 몰려들어서 이 집이 추운 건지 집이 추워서 귀신들이 드나드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집과는 상관없이 그저 내가 있는 곳에, 저들을 조금이라도 감지하는 인간이 머무는 곳에 몰려드는 것인지도. 존재를 드러내고 싶어 안달이 난 귀신들은 끈질기게 내 근처를 맴돌곤 했다. 내가 심한 몸살을 앓는 날이나 폭우가 내리는 날, 그것들은 그림자 같은 형상으로 눈앞에 어른거렸다. 아주 가끔씩은 거미줄이나 고양이털 같은 가벼운 스침으로 내가 여기 있다 아우성치기도 했다.
그때, 순자가 짖는 소리가 들렸다. 1층 주인집에서 키우는 진돗개는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향해 사납게 짖어댔다. 옥탑방에서 산 3년 동안 순자와 친해지려 몇 번이나 소시지와 닭가슴살을 밀어줘봤지만 개는 좀처럼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주인에게도 예외 없이 이빨을 드러내고 매일 아침저녁으로 만나는 사람들을 향해 침입자를 대하듯 공격태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 그냥 머리가 좀 나쁜 것 같기도 했다.
희미하게 누군가 계단으로 올라오는 발소리가 들렸다. 개 짖는 소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2층에는 주인집 노부부의 손자가 살았다. 옥탑방 계약을 할 때 주인 할머니는 손자가 고시 준비를 하고 있으니 소음에 각별히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2층 남자와는 신기할 정도로 거의 마주치지 않았다. 몇 달에 한번씩 마주칠 때마다 2층 남자는 다듬은 지 오래된 듯한 장발에 후줄근한 추리닝을 교복처럼 입고 다녔다. 손에는 항상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유리 부딪치는 소리로 보아 소주병일 것 같았다. 남자가 당분간 고시를 통과하기 힘드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발소리가 2층을 지나 가까워지고 있었다. 나는 벽 쪽으로 조금 더 붙어서 공간을 마련했다. 일부러 벽을 보고 누웠다. 아이들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찬바람이 순식간에 작은 방을 엄습했다. 휴대폰 불빛이 공간을 밝혔다.
“형 잔다. 조용히 해. 조심해.”
내가 깰까봐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고 발뒤꿈치를 들고 잠자리를 가늠하는 것 같았지만 밖에서 묻혀 온 한기와 아이들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활기 때문에 옥탑방이 금세 어수선해졌다. 한쪽에 개어놓은 이불을 넓게 펴서 둘이 나눠 덮는 소리가 들렸다.
이불이 일으킨 바람이 내 머리를 흩뜨렸다. 이내 휴대폰 불빛이 꺼지고, 저들끼리 머리끝까지 이불을 덮고 속살거리는 소리가 한동안 이어졌다. 한참 후 그 소리마저 잠잠해졌을 때, 나는 왜 내가 잠들지 못하고 잡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지 알게 되었다.
2
이호를 만난 것은 6개월 전 일이었다. 여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이다. 여름 한낮에만 잠깐 온기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뙤약볕 아래에서 일사병이 오기 직전까지 버틸 때쯤에야 영혼까지 스며든 한기가 조금 씻겨나가는 듯했다. 심장이 오그라드는 것 같은 추위를 다스릴 수 있는 날은 1년에 며칠 되지 않았다.
옥상 난간에 걸터앉아 일광욕을 하며 동네를 내려다보곤 했다. 골목골목의 폭이 좁고 낙후된 동네였다. 2층 혹은 3층으로 된 다세대주택이 주를 이뤘고 대체로 40년 이상 된 구옥이었다. 아직도 초록색 대문에 열쇠로 문을 여닫는 집들이 많았다. 집주인은 우리 주인집처럼 노부부인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출퇴근 시간을 제외하면 늘 조용했다. 담벼락을 타고 다니는 고양이들과 하루에도 좋은 동네를 몇바퀴씩 돌며 폐지를 수거하는 노인들을 멍하니 바라보다보면 시간이 잘 갔다. 머리카락이 뜨거울 정도로 쨍쨍한 햇볕에도 내 영혼은 미지근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었다.
저 멀리, 골목을 배회하는 한 아이가 보였다.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몸에 앳된 얼굴이었다. 열여섯, 열일곱 정도 됐을까. 골목길을 걸어다니는 것뿐인데 배회한다는 느낌이 든 건 내가 동네 구경을 하는 동안 이 아이가 골목의 이쪽 끝과 저쪽 끝을 몇번이나 오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표물을 물색하는 느낌이었다고나 할까. 그런 ‘느낌’이 어디에서 기인하는 것이냐 묻는다면 명쾌하게 설명할 자신은 없었다. 아이는 골목의 폭을 측량하듯 두 팔을 쭉 뻗었다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길을 살폈다. 사람이 지나다닐 때면 골목 한쪽에 가만히 붙어 서서 휴대폰을 만지며 그 사람이 사라지기를 기다렸다. 왜인지 눈을 뗄 수 없어 아이의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을 때, 그애 옆으로 빨간색 경차가 천천히 다가갔고 아이는 옆으로 잠깐 비켜섰다가 반대 방향으로 걸었다. 얼핏 보기에도 아이와 경차 사이의 간격이 너무 좁고 위험해 보인다,고 생각하기가 무섭게 사고가 났다. 아이는 경차에 부딪친 후 고통스러운 듯 소리를 질렀고 뒷범퍼를 발로 두번 찼다. 그 소리에 운전자는 즉시 제자리에 차를 세운 후 차문을 열고 나왔다. 그때부터 아이는 옥상까지 소리가 들릴 정도로 악을 쓰며 운전자에게 따지고 들었다.
“제대로 안 보고 그딴 식으로 운전하면 어떡해요, 아줌마!”
아이는 팔을 감싸 쥐고 있었다. 운전자는 30대 중반 정도의 여성이었다. 얼굴이 눈에 익은 것을 보면 이 동네에 사는 주민이었다. 운전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아이에게 연신 사과했다. 상처를 살피러 가까이 다가가자 아이는 경계하며 뒷걸음질 쳤다. 운전자는 난처한 목소리로 당장 병원에 데려다주겠다고 했고, 직접 차 뒷문을 열어주기까지 했지만 아이는 타지 않겠다고 버텼다. 모든 대화 소리가 정확히 들리진 않았어도 보다보니 충분히 유추할 수 있었다. 나는 그 장면에 기시감을 느꼈고 하나의 얼굴이 희미한 두통을 동반하며 겹쳐졌다. 아이의 다음 행동도 예측할 수 있었다.
잠시 머뭇거리던 운전자는 엄살과 협박을 넘나드는 아이의 말재주에 넘어가 결국에는 허둥거리며 지갑에서 얼마를 꺼내 내밀었다. 운전자가 몇번 더 아이에게 병원에 가기를 권했지만 돈을 받아 챙긴 아이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그 자리를 빠르게 벗어났다. 잠깐만, 얘, 잠깐만 기다려! 운전자의 다급한 부름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꺾어지는 골목으로 들어가더니 순식간에 사라졌다. 여자는 혼이 쏙 빠진 듯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골목길로 들어온 오토바이가 경적을 울리자 그제야 차에 올라탔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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