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어 ‘em〔앰〕’은 우선 가족 안에서 남동생 혹은 여동생을 뜻한다. 두 친구 사이에서 성별과 관계없이 어린 쪽을, 혹은 커플 중에서 여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나는 ‘em〔앰〕’이 프랑스어 동사 ‘aimer〔에메〕’사랑하라과 동음이의어라고 믿고 싶다.
사랑하라. 사랑합시다. 사랑하세요.
진실의 시작
다시 또, 전쟁이다. 어느 분쟁 지역에서든 악惡의 균열들 속에 선善이 끼어들어 자리 잡는다. 영웅주의는 배신으로 완성되고, 사랑은 저버림과 시시덕거린다. 적이 된 이들은 오로지 이기겠다는 한 가지 목표로 서로를 향해 나아간다. 그렇게 똑같이 싸우는 동안 인간성의 여러 얼굴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인간은 강하면서 미쳤으면서 게으르면서 충성스러우면서 위대하면서 비열하면서 순진하면서 무지하면서 경건하면서 잔인하면서 용맹스럽다. 그래서 전쟁이 일어난다. 다시 또.
나는 진실을, 적어도 실제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물론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진실, 진실에 거의 가까운 진실이다. 해병 롭이 연인에게서 온 편지를 읽을 때, 같은 시각 반군 빈이 잠깐의 휴식, 잠깐의 가짜 고요 속에서 연인에게 편지를 쓸 때, 그들 머리 위의 하늘이 어떤 파란색이었는지 나는 그려낼 수 없기 때문이다. 마야 블루 혹은 스카이 블루였을까? 혹은 프렌치 블루나 셀룰리안 블루였을까? 존 이등병이 단지 안에 숨겨진 반란군 명부를 찾아냈을 때 그 단지에는 마니옥 가루가 몇 킬로그램 들어 있었을까? 막 새로 빻은 가루였을까? 우물 속으로 던져진 웃 씨가 피터 병장이 쏜 화염방사기의 불길에 산 채로 타 죽었을 때 우물물의 온도는 몇 도였을까? 웃 씨의 몸무게는 피터 병장의 절반이었을까, 아니면 3분의 2였을까? 피터 병장을 제일 많이 괴롭힌 건 모기의 공격이었을까?
나는 며칠 동안 밤을 새워가며 상상해보려고 애썼다. 트래비스의 걸음걸이를, 호아의 소심함을, 닉의 두려움을, 뚜언의 절망을, 누군가의 총상을, 또 다른 누군가가 숲에서, 도시에서, 비를 맞으며, 진흙 속에서 거둔 승리를 그려보려 애썼다. 매일 밤 냉동고의 용기 속으로 얼음 큐브가 떨어지는 규칙적인 소리를 들으면서 계속 그려보았지만 내 상상력은 결코 현실을 다 담아낼 수 없었다. 어느 병사의 증언에 따르면 적의 병사 한 명이 길이 1.3미터 무게 17킬로그램에 달하는 M67 소총을 어깨에 메고 탱크를 향해 맹렬히 돌진해 왔다. 다시 말해 그가 목격한 것은 적을 죽이기 위해서 죽을 준비가 된, 죽으면서 죽일 준비가 된, 죽음의 승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이었다. 그러한 자기희생, 그렇게까지 무조건적인 대의의 신봉을 어떻게 상상할 수 있겠는가.
어린 두 아이를 데리고 수백 킬로미터의 정글을 가야 하는 어느 어머니가 한 아이를 옮기는 동안 다른 아이가 짐승들에게 공격당하지 않도록 가지에 매달아놓고, 먼저 옮긴 아이를 반대편 가지에 매달고 되돌아와, 매달려 기다리는 다른 아이를 데려가는 모습을 어떻게 떠올릴 수 있겠는가. 그 어머니는 아흔두 살 전사의 목소리로 직접 나에게 그날 일을 들려주었다. 여섯 시간의 대화 뒤에도 나는 여전히 수천 가지 세부적인 것들을 알지 못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아이들을 묶을 끈을 어디서 구했는지, 아이들의 몸에 그날 끈에 묶였던 자국이 아직 남아 있는지 묻는 걸 잊었다. 어쩌면 어머니에겐 그 모든 기억이 지워지고 단 하나, 아이들의 입에 넣어주기 위해 자기가 먼저 씹었던 야생 줄기의 맛만 남아 있지 않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만일 당신이 이 책에 담긴 예측 가능한 광기, 뜻밖의 사랑, 혹은 평범한 영웅주의를 읽으면서 가슴 죄는 아픔이 느껴지거든, 온전한 진실을 알게 될 때 아마도 숨이 멎어버리는, 혹은 행복감에 취하는 순간을 맞게 되리라는 걸 알아주기를. 이 책 속의 진실은 시간과 공간이 조각나 있고 불완전하고 미완성이다. 그래도 진실일 수 있을까? 당신이 당신 자신의 이야기에, 당신의 진실에 반향하는 방식으로 이 질문에 답하기를. 그때를 기다리며 나는 나름의 질서를 갖는 감정들, 어쩔 수 없는 무질서를 겪는 느낌들을 따라가는 말들로 이야기해보겠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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