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자 외 출입 금지
― 방과 후 강사의 일
현진 씨53의 핸드폰에는 학부모와 주고받은 문자가 빼곡했다. “3학년 2반 연이 엄만데요. 내일 수업은 뭔가요? 준비물은 없나요?” “내일은 종이접기입니다. 연이는 종이접기 시간에 집중력이 좋아요. 재료는 모두 제가 준비해 갑니다.” 수업 시작 전에 매번 안내 문자를 보내고, 수업을 진행하는 중에도 이런저런 질문에 답을 한다.
코로나가 시작된 후 1년반 동안 수업을 못 했는데 2021년 9월, 한 학교가 비대면 수업을 시작하면서 매주 수요일마다 학교에 다시 나가게 됐다. 그는 15년째 토탈공예를 가르치고 있는 방과 후 강사다.
결혼 후 첫 출산과 함께 병이 생겨 다니던 직장을 그만뒀다. 우연히 배워 뒀던 종이접기를 동네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다가 방과 후 강사라는 새로운 길을 찾게 됐다. 대학에서는 공예를 전공했지만, 전공만으로는 경쟁력이 없어서 매년 새로운 자격증을 땄다. 대부분의 방과 후 강사들은 자격증을 수십 개씩 갖고 있다. 할 줄 아는 게 하나라도 더 있어야 치열한 경쟁을 뚫고 수업을 따낼 수 있기 때문이다.
매년 면접을 새로 봐요. 이미 수업을 하고 있는 학교든 새로운 학교든, 학생 만족도 조사가 높게 나오든 말든, 매년. 서울은 심지어 3개월 단위로 계약하는 걸요. 날씨가 추워지기 시작하면 서류를 이만큼씩 뽑아서 이 학교 저 학교 전전하며 면접을 보러 다녀요.
근데 그 면접이 대부분 오후에 잡혀서 기존에 하는 수업과 겹치다 보니 난감할 때가 많아요. 학교에 사정을 설명하면 알아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지, 면접 시간을 조정해 주거나 수업을 조정해 주는 경우는 없어요. 그나마 보조교사를 쓰고 면접을 보러 가도 면접 시간이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에요. 여러 명이 지원을 하면 시간을 쪼개서 정해 주면 될 텐데 무작정 가서 내 순서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러면 그냥 그 하루는 날아가는 거예요.
그 면접마저도 2020년에는 볼 수 없었다. 코로나가 확산되면서 학교가 꽁꽁 문을 닫고 “외부인 출입금지”가 된지 2년이 훌쩍 넘었기 때문이다. 한 학교에서 15년간 계약을 유지하면서 수업을 해온 현진 씨도 외부인이었다. 수업이 열리길 마냥 기다리고만 있을 순 없어 다른 일자리를 찾았다.
처음 찾아간 곳은 쿠팡이었다. 아르바이트 구직 사이트를 뒤져 인천에 있는 물류센터에서 일을 시작했다. 첫날은 숨도 못 쉬고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쓰러졌다.
말로는 전혀 터치를 안 하는데 거기 UPH+라는 게 있어서 그게 얘가 일을 못한다 잘한다 수치로 알려 준대요. 일하다 보면 누구누구 사원님, 이러면서 마이크로 막 불러요. 중앙으로 오라고. 자기네들은 가만히 있으면서 불러서 왜 이렇게 일을 못하세요, 막 이러기도 하고.
처음에는 인천에서 일하다가 집에서 가까운 부천 신선 센터로 갔어요. 근데 또 며칠 일하니까 안 부르더라고요. 작업량을 체크해서 잘하는 사람만 부른대요. 어쩔 수 없이 다시 인천으로 갔는데 갑자기 마이크로 제 이름을 부르는 거예요. 왜 그러냐 했더니 빨리 집에 가라고. 이유나 알고 가자 했더니 부천 신선 센터에서 확진자가 나왔더라고요. 그다음부터는 그나마도 못 나가고 자가 격리하고 검사하고….
지금 일하는 곳은 슈퍼예요. 까대기++라고 아시죠? 물건 박스 뜯어서 비지 않게 계속 갖다 놓는 거. (2021년) 8월 5일부터 일했는데 전 진짜 일주일도 못 할 줄 알았거든요. 근데 쿠팡 힘든 거에 비하면 10분의 1도 안 돼요.
+ ‘시간당 물량 처리 개수’Unit Per Hour를 뜻하는 말로 실시간 측정돼 관리자의 단말기로 전송된다.
++ 택배 업계에서는 상하차 업무를 까대기라고 하지만, 백화점이나 대형 슈퍼 등에서는 박스를 풀어서 재고 수량 등을 조사하는 작업을 가리킨다.
월수입 0원
쿠팡에서 지금 일하는 슈퍼로 오기까지 마스크 공장과 화장품 공장, 휴대품 부품 조립 등 일거리만 있으면 닥치는 대로 다녔다. 서울시와 경기도 교육청이 방역 인력을 뽑을 때 기존에 일하던 방과 후 강사를 우선으로 모집해 방역 일을 하기도 했다. 다만 주 15시간을 넘지 못하게 했다. 일이 주어지는 대로 불려 가 책상에 소독약을 뿌리고 계단과 손잡이, 급식실 가림막을 닦았다.
1년6개월이 넘는 공백으로 인해 다른 일자리를 찾아 헤맬 수밖에 없었던 사람은 현진 씨만이 아니다. 방과후강사노동조합이 전국 17개 시·도 1247명의 방과 후 강사를 대상으로 진행한 2020년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월수입 평균은 2019년 216만 원에서 2020년 1학기 13.1만 원, 2학기에는 12.9만 원으로 급락했다. 게다가 월수입이 아예 0원이라고 응답한 사람이 전체의 79.5퍼센트2020년 2학기 기준에 달했다. 여성들이 주를 이루는 방과 후 강사를 ‘부업’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실제 생계를 책임지는 ‘주업’으로 일하는 경우가 97.5퍼센트에 이른다.
악기를 가르치던 강사들은 악기를 팔아 치웠고 차나 집을 판 사람도 있었다. 현진 씨 역시 매달 카드값을 내야 하는 날짜가 다가오면 미칠 것만 같았다. 비슷한 시기에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보험 설계를 시작했던 남편은 그마저도 어려워져 경비원 교육을 받고 대단지 아파트 경비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주간 주간, 야간 야간, 들쭉날쭉하니까 너무 힘든데, 관두면 안 된다고 했어요. 나도 버틸 거니까 버티라고 했어요. 이젠 그나마 남은 집도 팔고 월세로 가야 할 것 같아요. 아직 아이 둘이 대학을 다니는데 경제적으로 너무 힘들어요. 빚은 계속 늘어 가고 카드 돌려막기로 버티는 것도 한계가 왔어요.
코로나 이후 월수입은 평균 100만 원, 줌 수업을 할 때는 40~50만 원, 방역을 했던 달에는 60만 원 정도를 벌었지만 그것도 꾸준하지 않았다. 하다가 끊어지면 또 다른 아르바이트를 찾았지만, 며칠 나가면 일이 없다고 나오지 말라는 연락을 받았다. 매달 나가는 공과금이나 대출이자는 다시 대출을 받아서 막았다.
저희 집이 빌라 5층인데 어느 날엔가는 정말 딱 뛰어내리고 싶더라고요. 제가 성당을 다니는데 새벽에 고해성사를 하러 갔어요. 삶의 끈을 놓아 버리고 싶다고, 근데 이게 진짜 큰 죄 아니냐고, 그랬더니 신부님이 안수기도를 해주시더라고요. 신부님 손이 제 머리에 와닿는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어요. 새벽이라 아무도 없는데 정말 소리소리 지르며 울었더니 마음이 조금 시원해지더라고요.
코로나가 시작된 2019년 12월부터 학교는 방과 후 강사들에게 ‘일단 대기’를 요구했다. 일주일 또 일주일… 그렇게 다시 수업이 재개되기를 기다리며 아무 일도 할 수 없었다. 혹시라도 사람들을 만났다가 코로나에 감염될까 봐 집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았다는 강사도 있다. 학교와는 2020년 3월에 시작해서 그다음 해 2월에 종료되는 계약서를 작성했지만 3월에 수업을 열 수 없게 되자 학교는 강사들을 불러 계약 기간을 고쳐 쓰게 했다. 수업을 하기로 계약했지만 수업이 열리지 않는 상황에 대해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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