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
사회사상이란
무엇인가
1. 사회사상의 역사란 무엇인가
큰 서점의 철학·사상 코너에 가보면 갖가지 사상사 관계 서적이 늘어서 있다. 정치사상사, 법사상사, 경제사상사, 철학사상사, 윤리사상사 같은 것들로, 사회사상사도 그중 하나다. 그런데 정치, 경제, 철학 같은 말은 많은 사람들에게 어려움 없이 다가온다. 엄밀한 의미와는 별개로 일반 독자에게도 어떤 이미지를 전해준다. 정치는 경제가 아니며 철학은 정치도 경제도 아니라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고, 정치사상이나 경제사상, 철학사상 같은 말도 그렇다. 그러나 ‘사회사상’이라는 말은 반드시 그런 명확한 이미지를 전해주지는 않는다. 주된 이유는 ‘사회’라는 말 자체의 모호함에 있을 것이다. 일상 대화나 대중매체에서 ‘사회’만큼 흔하게 쓰이는 말도 드물 테지만 이 말의 엄밀한 의미는 결코 자명하지 않다. 정치와 경제의 경계선은 쉽사리 그어질 것 같지만 정치·경제와 사회 사이에 명료한 경계선을 긋기는 쉽지 않다. 정치나 경제는 대개 사회의 일부로 여겨지며 정치와 경제를 포함하는 포괄적 개념으로서의 사회라는 것이 보통의 용법일 것이다.
이를테면 『고지엔広辞苑』제6판, 이와나미쇼텐에서 간행하는 일본어 사전―옮긴이의 ‘사회’ 항목에는 “인간관계의 총체가 하나의 윤곽을 가지고 나타난 경우의 그 집단”이라는 설명이 있으며 그 “주요한 형태”로서 “가족, 촌락, 길드, 교회, 회사, 정당, 계급, 국가” 등을 들고 있다. 이처럼 가족에서 국가까지 포함하는 인간의 공동생활 일반의 여러 형태로서 ‘사회’를 파악하면 인류는 지구상에 출현한 이래로 일관되게 모종의 ‘사회’생활을 영위해왔다는 말이 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정치사상이나 경제사상도 실은 사회사상의 일부라고 해버리면 사회사상의 특질은 명확해지지 않는다. 50년도 더 전에 출간된 대표적 개설서인 『사회사상사 개론』의 저자들이 한탄했듯이, 바로 “여기에 사회사상사를 다루는 사람들의 고뇌가 있는” 것이며 이러한 사정은 요즘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와 달리 이 책에서 사용하는 ‘사회society’의 의미는 처음부터 의식적으로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세계 각지에서 면면히 구축되어온 인간의 사회 일반을 뜻하지 않는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는 실질적으로는 근대사회, 특히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서 시작되는 유럽 사회와 그 연장선상에서 성립된 북미 대륙 사회를 가리킨다. 즉, 거기에는 같은 유럽이라 해도 고대·중세 사회는 포함되지 않으며 같은 근대라 해도 유럽과 북미가 아닌 방대한 영역들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 고대 그리스의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고대 중국의 공자나 노자의 예를 들 것도 없이 유럽이든 아시아든 근대 이전의 인류 사회에는 수천 년에 걸친 풍성한 사상의 역사가 있었다. 따라서 인류 사회가 세계화되고 지구상의 여러 민족·국민 간의 교류가 인류 사회의 양상을 나날이 바꿔가는 오늘날 ‘사회’라는 말을 한정된 의미로 쓸 때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어야 한다.
이 책에서 말하는 고유한 의미의 ‘사회’는 첫째로 ‘법의 지배’를 원리로 하는 ‘합리적 국가’를 가지는 사회를 말하며, 둘째로는 ‘시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와 같은 의미의 ‘사회’는 인류 역사상 근대 이후의 유럽에서 처음 등장했다. 이 책에서 펼쳐질 사회사상의 역사는 근대국가와 시장경제의 관계를 원리적으로 고찰한 사상의 역사이며, 각 시대에 각 지역에서 살았던 사상가들이 그들을 둘러싸고 출현한 국가 및 시장에 관한 문제들과 씨름한 역사이다.
근대 이전의 여러 사회에도―유럽이든 아시아든―다양한 국가가 존재했으며 시장경제 역시 존재했다. 예컨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가 활약한 고대의 아테나이는 고도로 발달한 도시국가폴리스로, 지중해 세계나 소아시아와의 교역을 기반으로 한 시장경제를 터득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경우의 국가는 근대적 의미의 법치국가가 아니었으며 시장경제를 일반적 기초로 하지도 않았다. 아테나이의 도시국가는 근대국가가 적어도 겉으로는 인정하지 않는 노예제도를 대전제로 한 국가였으며, 시장경제 역시 노예제도에 의해 지탱되는 자급자족의 경제 구조였다. 경제인류학자 칼 폴라니가 지적한 대로 근대 이전의 여러 사회에서는 시장경제의 원리가 공동체 아래에 ‘묻혀embedded’『경제의 문명사』 있었으며 그 자체로 순수한 경제활동이라기보다는 공동체의 정치적·종교적 제도의 일환이었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사상이 후세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든 간에 그것은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사상’은 아니었다. 플라톤의 정치사상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경제사상을 논할 수는 있어도 고유한 의미에서 그들의 ‘사회사상’을 논할 수는 없다는 것이 이 책의 관점이다. 문예비평가 레이먼드 윌리엄스는 현대적 의미의 ‘사회society’라는 말의 용법이 16세기 이후에 나타난 사실을 언급한다『키워드 사전』. 물론 이 책의 대상을 근대사회로 한정하더라도 거기에는 500년 가까운 역사가 있다. ‘사회’라는 개념 자체가 근대 유럽 사회의 변화에 따라 구체적 내용을 바꿔왔으며, ‘사회사상’의 역사는 이런 역사적 변화를 내재적으로 추적하려는 시도를 가리킨다.
2. 사회사상사의 방법
근대 유럽의 사회사상사를 추적하는 방법으로는 이제껏 온갖 상이한 접근법이 채택되어왔다. 그것을 굳이 단순화하면 세 종류, 즉 ①경제학적 접근법, ②철학·윤리학적 접근법, ③법학·정치학적 접근법이 된다. 어느 접근법이든 각각 유효하다는 것은 말할 나위 없지만, 이 책은 일단 첫째 종류에 속한다. 문제는 이들 세 종류의 사회사상사의 구별과 관련이다. 무릇 사회사상사에 대한 경제학적 접근법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다른 종류의 사회사상사와 어떤 관계에 있을까? 나아가 그것은 얼핏 비슷해 보이는 ‘경제학사’와는 또 어떻게 다를까?
이러한 문제를 애덤 스미스의 경우를 예로 들어 생각해보자. 오늘날까지 경제학적 접근법을 취한 사회사상의 통사에서는 스미스 경제학의 성립과 마르크스의 사회주의 사상의 성립을 두 가지의 획기적 사건으로 파악하고 이를 기준으로 스미스 이전과 마르크스 이후의 사상가들을 평가하는 방법이 많이 채택되어왔다. 즉, 스미스와 마르크스 이전의 사상가에 대해서는 그들이 얼마만큼 스미스와 마르크스에 가까운지, 마르크스 이후에 대해서라면 그들이 얼마만큼 마르크스를 계승하고 있는가 하는 척도가 채택되기 십상이었다. 이런 방법에서는, 스미스 이전에 대해서라면 경제학적 사회 인식의 발전사가 사회사상사의 기본선이 되며 그에 따라 정치사상이나 도덕사상의 여러 계보는 부차적 위치에 놓인다. 스미스 자신에 대해서도 그의 사상 체계로 흘러드는 갖가지 사상 계보가 경제학의 성립이라는 관점에서 단순화되어 그 이외의 요소들은 스미스 사상의 이해에서 본질적이지 않은 양 다뤄지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스미스를 ‘경제학의 아버지’로 역사에 새긴 『국부론』을 펼쳐보면 곧장 알 수 있듯이 그 책은 현대적 의미의 경제학 책이 아니다. 그 책에서는 방대한 역사적 고찰을 토대로 당시의 생생한 정치 정세를 반영한 정책적 논의가 상세히 전개되며, 곳곳에 ‘사회사상적’ 고찰이 배어 있다. 스미스의 『국부론』을 정말로 깊이 이해하려면 이러한 사회사상적 요소를 이해해야만 한다.
그 일례로서 『국부론』의 핵심을 이루는 분업론제1편 1~3장을 살펴보자. 스미스 경제학의 기본 원리로 알려진 분업론은 단순한 경제 이론이 아니다. 스미스는 거기에서 국부 증대의 원동력이 ‘분업division of labour’에 있다는 것을 파악하고 그것을 유명한 핀 공장의 예로써 설명한다. 스미스는 분업의 생산력의 비밀이 분업에 의한 기능技能 향상, 시간 절약, 신기술 및 기계의 발명에 있다고 논하면서 한 발 더 나아가 이런 분업에 의한 생산력 증대가 인간 본성의 어떠한 원리 혹은 능력의 귀결인지 묻는다. 스미스는 이 문제가 당면한 주제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많은 동물 중에서 유독 인간에게서만 보이는 특별한 능력, 즉 이성과 언어를 구사하여 상대를 설득하는 능력에서 이 비밀을 찾아낸다. 그것이 바로 유명한 ‘교환 성향’ 개념이다. 그리고 인간 본성과 경제활동의 관련을 문제삼는 이 논점이야말로 『국부론』에서의 사회사상적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또 한 가지의 예를 들어보자. 그것은 유명한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관한 스미스의 논의『국부론』 제4편 제2장이다. 스미스는 거기서 ‘중상주의’ 이론과 정책을 전면적으로 주장한다. 이 문맥에서 스미스는 수많은 개인의 노동이 ‘의도치 않은 결과’로서 국부 증대를 가져오는 메커니즘을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말은 나중에 와서는 스미스가 실제로 쓴 적도 없는 ‘신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표현으로 유포되었는데 그것이 완전한 오해라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스미스가 이 말로써 표현한 시장 메커니즘의 완전성과 만능성에 대한 인식의 배후에는 경제 이론적이라는 의미의 과학적 논의로는 설명할 수 없는 스미스의 모종의 (거의 종교적이라 할 만한) 초과학적 세계관이나 신념이 표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이 ‘교환 성향’론과 함께 『국부론』을 지탱하는 또하나의 사회사상적 요소이다.
스미스는 글래스고대학의 ‘도덕철학moral philosophy’ 교수였다. 그리고 단적으로 말해서 스미스가 살던 시대의 ‘도덕철학’은 이 책에서 말하는 ‘사회사상’과 사실상 같은 내용을 가지고 있었다. 시간적 순서로 말하자면 스미스의 사회사상에서 경제학이 생겨난 것이지 그 역은 아니다. 그렇지만 완성된 스미스 경제학에서는 인간 본성의 여러 원리를 문제삼고 인류 사회의 질서와 역사를 전망하는 스미스 사상의 사회사상적 성격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그것은 사회사상가로서 경제학자가 된 스미스 스스로 의도한 것이었지만 그 시점에도 스미스가 사회사상가이기를 관둔 것은 물론 아니다. 사회사상은 완성된 경제학 체계에서는 감춰져 보이지 않는, 경제학의 밑바탕을 떠받치는 인간관·사회관·역사관을 그 자체로서 백일하에 드러내고 그것을 중심 주제로 삼아 고찰하는 학문인 것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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