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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생 ― Lia
만일 리아 리가 가족과 친지들의 고향인 라오스 북서부 고지대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녀의 엄마 푸아 양은 남편 나오 카오 리가 손수 지은 초가집 바닥에 쪼그려 앉아서 그녀를 출산했을 것이다. 초가집의 바닥은 흙이지만 깨끗했다. 먼지가 일지 않도록 푸아가 바닥에 수시로 물을 뿌리고 빗자루로 쓸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직접 만든 대나무 쓰레받기에다 아직 밖에서 용변을 못 보는 어린아이들의 똥을 담아 숲에다 버리곤 했다. 푸아가 유난을 부리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갓난아기를 내버려둬 바닥 흙이 묻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었다.
푸아는 지금까지도 아이들을 전부 자기 손으로 받아낸 것을 자랑스러워한다. 방법은 다리 사이로 나오기 시작하는 아기의 머리를 우선 손으로 빼낸 다음 나머지 부분을 잡아당기는 것이다. 곁에서 출산을 도와주는 사람은 따로 없었다. 푸아가 분만 중에 목이 탈 때 나오 카오가 뜨거운 물을 갖다주긴 했으나 남편이라도 아내의 몸을 봐선 안 되었다.
푸아는 신음을 내거나 비명을 지르면 출산에 방해가 된다고 믿었기 때문에 이따금 조상들께 기도를 할 때 말고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밤에 아기를 낳을 때도 너무 조용해서 얼마 안 떨어진 돗자리에서 자던 다른 아이들은 동생이 태어나 우는 소리에 깨곤 했다. 아기가 태어나면 나오 카오는 탯줄을 뜨겁게 달군 가위로 자르고 끈으로 묶었다. 그러면 푸아는 진통 초기에 물지게를 지고 개울에 가서 직접 길어다 두었던 물로 아기를 씻겼다.
푸아는 쉽게 아기를 갖고 쉽게 낳았지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몽Hmong족 부부는 ‘치 넹txiv neeb’*이라는 샤먼무당을 부른다. 그러면 치 넹은 무의식 상태에 빠져들어 산모에게 도움을 줄 귀신들을 불러낸다. 그리고 날개 달린 말을 타고 땅과 하늘 사이에 있는 열두 개의 산 너머로 날아가 용들이 사는 바다를 건너 환자의 건강을 관장하는 영혼신령들과 담판을 짓는다.음식이나 돈으로 달래다가 필요하면 칼을 휘두르기도 한다. 치 넹은 부부에게 개나 고양이 또는 닭이나 양을 바치게 하여 불임을 치유하기도 한다. 짐승의 목을 자르고 나서 문설주와 부부의 침상을 밧줄로 묶어 이어놓으면 ‘다dab’라는 악령에게 붙들린 아기의 혼이 자유롭게 이승으로 올 수 있게 된다.
*몽족은 별도의 문자 체계가 없고 알파벳을 이용한 독특한 표기법을 쓴다. 이 경우 x는 s발음에 가깝고 이중모음은 ‘응’ 발음에 가까우며 단어 끝의 자음은 발음하지 않는다. 몽족 언어의 발음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과 안내는 509쪽 참조. ― 옮긴이
애초부터 불임을 피하도록 조심할 수도 있다. 이를테면 임신할 나이가 된 몽족 여성은 절대 동굴에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살과 피를 먹기 좋아하는 고약한 ‘다’가 동굴 안에 살고 있다가 여성을 겁탈해 아이를 못 낳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몽족 여성은 임신을 하면 원하는 음식을 먹어야 아기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믿는다. 산모가 생강이 너무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하면 손가락이나 발가락이 하나 더 달린 아기가 나올 수 있고, 닭고기가 너무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하면 귀 가까이 흉이 있는 아기가 나올 수 있다. 또 계란이 너무 먹고 싶은데 먹지 못하면 머리에 혹이 있는 아기가 나올 수도 있다.
몽족 여성은 논이나 양귀비 밭에서 일하다가도 산통이 시작되면 바로 집으로 달려갔다. 먼저 자기 집으로 가고, 아니면 적어도 남편 사촌의 집에라도 가야 했다. 그렇지 않고 다른 데서 아기를 낳다간 ‘다’에게 해코지를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분만 과정이 너무 길어지거나 힘들어지면 열쇠를 넣고 끓인 물을 마셔서 산도를 열어주었다. 가족들이 방 근처에 모여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를 하기도 했다. 집안 어른을 제대로 공경하지 못해서 문제가 생겼다면 마음이 상한 어른의 손가락 끝을 씻어주며 지성으로 빌어서 “용서하마.”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출산 후 산모와 아기가 화덕 옆에 함께 누워 있는 동안 남편은 바닥을 60센티미터 깊이 정도로 파서 태반을 묻는다. 딸인 경우에는 부모의 침상 밑에 묻었고, 아들인 경우엔 더 중요한 자리인 집 중심에 있는 나무 기둥 밑에 묻었다. 그 자리는 집의 지붕을 떠받치고 가족들을 굽어살피는 가정의 수호신이 사는 곳이다.
태반은 태아가 배 속에 있을 때 얼굴과 맞닿는 부드러운 부분이 위로 향하도록 묻어야 했다. 반대로 묻으면 아기가 자주 토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기 얼굴에 뾰루지가 많이 돋으면 묻어둔 태반에 개미들이 침입했다는 뜻이므로 그 자리에 뜨거운 물을 부어 개미를 없애주어야 했다.
몽 언어로 태반을 가리키는 말은 ‘저고리’를 뜻한다. 몽족에게 저고리는 사람이 가장 먼저 입는 옷이자 가장 좋은 옷으로 여겨졌다. 몽족이 죽으면 그 혼은 자기가 살아온 곳을 되짚어 올라가 저고리인 태반이 묻힌 곳까지 가서 그것을 입어야 한다. 태어날 때 입었던 옷을 다시 입어야만 혼이 길을 떠날 수 있다. 흉악한 ‘다’들과 거대하고 독살스러운 애벌레들을 지나 사람을 잡아먹는 바위들과 넓디넓은 바다를 건너 하늘까지 가야 하는 위험한 여행이다. 혼은 거기까지 가서 조상들과 재결합을 해야 언젠가 다시 아기의 혼으로 세상에 올 수 있다. 죽은 사람의 혼이 자기 저고리를 찾지 못 하면 그 혼은 영원이 벌거벗은 외톨이로 이승을 떠돌게 된다.
리 부부나오 카오 리와 푸아 양는 1975년 라오스가 공산 세력에 완전히 넘어가면서 살던 땅을 떠나게 된 15만 몽족 가운데 하나이다. 그래서 예전에 살던 집이 그대로인지, 나오 카오가 흙바닥에 묻은 남아 태반 다섯 개와 여아 태반 일곱 개가 아직 남아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 태반 중 절반은 이미 마지막 용도로 쓰였으리라 믿고 있다. 아들 넷과 딸 둘이 미국으로 오기 전에 이런저런 이유로 죽었기 때문이다. 리 부부는 남은 가족 대부분의 혼이 언젠가는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미국에서 산 17년 중 15년을 지낸 캘리포니아주 머세드에서부터 이전에 살던 오리건주 포틀랜드, 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와서 처음 내린 하와이주 호놀룰루, 태국의 두 난민캠프를 거쳐 라오스의 고향 마을로 돌아가야 한다.
리 부부의 열세 번째 아이 마이는 태국의 난민캠프에서 태어났고 태반은 그곳 오두막 바닥에 묻혔다. 열네 번째 아이인 리아는 머세드 커뮤니티 의료센터Merced Community Medical Center에서 태어났다. 줄여서 흔히들 MCMC라 부르는 이 병원은 몽족이 많이 정착한 캘리포니아 센트럴밸리의 농촌 지역을 담당하는 현대식 공립병원이다. 리아의 태반은 여기서 소각되었다. 몽족 여성 중에는 의사에게 아기의 태반을 집에 가져가도 되느냐고 묻는 이들이 있었다. 어떤 의사들은 마지못해 태반을 비닐봉투나 병원 카페테리아의 포장 용기에 담아주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거절했다. 산모가 태반을 먹을 것이라 짐작하거나 발상 자체가 역겹다고 생각하거나 B형 간염의 간염을미국에 난 몽족 난민의 15퍼센트가 보균자라고 한다. 우려했기 때문이다. 푸아는 물어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영어를 할 줄 모르는 데다 주변에 몽족 언어를 아는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리 부부의 아파트는 나무 바닥 위에 빈틈없이 카펫이 깔린 집이었으니 태반을 묻는 것 자체가 어려웠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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