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꾼들
렌터카를 몰고 진입로에 들어선 캐시는 표지판을 보고 웃지 않을 수 없다. ‘윈덤폴스. 우아한 은퇴 생활.’
이곳 생활에 대해 델라가 얘기해준 것과는 전혀 다른 말이다.
이어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정문은 충분히 멋져 보인다. 크고 매끄럽다. 밖에는 흰 벤치가 놓여 있고 의료 시설다운 질서 정연한 분위기가 감돈다. 그러나 그 부지의 뒤쪽에 자리 잡은 정원 딸린 아파트는 작고 초라하다. 조그만 현관은 마치 가축우리 같다. 밖에서 커튼이 쳐진 창문과 비바람에 마모된 문을 보노라면 그 안에는 쓸쓸한 삶이 있을 거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차에서 내렸을 때, 공기는 그날 아침 디트로이트 공항 밖에서 느꼈던 것보다 섭씨 5도쯤 더 따뜻한 것 같다. 1월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푸르다. 클라크가 그녀에게 줄곧 경고한 블리자드심한 추위와 강한 눈보라를 동반하는 강풍.가 몰려올 기미는 전혀 없다. 클라크는 그녀가 집에 머물면서 자신을 돌보도록 설득할 요량으로 그 얘기를 꺼내곤 했다. “다음 주에 가면 안 돼?” 그가 말했다. “델라는 계속 거기 있을 거잖아.”
캐시는 현관을 향해 반쯤 왔다가 델라에게 줄 선물을 기억해내고는 그걸 가지러 다시 차로 돌아간다. 여행 가방에서 선물을 꺼낸 그녀는 자신이 한 포장에 다시 한번 만족한다. 그 포장지는 자작나무 껍질처럼 보이게 만든, 표백하지 않은 갱지 같은 종이다. (그녀는 마음에 드는 것을 찾으려고 문구점을 세 군데나 돌았다.) 캐시는 야하고 촌스러운 나비 모양 리본을 붙이는 대신 크리스마스트리 ― 길거리에 내다 버리려던 것이었다 ― 의 잔가지를 잘라서 화환을 만들었다. 이제 그 선물은 손으로 만든 어떤 천연 제품처럼 보인다. 사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대지에 바치는, 미국 원주민 의식에 쓰이는 공물 같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안에 든 것은 전혀 참신한 물건이 아니다. 캐시가 델라에게 늘 주는 것, 바로 책이다.
델라는 코네티컷주로 이사한 후로 더 이상 책을 읽을 수 없다고 불평하곤 했다. “요즘은 책 한 권을 계속 붙들고 읽을 수가 없으니 원.” 델라는 전화기에 대고 그렇게 말한다. 그녀는 그 이유를 말하지 않는다. 그러나 둘 다 이유를 알고 있다.
캐시는 델라가 콘투쿡에 살 때 연례적으로 그곳을 방문했었는데, 때는 그 방문 기간 중이던 작년 8월의 어느 오후였다. 델라는 주치의가 자신을 검사 기관에 보내 검사를 받도록 했다고 말했다. 5시가 막 지난 시간이었다. 해가 소나무 뒤로 지고 있었다. 그들은 페인트 냄새를 피해 창에 방충망을 친 현관에서 마르가리타테킬라를 바탕으로 만든 칵테일.를 마시고 있었다.
“어떤 검사요?”
“온갖 종류의 바보 같은 검사.” 델라가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 “예를 들면 주치의가 나를 치료사에게 보냈는데 ― 그 사람은 자기를 치료사라고 부르지만 스물다섯 살도 안 돼 보이는 여자야 ― 그 치료사가 시계의 시침과 분침을 그리게 하는 거야. 내가 다시 유치원생이 된 것처럼 말이지. 아니면 그림을 여러 장 보여주면서 나한테 그걸 기억하라고 말해. 그런 다음 엉뚱한 얘기를 하는 거야. 내 정신을 흐트러뜨리려고. 그러고 나서 나중에 그림 속에 뭐가 있었는지 묻는 거지.”
캐시는 흐릿한 불빛 속에서 델라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여든여덟 살인 델라는 여전히 생기 있고 아름다운 여자다. 단순한 스타일로 자른 백발은 흰색 가발을 연상시킨다. 그녀는 가끔 혼잣말을 하고 허공을 바라보기도 하지만, 혼자서 아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그러는 정도 이상은 아니다.
“어떻게 했어요?”
“아주 잘하진 못했어.”
그 전날 콩코드의 철물점에 갔다가 차를 몰고 돌아오는 길에 델라는 그들이 고른 페인트의 색 문제로 조바심을 냈다. 충분히 밝은 빛깔이었나? 반품해야 하지 않을까? 가게에 있던 페인트 샘플만큼 산뜻해 보이지 않았어. 아, 돈이 아까워! 마침내 캐시가 말했다. “델라, 또 불안해하는군요.”
그게 전부였다. 델라의 표정이 마치 요정 가루를 뿌린 것처럼 누그러졌다. “아, 내가 또 그랬네.” 그녀가 말했다. “내가 그러면 말해줘야 해.”
캐시는 현관에서 칵테일을 홀짝이며 말했다. “나라면 그런 일로 걱정하지 않을 거예요, 델라. 그런 검사를 받으면 누구나 다 긴장하게 마련이죠.”
며칠 후 캐시는 디트로이트로 돌아갔다. 그 검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듣지 못했다. 그리고 9월에 델라는 전화를 걸어 닥터 서턴이 가정 방문을 하겠다며 일정을 잡았고, 델라의 큰아들인 베넷에게 그 자리에 와줄 것을 요청했다고 말했다. “닥터 서턴이 베넷한테 차를 몰고 여기까지 와달라고 한 건,” 델라가 말했다. “아마 안 좋은 소식 때문인 것 같아.”
의사의 가정 방문 면담일 ― 월요일이었다 ― 에 캐시는 델라의 전화를 기다렸다. 이윽고 전화가 왔을 때, 델라는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한껏 들뜬 것 같은 목소리였다. 캐시는 의사가 델라에게 아무 이상 없다는 건강 증명서를 준 게 아닐까 추측했다. 그러나 델라는 검사 결과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거의 제정신이 아닐 만큼 기쁜 듯한 기색으로 말했다. “닥터 서턴은 우리가 집을 너무나 예쁘게 꾸며놨다며 잊지 못할 거라고 했어! 난 여기 처음 이사 왔을 때 이 집이 얼마나 엉망이었는지 말해줬어. 그리고 자기가 여기 올 때마다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꾸려왔는지도 들려줬는데, 믿지 못하더라고. 그가 보기엔 너무너무 멋지다면서 말이야!”
어쩌면 델라는 그 소식을 마주 볼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미 잊어버렸을 수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캐시는 델라가 걱정스러웠다.
전화를 넘겨받아 그녀에게 의학적 내용을 얘기하는 것은 베넷의 몫이었다. 베넷은 사무적인 어조로 건조하게 전달했다. 그는 하트퍼드의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매일매일 질병과 사망 확률을 계산하는 업무를 하는데, 그의 어조가 건조한 것은 아마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의사 말로는 어머니는 앞으로 운전을 해서는 안 된답니다. 가스레인지를 사용해서도 안 되고요. 당분간은 어머니를 안정시키기 위해 약을 좀 처방할 거라는군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어머니 혼자 살 수 없다는 게 결론이랍니다.”
“지난달에 거기 찾아갔었는데, 당신 어머니는 괜찮아 보였어요.” 캐시가 말했다. “어머니는 불안감이 좀 있을 뿐이에요. 그게 다예요.”
잠시 침묵을 지키던 베넷이 입을 열었다. “네. 그런데 불안감은 종합적인 증상의 일부입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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