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병신, 찐따,
땡깡, 간질, 지랄
장애가 곧 모욕이던 시절은 정녕 끝났나?
예전에는 동네마다 유명한 ‘바보’가 한두 명씩 있었다. 어렸을 때 내가 살던 동네에는 ‘바보 누나’가 있었다. 사람들은 그의 이름을 붙여 ‘바보 미나’가명라고 불렀다. 그의 가족들은 “동네 창피하니까” 싸돌아다니지 말라며 바보 미나를 혼냈다. 바보 미나에겐 오빠가 하나 있었는데 항상 모자를 푹 눌러쓰고 동네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녔다. 어른들은 자신들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보탰다.
“우리 어렸을 때는 저런 애들 다 숨겼어. 장애인이면 싹 다 집에 꽁꽁. 있는지도 모르게.”
생각해보면 ‘바보’라는 말은 욕으로 쓰여왔지만, 욕 중에서 가장 강도(?)가 약해 별 문제가 없다고 여겨졌던 게 사실이다. 심지어 TV에서도 장애인을 가리키는 욕설인 ‘병신’은 ‘XX’, ‘병X’ 등으로 가리면서도 ‘바보’는 여과 없이 자막으로 내보낸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바보’라는 단어의 어원에는 두 가지 설이 있다. 하나는 ‘밥보’가 변한 말로 밥에서 ‘ㅂ’이 빠지고 ‘심술보’, ‘떡보’ 등 ‘어떠한 특성을 지닌 사람’이란 뜻의 접미사 ‘-보’가 결합했다는 설이다. 다른 하나는 “사물에 어두워 아는 것이 없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을 가리키는 ‘팔삭이’를 변형한 ‘바사기’에서 ‘바-’가 왔다는 설이다.
둘 다 그다지 와닿지는 않지만 어느 쪽이든 사람을 비하하는 표현임에 분명하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바보를 “지능이 부족해 정상적으로 판단하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어리석고 멍청하거나 못난 사람을 욕하거나 비난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두 가지로 풀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바보’는 욕 중에서 비난의 강도가 약한 쪽에 속해 상대적으로 거부감 없이 사용됐다.
온 동네 사람들에게 ‘바보’란 말을 들어야 했던 ‘미나’와 그 가족들은 어떤 심정이었을까. 사실 잘못한 것 하나 없는데도 ‘바보’라는 호칭 하나만으로 동네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소문이라도 날까 봐 장애가 있는 가족을 집에 숨겨야만 했던 수많은 이들에게 장애는 곧 모욕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조롱하는
장애 비하 용어들
뜻이나 어원을 모르는 채로 쉽게 쓰는 말들이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장애인먼저실천운동본부는 중앙장애인권익옹호기관과 함께 ‘바른 용어 사용하기 캠페인’을 시작하면서 ‘찐따’와 ‘땡깡’이 장애 비하 용어 중 일제 잔재라고 지적했다.
‘찐따’는 절름발이를 뜻하는 일본어 ‘찐바ちんば’의 변형으로 양쪽 다리의 길이가 달라 걷기 불편한 사람, 주로 소아마비를 가진 사람을 비하할 때 사용하던 단어다. 현재는 온라인상에서 ‘어딘가가 부족해 남에게 불쾌감을 주는 사람’을 비하할 때 흔히 사용한다. 또한 군대에서 ‘찐빠났다’는 말은 실수하거나 불량이 발생했을 때 또는 자동차 엔진이 이상 작동하는 상황에서 쓰인다. ‘찐따’에서 파생된 신조어들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 ‘문찐문화찐따’ ‘찐특찐따특징’ 등은 온라인상에서, 특히 유튜브나 게임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이다.
‘땡깡뗑깡’은 뇌전증을 뜻하는 일본어 ‘덴칸てんかん’에서 유래한 말로 억지를 부리며 우기는 모습이 뇌전증 증상과 비슷해 보인다는 이유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보통 ‘땡깡 쓴다’, ‘땡깡 부리네’, ‘땡깡 피운다’라고 사용한다. 뇌전증은 ‘뇌에 전기파가 온다’는 뜻을 담은 단어다. 뇌에서 비정상적으로 발생한 전기파가 뇌 조직을 타고 퍼지는 과정에서 경련성 발작을 일으키는 증상을 보이는데, 과거와 달리 적절한 약물 치료로 일상생활이 가능하다. 이 말은 예전에는 ‘전간’, ‘지랄병’ 등으로, 얼마 전까지는 ‘간질’이라고 쓰였다. ‘지랄’이란 표현 자체가 욕설로 쓰였고, ‘간질’도 사회적 편견이 심해 2014년부터 법령 용어에서 ‘간질’을 없애고 ‘뇌전증’으로 대체했다. 그러므로 ‘땡깡’ 대신 ‘생떼’ 또는 ‘억지’라는 말을 쓰면 된다.
‘간질’이 ‘뇌전증’이란 말로 바뀌었지만 아직 대중은 뇌전증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매년 3월 26일은 뇌전증 장애 인식 개선의 날인 ‘퍼플데이Purple day’다. 캐나다의 뇌전증 장애인 캐시디 매건이 2008년 3월 26일 하루 동안 보라색 옷을 입고 뇌전증을 알린 데서 유래했다. 캐나다 노바스코시아 뇌전증협회와 뉴욕 애니타 카우프만 재단이 동참해 2009년부터 이날을 퍼플데이로 지정했다. 한국에서도 뇌전증을 소개하고 편견을 해소하는 행사를 진행하는 등 미약하지만 퍼플데이를 기념한다. 전문가들은 주변에서 뇌전증으로 경련을 일으킬 경우 불필요한 행동을 하지 말고 주변에 위험한 물건이 없는지 확인한 뒤 지켜봐달라고 조언한다.
어떤 질환의 특정 증상을 가져와 욕설로 사용하는 사례가 우리 주변에는 너무 많다. 그 질환을 앓고 있는 당사자는 어딘가가 불편하거나 너무 고통스럽기 때문에 증상을 표출하는 것이다. 그런 증상을 나타내는 말들을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사용한다면, 우리는 아픈 누군가를 끊임없이 조롱하고 모독하는 셈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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