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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한 눈물
결혼한 뒤로 시외할머니를 뵌 적은 많아야 한두 번에 불과했다. 처음 뵈었던 것은 새 며느리를 맞이한다고 일가친척들이 모두 모여 흥겨웠던 자리였는데, 기억나는 것은 그분의 작은 몸집으로 감당할 수 없어 보이는 많은 양의 음식을 끊임없이 드시던 모습이다. 나는 시외할머니가 과식으로 배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어쩔 줄 몰랐으나 가족들은 모두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마음이 달라지셔서 그렇다.”
노인의 치매를 일컫는, 그 동네의 부드러운 어법이었다. 시어머니의 어머니인 그분은 그때 이미 96세로, 나는 그렇게 연세가 많은 어른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손주들도 그분의 기억에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고 내가 그분의 몇 번째 손자며느리인지는 아무도 세어보려 하지 않았다. 그분은 산나물, 생선회, 튀김, 심지어 꽈작꽈작한 오란다 과자까지도 보이는 대로 덥석덥석 입에 넣어서 수북하던 그릇을 깨끗하게 비워내기를 벌써 몇 차례나 하는 중이었다.
이렇게 많이 드셔도 괜찮을까 생각하며 살그머니 다가앉았더니 할머니가 낯선 인기척에 깜짝 놀란 기색이었다. 할머니는 젓가락질을 멈추고 나에게 물었다.
“밥 먹었나.”
“예, 먹었어요.”
“밥 먹어라.”
할머니는 당신이 드시던 음식 접시를 나에게 내밀었다. 내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으나 계속 권했다. 내가 할머니 너무 많이 드시는 거 아닌가 하는 걱정에 사로잡힌 것처럼 그분은 내가 혹시 굶었는가 하는 의혹을 내려놓지 않았다.
“애 왔다. 밥 줘라.”
누구에게 하는 소리인지 모르게, 내 밥을 챙겨주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가만 지켜보니 그분에게 남은 언어는 거의 그것뿐이었다. 밥 먹었나, 밥 먹어라, 애 밥 줘라.
인간의 소화기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도록 많이 드시던 조그마한 할머니. 그분이 뜬금없이 애 밥 주라고 한마디를 할 때마다 왁자하게 터지던 가족들의 웃음. 그날의 기억은 그것이 거의 전부다. 그분의 인생은 거의 소진되어 마지막 단계에 이르렀는데 100년에 가까운 그 시간을 증류해 가장 마지막 한 방울로 압축하면 가족들이 배고픈지 묻고 밥을 챙겨주어야 한다는 일념이었다. 젊은 나이에 돌림병으로 남편을 잃고 혼자서 어린 자식들을 키워내고 힘든 이웃들까지 품었던, 눈에 닿는 모든 사람들이 배고픈지 묻고 챙기던 사람다운 마지막 한 방울이었다. 시외할머니를 만난 뒤로 나는, 사람의 한 생을 마지막 한 방울로 증류한다면 각자에게 남는 그 마지막 정수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2년 후 어느 날, 시외할머니의 임종이 멀지 않았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시외가로 가는 차 안에서 시어머니는 자꾸 눈물을 훔쳤다. 자꾸 울면 떠나시는 분이 더 두렵지 않겠는가, 외할머니 앞에서는 울지 않고 담담해야 한다고, 가족들은 시어머니께 위로가 아닌 타박을 했다. 경상도 말로는 모든 말이 다 타박같이 들리기는 했다. 임종이 가까운 시외할머니 앞에서 울지 말아야 한다는 가족들의 배려에 동의해서, 나는 시어머니가 작별 인사를 하면서 너무 많이 울지 않기를 바랐다.
자리에 누운 시외할머니는 이도 없는 잇몸으로 딱딱한 오란다 과자를 끝없이 드시던 기억 속의 모습과 전혀 달랐다. 부종이 심해 피부가 한 겹 얇은 물주머니처럼 벼해 있었다. 숨을 쉬고, 찾아온 사람에게 가끔 시선을 맞추고, 숟가락으로 떠먹이는 보리차를 가끔 삼키는 것이 그분께 남은 마지막 삶의 기능이었다.
그 모습에 나는 알 수 없이 폭발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는 채 숨을 쉴 수 없을 만큼 통곡했다. 통곡보다 발작에 가깝도록 폭풍 같은 눈물이었다. 시어머니는 나 때문에 놀라서 울음이 쏙 들어가버렸다. 함께 있던 식구들도 놀라서 나를 쳐다보았다. 심지어 임종을 앞둔 시외할머니까지 나를 곰곰이 쳐다보았다. 얘는 누구길래 이러는가 궁금하게 여기시는 것 같았다. 오는 길에 나누었던 대화가 생각나 민망했다. 나는 놀랐고 부끄러웠고 울음을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눈물을 그칠 수 없었다. 내 안에서 다이너마이트가 터지듯 무언가가 터져버렸고 나는 그 대폭발을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얼굴이 퉁퉁 붓고 어질어질한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겨우 울음을 진정시켰다. 목이 잠겨 꺽꺽거리면서 나는 식구들에게 놀래켜서 죄송하다고 사과했다. 식구들은 더 묻지 않고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 며느리의 귀엽고 별난 면으로 여기는 것 같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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