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애들
카메라가 꺼졌다.
황은채가 오케이 사인을 보내기 무섭게 남선배가 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회사 안에서 청바지가 아니라 그럴듯한 정장을 차려입은 남선배의 모습은 여전히 낯설었다. 남선배가 내 시선을 눈치채고는 웃으며 말했다.
“야, 넌 어째 유튜브랑 잘 맞는 것 같다? 대본 없으니까 더 잘하네.”
그럼 대본이 있는 프로그램에서는 어떻다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나는 특유의 작위적인 미소를 지으며, 선배랑 함께 유튜브 프로그램 하나 맡아야 할 것 같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내 말에 황은채가 웃으며 말했다.
“김기자님, 실없는 소리 하는 버릇은 여전하네요.”
눈치 빠른 남선배가 은근히 하대를 하며 끼어들었다.
“황피디랑 김기자랑 어떻게 아는 사이라고 했지?”
황은채가 어물쩍대자 내가 잽싸게 답했다.
“언론사 시험 칠 때 같은 스터디 그룹이었어요.”
“그렇구나, 소중한 인연이네. 대단히 잘됐네. 둘 다 잘돼서 만났으니 정말 잘됐네.”
남선배 특유의, 같은 어미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리액션이었다. 나로서는 단순히 어휘력이 모자란 사람처럼만 느껴지는데 방송에서는 저런 화법이 꽤 잘 먹혔다. 오디오가 비지 않아서 그런가.
비지 않는 오디오.
그것은 남선배가 신입 기자 오리엔테이션을 진행하며 가장 먼저 강조한 덕목이기도 했다.
“오 초 이상 오디오가 비잖아? 그건 방송 사고야.”
그의 말을 대단한 격언이라도 되는 것처럼 받아 적던 때도 있었다. 그게 마치 지난 생의 일처럼 까마득했다.
“저는 화장실이 급해서 먼저 가보겠습니다. 대표님께 안부 전해주고요.”
대지 않아도 될 핑계까지 덧붙이고는 황은채에게 구십 도로 고개를 숙여 깍듯이 인사를 하는 남선배. 은근슬쩍 말을 놓을 때는 언제고 저러는 걸 보면 확실히 사회생활 십오 년 짬밥을 거저먹은 건 아니었다. 아나운서 실장인 남선배는 스스로를 유능한 사회인이라고 여기는 사람이었고 실제로 그 판단은 상당 부분 옳았다. 내가 기억하기로 남선배는 신입 때부터 지금까지 쭉 회사의 간판이었으며, 심지어는 지난 몇 년간 지리멸렬하게 이어졌던 언론 노조 파업 때조차 노조의 대표 얼굴이었다. 어느 집단에 속해 있든 항상 무리의 중심인 사람. 집단의 이익과 스스로의 정체성을 일치시킬 줄 아는 사람. 나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을 항상 동경하는 동시에 의아하게 생각해왔다.
황은채는 문밖까지 선배를 배웅한 뒤 다시 회의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스터디에서 만났다고? 언제 그렇게 순발력이 늘었대?”
“말도 마. 눈칫밥 삼 년에 거짓말만 청산유수다. 기자 똥은 개도 안 먹는다더니 그동안 는 건 맘고생이랑 구라밖에 없어.”
“하긴 솔직하게 다 말하기도 좀 그렇긴 해. 구질구질하기도 하고.”
그제야 나는 우리의 과거가 솔직하게 말하기 조금 그렇고 구질구질해져버린 무언가가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한때는 우리가 함께 일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공간이 우리의 자랑이었던 적도 있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게 못내 어색하게 느껴졌다. 황은채가 말했다.
“시간 되면 오랜만에 커피나 한잔할래?”
“좋지.”
황은채가 책상 위에 올려놓았던 검은 백팩을 멨다. 목선이 훤히 드러날 만큼 짧게 자른 그녀의 단발이 좌우로 흔들렸다. 통이 넓은 청바지와 오버사이즈 항공 점퍼가 썩 잘 어울렸다. 예전에는 단정하지만 불편해 보이는 투피스를 고수했던 그녀였다. 내가 알던 이십대의 황은채와는 여러모로 다른 사람처럼 느껴졌다.
고백하자면 연락을 받기 전까지 나는 황은채에 대해 단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
며칠 전 유튜브 섭외 요청, 이라는 제목의 메일을 보았을 때 한숨부터 나왔다. 최근 원치 않게 여론의 집중을 받게 된 이후로 부쩍 수상한 섭외가 늘었기 때문이었다. 경영진 교체 후 화려하게 현업으로 복귀한 남선배와 노조 파업 때 임시로 채용된 비정규직 사원 중 유일하게 정규직으로 전환된 내가 얼마 전 여덟시 뉴스의 앵커로 나란히 기용되는 대사건이 일어났다. 애초에 신입 기자가 메인 뉴스의 앵커로 선발되는 경우가 드문데다가 남선배와 함께한다는 사실이 불필요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여느 때처럼 영양가 없는 채널에서 간 보기 식으로 돌린 연락이겠거니 하고 무심히 넘기려 했는데 메일을 보낸 사람의 이름이 낯익었다. 다시 보니 내 첫 번째 직장의 유일한 입사 동기였던 황은채였다. 그녀가 꼬박 오 년 만에 내게 연락한 것이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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