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열매
아버지는 자기를 화장하고 나면 남은 유골을 화분으로 만들어달라고 했었다. 그건 정말이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평소에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워낙 자주 하는 사람이었어서 나는 무심코 그럴게요 하고 대답했었고 잠깐 이거 이상해, 생각했을 때에는 이미 아버지의 유골함을 무릎에 올려놓은 채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에 앉아 있었다.
버스 안에는 화장터 앞 정류장에서 함께 탔던 사람들이 몇 명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울었거나 울고 있거나 울 것처럼 보였고 그들에 비하면 나는 도시락 가방을 안고 어디 나들이라도 가는 사람 같아 보였다. 그런 생각이 들자 정말 이대로 나들이를 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 게 날씨가 아주 좋았고 바람도 선선한데다 집에서 가까운 공원과 그 앞에 있는 샌드위치 가게를 떠올리자 배까지 고픈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내리려고 했던 정거장에서 한 정거장 더 가서 공원 앞에 내리기로 마음먹고 노선도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그때 뒷자리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큰 소리로 흐느끼기 시작해 내 기분은 다시 망쳐졌고 나는 공원에 가지 않았다.
유골함을 찾아낸 건 그 뒤로 계절이 두 번은 더 바뀌고 나서의 일이었는데 나는 찬장 깊숙한 곳에 있던 그것을 미숫가루라고 생각하고 한 스푼 듬뿍 떠서 흠흠 냄새를 맡기까지 했다. 원래 저장식품을 넣어두는 용도로 쓰이는 평범한 찬장이었는데 대체 그게 왜 거기 들어 있었는지는 모를 일이었지만 먹지 않아서 다행이다 하고 뚜껑을 대강 닫아 싱크대 위에 놔두었다. 그런데 이게 또 그다지 좋은 자리는 아니었던 것이, 가스레인지 후드 아래에 서서 담배를 피울 때마다 그 유골함이 눈에 몹시 거슬렸기 때문이었다. 결국 어느 한가한 아침에 나는 그걸 가만히 들여다보다가 옥으로 된 것인 줄 알았던 유골함이 실은 옥처럼 보이도록 가공된 플라스틱이었다는 것을 깨달았고 왜인지 모르겠지만 그와 동시에 아버지의 허무맹랑한 부탁이 기억나서 뭐 들어줘볼까 어려운 것도 아닌데, 하고 담배를 피우며 생각했다.
아버지는 생전에도 그런 황당한 소리를 자주 하는 사람이었는데 아프기 시작한 뒤로는 더욱 심해져서 가끔은 그냥 나를 괴롭히려고 저러는 게 틀림없다는 생각도 들 정도였다. 갑자기 방게볶음이 먹고 싶다고 서해안엘 보내질 않나 〈아침마당〉에 왜 이금희가 안 나오느냐며 KBS에 가서 물어보고 오라고 시키기도 했고 텔레비전에서 옛 일본식 건물을 그대로 따라 만든 술집을 보고는 밤에 몰래 가서 불을 지르고 오라고 한 적도 있다. 거기다 대고 내가 잡혀가면 누가 아버지를 돌봐, 혼자서 화장실도 못 가는 주제에, 하고 볼멘소리로 대꾸하니 아버지는 휙 바람 소리가 나도록 돌아누워선 반나절이 넘도록 한마디도 하지 않다가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그런데 말이야, 파프리카 말이야, 빨간 파프리카랑 노란 파프리카의 차이가 뭐냐, 하고 내게 물었고 나는 설거지를 하다 말고 비눗물 묻은 손으로 휴대폰 검색을 해서 알려주었다. 빨간색은 골다공증에 좋고 노란색은 고혈압에 좋다는 것을.
물론 나도 매일 좋은 얼굴만을 할 수는 없어서 가끔은 짜증을 내는 적도 있었는데 한번은 금붕어를 열 마리만 사 오라며 이불 밑에서 꼬깃꼬깃 접은 이만 원을 꺼내 쥐여주기에 군소리를 하기도 싫어 잠자코 이천 원짜리 금붕어를 열 마리 사다준 적이 있다. 그랬더니 그걸 들고선 화장실에 데려다달라고 하고는 한참 나오지 않기에 무얼 하나 슬쩍 들어가 보았더니 욕조에 물을 받아 금붕어를 풀어선 한 마리씩 손바닥 위에 건져놓고 주무르고 쓰다듬으며 들여다보고 있는 거였다. 아버지 미쳤어? 내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아버지가 맨숭맨숭한 얼굴로 돌아보며 말했다. 물고기들은 사람 손이 닿으면 화상을 입는다는 게 정말인지 궁금해서 그런다. 나는 화장실 문지방 위에 선 채 잠깐 멍해졌다가 다시 한번 소리를 질렀다. 정말 가지가지 하셔! 가지가지!
그런데 아버지도 호락호락한 인간은 결코 아니라 내가 짜증을 낼 때마다 내미는 이를테면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을 필요할 때마다 요긴하게 써먹곤 했다. 그건 내가 여섯 살 때 아버지가 나를 데리고 수영장에 갔던 어느 여름의 일에 관한 것이었다. 나는 무릎까지 오는 어린이용 풀에서, 아버지는 성인용 풀에서 각각 수영을 하고 있었는데 어린이용 풀이 금세 지루해진 나는 성인 풀 쪽에 갔다가 미끄러져 빠지고 말았고 마침 평일 오전의 수영장에는 나와 아버지밖에 없었다.
나는 서른이 넘은 지금까지도 이 순간의 모든 것을 기억하고 있는데 수영장 천장에 끼워진 네모난 유리 귀퉁이마다 빗물이 마른 흙먼지가 더께더께 덮여 있던 모양이나 락스 냄새가 나는 물이 몸의 모든 구멍으로 침입해 내 피를 굴복시키고 나를 차지하려 했던 것이나 바닥을 밟는 익숙한 감각을 찾아 온 신경을 집중하고 간절하게 아래로 뻗어대던 막막한 발바닥, 그런 것들을 전부 선명하게 기억한다. 게다가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나는 마치 물에 빠진 나인 동시에 수영장 천장에서 나를 내려다보는 나인 것처럼 관찰자의 시선으로 허우적거리는 나를 바라볼 수도 있는데 그건 그것대로 역시 또렷해서 빨간 땡땡이 무늬 수영모를 쓴 못생긴 여자아이가 서서히 익사해가는 것을 스노볼을 들여다보듯 환히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날의 일에 관해 단 하나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아버지가 나를 구해주는 장면이었다. 그건 그 일에 대해 아버지가 기억하는 유일한 것이기도 했는데 아버지는 내가 빠지는 것을 보자마자 바로 헤엄쳐와 나를 건져냈다고 한다. 아버지의 비장의 무기가 바로 그거였다. 아버지는 내가 짜증을 부리거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때마다 이날의 이야기를 꺼냈는데 말랑한 내 어린 몸이 얼마나 유연하게 자기의 목에 들러붙었는지, 숨을 쉬겠다고 제 아비의 머리를 짓누르던 힘이 얼마나 셌는지, 이런 것들을 이야기하면서 꼭 마지막에는 그때 내가 없었다면 넌 빠져 죽었을 거다 하고 엄숙하게 말하는 것이었다. 물론 나도 가만히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으니 아버지가 되어서 딸을 구해준 게 뭐 그리 유세냐고 되받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말을 들으면 입이 탁 막히고 온몸이 묵직해져서 결국 코코넛 워터라는 것을 사러 새벽에 편의점에 가거나 제조 회사에 전화를 걸어 선풍기의 날개는 왜 왼쪽으로만 도는지 묻고는 했었다.
이제 아버지는 죽고 없지만 싱크대 위에 동그마니 올라앉은 유골함을 볼 때마다 나는 꼭 그때와 같은 기분이 되었는데 그건 살아 있는 아버지와는 달리 그냥 무시해버리면 그만이라 그다지 불편하지는 않아서 나는 유골함을 베란다에 갖다놓으며 언제 양재동 갈 일이 있으면 화훼단지에 들르지 뭐, 하고는 잊어버렸다. 그런데 다음 날 이상하게도 나는 원래 그러려고 했던 것처럼 아침에 일어나 밥을 먹고는 대강 화장까지 한 채 양재동에 가는 버스를 타고 있었고 버스 안에서 잠깐 졸다 깨고 나서야 아, 걸려들었다, 하고 깨달았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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