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즈니는 어떻게
프린세스 브랜드를
되살렸을까?
‘월트 디즈니 컴퍼니The Walt Disney Company’는 세계 3대 미디어 그룹 중 하나이자 캐릭터 라이선스를 가장 많이 보유한 기업입니다. 1937년 세계 최초의 컬러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를 탄생시킨 이래 수십 편의 극장용 애니메이션을 제작했고, 2020년대에 이르러서는 영화 제작사이면서 동시에 그 자체로 TV 채널, 장난감, 테마파크를 아우르는 1,953억 달러 규모의 문화 현상으로 진화했습니다. 그중에서도 ‘디즈니 프린세스Disney Princess’는 55억 달러에 상당하는 브랜드 가치를 뽐내며 소녀들을 겨냥한 대표 프랜차이즈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디즈니의 첫 작품이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Snow White and the Seven Dwarfs〉였던 까닭에, 디즈니 프린세스는 마치 디즈니의 시작과 동시에 탄생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디즈니 프린세스 프랜차이즈가 공식적으로 기획된 것은 불과 20여 년 전 일입니다. 문화적 배경과 지역, 세대가 다른 여덟 명의 공주를 하나의 브랜드로 묶어서 마케팅하겠다는 아이디어는 전 나이키Nike 임원이자 당시 디즈니 컨슈머 프로덕트consumer product 사장이었던 앤디 무니Andy Mooney가 처음 제시한 것이었습니다.
〈디즈니 온 아이스Disney On Ice〉라는 쇼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무려 1987년부터 월드 투어를 이어온 디즈니의 전통적인 아이스 쇼입니다. 2000년, 앤디 무니는 그곳에서 뮬란과 백설 공주 코스튬을 입은 어린이 수천 명이 디즈니 캐릭터를 가장한 피겨 스케이터들에게 열광하는 광경을 목격합니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현장은 마치 “어린 공주들을 위한 록 콘서트”와 같았다고 합니다. 그는 여기서 ‘디즈니의 모든 공주를 하나의 프랜차이즈로 결합하여 브랜드화해보면 어떨까?’라는 영감을 얻습니다.
당시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 발상은, 한 연구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소비자들이 지폐로 투표한 시장市場 선거’에서 압승을 거둡니다. 2002년과 2005년 사이에 디즈니 프린세스 프랜차이즈가 무려 300% 성장률을 달성하며, 곰돌이 푸Winnie-the-Pooh와 미키 마우스Mickey Mouse를 제치고 디즈니에서 가장 인기 있는 브랜드로 떠오른 것이지요. 오늘날 디즈니 프린세스는 전 세계 90개국의 시장을 상대하는 명실상부 세계 최대 규모의 소녀 타깃 프랜차이즈입니다.
팀 디즈니의 심폐소생 메르헨
이때 밀레니얼 키즈를 사로잡은 주역은 1937년에 제작된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나 1950년대에 제작된 〈신데렐라Cinderella〉 〈잠자는 숲속의 미녀Sleeping Beauty〉가 아니었습니다. 1984년, 디즈니는 파라마운트Paramount의 CEO였던 마이클 아이즈너Michael Eisner를 고용하며 다른 스튜디오 출신 인재들을 적극적으로 영입합니다. 일명 ‘팀 디즈니Team Disney’로 불리는 이 새로운 임원진은 디즈니의 정체성 중 하나인 ‘고전동화 각색으로의 귀환’을 추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각색이란 ‘현대적 각색’으로, 과거의 성적, 문화적 차별 및 편견을 바로잡으려는 시도를 포함하고 있지요. 비록 모든 작품이 고정관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지만, 이 시기 디즈니의 공주 영화에서 우리는 그러한 시도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팀 디즈니의 첫 작품인 〈인어 공주The Little Mermaid〉는 그때까지 디즈니가 다루지 않았던 스토리를 만들어냈습니다. 바다 왕국을 다스리는 왕이자 주인공 아리엘의 아버지인 트라이튼은 아리엘이 왕국 너머를 탐험하는 것을 엄금합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Joseph Campbell은 모든 영웅의 여정은 자신의 무게중심을 사회의 울타리 내부에서 미지의 영역으로 옮기면서 시작된다고 했는데요. 결국 아리엘 역시 위험을 감수하고 마녀 우르술라와 거래한 뒤, 왕국을 떠나 인간 세상으로 새로운 모험을 떠납니다. 본래 남성 주인공들이 독점해왔던 영웅 서사와 그 영웅 서사를 현대적으로 이어받은 어드벤처adventure 장르에, 드디어 여성 주인공이 등장한 것입니다.
이때까지 디즈니의 작품들이 여성을 오랫동안 억압당하는 죄수처럼 묘사해왔던 것을 생각하면 참 놀라운 변화입니다. 마치 그 빚을 갚기라도 하려는 듯, 〈인어 공주〉를 시작으로 팀 디즈니의 작품 속 공주들은 구속을 거부하고 마침내 해방되어 영웅으로 변모합니다. 팀 디즈니의 마지막 공주 뮬란은 그런 점에서 최고의 면모를 지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뮬란Mulan〉의 중심 서사는 로맨스에 의존하지 않을뿐더러, 주인공인 뮬란의 성정도 전통적인 여성상과 거리가 멉니다. 영화 초반부에 등장한 노래 〈가문을 빛낼 거야Honor to Us All〉의 가사에 따르면, 당시 뮬란이 살고 있던 사회에서 ‘여자가 가문을 빛낼 수 있는 길은 하나, 멋진 상대 만나 시집을 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뮬란은 다릅니다. 뮬란의 동료 군인들이 저마다 이상형을 이야기하며 〈상냥한 내 여자A Girl Worth Fighting for〉를 부르는 장면을 떠올려볼까요? 뮬란은 자신을 빗대어 “똑똑한 여자는 어때? 항상 당당한 여자 말이야.”라고 묻지요. 그리고 단번에 “싫어!”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그렇지만 뮬란의 이 ‘똑똑함’의 진가는 이후 흉노족 대장 샨유를 물리치고 황제를 구출할 지략을 짜내는 과정에서 완벽하게 발휘됩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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