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이 고여 든 곳,
양동 쪽방촌
/이동현
서울역 맞은 편, 남대문 경찰서 옆으로 난 언덕길을 오르면 낮고 낡은 건물들이 나타난다. 세월을 몇십 년은 되돌린 듯 보이는 풍경, ‘양동’陽洞이다. 볕이 잘 드는 동네라서 붙여진 이름이라지만, 지금은 빌딩숲에 가려 볕이 머무는 건 찰나다. ‘양동’이라는 지명은 1980년, 서울시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남대문로5가동에 편입되면서 폐지되었다. 그런데 요즘 다시 이 오래된 지명이 회자되고 있다. 재개발 때문이다.
사실 양동은 오랫동안 가난한 이들의 삶터였다. 해방 직후만 해도 여느 주택과 상가가 모여 있는 평범한 동네였던 양동은 한국전쟁 이후 난민들이 모여 판잣집을 짓고, 서울역을 오가는 사람을 상대로 한 숙박업소가 들어서면서 성매매 집결지로 유명해졌다동네의 3분의 2를 점했던 성매매 집결지는 1967년부터 철거되는 과정을 거치며 쇠퇴하기 시작했다. 또 1970년대 양동과 도동 일대에는 하루 400원, 500원 수준의 하숙집들이 있어 넝마주이, 구두닦이, 껌팔이 등이 잠자리가 되었고, 1980년대에는 일세 2000원 수준으로 셋방이 운영되었다.
그러나 1960, 70년대부터 주기적으로 이루어진 판자촌 철거와 도심 재개발로 가난의 흔적들은 조금씩 지워지기 시작했다. 1978년 9월 26일, 건설부 장관은 고시 제285호를 통해 양동 2만7000평8만7868제곱미터 일대를 ‘재개발 사업구역’으로 지정했다. 개발을 선도한 것은 힐튼호텔이었다. 이듬해인 1979년, 재개발구역 제7지구양동 10번지 일대에 대우개발과 미국 힐튼호텔이 합작해 건설하는 서울 힐튼호텔 건축이 허가되었다. 호텔 건설 과정에서 600여 명의 세입자들은 그들의 삶터를 내줘야 했다. 또 1985년 10월, IMF 총회가 힐튼호텔에서 열리기로 결정되며, 외국인을 위한 임시 주차장 건립을 위해 또 한 차례 철거가 이루어졌다. ‘양동 세입자 부녀회’는 성명서를 통해 “우리를 먼저 아파트에 입주시킨 후 철거하라” 등 7개 요구안을 내걸고 싸웠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 건물주들은 ‘도동’의 일부가 ‘양동’에 편입된 것을 계기로 ‘양동’이라는 동네 이름이 ‘사창가, 무허가 하숙촌, 우범지대의 대명사’라며 개명 운동을 벌였고, 1980년 7월 1일부터 양동은 ‘남대문로5가동’으로 바뀌었다. 당시 언론은 이를 “오명에 시달린 6000여 주민 개명 운동… 4년 반 만에 결실”이라고 보도했다.
동네 이름은 바뀌었지만 양동에는 여전히 그늘진 삶들이 모여들었다. 특히 1998년 IMF 경제 위기를 거치며 양동은 도시 빈민 최후의 주거지인 ‘쪽방’으로 기능하기 시작했다. 양동에서 남대문로5가동으로 법정동이 변하고, 무허가 하숙촌에서 쪽방으로 지칭이 변했지만 양동에 고인 것은 여전히 가난이었다.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상황이 달라졌다. 2017년 10월, 서울 중구청이 “양동 도시환경 정비 구역 변경 지정(안) 공람 공고”를 통해 개발 계획을 변경하겠다고 예고한 것이다. 그리고 2019년 10월, 서울시가 “양동 도시정비형 재개발구역 정비 계획 변경안”을 가결함으로써 재개발 바람이 다시금 불기 시작했다.
40년 넘게 미동조차 없던 쪽방 일대의 재개발이 시작된 건 왜일까? 대답은 단순하다. 공원을 만들겠다는 최초의 계획이 건물을 짓는 계획으로 변경된 것이다. 고시에 따르면 이는 “쪽방이나 저층 주거가 다수 밀집한 현황 여건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쪽방 주민들 때문에 공원이 아닌 건물을 짓도록 개발 계획이 변경된 것이다.
건물주들은 재빨리 움직였다. 쪽방 대부분은 ‘관리자’라고 불리는 무허가 임대업자가 건물 내지 층 단위로 건물주로부터 방을 임차해, 이를 다시 쪽방 주민들에게 월세 내지 일세로 임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보증금은 없지만 단위 면적당 임대료는 강남 고급 아파트의 곱절에 가까울 만큼 턱없다. 이런 운영 방식 탓에 쪽방 주민들은 대개 건물주 얼굴을 볼 일이 없다. 그런데 최근 1, 2년은 달랐다. 건물주들이 쪽방 주민들을 찾아오기 시작한 것이다. 집을 비우라고 독촉하기 위해서다.
이유는 다양했다. “형제들 사업이 잘못돼서 집을 팔아 도와줘야 하는 상황이다”, “4월부터 리모델링 공사를 할 예정이다”, “게스트 하우스로 업종을 변경하려 한다”, “붕괴 위험이 있어 외부 공사할 때까지 일시적으로 폐쇄해야 한다”. 공통적인 것은 그 누구도 재개발을 이유로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게스트 하우스, 리모델링, 외부 공사를 하겠다던 건물들은 1년이 지나도록 그저 폐쇄된 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현재 양동 개발 지역11, 12지구 쪽방 건물 19개 중 9개는 폐쇄되었고, 2개도 일부 층이 폐쇄된 상태다.
2019년 말 400명가량이었던 주민들은 이제 절반으로 줄어들었다. 모두 건물주 또는 건물주의 사주를 받은 관리자들에 의해 쫓겨났다. 그들은 보통 두어 달 치 월세를 면제해준다는 식으로 집을 비웠다. 빈집인 상태로 개발을 시작해야 도시정비법과 토지보상법이 세입자들에게 보장하는 주거 이전비, 임대주택 공급 등과 같은 의무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솔직히 화딱지가 나더라고. 제가 상식은 없지만 이건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소리거든요. 일단 답을 내놓을 수 있는 건 서울시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올봄 남대문로5가 622-6번지 쪽방에서 살던 김 씨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의 집 역시 폐쇄되었고 김 씨도 어디론가 떠났다. 그의 바람대로 서울시가 개입했더라면 어땠을까. 양동 정비 계획이 고시되고 나흘 후, 국토교통부와 서울시, 영등포구는 기자회견을 열어 영등포 쪽방촌 공고주택 사업 추진 계획을 밝혔다. 쪽방 주민들을 내몰았던 과거의 개발과 달리, 영구 임대주택을 지어 쪽방 주민들이 100퍼센트 재정착하게 하고, 개발 기간 동안 거주할 선先이주단지도 공급하겠다는 것이었다. 더불어, 이날 박원순 시장은 “앞으로 영등포 쪽방촌뿐만 아니라 서울에 남 있는 네 군데 쪽방촌도 같은 모델로 사업이 시행되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그의 희망은 시정으로 구현되지 않았다. 오히려 서울시는 개발 사업에 따른 쪽방 주민 퇴거에 대한 대책 요구에 ‘민간 주도 개발에 서울시가 개입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라는 입장으로 일관했다.
그러는 사이 양동 쪽방촌의 건물들은 계속 비워지고 출입구에는 자물쇠가 물렸다. “보증금도 없는 게!”라는 쪽방 관리자의 비아냥대로 쫓겨난 이들이 선택할 수 있는 다음 거처는 뻔했다. 또 다른 쪽방이나 고시원, 그리고 ‘거리 위’라는 벼랑 끝도 있다. 이렇게 밀려나도 괜찮은 걸까.
2019년, 홈리스 주거팀의 실태 조사에 따르면 양동 재개발 지역 쪽방 주민들의 83.1퍼센트는 재개발 이후 다시 돌아오고 싶다고 했다. 동네가 익숙하고24.3퍼센트, 교통이 좋은데다15.7퍼센트, 이웃들과 계속 함께 지내고 싶기 때문15.7퍼센트이다. 이렇듯 소박한 갈망은 건물주들이 그려 놓은 양동의 미래 속에 갈 곳을 잃는다. 하지만 과연 타워팰리스보다 높은 월세를 상납하며 양동을 떠받쳐 온 쪽방 주민들에게 아무런 권리가 없는 걸까? 현재 진행형인 쪽방에서의 삶은 왜 양동의 미래를 함께 그릴 자격을 보증하지 못하는 걸까?
이 책은 양동을 지켜 온 이들의 삶의 궤적을 듣기 위해 주민들에게 이야기를 청하면서 시작됐다. 여덟 명이 말하고 열한 명의 작가들이 들었으며, 이들과 함께한 활동가 둘이 이야기를 보탰다.
여덟 살에 양동 쪽방에 들어와 몇 차례 철거를 당하고도 70년 가까이 양동을 지킨 권용수. 늘 “마지막”이라 여기고 방을 잡지만 양동 쪽방촌 애에서 이사를 반복하고 있는 강성호. 오랜 거리 생활 끝에 찾아든 “쪼깨만 한 쪽방”이지만 누구보다 널따란 대인관계를 일군 김강태. 양동에 들어왔다 나가기를 반복한 지 30년, 일하지 못하는 몸이 된 후에야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어 전입신고를 한 문형국. 이 동네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염전과 리어카 위 한뎃잠을 지나고 온 “첫 내 집”이어서 머물고 싶다는 이석기. 개발한다고 쫓아내는 게 불안하지만 “안전한 곳”을 찾으려면 “악착같이 버텨야” 한다 말하는 장영철. 임금보다 주거가 다급했던 “머슴살이” 삶의 끝에 양동에 정착해 딸과의 재회를 꿈꾸는 김기철. 가정 폭력을 피해 찾아든 양동에는 “우리 아저씨”와 함께 이웃들을 챙기며 살아가는 이양순.
화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우리 사회에서 가난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그 덫에서 빠져나오기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그리고 이들을 우리 사회가 어떻게 대해 왔는지 선명하게 드러난다. 갈 곳 없는 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감금되고, 착취되고, 누군가의 이익을 위한 재료로 소모될 때 우리 사회는 무엇을 했는가? ‘재개발’을 명목으로 우리는 이들이 또다시 어디론가 휩쓸려 가도록 내버려 둬야 할까? 이들의 이야기를 들은 작가들은 그렇게는 못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리라 믿어 보고 싶다.
(본문 중 일부)
★ 저작권법에 의해 한국 내에서 보호를 받는 저작물이므로 무단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