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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 이리시 창현동 성당 옆에는 부설 유치원이 하나 있었다. 부모님은 나와 남동생을 모두 그 유치원에 보냈다. 천주교인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니꼴라 유치원」에서 묘사했듯 그 유치원이 이리에서 꽤 유명한 교육기관이었기 때문이다. 다섯 살 아래의 남동생이 다닐 무렵에는 덜했던 모양이지만, 내가 입학할 때는 정말로 경쟁이 치열했다. 그러나 부모님은 소문만 들었을 뿐 그 실상은 잘 몰랐다. 경쟁이 치열하다고 해봤자 뭐 얼마나 대단하겠나. 그래봤자 유치원인데 일단 가보자. 그러면 어떻게든 되겠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입학 접수를 하러 간 날 아침, 부모님은 건물 밖까지 줄을 선 사람들을 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리시의 학부모란 학부모는 다 온 것 같았다. 내 이름은 당연히 후보 명단에도 오르지 못했다. 그해 나는 다른 유치원에 다녔고, 다음해에야 창현동 유치원에 입학했다. 부모님이 다른 사람들처럼 접수일 새벽부터 줄을 선 덕분이었다. 내게 창현동의 그 유치원이 정말로 좋았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냥 평범했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는 빨리 집에 가서 혼자 만화영화를 보고 싶어하는 부류의 아이였기 때문에, 매일 모두와 함께 노래를 부르고 율동을 하는 그 생활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어서 집에 가서 편히 있고 싶다는 생각을 더 많이 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히 기억하는 사실은 있다. 그 유치원에서 매를 맞는 일은 없었다. 엉덩이를 두드려 맞거나, 꿀밤을 쥐어박히거나 뭔가를 모른다고 망신당하는 일은 없었다. 그건 확실하다.
그러나 지금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확실함과는 거리가 멀다.
내가 소설에서 써먹은 것, 그러니까 강렬한 영감을 받은 것은 그 유치원의 교육적 목표나 성과가 아니었다.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입학 경쟁이 치열했고 내 부모님 역시 거기에 뛰어들었다는 일화였다. 뭔가 좀 웃기면서도 섬뜩한 느낌이 드는 소재라고 생각했다. 고백하자면, 때문에 애초 나는 유머러스하고 수다스러운 작품을 쓸 생각이 전혀 없었다. 나는 「니꼴라 유치원」을 아주 괴팍하게 만들 생각이었다. 잔인하고 못된 감정이 가득한 소설로 쓸 생각이었다. 정말 그런 소설을 쓰고 싶었다. 인물들이 맹렬하게 경쟁하는 이야기. 원한과 증오, 악의로 들끓는 이야기. 나는 복수가 무엇인지 보여주고 싶었다. 그러나 소설은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의도와는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되었다. 그렇게 쓰여졌다.
물론 이런 일은 흔하다. 사실, 소설을 시작할 때 나는 매우 감정적인 상태다. 엄청난 소재를 발견했다는 착각에 흥분해 있다. 하지만 감정과 소재가 뭉쳐진 덩어리를 자르고 다듬는 과정에서 내가 진짜 다뤄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마주하게 된다. 질문하게 된다. 나는 무엇을 쓰려 했던가. 무엇을 써야 하는가. 그에 답하며 더듬더듬 걸어나가다보면 어떤 실루엣이 조금씩 보인다. 결국 소설은 언제나 의도와 다른 작품이 된다. 그래서 나는 소설을 완성하고 나면 작품이 처음 쥐고 있었던 감정과 소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졌는지를 확인해보곤 한다. 안심하기 위해서다. 시작할 때의 마음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당시 목도한 어떤 상황에 대한 나의 감정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내가 소설을 썼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완전히 다른 소설을 쓴 건 난생 처음이었다. 이건 의도에서 멀어진 정도가 아니었다. 딛고 선 땅이 훅 뒤집힌 느낌이었달까. 「니꼴라 유치원」은 지금껏 내가 써왔던 스타일, 이야기, 주제와 아주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의아했던 건, 어쨌든 내가 이 소설을 완성했다는 사실이었다. 그게 그렇게 호들갑을 떨 일인가? 소설을 완성했다면 된 거 아닌가?
아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소설을 쓰지 못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뒤집힌 창작 의도, 스타일, 그런 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 소설을 써야겠다고 생각한 순간부터, 나는 그냥 단 한 줄도 쓸 수 없었다.
그래. 단 한 줄도.
비유가 아니다. 말 그대로다. 나는 컴퓨터 앞에 정지된 상태로 아주 오래도록 앉아 있었고.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처음에는 슬럼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첫 책도 출간하지 않은 신인 작가였다! 꼴랑 단편소설 서너 편을 발표했을 뿐이었다. 겨우 그걸 쓰고 슬럼프라고? 말이 안 됐다. 하지만 책상 앞에만 앉으면 머릿속이 뭉개졌다.
아, 그때의 느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까.
어깨와 머리가 짓눌리듯 아팠고, 속이 메슥거렸다. 매일 밤 악몽을 꿨고, 밥도 거의 먹지 못했다. 뭘 좀 쓰겠다는 마음을 먹기만 하면 속이 뒤집히고 식은땀이 났다. 누군가에게 두들겨맞는 것 같기도 했고, 목을 졸리는 것 같기도 했다. 불안했다. 너무 불안했다. 뭐랄까…… 마치 뭐에 씐 것 같았다. 글을 쓰는 것이 두려웠다. 무슨 일이 일어날 것만 같았다. 끔찍하고 지저분한 일에 처박힐 것만 같았다. 빠져나오지 못할 것 같았다. 영원히 허우적대다 나 자신을 잃어버리게 될 것 같았다. 괴로웠다. 너무 괴로웠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을 보냈을까. 한 달? 두 달? 결국 어느 날 나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더는 이렇게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고 말이다. 속으로 중얼거렸다 한 글자라도 쓰자. 그래, 일단 쓰자. 써야 계속 쓸 수 있어. 하지만 이제 와 돌이켜보면 그런 생각도 든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쓰고자 했을까. 대체 쓴다는 것은 무엇일까. 나는 왜 그렇게 끝까지 포기하지 못했을까? 왜?
어쨌든 나는 결국 책상 앞에 앉았다. 심호흡을 하고 키보드에 손가락을 올렸다. 간신히 제목을 썼다. ‘니꼴라 유치원’.
아, 음험하고 비밀스러운 곳. 사람들이 몰려들고. 욕심을 부리고! 경쟁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내 아이, 오직 내 아이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사람들!
그 순간, 어떤 소리가 들렸다.
분명히 기억한다. 칠판을 손톱으로 긁는 듯한 고통스러운 소음이 귓속에서 길게 울려퍼졌다. 그리고 나는 상像에서 튕겨져 나왔다. 이제 내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어둠과 적막만이 있었다. 나는 혼자였다. 그제야 나는 알아차렸다. 세상에. 이건 슬럼프가 아니다. 나는 정말로 뭐에 씌었다.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그때의 감정과 기억을 되살려 무언가를 만들어내려고 할 때마다 실제로 누군가가 훼방을 놓고 있는 것이다. 내 머리를 밟아 짓누르며 낄낄 웃고 속삭이는 것이다. 누구지? 대체 누구야? 나는 머릿속 소리에 집중했다. 나를 잡아먹으려 하는 그 감정을 뚜렷하게 느꼈다. 증오. 원한. 미움. 나는 그 목소리를 들었다. 네가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네가? 감히 네까짓 게? 착각하지 마. 너는 그 무엇도 아니야. 아무것도 아니야.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아아. 나는 그 목소리를 알고 있었다! 무언가에 씐 이 기분. 앞으로 나아가고 싶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 느낌. 누군가에게 꽉 붙들린 듯한 절망감.
아주 오래전에도, 나는 이런 식으로 붙잡힌 적이 있었다.
여섯 살 무렵, 아주 어렸던 그 시절, 나는 처음으로 그 소리를 들었다. 너는 아무것도 아니야. 그것은 나를 미워하고 증오했다. 나를 짓밟고 싶어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가. 얼마나 방심했던가.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고. 멀어졌다고! 나는 감히 기뻐했다. 하지만 그것은 나를 잊지 않았다. 내가 어린 시절로 돌아가려 하자마자 틈을 놓치지 않고 내게 다시 달려든 것이다. 이제 나는 그 소리의 정체를 잘 알고 있다.
그것은 바로 악의惡意.
그래. 바로 악의다.
그러나, 과연 진짜였을까.
그저 소설이 잘 써지지 않아 괜한 핑계를 댔던 건 아닐까. 사실 그때도 그런 생각을 하긴 했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어떻게 진짜라고 확신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성인의 기억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 나는 근래 일어난 일을 과연 온전히 기억하는가? 확신할 수 있는가? 내가 소설을 쓸 때 동원하는 기억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과연 그 모든 걸 다 진실이라고 말할 수 있는 걸까.
이를테면, 이런 일이 있었다. 그 유치원 건물 지하에는 음악실이 있었다. 여름에도 한기가 느껴질 만큼 온도가 낮은 곳이었다. 둥근 돔 형태의 천장 때문인지, 노래를 부르면 소리가 커다랗게 둥둥 울렸다. 그럴 때면 건물이 꼭 살아 있는 것만 같았다. 거대한 짐승의 뱃속에 들어온 듯했다. 꿈틀거리며 음산한 노래를 흥얼거리는 붉은 벽돌. 그 소름 끼치는 한기와 불안하고 은밀한 선율은 매력적이면서도 공포스러웠다.
그런데 어느 날, 나는 그 음악실이 유치원이 아니라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건물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나는 기독교 선교사가 설립한 백 년이 넘은 고등학교에 다녔는데, 바로 그 오래된 건물 지하에 음악실이 있었던 것이다. 조금 더 정확히 묘사하자면 음악실은 선교사의 이름을 따서 지은 스톤관 옆의 대강당 건물 지하에 있었다. 그리고 스톤관과 대강당 사이에는 학교 뒤뜰로 이어지는 긴 회랑이 있었다. 야간자율학습이 시작되기 전이면 기독교인 친구들은 지하 음악실에 모여 기도를 했고, 그러면 수많은 목소리가 그 긴 회랑을 통과하며 아름답게 울려퍼지곤 했다. 그 소리를 들을 때면, 대체 왜인지 모르겠지만 기억 속의 나는 회랑 안을 언제나 홀로 걷고 있다.
어째서 나는 두 기억을 혼동했던 것일까. 하필이면 왜 유년 시절에 나를 괴롭힌 소리가 훗날의 잔상과 뒤섞인 것일까. 악의가 정말로 유년 시절에 처음 등장했다면, 그 시절의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라면 음악실을 떠올렸을 때는 나를 내버려뒀어야 하는 게 아닐까. 그건 무려 열일곱 살 때의 경험이니까. 아아, 혹시 악의는 어린 시절 이후 나의 일부가 되어버린 것일까. 그래서 기억이 구분되지 않는 것일까. 만일 그것도 아니라면, 이 모든 것이 나의 착각과 핑계란 말인가. 나는 오래 고민했으나 어떤 답도 얻지 못했다. 내 기억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만 확인했을 뿐이다.
그래서 지금부터 할 이야기도 내가 분명히 겪은 일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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