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당신이 콜센터에
면접을 보러 간다면
당신이 콜센터에 면접을 보러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을 해보자. 카톡으로 전달 받은 주소를 지도에서 검색해보니 사무실은 누가 봐도 회사가 가득한 비즈니스 거리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중에서 접근성은 좀 미묘한 곳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비즈니스 거리이기는 한데 비교적 외곽에 위치한, 적당한 고층 건물이다.
건물에 도착해 옷매무새도 다듬을 겸 화장실부터 들른다. 화장실이 더럽지는 않네 생각했다면 비교적 둔하거나 긍정적인 사람일 것이다. 청결도는 나쁘지 않더라도 휴지가 없다거나 액체비누가 다 떨어진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 사무실은 하여간 유별나.” 마침 등장한 청소부가 툴툴거리며 이 칸 저 칸을 들락거린다.
사무실 앞에 도착하니 안쪽에서 담당자라는 사람이 나와서 안내한다. 사무실은 밖에서 지문을 찍어야 문이 열리는 구조다. 콜센터라는 곳 자체가 고객의 개인정보를 대량으로 보관하고 있고 이를 전산으로 조회하고 수정하는 것이 가능한 공간이라 보안은 필수다…, 그런 설명을 해주면 좋겠지만 아마 담당자는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않을 것이다. 면접을 1년에 몇 번씩 보는데 그때마다 일일이 그런 설명을 해주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 정도나마 말해주면 나름 섬세하게 배려하는 타입이다.
“지문 찍으셔야 문이 열리고요. 퇴근 시간 체크도 이걸로 하니까 갈 때도 찍으시는 거예요.”
사무실로 들어선다. 사무실은 좋게 말하면 바빠 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시끄럽다. 콜센터가 처음이라면 그저 수십 명이 동시에 화면을 보면서 통화를 하는 웅성거리는 소리로만 들리겠지만, 당신이 신입이 아니라 콜센터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다면 이 시점에서 단 몇 가지 소리만 체크해도 여기가 일할 만한 곳인지 아니면 기피 대상에 올려야 할 곳인지 판별이 가능하다.
거의 모든 자리에서 상담사들이 쉬지 않고 응대에 적당하다고 알려진 도레미파솔 중 솔 톤으로 전화를 받고 있는 것이 보이는가? 그렇다면 우선 이곳은 몹시 바쁜 곳이다.
그런데 정말 콜이 많아서 바쁠 수도 있고, 다른 이유가 있어 바쁜 것일 수도 있다. 이럴 때는 상담사들 모니터에 띄워진 전산 프로그램이 재깍재깍 반응하는가, 아니면 내일 모레쯤 화면이 바뀔 것처럼 로딩만 계속하고 있는가 살펴보는 것도 방법이다. 물론 상담사의 모니터가 전혀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잠시만 기다려주시겠습니까?”
이 소리가 얼마나 자주 나오는지 들어보면 된다. 상담사가 타이핑이 느리거나 전산 다루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때 이런 멘트를 쓰기도 하지만 타이핑이 빠른 사람도 있고 전산 다루는 것도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니 이 멘트는 자주 나오는 말은 아니다. 그럼에도 상담석 곳곳에서 거름망에 부은 물처럼 이 ‘대기 양해 멘트’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면? 그렇다면 십중팔구 누구도 어떻게 구원할 수 없는 구형 전산 탓에 상담사들이 고객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 자신의 의지나 업무 능력과는 상관없이 시간이 늦어지고 있는 데 대해 고객에게 양해를 구하며 진땀을 빼는 상담사들 뒤에서 호통을 치고 있는 이가 보일지도 모르겠다.
“콜 빨리빨리 받읍시다!”
이런 멘트를 날리는 사람이라면 팀 관리자보다는 그 콜센터에서 가장 높은 사람, 즉 센터장일 가능성이 크다. 주간팀, 야간팀을 따로 두고 24시간 돌리는 센터라면 센터장 밑에서 주간팀, 야간팀을 각각 도맡아 관리하는 주간·야간 대표실장으로 생각해도 좋다.
분명 아무도 쉬지 않고 일하고 있는데, 엄청나게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 게 눈에 보이는데 저렇게 소리를 지른다면 그로서는 상담사들을 어떻게든 더 갈아 넣어서 문제를 해결해보려고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물론 그렇기 때문에 센터 내에서는 공공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가 해결하려는 문제는 ‘콜 포기율’일 가능성이 높다. 통화를 기다리다가 포기하고 전화를 끊어버리는 고객들 비율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콜 포기율’이 조금이라도 높아지면, 다른 표현으로 고객이 전화를 걸어 상담사와 연결되는 ‘응답률’이 조금이라도 낮아지면 본사에서 큰 호통을 듣는다(이 책에서 말하는 ‘본사’는 콜센터에 도급으로 일을 준 ○○홈쇼핑이나 ○○커머스 같은 원청 회사를 가리킨다). 고객의 전화를 받아 문제를 상담하고 해결하는 게 콜센터가 존재하는 이유이니, 애시당초 콜센터에서 이 수치가 절대 낮아서는 안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콜센터 업무가 처음인 신입이라면 사무실에서 소리소리 지르는 저 사람을 보고 ‘앗 깜짝이야!’ 하는 반응으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경력자라면 이 사람의 존재, 목소리 톤, 노호성의 빈도 등으로 면접을 치르기도 전에 이미 이 콜센터의 업무 강도를 파악했을 것이다.
그렇게 사무실 스캔을 마칠 즈음, 순번에 따라 서너 명 또는 대여섯 명씩 면접 장소로 정해진 방에 들어가 나란히 앉아 기다리고 있으면 면접관이 등장한다. 면접관은 관리자 중에서 적당한 한 명이 들어간다. 본래 센터장이 들어와야 하지만 센터장이 어디 회의라도 들어가 있거나 콜 포기율뿐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노호성을 지르기에 바쁘다면 다른 사람을 면접관으로 들여보내는 일이 더 흔하다. 각 팀 팀장 중 하나가 들어가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는 직급이 높은 교육팀 강사나 센터장, 주·야간실장이 등장하는 경우가 더 많다. 우리 회사라면 이 면접자들이 만나는 사람은 높은 확률로 나일 것이다.
면접관이 당일에 즉흥적으로 결정되는 일도 흔하니 이력서를 면접 자리에서 처음 읽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콜센터가 워낙 바쁜 곳이어서 그렇기도 하다. 가장 큰 이유는 콜센터는 상담원을 직접 고용하는 것이 아니라 아웃소싱하는 형태라는 점이다(이건 다음 글에서 따로 이야기하겠다).
아무튼 면접 과정을 거쳐 출근하라는 통보를 받고 나면 콜센터에 대한 이런저런 배경을 아는 사람과 모르는 사람이 함께 채용되어 한 달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교육을 거친다. 그보다 짧게 교육하는 곳이 더 많기는 하다. 교육 기간 동안에는 정규 급여의 일부만 지급되고 이 역시도 교육 과정을 전부 수료한 경우에만 지급한다.
같은 날 면접을 본 합격자끼리 동기라고 친해지는 것도 이때부터다. 대부분 나이나 결혼 여부, 자녀 유무 등에 따라 이야기가 통하는 수준이 다르다 보니 그런 조건이 비슷한 사람끼리 쉽게 친해지기는 한다. 그래도 의외로 성격이 맞아서 중년 여성과 사회초년생 청년이 매일 같이 밥도 먹고 세상 사는 이야기도 하면서 즐겁게 지내기도 하고, 안 해본 스타일이 없어 보이는 공작새 같은 여성과 수수하고 조용한 학원 선생님 스타일 여성이 친하게 지내기도 해서,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참 재미있는 일이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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