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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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희령을 여름 냄새로 기억한다. 사찰에서 나던 향 냄새, 계곡의 이끼 냄새와 물 냄새, 숲 냄새, 항구를 걸어가며 맡았던 바다 냄새, 비가 내리던 날 공기 중에 퍼지던 먼지 냄새와 시장 골목에서 나던 과일 썩어가는 냄새, 소나기가 지나간 뒤 한의원에서 약을 달이던 냄새…… 내게 희령은 언제나 여름으로 기억되는 도시였다.
희령에 처음 간 건 열 살 때 일이었다.
할머니 집에서 열흘 정도 지내는 동안 할머니는 나를 데리고 이곳저곳을 구경시켜줬다. 우리는 버스를 타고 산속에 있는 사찰에도 가고 집 근처의 바닷가에도 갔다. 시장에서 갓 튀긴 팥 도넛과 꽈배기도 먹고, 집에서 음악을 틀어놓고 할머니의 친구들과 춤을 추기도 했다.
어린 내 눈에 희령의 하늘은 서울에서 보던 것보다 더 높고 푸르렀다. 아직도 잊지 못하는 건 할머니와 함께 본 희령의 밤하늘이다. 나는 그때 은하수를 맨눈으로 처음 봤는데 한동안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배가 울렁거리고 간지러웠다.
희령에 도착한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아서 나는 할머니에게 마음을 열었다. 아이들은 귀신같이 아니까. 이 사람이 자신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자신을 해치려 하는지 돌보려 하는지.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할머니와 헤어지면서 나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할머니와 정이 들어서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앞으로 할머니를 못 볼지도 모른다는 예감 때문이었다.
다시 희령에 내려가던 날, 서른두 살의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 살림살이를 가득 싣고 고속도로를 달렸다. 폭설이 내리는 2017년 1월의 어느 날이었다.
희령 천문대의 연구원 채용공고를 본 건 이혼을 하고 한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마침 내가 속해 있던 프로젝트팀의 일이 끝나던 시점이었고, 갈 곳이 없던 상황이기도 했다. 합격 연락을 받자마자 서울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침대와 장롱, 책상, 세탁기, 식탁, 카펫, 그의 손길이 닿았던 속옷과 식기를 전부 버렸다. 육 년을 산 집이었기에 물건은 계속해서 나왔다. 이사 당일까지 쓰레기봉투 몇 개를 더 채우고서야 끝이 났다.
희령으로 떠나기 전날에야 인터넷으로 희령이 어떤 곳인지 알아봤다. 희령은 서쪽으로는 해발 천 미터가 넘는 산맥이 자리하고 있고 동쪽으로는 바다가 있는 작은 도시였다. 해안 저지대에 농경지와 시가지가 형성돼 있는 곳으로, 같은 도의 다른 시에 비해서 규모가 작고 인구도 십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춘천을 지날 때쯤에 눈이 잦아들기 시작했지만 바람이 세서 작은 차가 휘청거릴 정도였다. 희령까지 가는 동안 숨을 고르기 위해 번번이 휴게소에 들러야 했다. 평소에는 멀미를 잘 하지 않았는데 그때는 몸도 마음도 약해져 있어서 쉽게 어지러움을 느꼈고 속이 메스꺼웠다.
서울을 떠난 지 다섯 시간이 지나서야 희령의 관광호텔에 도착했다. 나는 기진맥진한 채로 짐도 풀지 않고 창가에 앉았다. 창문 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겨울이라 그런지 사람을 찾아볼 수 없었고 물새 몇 마리만 바다 위를 날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가까이서 바다를 본 게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었다. 얼마나 그러고 있었을까. 밤이 되자 어둠 속에서 밝은 등을 단 어선들이 줄지어 조업하는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어선에 달린 등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잠을 이어 자지 못하던 때였다. 그날도 몇 번이고 자다 깨다를 반복했다. 잠이 완전히 달아나서 커튼을 열자 붉은 해가 수평선 너머로 떠오르고 있었다. 바다를 물들이는 해의 붉은빛이 객실까지 밀려들어왔다. 나는 말을 잃은 채로 해의 질주를 지켜봤다. 해가 하늘 높은 곳으로 올라가 더 이상 보이지 않을 때까지.
그날 나는 앞으로 희령에서 살 집을 알아봤다. 총 다섯 군데의 집을 봤는데 처음에 봤던 집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십 년 전에 준공된 두 동짜리 복도식 아파트로 신혼부부나 혼자 사는 노인들이 많다고 했다. 내가 본 집은 오층이었다. 도배장판을 새로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깨끗했고 멀리 바다도 잘 보이고 볕도 잘 들었다. 이사를 하려면 삼 주 정도 기다려야 했지만 그 정도는 감수해도 좋은 집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희령에서의 첫 삼 주 동안은 호텔에 머물면서 출퇴근을 했다. 그즈음 눈이 많이 내렸다. 근처 군부대 군인들이 제설용 삽을 들고 곳곳을 다녀야 할 정도의 폭설이 내리기도 했다. 희령의 눈은 잘 녹지 않았다. 작은 지방도시여서 차와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많았고, 눈이 기화되는 속도가 느렸다.
흰빛이 사람을 압도하고 두렵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한번은 폭설이 그친 무렵, 눈 덮인 논가 국도를 달리다가 가슴이 심하게 뛰고 숨쉬기가 어려워 갓길에 잠시 차를 세워둔 적도 있었다. 마음의 보호대 같은 것이 부러진 기분이었다. 덜 느낄 수 있도록 고안된 장치가 사라진 것 같았다.
천문대에 첫 출근을 한 날, 결혼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예전에 한번 했었다고 답하고는, 더 설명해달라는 눈빛을 읽고 작년에 이혼했다고 덧붙였다.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려고 했지만 심장이 뛰었고 작아지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어색하게 웃으면서 다른 주제로 말을 돌렸다.
퇴근하고 호텔로 돌아오면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창을 열면 파도치는 소리가 들렸다. 몸이 얼어붙을 듯 추운데도 누운 채 파도 소리를 들은 날도 있었다. 창을 닫아야 하는데 몸을 일으키기가 어려웠다. 물컵에 물을 따라 마시는 것조차 엄두가 나지 않아서 입이 말랐다.
거울을 보면 등이 굽고 어깨는 앞으로 말린데다 근육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른 내가 있었다.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서 짧은 단발로 잘랐지만 그런 내 모습이 더 낯설게 느껴지기만 했다. 지우와 전화를 하는 것이 유일한 위로였다.
지우는 해가 질 무렵이면 전화를 해주었다. 지우는 나를 대신해서 울어주고 욕해주고 나를 걱정해주는 얼마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 개새끼는 참 뻔뻔해.”
지우는 내 전남편을 개새끼라고 불렀다.
“개가 왜 욕이 됐을까.”
나는 지우에게 물었다.
지우는 개새끼라는 말은 개의 새끼라는 뜻이 아니라고 했다. 여기서 개는 가짜라는 뜻이라고, 그러니까 ‘정상 가족’이라는 테두리 밖의 ‘가짜’ 자식을 듯하는 멸칭이라고 했다. 지우는 거기까지 설명하더니 나쁜 말이네, 라고 말하고는 앞으로는 그 단어를 쓰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개새끼, 미친놈, 씨발놈 어느 것 하나 쓸 만한 말이 없다면서, 인간은 왜 이렇게 치졸하냐고, 왜 꼭 약한 사람을 짓밟는 식으로밖에 욕을 못 만드느냐고 했다.
“참신한 욕이 필요해. 분이 풀리는 욕이 필요해.”
그것이 지우의 결론이었다. 나는 전화를 끊고 개새끼라는 단어를 종이에 펜으로 써보았다. 개새끼. 어원이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 의미로 그 말을 쓰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나는 강아지를 떠올렸다. 자기에게 관심도 없는 사람의 바짓자락에 붙어서 꼬리를 흔드는 모습을.
왜 개새끼라고 하나. 개가 사람한테 너무 잘해줘서 그런 거 아닌가. 아무 조건도 없이 잘해주니까, 때려도 피하지 않고 꼬리를 흔드니까, 복종하니까, 좋아하니까 그걸 도리어 우습게 보고 경멸하는 게 아닐까. 그런 게 사람 아닐까. 나는 그 생각을 하며 개새끼라는 단어를 가만히 내려다봤다. 나 자신이 개새끼 같았다.
마음이라는 것이 꺼내볼 수 있는 몸속 장기라면, 가끔 가슴에 손을 넣어 꺼내서 따뜻한 물로 씻어주고 싶었다. 깨끗하게 씻어서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해가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널어놓고 싶었다. 그러는 동안 나는 마음이 없는 사람으로 살고, 마음이 햇볕에 잘 마르면 부드럽고 좋은 향기가 나는 마음을 다시 가슴에 넣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겠지. 가끔은 그런 상상을 하곤 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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