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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난
모든 중독 이야기는 악당을 원한다. 그러나 미국은 중독자가 피해자인지 범죄자인지, 중독이 질병인지 범죄인지 한 번도 제대로 판단해낸 적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다양한 정신노동 분야를 동원해가며 인지부조화의 압박―어떤 중독자는 동정을 사고, 나머지 중독자는 비난받는다―을 완화하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론들은 계속해서 서로 겹쳐지고 진화하면서 우리의 목적에 맞춰진다. 알코올중독자는 고통받는 천재다. 약물중독자는 일탈한 좀비다. 남자 술꾼은 흥미롭다. 여자 술꾼은 나쁜 엄마다. 백인 중독자의 고통은 사람들이 목격해준다. 유색인 중독자는 처벌당한다. 유명인 중독자는 말[馬]과 함께하는 호화로운 재활 치료를 받는다. 가난한 중독자는 곤경에 처한다. 매년 음주운전으로 죽는 사람이 코카인으로 죽는 사람보다 더 많은데도, 크랙을 소지한 누군가는 감옥에서 5년을 사는 반면, 음주운전을 한 누군가는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지낸다. 법학자 미셸 알렉산더Michelle Alexander는 대량 투옥에 관한 중요한 책인 『짐 크로The New Jim Crow』에서 이와 같은 여러 가지 편견이 “누구는 국가에서 추방될 일회용으로 비춰지고 누구는 그렇지 않은지”에 관해 훨씬 더 큰 이야기를 말해준다고 지적한다. 중독자, 음주자, 약물 사용자 문제에서 나타나는 흑백 인종 간의 괴리는 우연한 것이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일부를 비난하려는 우리의 욕구가 빚어낸 참사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마약중독자를 비난하는가?” 문화비평가 아비탈 로넬Avital Ronell은 이렇게 묻고는 자크 데리다Jacques Derrida를 인용해 대답한다. “중독자가 현실에서 망명해 객관적 실재와 도시와 공동체의 현실 생활과 멀리 떨어져 세계로부터 스스로 단절하는 것, 그래서 환영과 허구의 세계로 도피한다는 것… 우리는 그의 쾌락이 진실이 없는 경험에서 얻어진 것이라는 사실을 견디지 못한다.” 중독자가 공동의 사회적 목표를 갉아먹는 배신자라는 이런 시각은 범죄학자 드루 험프리스Drew Humphries가 마약 공포 서사라고 부르는 것에서 지속적인 특징이 되어왔다. 마약 공포 서사는 불안의 원인으로 특정 물질을―종종 임의적으로, 사용이 증가하지 않았음에도―지목해 주변부 공동체를 희생양으로 삼는 미국의 고전적 장르다. 19세기 캘리포니아의 중국인 이민자들과 아편이 그런 경우였다. 20세기 초 남부 흑인들의 코카인 사용이 그런 경우였다. 1930년대 멕시코인들과 마리화나가 그랬다. 1950년대 흑인들의 헤로인 사용이 그랬다. 1980년대 도심 빈민가의 크랙 유행이 그랬다. 21세기로 접어들 무렵 가난한 백인 공동체에서 메스메스암페타민가 성행한 것도 마찬가지였다. 메스는 “인류에 알려진 가장 해롭고, 중독적인 약물”이라고 일컬어졌다. 미국 전역의 페인트칠 벗겨진 헛간에는 예언처럼 그래피티가 쓰여 있었다, 메스는 죽음이다. 포스터와 상업 광고에는 마약에 찌들어 가죽만 앙상하고 송곳니가 누렇고, 얼굴의 염증을 긁느라 아기는 내팽개친, 귀신 같은 얼굴이 등장했다. 그러나 2005년 『뉴스위크Newsweek』의 한 표제 기사가 메스를 “미국의 새로운 마약 위기”라고 부를 때쯤, 메스 사용은 몇 년째 감소하고 있었다.
마약 공포 서사를 유독성 장르라 부르는 것은 마약으로 인한 피해나 중독이 남기는 파괴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중독”이 늘 두 가지 성격을 동시에 지녀왔음을 인정할 뿐이다. 중독은 교란된 신경전달물질 일습이자 우리가 혼란에 관해 말해온 일련의 이야기다. 중독은 감염성 있는 유행병이 되기도 하고, 시민적 의무를 의도적으로 저버리는 행위, 사회질서에 맞서는 용감한 반란, 또는 고통받는 영혼의 고결한 절규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누가 그 이야기를 하는지, 누가 그 물질을 사용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컬럼비아대학교의 신경과학자 칼 하트Carl Hart는 많이 방송되지 못했던 마약 이야기, “한 번도 들려줄 기회가 없었던 특별히 흥미롭지 않은 비非중독 마약 사용자 이야기”에 관해 썼다. 하트가 일깨워주는 것처럼, 사실 대부분 마약 사용자는 중독자가 아니다. 그러나 중독은 다양한 사회적 의제에 편리하게, 불가피한 것이자 한결같이 파괴적인 것으로 제시된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회적 의제가 ‘마약과의 전쟁’이다.
마약을 상대로 한 20세기 미국의 십자군 전쟁은 해리 앤슬링어Harry Anslinger라는 남자와 함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그는 금주법 시대가 막 저물기 시작하던 1930년에 연방마약국을 장악했다. 앤슬링어는 과거 금주법에 기름을 부었던 처벌 충동―중독을 나약함, 이기심, 실패, 위험의 관점에서 보려는 충동―의 흐름을 효율적으로 바꿔 마약을 향해 흘러가게 했다. 이는 단지 은유적 연관성이나 정신적 승화가 아니었다. 앤슬링어의 마약국은 실제로도 금주국이 있었던 바로 그 음산한 사무실을 차지했다.
그러나 이후 몇십 년 사이 미국의 법체계는 알코올중독과 마약중독을 공적인 상상력 속 별개의 범주로 양극화하게 된다. 알코올중독은 질병이고 마약중독은 범죄였다. “센” 마약은 중독이고 술은 오락적 사용이라고 등식화하는 건 그럴싸해 보이지만 사실 그 두 가지 중독에 대한 구분은 주로 사회규범과 법적 관행에 근거를 두고 있다. 더욱이 항상 그랬던 것도 아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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