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렁이가 달걀을 깨물어 먹는 집
그 집은 사방이 시커멨다. 내가 난 집 말이다. 지붕이 삭아서 시커멓고 벽이 그을음으로 시커멓고 때 묻은 걸레로 닦아서인지 마루도 시커멓고 아궁이 불이 세서였는지 군데군데 타서 시커먼 방바닥으로 니가 ‘굴러 나왔다’고 엄마가 말했다. 아버지가 장가를 들어 큰집에서 제금을 난 그 큰집 맞은편 세 칸 초가집에서, 정제라고 부르는 부엌과 안방과 말레라 부르는 마루와 작은방과 소죽 끓이는 아궁이가 있는 집. 안방 난방은 정제에서 하고 작은방은 소죽 끓이는 아궁이가 담당했다. 본채 앞에 작은 마당이 있고 그리고 변소가 딸린 헛간이 있었고 헛간 옆에 텃밭이 있었다. 본채와 헛간 모두 흙집이다. 마을 집들은 대부분 서향인데 내가 태어난 집은 집 뒤, 말하자면 남쪽이 바로 산이 버티고 있어 지세를 따르느라고 북향이다. 대문은 대나무 사립문이고 문간은 큰 골목에서 안으로 쏙 들어와 있다. 제주 사람들의 올레처럼. 이렇게 내가 태어난 집을 묘사하고 나니 북향인 것만 빼고 딴에는 내가 꿈에도 그리는 이상적인 규모와 가장 심플한 형태의 집이었던 것 같다. 전면이 북향인 집의 장점은 뒤꼍이 남향인 점. 남향 뒤꼍, 아니 뒤안은 얼마나 좋은 장소인가. 얼마나, 얼마나……. 그러나 우리 집 뒤안은 햇빛을 받을 수가 없다. 남쪽에 울창한 대나무 산이 버티고 있는 것이 치명적이었다. 하여간 남쪽 뒤안, 부엌문 바로 앞에 확독이라 부르는 돌확이 놓여 있다. 엄마가 부엌에서 흰 광목 앞치마 두르고 일하고 있을 때,
“텃밭에서 산으로 난 길을 따라 고라니가 내려와서는 내가 확독에 갈던 먹을 것을 주면 내 옆에 착근히 무릎을 꿇고 앉아 받아먹고는 했단다. 고라니 가고 나면 산양이 내려와서 저도 달라고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곤 했지. 햇빛은 비록 못 받은 집이어도 얼마나 좋은 집이냐. 고라니, 산양, 토끼, 꿩이 수시로 내려와서 쉬었다 가는 우리 집은 날마다 즐거운 집이었단다.”
물론, 엄마는 이렇게 말한 적이 없지만 내 어렴풋한 기억에 그런 것도 같아 일부러 써보았다. 글을 쓰다 보니, 그림이 떠오른다. 제목은 고라니와 엄마와 산양. 신화 속의 풍경 같다. 이제는 내 마음속 신화가 되어버린 엄마, 고라니, 산양 그리고 우리 집. 그러나 글과는 다르게 우리 집은 그리 즐거운 집이 아니었다.
안방 남쪽으로 조그만 봉창이 나 있었다. 빛은 오직 북쪽 마루 출입문과 남쪽 봉창에서만 들어오니 대체로 낮에도 어둑시근. 나는 그 집에서 토끼해 음력 섣달 스무여드레 자시에 났다. 엄마는 그 방에서 나를 낳아놓고 또 딸이 나온 것을 슬퍼했으리라. 또 딸이 나온 것을 슬퍼했다는 이야기는 하지 않고 엄마는 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섣달그믐 엄동설한 오밤중에 먹일 것이라곤 없는 세상에 나오는 것이 얼매나 고달팠는가 속에서부터 내 오목가심을 오독오독 쥐어뜯더라.”
엄마 가슴을 오독오독 쥐어뜯다가 세상에 나왔다는 엄마의 그 말이 내 가슴을 오독오독 쥐어뜯는 것 같았다. 태어나기도 전에 벌써 엄마 가슴을 오독오독 쥐어뜯었던 불효를 저지른 것이 아주 죄송한 일이라는 걸 일찌감치 알았던 탓인지 나는 늘 혼자, 혹은 나처럼 기가 없고 몸이 약한 동무 하나나 둘하고 사람들 눈에 잘 안 띄는 후미진 곳에서 쪼그리고 놀았다. 무슨 죄 짓고 숨은 것처럼 조심조심.
다른 아이들이 삔 따먹기니, 오재미 놀이니, 고무줄 놀이니, 양지바른 너른 마당에서 머리카락 휘날리며 훌떡훌떡 뛰어놀 적에 나는 그들의 맘보 쓰봉 다리 밑에서 놀았다. 그들이 일으키는 흙먼지 다 마시면서. 그놈의 흙먼지 때문인지 나는 늘 골골거렸다. 겨우 좀 놀았다 싶으면 어김없이 어두운 방으로 기어들어 봉창이나 쳐다보고 누웠다. 그런 날 중의 어느 한 날이었을 것이다. 낮에도 어두운 방 시렁 위로 거대한 구렁이 한 마리가 흰 배를 드러내 보이며 기어 오더니 시렁 위에 올려놓은 달걀 바구니로 접근했다. 나는 그것을 끽소리도 못 내고 지켜보았다. 드디어 구렁이는 바구니 가득 들어 있던 달걀을 남김없이 삼키고 나서 천장 어딘가로 스르르 사라졌다.
군이나 면이나 농촌 지도소나 하는 데서 곧잘 강습을 나왔다. 우리 집 작은방에 엄마들이 가득 모였다. 엄마들은 산아제한 강습을 받느라고 문을 걸어 잠근 채 강습을 받고 있었다. 엄마는 만삭이었다. 내가 아들이었다면 엄마가 배가 부르지 않았을 거라고 우리 집에 온 모든 엄마들이 내게 말했다했으리라. 내가 엄마를 배부르게 해서 엄마를 고통스럽게 한 원흉인가 싶어 괴로웠다괴로웠으리라. 아이가 괴로우면 갈 곳이라곤 변소나 헛간뿐이다. 변소 위에 걸린 시렁에는 닭둥우리를 올려놓았다. 나는 몸을 말아 닭둥우리 속에 쏙 들어갔다. 그래서 강습받다가 소피보러 나온 어마들의 궁둥이를 낱낱이 보았다. 그리고 그 엄마, 나중에 생각해보면 남편이 없어 ‘산아제한’ 강습에 굳이 나올 일이 없을 것도 같은데, 나온 엄마. 하기사 할머니들도 있었으니, 심심해서 마실을 왔으리라. 그 엄마가 소피를 보고 일어서면서 달걀을 훔치는 것을 나는 보았다. 한 개, 두 개, 세 개…를 속곳에 넣고 변소를 나가 곧바로 자기네 집으로 갔다는 것을아주 어린아이였을 땐데도 선명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엄마가 우리 집 달걀을 훔쳤다고 누구한테도 말한 적은 없지만, 이후 내내, 내가 상당히 커서도 그 장면을 본 것이 내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았다. 훔친 것을 본 것이 미안했다. 그 엄마가 아들을 데리고 마을을 떠났을 때 나는 내가 미안하다, 는 말을 못 해 두 번째 잘못을 저지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사람이 떠나고 없는 빈집에 들어가 괜히 혼자 서성대기도 했다. 동네 여느 집처럼 서향집인 그 집은 동네 여느 집처럼 겨울엔 추웠고 여름엔 더웠다. 그런데, 그 집은 더 춥고 더 더운 것 같았다. 비가 오면 더 축축했고 가물 때는 더 퍽퍽했다. 그 집 닭들은 물똥을 아무 데나 막 갈겼고 돼지들은 별스레 더 악을 쓰며 울어댔다. 소는 없었고 습기 찬 마당에는 늘 풀이 우북했고 유독 날파리가 들끓었다. 사람이 빈 그 집은 이내 허물어졌다. 허물어진 그 집 위에 어느 날 죽순이 돋고 죽순은 순식간에 자라서 그 집 전체를 대나무밭으로 만들었다. 그 대나무밭은 유독 모기가 많고 뱀이 들끓어서 사람들은 아무리 죽순이 욕심나도 그 밭엔 들어가지 않았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는 대나무밭 속엔 모기와 뱀과 그리고 사람의 아기가 있었다. 사람이 오지 않는 대나무밭 속에 누군가 아기를 버렸고 또 버린 그 아기를 누군가 데려갔다. 세상에는 그런 집도 있었다. 아파트 세상에서는 믿기 힘든, 그러나 분명히 있었던 집. 그리고 지금은 가뭇없이 없어진 집. 집은 저 스스로 죽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해준 집. 날마다 조금씩 눈에 안 띄게 죽어가는 그 집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것이 나는 좋았던가? 풀이 우북한 그 집에 내가 있으면, 울 애기 여기 있능가아, 엄마 목소리가 들렸다. 약간의 염려와 약간의 두려움과 약간의 호기심으로 엄마도 나를 따라 그 집을 휘휘 둘러보다가 내 손을 잡고, 얼릉 나가자, 얼릉.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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