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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은 어떻게
홍콩이 되었나
밸런타인데이의 비극
2018년 2월 8일, 홍콩인 찬콩카이陳同佳와 푼히우윙潘曉穎 커플은 밸런타인데이를 기념해 타이완으로 여행을 떠났다. 하지만 이들의 동행은 비극으로 끝났다. 여행 마지막 날인 2월 17일, 찬남성은 푼여성을 살해·유기한 뒤 도망쳤다. 밝혀진 바에 따르면 찬은 귀국을 하루 앞두고 푼과 다투었다고 한다. 싸움의 발단은 푼의 임신. 찬은 아이의 아버지가 푼의 전 남자친구이고, 푼이 그와의 섹스 비디오를 자신에게 보여줬다고 주장했다. 이에 격분하여 푼을 살해한 뒤 시신을 여행 가방에 넣어 주웨이竹圍 역 근처 공원에 유기했다는 것이다.
살해 직후 그는 푼의 스마트폰과 디지털카메라, 신용카드를 챙겨 달아났다. 도주 중 피해자의 카드로 타이완에서 2만 타이완달러한화 약 80만 원를 인출했고, 홍콩으로 돌아와 이틀간 약 1만 9200홍콩달러한화 약 270만 원를 더 꺼냈다. 그는 홍콩에서 푼의 부모에게 전화를 걸어 여행 중 푼과 말다툼을 했는데, 화가 난 푼이 밖으로 뛰어나갔으며, 자신이 뒤쫓아 갔으나 결국 찾지 못해 혼자 귀국했다고 말했다. 찬의 전화를 받은 푼의 부모는 홍콩 경찰에 딸의 실종을 신고했다. 경찰이 푼의 입국 기록을 찾지 못하자 부모는 다시 타이완 경찰에 신고했다.
3월 11일, 타이완 경찰은 “CCTV를 통해 푼이 마지막으로 숙소에 들어간 시간이 2월 17일 0시 26분인 것을 확인했다. 다만 푼이 숙소 밖으로 나오는 장면은 없었다”라고 홍콩 경찰에 통보했다. 이틀 뒤 홍콩 경찰은 찬을 살해 혐의로 긴급 체포했다. 조사를 받던 찬은 자신이 푼을 살해한 뒤 시신을 지하철역에 유기했다고 자백했다. 타이완 경찰은 주웨이 역 인근에서 푼의 시신이 담긴 분홍 가방을 발견했다. “최근에 매일 비가 온 탓에 시신은 매우 부패한 상태였다.” 푼의 시신을 부검한 타이오나 경찰은 사인목뼈 골절과 사망 당시 임신 5주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3월 29일, 푼은 주검이 되어 홍콩으로 돌아왔다.
한동안 이 사건에 대한 기사가 거리의 신문 판매소를 가득 채웠다. 젊은 여인의 치정과 살인, 섹스 비디오 등 황색언론이 좋아하는 요소가 가득했기 때문이다. 이때까지는 그런 줄로만 알았다.
갑자기 상황이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홍콩에서 살인죄는 종신형에 해당하는 범죄지만, 살인이 타이완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찬을 홍콩 법으로 처벌할 수 없었다. 한국처럼 속인주의 형법을 채택한 나라는 자국민이 해외에서 벌인 범죄를 국내법으로 처벌할 수 있지만, 홍콩은 속지주의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영국의 영향이다 홍콩인이 해외에서 벌인 범죄를 처벌할 수 없다. 속지주의 국가는 대신 범인을 범죄를 저지른 국가로 보내 재판받게 한다. 곧 찬을 처벌하기 위해서는 그를 타이완으로 보내야 한다는 뜻이다. 타이완 검찰은 사건 초기부터 찬의 신병 인도를 요청했다. 하지만 홍콩 경찰은 찬을 송환하는 대신 경찰 세 명을 타이완에 파견해 사건을 조사하게 했다. 타이완 검찰은 2018년 3월, 4월, 7월에 찬의 송환과 사법 공조를 요청했지만, 홍콩 측은 묵묵부답이었다. 더 이상 사건 처리를 미룰 수 없게 된 타이완 검찰은 2018년 12월 3일을 기해 찬에게 37년 6개월간 효력이 있는 수배를 명령했다.
사실 홍콩은 홍콩대로 고민에 빠졌다. 이 사건은 찬을 타이완으로 보내 재판받게 해야 하지만, 홍콩과 타이완은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았기 때문에 신병을 인도할 법적 근거가 없었다. 결국 찬이 살인을 자백했음에도 불구하고 홍콩 검찰과 법원은 살인죄를 심판하지 못했다. 2019년 4월 29일, 찬은 푼의 카드와 물품 등을 훔친 혐의로 29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마저도 검찰의 구형보다 3분의 1이나 감형된 결과였다.
Cap.503
이 이야기를 들은 여러분은 ‘홍콩과 타이완이 범죄인 인도협정을 맺으면 안 돼?’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하다. 중국홍콩과 타이완은 서로를 국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헌법은 타이완을 미수복 구역으로 규정한다. 타이완헌법에는 중국 대륙 전체가 미수복 구역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홍콩은 법적으로 중국의 특별행정구Hong Kong Special Administrative Region이기 때문에 타이완과 개별 협정을 맺을 수 없다. 홍콩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나 국제축구연맹FIFA, 세계무역기구WTO 같은 국제기구에 단독 가입할 수 있지만, 상대가 타이완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홍콩에는 미니 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홍콩기본법’이 있지만 이 또한 ‘중화인민공화국헌법’의 영향을 받는 하위 법에 불과하다.
홍콩의 ‘범죄자에 대한 인도 조례’흔히 ‘Cap.503’이라고 부른다. 이 책에서는 ‘Cap.503’ 또는 ‘송환법’으로 표기했다의 1조는 법의 적용 범위를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이 조례를 “중국 혹은 중국의 다른 부속 지역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 홍콩 정부가 타이완 검찰의 송환 요청에 묵묵부답하며 수사관만 파견한 이유도, 자칫 둘 사이의 공조가 타이완의 주권을 인정한 것처럼 비치면 난처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던 2019년 2월, 별안간 홍콩의 치안과 방재, 중대 범죄를 총괄하는 행정부 소속의 보안국이 중국, 타이완, 마카오 등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은 지역으로 도망간 범죄자의 송환을 위해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그러면서 푼 살인 사건을 중요한 사례로 들었다. 이어서 5월 20일에는 보안장관 존 리John Lee가 “오는 6월 9일에 Cap.503 개정안을 홍콩 의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개정안의 핵심은 “이 법의 적용 범위를 삭제하여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은 지역으로 범죄인을 송환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곧바로 홍콩 시민 사회가 반발했다. 홍콩 사회가 반발한 까닭은 동일한 범죄에 대해 중국과 홍콩의 형량이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 홍콩에서 한화 약 5억 원을 뇌물로 받거나 횡령할 경우 최대 10년 형을 받지만, 중국에서는 동일한 죄에 대해 사형까지 선고할 수 있다.
중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다양한 죄에 사형을 선고하고 집행하는 나라다. 반면 홍콩은 1993년에 종신형 이상의 신체형을 폐지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형제 폐지국은 자국인이 국외에서 사형을 받을 가능성이 있는 범죄를 저지른 경우에는 상대국으로의 송환을 거부하며, 이와 같은 일을 피하기 위해 사형집행국과는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는다. 예를 들어 실질적 사형제 폐지 국가인 한국은 세계의 여러 나라와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고 있지만, 여전히 사형을 집행하는 일본은 미국, 한국 등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어떤 나라와도 이 조약을 맺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비춰봤을 때 송환법 개정은 처음부터 무리한 시도였다.
푼 살해 사건에서 홍콩의 법의 허점으로 인해 실체가 밝혀진 살인을 처벌하지 못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개선이 필요하다. 하지만 찬을 타이완에 송환하려다가 자칫 홍콩인을 중국으로 송환할 법적 근거가 만들어지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홍콩 정부와 친정부 언론은 이 법의 개정이야말로 사법 정의를 실현하는 조치라고 주장하며, 이를 정치적으로 해석하지 말라고 시민들에게 당부했다. 하지만 당국의 설명이 길어질수록 시민들의 시선은 싸늘해졌다. 이것은 법 조항 하나를 넣고 빼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송환법 개정은 1997년 이후 이어진 중국과 홍콩 시민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알린 사건이다.
Cap.503을 입법한 이들은 1조에 “중국 혹은 중국의 다른 부속 지역에서는 적용할 수 없다”라고 명시했다. 당시 범죄인 인도 협정을 맺지 않는 소극적 방지가 아니라 미체결 지역에서는 이 법을 집행하지 않는다고 확정한 것이다. 정확히는 광범위한 사형제 집행 국가인 중국으로 홍콩인을 인도할 수 없게 하여 중국의 내정 간섭을 막고 홍콩인의 민주적 활동을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앞서 2016년 홍콩 입법회한국의 국회 역할을 한다에서 열린 대정부 질의에서 야당 의원들은 송환법을 개정할 계획이 있느냐고 질문했고, 홍콩 정부는 그럴 의사가 없다고 답변했다. 그로부터 3년 뒤, 한 살인 사건이 촉발한 송환법 개정 시도가 거대한 폭풍을 몰고 왔다. 그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가기 전에, 잠시 홍콩이 만들어진 배경과 역사를 돌아보자.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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