벅찬 둥긂
달항아리 토기
밖으로 짧게 벌어지는 입과 둥근 몸통을 가진 통을 항아리라고 한다. 밑이 둥글기 때문에 바닥에 놓았을 때 기울어져 내용물을 담아 사용하기 불편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만들어진 이유는 둥근 밑을 보완하는 받침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둥근 원 밖으로 벌어지는 짧은 곡선 또는 직선으로 구성된 가장 단순한 형태의 이 항아리는 소박하지만 조형적으로 부족함이 없다.
항아리와 같이 배가 부른 단지 모양의 호형 토기는 넉넉한 볼륨감을 자랑한다. 무덤의 부장품으로 들어간 항아리로 죽은 이에게 음식을 공양하는 의미로 사용되었을 이 토기는 고분의 부곽 또는 주구에서 많이 출토된다. 제사에 쓰는 곡물이나 술 등의 음식을 그 안에 저장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 외 굽다리 접시나 작은 항아리 같은 토기류에 넣은 조류나 패각류, 과실류 역시 제사 음식의 일종이다. 당시엔 오리나 꿩이 특히 선호되었다고 한다. 중국 『위서』의 「동이전」에는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낼 때 음식을 날 것과 익힌 것으로 구분해 장만한다고 적혀 있다. 분명 죽은 이에게 바치는 산 자들의 정성이 이 그릇의 부피감으로 시각화되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토록 부풀 수가 있을까? 음식과 함께 무덤에 묻혀 음식은 이내 사라지고 썩었지만 항아리는 남아 천 몇백 년의 시간을 이기고 내 앞에 서 있다.
답십리 고미술상가 ‘고사랑’에서 구입한 이 토기높이 34센티미터, 입지름 4.7센티미터는 원형의 형태를 완벽하게 거느리고 있어서 놀라웠다. ‘쨍’ 하는 금속성의 소리가 날 것만 같은 경질의 토기다. 이처럼 완벽하게 둥근 토기는 보기 드물다. 전구를 닮은 둥근 토기 항아리다. 완전한 구형을 이룬 형태가 수박과도 같다. 볼수록 매력적이다. 이와 같은 형태의 유례를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 태양일까? 달일까? 어떤 자연물에서 연유하는 것일까? 조선시대 달항아리 백자가 이 토기로부터 기원했음을 알 수 있으리라. 바깥을 향해 마냥 팽창하는 힘을 가시화하는 선은 고형의 존재감 속에 굳어져 토기의 외곽을 이루었다. 어떻게 이토록 둥근 모양의 그릇을 만들 생각을 했을까? 중심에서 외부를 향해 힘껏 밀고 나가다 멈춰버린, 그 마지막 경계선이 그대로 그릇의 외형과 외곽의 선을 이루었다.
바닥에 굽이 없어 스스로 서지 못하는 이 불구의 토기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덤 바닥에 부장으로 안치할 필요로 만들어졌을 것이다. 가야 고분 출토 토기에서 동물 뼈, 패류, 과실 등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대부분의 토기에 생전 섭취하던 음식물이 공헌된 것으로 보인다. 그릇의 용량, 크기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겠지만 산 자들의 죽은 이에 대한 극진한 마음엔 경계가 있을 수 없기에 토기는 이를 끝까지 밀고 직진한다. 죽은 이를 따라 자진하듯, 순장하듯 토기의 외곽은 한계를 향해 치닫는다.
완벽한 곡선, 풍만한 원형의 몸체와 달리 목 부분은 거의 일직선으로 직립했다. 직각으로 바짝 서 있는 구연부의 긴장감 어린 선으로 인해 터질 듯한 볼륨감을 지닌 원형의 선과 직선은 대조를 이루며 날이 서 있다. 안으로 살짝 휘었다가 나오긴 했지만 대단히 단호한 힘줄 같은 선을 입구에 박아 놓아 둥근 몸통과 극단적인 대조를 이룬다. 연결 부위는 약간 융기한 한 줄의 선을 둘러쳤다. 이 선은 구연부에서 적당한 두께의 선과 연결되면서 시선을 연장시킨다. 이런 목은 분명 뚜껑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사실 이 토기는 온전한 제 뚜껑과 함께 나와 있어서 구입했다. 그러나 뚜껑을 씌우는 순간 이 당당하고 아름다운 목을 볼 수가 없어 이내 뚜껑을 치웠다. 곡선과 직선의 대비가 이룬 아름다움을 어찌 포기하란 말인가? 뚜껑이 없어야 몸통과 구연부, 이 둘이 한 쌍을 이루어 직선과 곡선의 절묘한 대조 아래 아름다운 토기의 본래 모습을 온전히 감상할 수 있다.
한편 매끄럽고 미끌거리는 피부는 물컹거렸던 흙을 응고시켜 경질의 존재로, 거의 금속처럼 고체화해 얻은 질감이다. 고온의 열로 그런 질감, 물질의 속성이 전이되었다. 불을 맞아 달궈진 흙의 표면은 여러 색채를 형언하기 어려운 색감으로 안긴다. 인간이 소유한 색명으로는 도저히 가닿지 못하는 이름들이다. 아니 애초에 무명일 수밖에 없는 것들이다. 난해한 색채와 함께 표면의 질감 역시 매끄럽고, 약간씩의 층차를 이루는 굴곡들은 리드미컬하게 흐른다. 이 오묘한 피부를 나는 하염없이 들여다본다. 돌려가면서 흙을 쳐서 부드러운 원형의 형태를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탄력적이고 연속적인 터치가 표면에 자욱하게 깔렸다. 그것은 마치 본래 토기의 무늬, 문양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다. 단일한 색채가 아니라 몇 가지 색들이 터치와 겹치면서 그런 효과를 더욱 증폭시키는데, 그에 따라 표면은 구름처럼, 물결처럼 섞이고 혼재되어 흐르고 뒤척인다. 저 토기의 표면에서 하늘 풍경이 연상되고 흐르는 강의 물살이 자꾸 떠오르는 것이다.
몸통에는 가는 선들이 몸체를 따라 선회하듯 지나간다. 바람의 자취 같기도, 별자리의 이동 같기도 하다. 아니면 강물이나 바닷물의 흐름 같기도 하다. 도공들이 물레를 돌리면서 토기의 몸체를 다듬던 손길이 남긴 흔적이긴 하지만 이 자연스러운 선은 지극히 서정적인 자연의 한 장면을 꿈처럼 안긴다. 약간의 요철 효과가 매끄러운 토기의 피부를 긁고 지나간다. 언어로 지시할 수 없는 색채들이 보였다 사라지기를 거듭한다. 토기 표면 자체가 거대한 우주 같고 마당 같아서 그 안에 너무 많은 이미지와 색채가 선회한다. 이 벅찬 둥긂 안에 깃든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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