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릇
1
사기그릇 같은데 백년은 족히 넘었을 거라는 그릇을 하나 얻었다
국을 담아 밥상에 올릴 수도 없어서
둘레에 가만 입술을 대보았다
나는 둘레를 얻었고
그릇은 나를 얻었다
2
그릇에는 자잘한 빗금들이 서로 내통하듯 뻗어 있었다
빗금 사이에는 때가 끼어 있었다
빗금의 때가 그릇의 내부를 껴안고 있었다
버릴 수 없는 내 허물이
나라는 그릇이란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금이 가 있었는데 나는 멀쩡한 것처럼 행세했다
수치에 대하여
나는 집을 접었다가 폈다 한 적이 없었다
나는 아침마다 물가로 나가 집의 부리에 물을 먹여준 적이 없었다
나는 찔레나무 끄트머리를 집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나는 천막을 집으로 여기고 잠을 청한 적이 없었다
나는 가끔이라도 겨드랑이에 가구를 들이지 않은 적이 없었다
나는 대열에서 이탈해 스스로 무덤이 되어본 적이 없었다
나는 한번도 공허 속으로 홀연히 사라진 적이 없었다
(본문 중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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