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현상白水現像
수압이 높은 동네에서 삽니다
웃풍이 부는 방, 작은 기포들로 만든 꿈은 아침이 되면 사라져 버리죠 뜨물을 받아 세수합니다 우윳빛 피부를 가진 친구는 일자리를 구했습니다 어떤 화장품을 쓰는지 물어봤는데 밤마다 애인이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자기는 없고 소개서만 쌓이는 현상, 늙은 면접관들 앞에서 머릿속은 하얘집니다 냉수를 마시고 속을 차린 어젠, 정수기가 나보다 쓸모 있다는 것을 알았고 뜨겁거나 차갑지 않은 이력을 가진 오늘은 직수로 놀고 있습니다
하품을 합니다
또 다시 맑은 아침입니다
옥수동
키가 한 뼘씩 웃자랐다
구름 밑의 옥수수처럼 껍질을 벗고 죽은 살을 뜯어먹으면
말을 더듬는 혀 끝에 단맛이 돌았다
혼자가 아니었다
알알이 많은 내가 어제도, 이번 정거장에도
유통기한이 넘은 깡통 속에도 있었다
때론 조조할인 영화를 본 날은
이유 없이 나를 부풀리기도 했다
겨드랑이와 가랑이 사이가 간지러워 실실 웃다가도
틀니를 낀 노인이 지나가면
입을 다물었다
나는 누구의 잇몸에서 빠져나왔을까
가끔 유치한 상상을 했다
영구치도 영원하지 않고
바람이 검은 안경을 쓰고 하모니카를 부는 동네
어금니가 닳도록 치열하게 살아도
붓고 시리고 흔들리는 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자꾸 뭔가가 끼었고
속살을 깨무는 버릇이 생겼다
구름을 덮으면
죽은 동생이 이갈이를 하며 사카린을 뿌렸다
지붕이 자라는 밤이었다
(본문 중 일부)
#문학나눔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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